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_
통합의 시간: 죽음이여, 으스대지 마라
에릭 에릭슨이 여섯 번째로 제시한 삶의 과업이 바로 통합이다. 통합은 인생의 마지막 나날을 잘 마무리짓기 위해 꼭 필요한 과업이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성공적인 노화는 삶의 쇠퇴 과정까지 훌륭하게 관리해 냄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암과 심장병을 함께 앓다 세상을 떠난 저명한 언론가 고 마빈 배럿은 78세에 노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썻다
[1] 노년은 끝없이 아득하게 펼쳐진 평원에 서있는 것과 같다. 눈 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아무엇고 없고, 걸어온 발자취마저 사라져버렸다. 그저 그곳에 할 말을 잃고 놀란 채로 서 있을 뿐이다. 스무 살 이후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 막막함과 공포에 질린 채로 말이다.
맬컴 카울리는 <여든에서 바라본 세상>에서 그 텅 빈 풍경을 채워넣어보려고 시도했다.
[2] 노년에는,
약상자 속에 약병 수가 점점 더 늘어난다.
손에서 발까지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진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낮잠을 잔다.
뼈마디가 쑤시소 아프다.
밤 운전은 더 이상 엄두도 못 낸다.
신발을 짝짝이로 신는다.
카울리의 우울한 관점과 달리 배우이자 주부, 작가, 심리상담가였던 그의 아내 플로리다 스콧 맥스웰은 노년에 대해 매우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녀는 83세에 <내 인생의 척도>라는 저서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3] “노년은 매우 강렬하고 다양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 노년은 기나긴 패배인 동시에 승리다. 나의 70대는 매우 즐겁고 평화로웠으며, 80대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나의 열정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강렬해진다.
통합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해서 그 이전 삶의 모든 과업들까지 완벽하게 성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루어놓았던 과업들이 통합의 임무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만은 사실이다. 긍정적인 노화를 위해서는 늘 변화와 질병, 불안정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신체적인 쇠퇴를 피한다고 해서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1. CASE STUDY 엘렌 켈러 – 터면 여성 집단
– 아낌없이베풀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
폐기종 말기에 이른 켈러는 지난 10년 동안 일년에 한 번씩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엘렌 켈러는 아침 10시가 넘어서야 잠에 깨어나며 오후 5시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손수 통조림통을 딸 수 있고 사과 소스를 만들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거나 계단을 오르거나 이부자리 펴는 일을 힘에 부친다고 gTek. 그러나 무엇보다 속상한 것은, 자기 몸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엘렌 켈러는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경험이 많았다. 켈러는 어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보았다고 했다. 남편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두려웠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한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켈러는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 상실감과 슬픔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환자들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죽음을 앞둔 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꼐 보냈다. 켈러는 후손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이상적인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켈러는 ‘어느 절대자의 힘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삶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원천이 무엇인지 모른다. 마크 스톤 교수의 금욕주의가 그랬듯이, 켈러의 감사하는 마음과 의상, 성숙한 방어기제가 어디서 왔는지는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켈러는 요즘 더 자기 반성에 깊이 천착하고 걱정이 많아졌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켈러는 늘 침착하게 자기 감정 상태를 다스릴 줄 알았다.
비록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지만, 엘렌 켈러의 영국풍 보금자리에서는 행복이 은은하게 베어나왔다. 켈리는 아직도 자기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세상을 향해 아낌없이 베풀고 있었으며,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2. CASE STUDY 헨리 에머슨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마지막 순간까지 미래를 주시하던 열정적 활동파
죽음에 가까워지면 짐도 가벼워진다. 노화가 진행되면 몸도 조금씩 쇠퇴를 느끼게 된다. 성적 욕망도 사라져 점점 금욕적으로 된다. 욕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점점 더 느긋하고 관대해지므로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통합의 의무를 완수할 때 꼭 필요한 요소다. 그러므로 삶의 마지막 장은 노숙자들의 숙소 같은 이미지라기보다는, 위엄있는 수도사의 거처나 헨리 에머슨의 개인 사무실 같은 이미지일 것이다.
에머슨의 사무실만 봐서는 그가 직장을 그만 두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에머슨은 친근하게 말을 건넸지만, 면담 분위기는 여느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는 마치 대기업 사장처럼 행동했고 우리는 사업차 방문한 사람들 같았다. 그러나 에머슨은 백혈병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처지였다.
에머슨은 30년 동안 줄곧 자기 일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의 불평은 단순한 불만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더 크게 성취하고픈 욕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에머슨은 일을 사랑했지만 지는 것은 싫어했다.
에머슨의 능력은 노년에 이르자 진가를 발휘했다. 관절염으로 통증에 시달리고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에머슨처럼 기쁨과 호기심, 유머감각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에머슨이 박물관 기금 조성 대회에서 받은 상과 함께 항해 대회에서 참가해서 받은 상들은 모두 백혈병이라는 치명적인 병마와 싸우면서 거둔 값진 성과였다. 에머슨은 늘 다른 사람을 위해 성공을 거두었고, 그 기쁨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는 은퇴후 가장 좋은 점으로 무슨 일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것이라고 했으며 나빠진 점으로 책임감이 없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강이었다.
76세가 된 에머슨은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정신적 위안을 찾았다. 백혈병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집에 매여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사랑의 씨앗을 세상에 뿌릴 수 있다.
에머슨의 아내는 시내에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는 등 지금까지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에머슨은 집에 머물면서 안팎으로 살림을 돌보았다. 에머슨이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던 시절에는 아내가 비서 역할을 했다. 그들은 늘 손발이 척척 맞는 한 팀이었다. 이처럼 부부가 유연한 태도로 서로의 입장을 바꿔보는 것도 성공적인 노화에 큰 도움이 된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배웟는지 묻자, 에머슨은 톰에게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협조를 구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혼자 책임지려는 성격 때문에 오히려 관리자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여겼다. 막내딸 바버라에게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배웠다. 에머슨은 25년전보다 병이 훨씬 악화된 상태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태도로 면담에 임했다.
에머슨은 노화라는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태도를 보여주었다. 나이드는 것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으며 6개월 마다 뭔가 중요한 성과물들을 창조해내고 싶어 했다. 헨리 에머슨은 노년의 창조적 잠재력을 바라보았으며, 삶의 의미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해 고통스러워 보일 정도로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자신의 과거 모습을 그대로 온전하게 인정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에머슨은 괜한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걱정은 늘 중요한 존재론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었다.
3. CASE STUDY: 에릭 캐리 – 하버드 졸업생 집단
– 잘 사는 것은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잘 늙는 것이다.
하버드 졸업생인 에릭 캐리 박사는 인생의 대부분을 하반신 마비 상태로 살았다. 캐리는 비록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아주 다복하고 사랑이 충만한 가정에서 삶을 시작했다. 캐리는 모진 좌절의 순간에도 늘 공사를 막론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해 나갔다. 리어왕처럼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시달리지도 않았다. 캐리의 삶에서 우리는 최대한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잘사는’ 것이 바로 성공적으로 나이 드는 것임을 여실히 깨달았다.
의과대학생이던 20대 시절부터 캐리는 자기 철학이 확고했다. “내가 겪는 고통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세상에는 나보다 더 큰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본질적으로 자기 안에 있어요.” 캐리는 엘렌 켈러나 헨리 에머슨이 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았던 것을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에 벌써 알고 있었다.
캐리박사는 서른세 살이 되어 반년 동안 하고 있던 호흡 보조장치를 떼어냈지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훌륭한 사회사업가의 자제인 캐리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인재가 되겠다는 꿈을 접지 않았다. 57세에 이르자 캐리 박사는 25년 동안 진행된 근육 마비로 폐기능이 망가져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최든 5년이 자기 생에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연구원에게 말했다. 캐리는 대를 이어 물려줄 유산이 있다면 되도록 죽은 뒤가 아니라 죽기 전에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뿐만하니라 캐리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도 스러져가는 자기 삶에서 ‘새로운 성취감’을 발견해 낼 줄 알았다.
캐리 교수는 일생을 바쳐 소아과학에 헌신했고 이를 기리기 위해 그 이름을 딴 연구 기금이 조성되었다. 캐리는 평생 아내와 자녀들, 동료와 환자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후대에 전하는 유산이란 한낱 유언장 조각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삶에 바친 노력과 희망 속에 남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생의 마지막 나날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4] “젊은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 나이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본다” 고 했던 빅토르 위고의 낙관적 전망에서 위안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노년은 망각일 뿐이며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비관론을 인정해야 하는가?
이러한 대립적 관점을 해소하려면, 실제 생의 마지막 순간을 포착한 사람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한스 진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성인발달연구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훌륭하게 통합의 임무를 정의했던 인물이다. 진서는 <쥐와 이의 역사>의 저자이자 공중위생학 분야의 선구자였고, 전염병 퇴치를 위해 혼신을 바친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다.
리어왕과 달리 한스 진서는 비난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다. 노화 과정에서 역경에 부딪히더라도 그는 결코 신을 책망하거나 건강을 탓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책임을 다했으며, 그 덕분에 겸허한 마음으로 삶에 감사할 수 있었다.
병에 걸리자 R.S.(진서가 자신을 객관화해 묘사한 인물)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를 미리 받은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그와 같은 심정이 그가 남긴 마지막 시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5] 죽음은 먹이를 덮치는 맹수처럼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다가오지는 않았다.
친절하게도 미리 죽음의 순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죽기 전에 남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경고해 주었다.
아름다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 햇살이 비추면,
하늘에서처럼 우리 마음에도 따스함이 감돌고,
사랑으로 뿌린 씨앗이 여물어 풍작을 이룬다.
그리고 겨울이 찾아오면 나는 세상을 떠난다!
죽은 뒤에는 당신의 가슴속에서 고요와 평온을 찾으리니
당신이 나를 가장 사랑해 주었던 바로 그때처럼.
겨울정원처럼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한스 진서에게 죽음은 마치 겨울 정원과도 같이 끝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