CHAPTER 5_무엇이 성숙한 인생을 좌우할까
(Epigraph) 서른 살이 되면 인간의 성격이 석고처럼 단단히 굳어 다시는 바뀌지 않는 것은 인류에게 축복이다. – 윌리엄 제임스
1967년 서른 세 살의 내가 그랜트 연구 대상자들을 처음 면담했을 때 그들은 사십대 막바지에 있었다. 나는 언제나 윌리엄 제임스를 존경했고, 사십대 말에 접어든 대상자들을 보며 사람의 성격이 30세까지 굳어진다고 했던 제임스의 주장이 한동안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상자들을 관찰하면서 최소한 이 주장만큼은 잘못된 이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발달 심리학의 교과서들을 보면 20세 또는 늦어도 30세에 성장이 멈춘다고 제시하고 있다. 주요한 영향을 미친 한 저작은 2010년에 이런 주장을 폈다.
[1] “대상자 스스로 내린 평가나 배우자가 내린 평가를 통해 보면 개인의 성격은 30세 이후나 또는 20세에서 90세 사이에는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가.”
지난 75년 동안 연구원들은 인간 발달 전 과정을 규명하고자 적어도 6개의 모델을 근거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첫 번째 모델은 에릭슨이 프로이트의 업적으로 평가한 사랑과 일(Lieben und arbeiten) 모델이다.
[2] 이 모델에 따르면 성숙은 사랑과 일에 대한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3] 메닝거 임상연구소의 뛰어난 연구 심리학자 레스터 루보르스키(Laster Luborsky)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이 연구소의 30년 넘는 심리치료연구 프로젝트(Psychotherapy Research Project)에서 사용한 발달 모델로 발전시켰다.
[4] 프로이트의 이론을 약간 변형한 그의 발달 측정 등급은 결국 DSM-IV에서 미국정신의학회가 정한 정신 건강의 엑시스 V(Axis V)에 올랐다.
[5] 나는 그랜트 연구 대상자들을 처음 면담할 때 이 기준을 갖고 그들의 성숙도를 평가했으며, 그 결과는 10종 경기 점수 평가와 성인적응평가에 남아있다. (부록 D 참조)
그러나 사랑과 일 모델은 발달의 전 과정을 포함하는 모델로는 문제가 있었다. 성숙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발달을 뜻한다. 그러나 일과 사랑에서 성공을 이루는 시기는 상황에 따라 불규칙하게 변했고,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일반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심화 deepening”과정은 없었다. 이 모델은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34세에 나는 성숙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복잡한지 막 깨닫는 중이었다. 내가 그랜트 연구 대상자들과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아갈수록 에릭 에릭슨이 말하는 인간의 심리발달모델이 옳다는 생각도 점점 더 커졌다. 에릭슨의 모델은 다음과 같다.
[6] 이론적으로 인간의 성격은 성장하는 주체가 가고자 하고, 알고자 하고, 넓은 사회 반경과 교류하고자 하는 의지 안에서 예정된 단계에 따라 발달한다.
내가 그랜트 연구에 몸담은 처음 10년 동안 연구팀은 이 모델에 관해 연구를 거듭했다.
[7] 이 장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려 한다.
에릭슨이 말한 성숙은 차이를 인내하는 능력과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사랑과 일에서 성공하는 것이 성숙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과는 달리 에릭슨이 말한 발달 과업의 서위는 상대적으로 주변의 상황과는 별 관계없이 이룰 수 있다. 에릭슨이 말한 발달 과업 성취는 예견된 방법으로 발현되고 계속된다.
[8] 바로 이 점 때문에 에릭슨의 모델과 뒤이어 발표된 성인의 성장 과정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설명해주는 것이다.
세 번째 성숙 모델은 사회적 지능과 감성적 지능의 발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모델은 인간이 가진 비자발적 방어기제가, 시간이 흐르며 보람 있는 인간관계를 이끌어내게 하는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탈자기화 과정을 거치며 발달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힌두교 문화권에서 숭앙하는 네 번째 성숙 모델에서는 노인은 늙으면 숲속으로 들어가 수행하고 자신의 영적 삶에 대해 명상하며 세속적인 문제는 후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델은 최근에 뇌 영상 촬영법과 신경학이 발달하면서 더욱 매력적인 모델이 되었다.
[9] 과거에는 영적 세계와 관련 있다고 생각되었던 경외, 희망, 연민, 사랑, 믿음, 감사, 기쁨, 용서 같은 감정이 신경해부학과 진화론의 맥락을 거치며 추상적인 감정이 아닌 생물학적 실체가 된 것이다.
[10] 성숙에 관한 다섯 번째 모델은 폴 야코블레프(Paul Yakovlev)와 프랜신 베네시(Francine Benes) 같은 발달 신경해부학자들이 받아들인 이론이다.
이 이론은 성숙을 사회 감성적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발달 과정에서 16세까지도 멈추지 않고 일어나는 뇌의 발달에 따른 감성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신경해부학자들은 20세와 60세 사이에 뇌의 수초와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초(Myelin)는 뉴런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 신호가 누출되거나 흩어지지 않게 보호하는 물질로 이것이 분비되면서 뇌의 전기적 전달 기능이 증가한다.) 이 발달로 일어나는 그물 효과(net effect)는 인지 능력과 열정이 점점 더 증가하며 조화롭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현재 그랜트 연구의 책임 연구원인 로버트 웰딩거는 이 발달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성숙에 관한 여섯 번째 모델이자 가장 최근에 등장한 모델은 지혜의 발달을 성인 발달이 최고 정점에 이른 단계이며 발달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11] 플로리다 대학의 사회학자 모니카 아델트(Monika Ardelt)는 하버드 집단 대상자들의 생애 연구 자료들을 이용해 인간의 본성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신비하고 운명적인 특징을 실험 연구했다. 잠시 이것을 설명하겠다.
이 장에서는 에릭슨이 성인 발달에 관해 말한 개념과 그랜트 연구의 결과로 인해 변화된 성숙 모델을 중심으로 다루겠다.
1. ‘통합으로 나아가는 에릭슨의 성장 모델
프로이트는 다른 많은 심리학자처럼 인간이 성인이 되어서도 발달한다는 사실 자체를 철저히 부정했다. 그러나 에릭슨은 인간이 전 생애에 걸쳐 전진하고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발달을 일련의단계적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12] 여성 발달에 관해 연구한 학자 캐롤 길리건(Carol Gilligan)은 이 발달 과정을 더 도발적인 이미지로 제시했다.
길리건은 인간의 발달 과정을 계단이 아닌 잔잔한 연못에 돌은 던졌을 때 일어나는 파문에 비유했다. 그녀의 비유는 에릭슨의 비유만큼이나 생생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라는 목적성이 에릭슨의 이론보다 떨어지며, 성인 발달이 사회적 범위와 도덕적 한계를 계속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본 에릭슨의 발달 모델을 억지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에릭슨의 발달 단계에 직업적 안정과 후견이라는 단계를 추가했다.
[13] 에릭슨은 자신의 발달 모델을 잘 알려진 저서 <아동기와 사회 Childhood and society>에서 소개했다. 그의 설명은 뛰어났지만 에릭슨이 말한 단계는 성년기를 설명한 다른 이론들처럼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했다.
[14] 21세기가 되어서야 처음부터 끝까지 전향적으로 관찰한 성인의 삶과 생애에 대한 자료를 통해 인간의 발달 과정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15] 성인 발달에 관한 생체 내 연구는 잭 블록(Jack Block), 글렌 엘더(Glen Elder), 로버트 와이트(Robert White), 그리고 찰스 맥아더와 내가 각기 다른 연구를 통해 중년에 이른 성인의 전향적 연구 자료들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성인 발달에서 단계는 은유적 표현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겠다. 단계라는 개념은 에릭슨과 다른 학자들이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대중적인 개념이 되었지만 이 말이 성인발달에 관한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 발달은 단계적으로 깔끔하게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다.
에릭슨의 모델을 소개하기 전 설명할 것이 있다.
[16] 발달과업이 단계보다 더 유용한 개념이라는 점과 함꼐, 내가 소위 성인 발달 단계를 평가할 때 심리사회적 성숙에 따른 특정한 과업 수행을 했는지 추적함으로써 평가했다는 점이다.
– 정체성 (Identity)
에릭슨은 성인으로 발달하는 첫 단계를 정체성 대 역할 분화(Identity vs. Role Diffusion)라고 했다. 나는 연구 목적을 위해 에릭슨이 쓴 용어를 정체성 대 정체성 혼미(Identity ve. Identity Diffusion)로 바꾸고,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정체성 성취를 정의하기 위해 내가 사용한 과업은 원 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살아가며 자립하는 것이다.
정체성은 자기중심적 사고와는 다르다. 그리고 단순히 집에서 떠나 운전면허를 따고 결혼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정체성은 단순히 과거를 부정한다고 이룰 수 있는게 아니다.
몇몇 연구 대상자들은 가족과 그들을 형성했던 다른 사회제도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대상자들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분리와
– 친밀감(Intimacy)
에릭슨은 두 번째 단계를 친밀감 대 고립(Intimacy vs. Isolation)이라고 했다. 나는 특정한 친밀감 형성 과업을 타인과 정서적으로 결합하고, 상호 의존적이고 헌신적인 관계를 10년 이상 유지하며 사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개인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친밀감 형성 과업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사람마다 친밀감 형성 과업을 이루는 시기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친밀감 형성에 대해 내가 내린 몇 가지 기준을 이야기하겠다. 진정으로 친밀감 형성 과업을 이루었는지 측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예컨대 10년 동안의 결혼 생황은 친밀감 형성에 근접했다고 말할만한 합리적인 판단 근거이지만, 결혼 생활 자체를 유지하고 있다 하여 친밀감을 형성했다고 할 수는 없다.
– 직업 안정(Career consolidation)
가족과 가족을 넘어선 인간관계에서는 정체성 확립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지만 직업에서는 정체성 확립에 실패한 몇몇 대상자의 사례를 반복적으로 관찰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체성 확립의 다른 측면과 분리하여 독립적인 성장 과업으로 직업 안정 대 역할 분화(Career Consolidation vs Role Diffusion) 단계를 만들었다.
[17] 다른 곳에서 자세히 설명했듯이, 에릭슨은 정체성 확립과 직업 정체성의 확립의 완성을 하나로 보았다.
나는 직업 안정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을 직업에 대한 헌신, 직업적 보상, 직업에 대한 만족도, 직업 능력으로 정의했다.
직업 안정 과업을 완수한 사람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직업 능력을 성취하는 방법을 사회가 강제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예를 들어 터먼 여성 집단은 1910년 무렵에 충실했다. 이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선거권을 얻기 전에 중학생이었다. 이 여성들은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직업 선택의 범위가 매우 좁았다. 그래서 나는 터먼 여성 집단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일에 헌신하고 능력 있고 만족했다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과업을 완수했다고 평가했다.
– 생산성(Generativity)
에릭슨의 세 번째 단계는 생산성 대 침체성(Generativity vs. Stagnation)으로, 나는 이것은 다음 세대가 독립하도록 인도하고 육성하는 능력과 바람으로 정의한다. 생산성 과업 단계의 완성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어리지만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은 성장한 타인의 성장과 행복에 대해 지속적인 책임감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이것은 지역 사회를 바람직하게 개선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내 생각에는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고 그림을 그리고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해당하지 않는다.
– 후견(Guardianship)
여기서 나는 에릭슨의 성장 모델 과정을 두 번째로 수정하여 생산성이나 통합과 구별되는 측면을 분리해 독립적인 성장 과업을 만들었다. 이전의 저술에서는 의미의 수호자 대 완고함(Keeper of the meaning vs. Rigidity)라고 했으나 여기에서는 후견 대 축적(Guardianship vs. Hoarding)이라고 하겠다.(11장 참조)
후견인은 관리인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특정한 개인을 넘어 문화권 전체에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문화적 가치와 부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다.
에릭슨은 그의 저서에서는 생산성을 특정 짓는 돌봄과 후견(그는 이를 통합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을 특징짓는 지혜를 구분하지 못했다. 생산성은 한 개인이 돌보려고 선택한 대상자들과 관련이 있다. 또한 생산성은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개인을 뛰어넘는 세계관을 갖게 한다. 지혜 없이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가능해도 돌봄 없이 지혜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실 성인 발달에서 타인을 돌보는 능력은 지혜를 얻기 전에 생긴다.
후견인의 임무는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서로 충돌하는 넓은 실체를 존중하고, 돌봄과 정의를 함께 어우르는 진정한 지혜를 알아내는 것이다.
– 통합(Integrity)
에릭슨은 자신의 모델에서 발달의 마지막 단계를 통합 대 절망(Integrity vs. Despair)이라고 했다. 통합은 필연적인 죽음에 직면하여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건설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모순을 받아들여야하는 어려운 과업이다.
통합은 에릭슨이 말한 다른 발달 과업과도 차이가 있다. 즉, 통합의 문제는 노년기 말에 가장 흔한 문제이긴 해도, 인생에서 어느 특정한 시기와 관련된 문제라고 하지는 못한다. 통합의 문제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찾아올지 모르는 병이나 불행으로 맞닥뜨리는 죽음에 대한 발달 반응이다.
– 조지 밴크로프트: 성인의 성숙 단계를 생생하게 보여주다.
[18] 1971년 들어 내가 처음 노력을 기울인 것은 성인 발달에 관한 비밀을 풀고자 하면서 에릭슨이 말한 친밀감과 생산성 단계에 집중한 것이다.
당시 내가 성인 발달 사례로 가장 좋아했던 것은 50세의 조지 밴크로프트였다.
50세가 된 밴크로프트는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생산성 과업을 완수한 전형적인 노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며 작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학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자신과 함께 일하던 젊은 교수진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교생 모두를 돌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책임감으로 느끼는 또 다른 의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70세에 은퇴했다. 한때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가, 학교 전체를 위해 공헌하는 일로 관심을 돌렸던 밴크로프트는 다시 관심을 역사로 돌려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영역을 더 확장해서 바로 그 역할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 생각에 이것은 노인들이 생존하기 위해 진화 과정에서 선택한 것이었다.
밴크로프트는 언제나 특별한 방법으로 성인의 발달 단계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2010년 그의 나이 88세일 때 나는 그에게 약 40년 전에 했던 똑같은 질문과 함께 그거 어떻게 성장했는지 물었다. 그는 “당신은 자신에 관하여 더 잘 알게 되고, 홀로 사는 법에 대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죽음을 두려움 없이 맞을 수 있게 되죠. ‘나이가 들면 여자와 의사에 대해 알게 된다’는 옛말이 있듯이요. …” 이 말은 에릭슨이 말한 마지막 통합 과업을 잘 보여주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미국 사춘기 아이들처럼 그에게도 운전면허를 따는 건 성인이 되는 첫 번째 주요 관문이자, 정체성 확립의 일부이자, 부모의 집을 벗어난 세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그에게 정체성 확립 과업은 그토록 소중한 운전면허증을 포기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욥기에 나오는 “주께서 주시고 주께서 거두시니 주의 이름 송축하리”라는 기도를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으로 변했다.
– 찰스 보트라이트: 가장 지혜롭게 성장한 연구 대상자
[19] 2009년 내가 75세가 되었을 때, 모니카 아델트는 찰스 보트라이트가 지혜를 측정하는 검사에서 그랜트 연구 대상자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그의 삶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처음으로 그의 인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보트라이트의 10종 경기 평가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이었다. 그보다 높은 점수의 사람은 3퍼센트 뿐 이었다.
연구 초기시절, 보트라이트의 자료는 따분하기만 했다. 그는 직업에 대한 헌신도가 낮고, 그 외 인생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증거는 많았다. 이혼했고, 딸과 소원하게 지냈으며, 아들은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다고 썼다.
보트라이트의 20세부터 50세까지의 설문내용을 1974년에 읽으면서 보트라이트가 상투적인 말은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 나이에 자신을 사심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아직 확립되지 않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요구를 부인한 채 그것을 타인의 요구로 투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대상자가 은퇴한 뒤 면담을 진행한 통찰력 있는 내과 전문의 마렌 배털든 박사는 여러 해가 흐른 뒤 비슷한 평가를 했다. 그러나 배털든은 생각을 바꾸었다. 배털든은 79세의 보트라이트와 면담한 음성 기록에 이렇게 녹음했다. “모순된 모습이라고 느껴진다… ” 그러나 그녀는 보고서를 쓰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그녀는 “사실, 보트라이트를 만난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는 그가 배움에 굶주렸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배움에 대한 그의 관심이 분명히 그에게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고루한 직장생활에서 점점 불만을 쌓아가다가 15년 뒤 부채를 뛰어넘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의 리듬 속으로 들어갔다. 직업 안정 과업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생산성 과업 완수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년이 지나 아델트의 소견을 본 뒤 보트라이트의 기록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럽게 성숙한 사람은 보트라이트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희망과 긍정이 가볍게 무시된 감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20] 그리고 전형적인 낙천주의자의 모습을 비웃는 것은 쉬울지라도 낙천주의자가 가진 지혜는 비웃을 게 아니다.
나는 적응방법을 연구하던 시절에 투사가 때로는 이타주의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언제 일어날까? 이런 질문을 명확히 알아내는 데도 일생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찰스 보트라이트의 삶에 이런 질문을 하기 까지 일생이 걸렸다.
그의 삶은 그랜트 연구가 만든 성숙의 여섯 가지 모델 가운데 다섯 가지를 보여준다. 즉, 일과 사랑에 대한 능력을 키우고, 사회적 범위를 확장시키고, 성숙한 방어 기제를 발전시키고, 물질만큼이나 영성에 관심을 갖고, 지혜를 키워나간 모델을 보여준다.
보트라이트는 뉴잉글랜드의 저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를 유지했으며, 친척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그의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는 중에도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둘 사이는 가까웠다.
그랜트 연구 초기 보트라이트는 잘 적응하는 대상자처럼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보트라이트가 사춘기 시절 심각한 정신병을 앓았다고 했지만, 그의 아동기 환경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하여 낙천적인 아이라고 표현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낙천주의자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랜트 연구 결과는 마틴 셀리그먼의 연구 결과가 정확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1] 다시 말해 낙관주의는 저주가 아닌 무한한 축복이다.
보트라이트가 35세를 지나는 전후 15년 동안 그의 아버지는 조울증으로 고생했고 매우 까다롭고 때로는 잔인한 만큼 불만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보트라이트의 결혼 생활도 비슷했다. 그는 22세에 결혼해 3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다. 그는 오십대 초반까지 결혼 생활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그는 이혼했고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낙천주의자이자 부인의 달인으로 일축했다.
30년 뒤 나는 그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힘겹게 이혼할 때에도 그는 아내를 원망하기보다는 이해하려 했다.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해도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보트라이트는 용서가 복수보다 바람직하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보트라이트는 아버지와 가깝게 지내며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아버지가 병상에 있는 동안 간호했다.
감사 그리고 승화라는 성숙한 적응의 대처 방법은 보트라이트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보트라이트는 진실로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보트라이트는 56세에 세 아들은 둔 과부와 결혼했다. 그는 양아들들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다. 보트라이트는 79세때 배털든에게, 그들 부부가 능력 이상으로 기부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국토 보존을 위한 자선 단체로 갔는데, 이는 그가 과거를 보존하려는 심리를 가졌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는 미래도 생각했다. 시 회계감사원 및 시청 전산화 작업을 돕는 봉사도 했다.
그는 83새ㅔ에도 일주일에 28시간이나 일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창조적인 활동이 “사람들이 어떤 문제의 모든 면을 보도록 영감을 주는 일”이라고 했다. 이 말은 그가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89세의 그는 여전히 하루에 2시간 운동했다. 그는 자원 봉사를 일주일에 3시간으로 줄이고 대신 손자들과 놀아주고 외롭게 죽어가는 친구들을 만나며 지냈다. 통합 과업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과업은 아니다. 그러나 통합 과업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죽음 앞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감각을 유지시켜준다. 90세가 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22]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과 스탠포드 대학교에 있는 그녀의 동료들은 인생의 말년에는 감정이 생각을 대체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보트라이트는 배털든에게 말했다. “나이가 들면 이해심이 많아집니다. … 나 같은 늙은 사람에게는 하루 동안 무엇을 이루었느냐 보다는 하루를 어떤 느낌으로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지요.”
보트라이트는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알았다. 그는 승화라는 성숙한 적응 방법을 알고 태어난 사람이었으며, 나이 들면서 더 뚜렷하게 세속적 성공보다는 여엉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보트라이트의 이야기는 나 자신과 연구 대상자들이 거친 성인 발달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그들이 중년에 의식하는 우울증을 젊은 시절보다 더 잘 참아냈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과 타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일을 더 잘 견디게 되었음을 뜻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을까? 내가 40세 때는 성숙한 방어 기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23] 그러나 한때 그랜트 연구에 참여했던 워싱턴 대학의 발달학자 제인 뢰빙거로부터 서로 다른 감정을 자각할 능력이 자아가 발달하는 또 다른 징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달한 뇌 과학은 또 다른 것을 알려준다.
[24] 정서가(emotional valence)를 의식 속으로 끌어들이는 생물학적 능력이 나이가 듦에 따라 뇌의 경로들이 더 효율적으로 격리되면서(수초화 과정이 더 잘 이루어지면서) 성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감정”을 주관하는 대뇌피질 아래 부위와 “계획성”을 주관하는 전두 피질 사이의 통합이 잘 이루어지면서 우리에게 성숙 과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25] 지난 30년 동안 사람은 50세에서 80세 사이에 우울함을 덜 느낀다는 이론이 발전했다.
선택적 감소(selective attrition)는 아마 우울함을 느끼는 감정이 왜 감소하는지 설명해줄지 모른다.
[26] 그러나 이 또한 일부는 로라 카스텐슨이 노인들은 불쾌한 감정보다 즐거운 감정을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뜻으로 말한 사회감성적 선택이론(socioetional selectivity)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랜트 연구 대상자들의 삶을 통해 이 이론이 옳음을 알 수 있었다.
– 피터 펜: 성숙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그렇다면 에릭슨이 말한 일생의 과업을 성취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피터 펜은 약 4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했다. 그리고 종신재직권을 가진 영문과 교수였으며, 영문학에 관한 책도 몇 권 썼다. 그렇지만 그는 성인의 세상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발달과업에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슬프다.
그의 아동기는 매우 쓸쓸했다. 어머니는 늘 초조했고 아버지는 자녀들과 거리를 두었다. 사춘기가 시작되자 그는 정서적 성장을 멈추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는 지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종교와 역사에 깊이 빠져 수재들이 공부하는 미국사와 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그는 정체성이 부족하고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못하는 학생처럼 보였다. 그는 부모와의 관계를 묘사하지 못했다. 또한 자신에 대해 묘사해보라는 질문에 관련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피터 펜에게는 사춘기 청소년들이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의 품을 떠나게 만드는 삶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35세때 그는 박사 논문을 끝마치지 못한 채 전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고, 졸업 25주년 기념 동창회가 있을 때까지 연구팀이 보낸 설문지에 응답하지 않았다.
펜이 47세가 되어 연구팀에 다시 설문지를 보내왔을 때 연구팀에서는 그가 37세 때에야 결국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과, 같은 해 첫 경험을 하지 못한 채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펜은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했지만 연구팀에서는 그가 친밀감 형성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내에 대해 마치 오랫동안 같이 살던 어머니와 결혼한 것처럼 말했다.
그의 직장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그가 다니던 직장이 “종신재직권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이었다는 게 전부했다.
펜은 63세 때 일찍 퇴직했다. 그가 가장 자주 꿈꾼 것은 자신도 언젠가는 중요한 일을 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피터 펜 교수는 81세 때 암으로 죽었다. 그는 언제나 열심히 일했고 말 잘듣는 보이스카우트 대원이나 군인처럼 자신이 받은 선행장의 명예를 더럽힐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전성기는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이후 그는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찾지 못했다. 펜은 성장을 멈춘 사람이었다. 내가 펜의 슬픈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연민의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공적인 발달 과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오랫동안 나는 피터 펜의 삶에 관해 여기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12년 4월 출판사에 넘길 이 책의 원고를 준비할 때 펜이 아내에게 여러 편의 시를 써주었다는 사실과 그의 아내가 남편이 사망한 뒤 그 시들을 책으로 출판하도록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쓴 시들은 사랑스러웠지만 불굴의 정신을 가진 16세 소년이 쓴 것 같았다. 시 속에서는 그들 관계를 말해주는 구절은 하나도 없고, 오직 그의 생각과 소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을 자주 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거라는 억누르지 못하는 바람만 엿보였다. 찰스 보트라이트는 자신을 가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굽히지 않고 소망했지만, 피터 펜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끝없는 속박을 견디기 위해 소망했다.
– 빌 디마지오: 출신을 극복하고 리더가 되다.
피터 펜과는 대조적인 이너시티 집단 대상자 가운데 하나인 빌 디마지오의 인생을 들여다보자.
그는 하층민 가정 출신이다. 노동자인 아버지는 다마지오가 십대일 때부터 장애가 있었고 어머니는 16세때 사망했다. 웩슬러–벨르뷔 지능검사는 82였고, 스탠포드 지능검사 중 언어적 사고 지능은 71이었던 빌은 가까스로 고교 1학년 과정을 마쳤다.
그런데도 50세 때 빌 다마지오는 매력있고 책임감 있고 헌신적인 남자가 되어있었다. 그는 키가 작고 복부 비만이 심했지만 젊은 사람들이 가진 활력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는 가정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다. 막내아들이 여자 친구와 함께 살려고 집에 왔을 때에도 아들의 생각을 인정해주었다. 생산성 과업 완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희망이다. 그렇지만 희망은 한 사람의 마음이 발달의 개념을 아우를 때에만 품을 수 있다. 단순한 돌봄과 놓아주는 것 사이에 생산적인 균형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그 사람 스스로 많이 성숙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다마지오는 이탈리아의 아이들에 속해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아이들을 통해 지역 사회를 위한 자원봉사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클럽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다마지오와 그의 아내는 선거 운동에도 참여했으며, 자선단체 활동도 적극적으로 했다. 한때 낮은 사회 계층에 속했고 지능도 뒤떨어졌던 학생이 리더들의 리더로 성숙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후견인이 된 것이다.
하버드 졸업장이 있거나 지능이 높아야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직업적 성공과 가족에 대한 헌신이 꼭 충돌하는 것도 아니다. 슬프게도 다마지오는 심장마비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2. 성숙하지 못한 삶은 고통스럽다.
[27] 1980년에 내가 45세였을 때 나는 주제넘은 생각으로 인간이 성숙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고 쓴 바 있다.
당시 내가 그랜트 연구를 위해 가졌던 좌우명은 인생은 여행이지 도보 경주가 아니라는 것과, 나비가 애벌레보다 우월하거나 건강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애벌레로 머무는 시기는 짧다. 사회심리적 성숙은 도덕적 명령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회심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삶은 고통스럽다.
사실 생산성 과업을 완수한 대상자들은 직업 안정성을 완수하지 못한 대상자들보다 8년 더 길었다. 생산성 단계를 완수한 대상자들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대상자들보다 85세 때 행복하게 사는 비율이 3배나 높았다. 성인 발달은 성장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단순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건강한 성장의 일부다.
어떤 사람은 발달을 늦게 시작한다. 대개는 이것이 그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아 그들의 수명을 늘렸고, 노년에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늦게 발달하더라도 발달을 이루지 않는 것보다는 확실히 낫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찾는 법을 배우면,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이 성년기 초기에 누리고 산 많은 것들을 노년이 되어 누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기다리는 세월 동안 외롭고 비참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인간 발달에는 한계점이 없다 해도, 특정 기회는 적절한 시기가 지나면 영영 오지 않는다.
– 앨저넌 영: 자신을 틀 안에 가두다
성숙은 나이 들면서 저절로 생겨나는 부산물이 아니다. 그래서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 생긴다.
심각한 우울증, 알코올리즘, 그리고 알츠하이머 병이 사람을 어린아이처럼 만드는 가장 흔한 주범이다. 그러나 다른 원인도 있다. 사고나 병, 사회적 고난 없이 자라려면 일정한 정도의 행운이 필요하다.
엘저넌 영의 삶은 발달과정이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와 발달하지 못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또렷이 일깨워주는 경고와 같은 이야기이다. 영의 이야기는 연구 사례들 가운데 올리버 홈즈가 부자였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그의 지능은 그랜트 연구의 다른 대상자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그도 피터 펜처럼 대학 평가원이 평가한 심리적 건강 상태에서 A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클라크 히스만은 그를 미성숙 상태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남기지 않았다.
그는 타인과 사귀는 것이 매우 어렵고 두렵다고 생각했다. 직장과 가족이라는 좁디 좁은 영역을 벗어나면(때로는 그 안에서도) 정서의 분리(isolation of affect),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 전이(displacement) 같은 집착하는 방어 기제를 갖고 있었다. 영의 사회생활은 통근하는 길에 알게 된 사람에게 차 안에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영은 대학시절에 자동차공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낮은 급료를 받는 일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면담원은 그와의 대화 속에서 그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거나 맡은 일에 헌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영은 함께 일하는 동료와 어떤 유대감도 없었다.
영은 아주 오랫동안 어떤 봉사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너무 오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자기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찾아 삶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불안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런 생활방식 때문에 그는 도움이 되는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그는 자기생각에서 벗어나 생산성 과업 단계로 발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춘기 시절 그렇게도 발전 가능한 환경에서 살았던 영이 사춘기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발달을 이루지 못한 것일까? 그의 인생에 일어난 두 가지 충격적인 사전 때문인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영이 11세 때 그의 어머니가 심한 불안 장애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건이다. 그녀는 가끔 자제력을 잃었기 때문에 앨저넌은 충격을 받아 신의 존재를 더 이상 믿지 않았다. 두 번째는 대학 생활 중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심한 우울증을 앓으면서 직장에서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앨저넌 영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신뢰를 잃은 듯 했다. 그는 하버드를 중퇴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공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다시는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이 대학 시절 받았던 긍정적 평가는 연구원들이 영이 다시 대학에 복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40년간 이루어진 후속 연구에서도 영에게 우울증 장애가 있다거나 알코올을 남용한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는 단시 사람들을 피했으며 자신을 합리적인 예언이 가능한 환경 속에 가두어두었다. 그는 부모를 더 이상 믿지 못했다. 그렇지만 신뢰할 만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서 부모 곁을 떠날 준비가 되지도 않았다.
새로운 역할을 떠맡을 수 있도록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한 사람의 마음속에 생긴 변화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도 우리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힘이다. 그러나 성숙으로 가는 변화는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성숙은 내재화(internalization)와 동일화(indentification)과정을 통해 맺는 열매이지, 누구에게 배워서 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성숙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타인의 존재를 우리 안으로 끌어들인 뒤, 마음속에서 조직적 방법으로 흡수할 때에만 얻을 수 있다.
그 뒤 영의 삶에 어느 정도 발전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는 친밀감 형성과 직업 안정 과업을 일부 완수하는 삶을 살기도 했다. 51세에는 부모가 다니던 교회에 나가면서 삶에 두 번째 전성기가 찾아왔다. 그는 66세로 사망할 때까지 두 번째 결혼 관계를 유지했지만 그것은 부부가 둘 다 교회에 다녔기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손자가 많은 연구 대상자들은 다니던 교회에 더 이상 나가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28] 그러나 노년에 인간관계가 필요했던 대상자들은 종교 단체에서 그러한 인간관계를 찾았다.
돌아보면 영은 위기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기도 했지만 자신의 부모가 다시 한 번 정체성 형성의 근원이 되도록 받아들이면서 이와 함께 자신의 단절된 성장을 조금씩 시작한 것 같다. 그러나 소심한 앨저넌 영에게는 그러한 희망도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3. 성숙은 지혜를 부른다
우리는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차원인지,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깊이 우리의 실체적 모습을 결정하는지 배운다. 상대성과 인생의 복잡성을 더 깊이 이해하면서, 절대적인 것을 믿으려는 미성숙한 욕구는 타인을 신뢰하는 성숙한 능력으로 바뀌고, 종교적인 이상은 영적 공감에 자리를 내준다.
[29] 세인트루이스 주의 워싱턴 대학 교수 제인 뢰빙거와 베를린에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폴 발테스처럼 인간이 노년에도 성장한다는 이론을 주장한 학자들은 앞의 성직자가 한 말과 매우 비슷한 견해(신념, 도덕, 권위를 절대적으로 확신하지 않고 상대성과 관련성은 옹호함)를 보여준다.
[30] 뢰빙거는 성인 발달의 가장 성숙한 단계(그녀가 6단계 혹은 통합이라고 말하는)가 모호성을 포용하는 관대함, 내적 갈등에 대한 조정, 그리고 상호 의존성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개별성을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31] 또한 발테스는 성인 발달의 가장 성숙한 단계가 “모든 판단은 주어진 문화나 개인적 가치 체계의 기능이나 문화와 개인의 가치 체계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자각”이라고 이해한다.
[32] 찰스 보트라이트를 그랜트 연구 대상자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해 나의 관심을 끌었던 동료 사회학자 모니카 아델트는 발테스의 견해를 조작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연구 인생으 ㄹ바쳤다.
[33] 아델트는 그랜트 연구 대상자들이 1972년과 2000년에 받았던 성격 검사 결과를 검토한 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도 가장 본질적인 요인 세 가지를 도출했다.
[34] 이 세 요소는 일시적인 현상의 깊은 의미(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를 이해하는 인지 능력, 다양한 관점에서 사려 깊게 생각하는 능력, 타인의 행복을 깊이 걱정하는 정서적 능력을 말한다.
이 기준으로 판단할 때 지혜로움이란 방어 기제의 성숙과 중년의 정신건강, 가까운 교우 관계, 그리고 노년기 삶에 대한 적응도와 관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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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말하자면, 성공적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쇠퇴를 초월하는 것이다. 통합 과업은 죽음을 맞이하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인간이 가진 고상함을 잃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인생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동시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통합에 대한 간결한 정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