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5_앞으로 튀어 나가다
[1] 깊디깊은 겨울에 결국 내 안에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여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알베르 카뮈, 프랑스 소설가이자 극작가.
내과 의사인 조 캐스퍼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앓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헌신하며 의사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하지만 자신의 10대 아들인 라이언이 희귀하고 치명적인 형태의 간질을 앓는다는 진단을 받자 완전히 넋이 나갔다.
조는 당시의 심정에 대해 이렇게 썼다.
[2] “불과 몇 분 만에 아들의 운명에 대해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치유될 희망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기차가 저만치 굽이를 돌아 달려오고 있는데 철로에 몸이 꽁공 묶여 있는 아들을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져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심정이었다.”
정신적 외상은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삶은 통제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가 있다는 인식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엄청난 사건이다.
하지만 조는 공허로 빨려 들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3] 정신과 의사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비거 프랭클의 말처럼 “더이상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을 바꾸라는 도전을 받는다.”
조는 정신적 외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관심을 갖고 찾아봤다. 조사를 거듭한 끝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샬럿캠퍼스 교수 리처드 테데스키와 로렌스 칼훈의 연구결과를 접할 수 있었다.
두 심리학자는 자녀를 잃고 비통해하는 부모들을 치료하면서 이들에게 정신의 황폐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징조가 나타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의 현상도 나타났다.
부모들은 너 나 할것 없이 고통을 겪었고 자녀를 살려낼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덤벼들 만큼 처절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자녀를 잃은 뒤 삶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고 말하는 부모도 많았다.
[4] 믿기 어렵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부모는 외상 후 스트레스가 아닌 외상 후 성장을 경험했다.
[5] 심리학자들은 온갖 종류의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 수백 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6] 피험자에는 성폭행 피해자나 성추행 피해자,
[7] 전쟁 난민이나 전쟁 포로,
[8] 사고나 자연재해의 생존자,
[9] 중상이나 중병의 생존자 등이 포함됏다.
이들 중에는 지속적으로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과 함께 긍정적 변화도 감지됐다. 그때까지 심리학자들은 주로 정신적 외상 후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 결과를 주시했다.
첫째, 괴로워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거나,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회복탄력성을 보여 외상 이전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세 번째 결과가 나타났다. 고통을 겪고 나서 앞으로 튀어나가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10]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 중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이는 사람은 5퍼센트 미만인 데 비해
[11] 절반 이상은 한 가지 이상 긍정적 변화를 보였다고 했다.
조의 아들, 라이어는 진단을 받은지 3년 만에 사망했고, 조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감정적 쓰나미”에 떠밀렸으나 휩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애덤이 교수로 있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긍정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외상 후 성장이 다섯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개인에게 있는 힘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더욱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삶에서 더욱 많은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12]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로 개인의 힘을 정의했다.
테데스키와 칼훈은 니체의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내고 이를 좀 더 부드럽게 표현했다.
[13] “나는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약하지만, 지금껏 상상해온 것보다 훨씬 강하다.”
삶이 던진 돌에 맞으면 부상을 당하고 그때 입은 상처는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속으로 결의를 단단히 굳히고,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격렬한 슬픔에 깊이 젖어 있어서 내가 더욱 강하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뿐인데 힘이 생겼다. 엣 격언을 빌리자면 “내가 추락해야 한다면 추락하게 하소서. 내가 되는 사람이 나를 잡을 터이니”
아주 천천히 내 삶에 새로운 균형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테데스키와 칼훈은 외상 후 성장의 결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비극을 겪으면서 더욱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인생의 큰 아이러니다.
하지만 슬픔과 함께 가족과 친구, 단순히 살아있다는 사실 등 과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지금은 훨씬 감사하게 되었다.
[14] 상실을 겪고 나면 생일, 기념일, 명절을 맞이할 때마다 느끼는 공허가 특히 견디기 힘들 수 있다.
브룩은 이러한 이정표를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순간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특별할 때만 감사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5] 내가 좋아하는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자신에게 특별하게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감사 쪽지를 써서 전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쪽지를 받은 사람이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쪽지를 쓴 사람도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졌으며, 감사의 여운이 한 달 동안이나 지속됐다. 애덤에게 이 연구 결과를 들어쓸 때, 나는 이 방법이 왜 효과가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친구들과 가족에게 감사하는 순간마다 슬픔이 뒤로 밀려났다.
비극을 겪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외상을 격으면 다른 사람을 경계하게 되거나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받기 쉽다.
[16] 성적 학대와 성폭행 피해자의 상당수가 사람들이 선하다는 믿음이 산산이 부서져서 사람을 신뢰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17] 자녀를 잃은 부모는 친척이나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은 친구들과 다투거나 친구들에게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외상 후 성장의 셋째 결과로 비극은 새롭고 더욱 깊은 관계를 형성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다.
[18] 전쟁 기간 동안 커다란 상실을 경험한 군인은 40년이 지나서도 군 복무 시절 쌓은 우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나면 군인들은 생명의 가치를 더욱 존중하고, 그러한 이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19] 많은 유방암 생존자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커졌다고 보고했다.
비극을 함께 견뎌내면 유대관계가 강화된다. 서로 신뢰하고,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서로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엣 격언대로 ;풍요로울 때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고, 역경을 겪을 때는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
외상 후 성장의 넷째 결과는 삶에서 더 큰 의미, 즉 인간이라는 존재에는 의미가 있다는 신념에 뿌리 내린 더욱 강력한 목적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20]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어떤 면에서 고통은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종교에 귀의하거나 영성을 받아들여 삶의 의미를 찾는다.
[21] 정신적 외상을 겪으면서 믿음이 깊어질 수도 있는데, 이렇듯 강력한 종교적, 영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큰 회복탄력성을 보이면서 성장한다.
[22] 작년 봄 나는 전직 미식축구 선수인 버넌 터너가 쓴 공개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어머니가 그를 임신하게 된 경위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18세 육상 스타였던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공격받아 헤로인을 주입당하고 갱들에게 강간당했다. 열한 살 대 버넌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어머니가 헤로인을 주사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내보내지 않고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봐두렴. 너는 이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야…이짓이 너를 죽일 테니까.”
4년 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 어머니의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어머니는 버넌과 동생 넷을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양아버지가 돌봐줫지만, 버넌이 대학교 1학년이 됏을 때 양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버넌은 가정을 홀로 책임져야 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미식축구 리그에서 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버넌은 2군 대학 팀에선 인기 선수였지만, 프로가 되기에는 키가 작다거나, 체력이 부족하다거나, 재능이 모자라다는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버넌을 움직이는 목적은 분명했다. 버넌은 새벽 2시에 자명종을 맞춰놓고 일어나 온몸에 밧줄을 두르고 언덕 위로 타이어를 끌어올리며 근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버넌은 킥오프나 펀트된 볼을 받아 가능한 멀리 뛰는 역할을 하는 킥 리터너로 미식축구 리그에 입성했다.
[23] 가족과 종교는 많은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큰 원천이다.
뿐만 아니라 일도 목적의 근원이 될 수 있다.
[24]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직업에 큰의미를 부여한다.
성직자, 간호사, 소방관, 중독 카운슬러 등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기여도에 비해 낮은 보상을 받는 직업이지만, 우리의 건강과 안전, 학습, 성장에 기여한다.
[25] 애덤은 의미있는 일이 극도의 피로를 완화시킴을 입증하는 다섯 가지 연구 사례를 발표했다.
기업이나 비영리 단체, 정부, 군대 등에서 자신이 종사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미들수록 직장에서 느끼는 감정 소모와 삶에서 느끼는 우울증세가 줄어들었다.
[26] 자신이 직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미있는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날에는 집에서 더욱 활력이 넘칠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더욱 능숙하게 대처했다.
기회를 쥔 사람이라면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장암으로 아내를 잃은 내 친구 제프 후버는 다섯째 외상 후 성장의 결과인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방식’으로 의미를 찾았다.
테데스키와 칼 훈이 발견한 결과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은 정신적 외상을 겪고 나서 예전 같았으면 결코 고려하지 않았을 방향의 인생을 선택했다. 911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일부 미국인들은 직업을 극적으로 바꿔서 소방서에 들어가고, 군대에 입대하고, 의료직에 지원했다.
[27] ‘터치포아메리카(미국 전역의 우수한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2년 간 도심 빈민 지역의 공립학교 교사로 봉사하게 하는 비영리 단체)’ 지원자가 세 배 증가했고, 큰 뜻을 품은 많은 교사들이 911 테러를 계기로 교직에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보다 커다란 목표에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쓰고 싶어했다.
[28] 테러가 발생하기 전에 일은 일종의 직업이었지만, 테러가 터지고 나서 어떤 사람들은 소명에 부응하고 싶어 했다.
[29] 토네이도, 총기 난사, 비행기 후락이 발생해 자신이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살아난 후에 대부분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했다.
[30] 생존자들은 사건으로 인한 사망률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세운 삶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하고, 일부는 이를 성장의 기반으로 삼았다.
죽음이 스쳐 지나간 경험은 새로운 삶을 이끌어 냈다.
이것은 쉽에 이룰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정신적 외상을 입으면 대개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기가 힘들다.
[31] 사랑하는 사람이 몸이 아파 간호를 하려면 가족 구성원이 일을 줄이거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32] 300만명에 가까운 미국인이 암 환자를 간호하고 있는데, 여기에 드는 시간은 한 사람 평균 주당 33시간이다.
소득의 상실과 더불어 높은 의료비는 미국에서 가정 경제를 황폐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33] 질병이 파산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전체의 40퍼센트 이상이고,
[34] 암 환자가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는 정상인보다 2.5배 이상 많다.
[35] 미국인의 46퍼센트는 응급치료 청구액 400달러를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
[36] 비극은 우리의 현재를 갈기갈기 찢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도 산산조각 낸다.
사고는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꿈을 깨뜨린다. 심각한 질병은 일자리나 사랑을 찾기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러한 자아 인식의 변화는 부차적인 상실이자 우울증을 유발하는 위험 요소다.
[37] 이로 인해 우리가 되려고 희망하는 자아인 ‘가능한 자아 possible self’가 부수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가능한 자아가 사라지면 새로운 가능한 자아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비극을 겪고 난 뒤에는 이러한 기회를 놓치기 쉽다. 옛 자아를 갈구하는 데 모든 감정적 에너지를 쏟기 대문이다.
[38] 헬렌 켈러가 말했듯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힐 때,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닫힌 문만 오래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39] 수많은 정신적 외상 생존자가 역경에 직면한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다.
고난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삶의 목적에 그치지 않고 고통의 목적을 제시하므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독특한 원천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가 헛되지 않도록 자신이 상처를 받은 영역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은 고통 너머에 새로운 가능성이나 삶의 더 큰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기 힘들 수도 있다.
[40]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말을 (그리고 노래 <끄맺는 시간 Closing time>의 가사를) 인용하면 이렇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의 끝에서 시작한다.”
몇년 전 데이브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뮤지컬 <위키드>를 보러 갔다.
뮤지컬에서 두 주인공은 이렇게 노래한다.
[41] 나는 더욱 좋은 모습으로 달라졌어. 내가 너를 알기에 … 나는 달라졌어. 영원히.
노래 가사가 말하듯 데이브는 언제고 “내 마음에 직힌 지문”일 것이다. 데이브는 자신의 존재로 나를 심오하게 변화시켰다. 아울러 자신의 부재로도 나를 심오하게 변화시켰다.
데이브의 죽음으로 내가 느끼는 공포에서 좋은 의미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서 위안이나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데이브가 살았던 삶에 경의를 표현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닿아 데이브가 남긴 유산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