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이타심, 관대함, 그리고 창의성
권력을 가진 사람 혹은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고, 현실과 타협하기에 창의성과 거리가 먼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혹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면, TV나 신문에서 자신이 자주 접한 정보를 기준으로 쉽게 판단하려는 인간의 추론방식에서 오는 오류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오류를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 heuristic)이라고 부른다(Kahneman & Tversky, 1972). 경험적 연구의 결과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타적이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며, 심지어 더 창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Galinsky et al., 2008).
먼저 사회경제적 힘(Power)은 사람을 더 창의적으로 만든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을 모아 빈칸에 들어갈 알파벳을 채워 단어를 완성하는 과제(word-fragment completion task)를 수행하였다. 이 때 절반의 집단은 “authority, boss, control, executive, influence”와 같이 권력과 관련된 단어로만 완성되는 문제를 추가하여 마치 내가 지금 권력을 가진 것처럼 지각하도록 만들었고, 다른 절반의 집단은 “automobile, bass, song, envelope, bookmark”와 같은 중립적 단어로 완성되는 문제를 주면서 권력과 관련된 생각이 떠오르지 않도록 통제했다(표-1).
빈칸에 알맞은 알파벳을 넣어 단어를 완성하세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가장 먼저 떠오른 알파벳을 바로 기입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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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조건의 예 |
통제 조건의 예 |
auth_r_ty |
aut_m_bile |
bo_s |
ba_s |
co_tr_l |
so_g |
ex_cut_ve |
env_lop_ |
influ_n_e |
bo_km_rk |
그리고 이 과제를 마친 두 집단의 창의력을 테스트하였다. 창의력 테스트는 새로운 파스타(pasta), 새로운 핵 원소명(nuclear element), 그리고 새로운 진통제명(pain reliever)을 짓는 과제로 이루어졌다. 참가자들에게는 현재까지 존재하는 모든 핵 원소명 뒤에 ‘on or ium’(e.g., radon, plutonium)이 사용된다는 것과 그 예를 제공하였고, 같은 방법으로 모든 파스타명 뒤에는 ‘na, ni, or ti’(e.g., lasagna, rigatoni, spaghetti)가 사용된다는 것과 그 예를 제공하였으며, 모든 진통제 뒤에는 ‘ol or in’(e.g., tylenol, bufferin)이 붙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과연 기존의 접미사를 사용한 이름을 짓는지(보다 쉽게 지을 수 있음), 기존의 접미사와 관련 없이 새로운 이름을 짓는지(생각을 좀 더 해야 하고, 좀 더 창의성이 필요함)를 토대로 창의성을 측정하였다.
결과적으로 권력에 점화된 집단은 자신이 만든 단어의 40%가 기존의 접미사를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지만(즉 60% 정도만 기존의 접미사 사용), 권력에 점화되지 않은 집단은 오직 18%만 기존의 접미사를 사용하지 않은 단어를 만들었다(즉 82%를 기존 접미사를 사용했다). 이는 권력을 가졌다는 지각이 창의적인 사고에 기여했음을 시사한다.
같은 연구의 또 다른 실험은 ‘과거에 자신이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권력을 가졌다고 지각한 사람이 ‘평범한 일상을 떠올리면서’ 영향력 지각과 관련이 없었던 사람보다 외계인을 더 창의적으로 그렸다. 더하여 권력을 가졌다고 지각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주변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지켰고, 높은 명성을 가진 사람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끝으로 권력을 가졌다고 지각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반대 의견에 대한 더 관대하고, 심지어 반대 의견이 적절하다면 자신의 의견을 굽힐 줄 아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참가자에게 ‘학교에 있는 호수를 흙으로 메워서 땅으로 만든 후, 건물은 짓는 프로젝트에 얼마나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묻고,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내용의 논설문을 읽게 한 후,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11점 척도로 평가하였다(1: 전적으로 반대, 11: 전적으로 동의).
결과적으로 권력을 가졌다고 지각한 사람은 타인의 의견을 평균 4.9점 정도로 동의한 반면, 권력에 대한 지각이 없었던 사람은 타인의 의견을 평균 3.0점 정도 동의하면서 사실상 타인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에 대한 포용력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권력을 가진 사람 혹은 권력을 탐하는 사람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묵살하고, 현실과 타협하기에 창의성과 거리가 멀다는 통념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더 알고 싶다면,
Galinsky, A. D., Magee, J. C., Gruenfeld, D. H., Whitson, J. A., & Liljenquist, K. A. (2008). Power reduces the press of the situation: Implications for creativity, conformity, and disson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5(6), 1450-1466.
https://www.ncbi.nlm.nih.gov/pubmed/19025295
Kahneman, D., & Tversky, A. (1972). Subjective probability: A judgment of representativeness. Cognitive Psychology, 3(3), 430-454.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0010028572900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