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과 체제 정당화
사람들은 ‘현재 상태나 구조를 변화시키기보다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정보처리와 행동 경향성에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부른다(Kahneman, Knetsch, & Thaler, 1991). 현상유지편향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의 인지적 자원 소모를 최소화시키고, 회사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경우와 같이 어쩔 수 없이 변화해야만 하는 일에만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에 대부분의 경우 인간에게 유익하다.
현상유지편향은 사회학 혹은 정치학적으로도 시사점을 주는데, 그 중 하나가 체제 정당화 경향성(system justification)이다. 체제 정당화 경향성이란, 현재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의 정치적 시스템이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합리화하는 경향성을 일컫는다. 체제 정당화 경향성은 현상유지편향에 기초하고 있기에 이러한 경향성 자체를 제거할 수도 없고,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체제 정당화 경향성이 지나치면, 인권을 유린하고 부패한 독재 정권이나 군부 정권이 장기집권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과 행복을 저하시키는 요인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상유지편향에 기초한 체제 정당화 경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은 어떤 요인을 통해 구분되는가? 즉 체제 정당화 경향성의 높고 낮음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인가?
Jost와 동료들(2003)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하였다. 연구진은 미국 근로자 1,259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연구 참여자들의 순수익(income)을 4단계로 구분한 후, 현 체제에 대한 신뢰와 지지에 관련된 설문을 진행하였다. 질문은 여섯 가지로
1) 국가문제에 필요하다면 언론을 통제해도 괜찮은가? yes/no
2) 국가문제에 필요하다면 시민권을 제한해도 괜찮은가? yes /no
3) 정부의 공식적 발표를 얼마나 신뢰하나요?
1점 매우 신뢰, 2점 신뢰, 3점 신뢰하지 않음, 4점 전혀 신뢰하지 않음
4)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1점 그렇지 않다, 2점 그렇다
5) 큰 소득격차는 일한 만큼 받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yes/no
6) 큰 소득격차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yes/no
에 응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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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 < |
$6,000-$10,999 |
$11,000-$15,999 |
< $16,000 |
언론통제 |
20.7% |
14.2% |
13.8% |
10.9% |
시민권 제한 |
13.5% |
7.6% |
8.9% |
5.0% |
표 1. 언론통제와 시민권 제한에 찬성하는 비율(Jost et al., 2003)
표-1은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결과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언론통제와 시민권 제한에 찬성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이는 소득이 낮을수록 체제 정당화 경향성이 강함으로 의미한다.
그림 1. 정부의 공식적 발표에 대한 신뢰도(1: 매우 신뢰, 4: 전혀 신뢰 않음)
그림-1은 세 번째 질문이었던, 정부의 공식 발표 신뢰도를 보여준다. 역시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보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고, 이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체제를 정당화하는 경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그림 2.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믿음(1: 그렇지 않다, 2: 그렇다)
그림-2는 네 번째 질문인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믿음에 대한 결과를 보여준다. 앞선 결과들과 마찬가지로 소득이 낮을수록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믿음이 강함으로 보여준다. 이 역시 소득이 낮을수록 체제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림 3. 소득격차를 업무량 혹은 노력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그림-3은 큰 소득격차가 업무량 혹은 노력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성을 보여준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득이 낮을수록 큰 소득격차를 업무량과 노력의 차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해지는 일관성 있는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소득이 낮을수록 체제 정당화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주는 결과이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보다 체제 정당화 경향성이 높다는 것은 현상유지편향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구체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보다 현상유지편향이 더 심해서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소득이 낮아서 현상유지편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유지편향이 특히 심하기에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소득이 낮아졌을 수 있다.
반면, 낮은 소득과 경제적 불안정성 자체가 사람들의 시야를 좁아지게 만듦으로써 현상유지편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Raffiee와 Feng(2014)은 낮은 소득과 경제적 불안정성이 창업과 같은 위험성이 높은 일에 특히 불리하게 작용함을 보여주었다. 창업을 진행하면서 생계가 되는 일을 함께 진행한 하이브리형 창업자 5,299명과 창업을 진행하면서 창업에만 전념한 1,093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 기간은 1993년부터 2006년 까지였다. 결과적으로 창업과 생계수단을 병행한 겁쟁이 창업자들이 2006년 생존률이 창업에만 전념한 용기있는 창업자들보다 33%나 더 높았다.
연구자들의 또 다른 실험은 하이브리드형 창업자들은 사업이 지속되면서 인지능력의 감소를 보이지 않은 반면, 창업에만 전념한 창업자들은 사업이 지속되면서 인지능력의 감소를 보였다. 연구자들은 인지능력의 감소가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득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탐색하기보다 손해 보지 않는 안정적인 거래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듦으로써 사업의 성장을 저해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지나친 현상유지편향은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도 변화하지 않게 만들거나,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최상이 아니며 변화가 필요한데도 괜찮다고 착각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 현상유지편향이 하나의 정신적 안정제 혹은 정신적 진통제가 되어서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까지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알고 싶다면,
Jost, J. T., Pelham, B. W., Sheldon, O., & Ni Sullivan, B. (2003). Social inequality and the reduction of ideological dissonance on behalf of the system: Evidence of enhanced system justification among the disadvantaged.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33(1), 13-36.
https://doi.org/10.1002/ejsp.127
Kahneman, D., Knetsch, J. L., & Thaler, R. H. (1991). Anomalies: The endowment effect, loss aversion, and status quo bias. Th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5(1), 193-206.
http://www.jstor.org/stable/1942711
Raffiee, J., & Feng, J. (2014). Should I quit my day job?: A hybrid path to entrepreneurship.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57(4), 936-963.
http://amj.aom.org/content/57/4/936.abstract
General Happiness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