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장수: 수녀님들의 정서표현과 수명
그림 1. 통제된 식단과 유사한 일상을 공유하는 수녀님들에 대한 연구는 행복의 효과에 단서를 제공하기에 유리하다.
오래 사는 것, 그리고 이것에서 나아가 영원하게 사는 것은 인류가 오래도록 관심을 가져온 문제이다. 인류가 이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하나는 아마도 존재가 소멸되는 것, 더 정확하게는 ‘나(self)’라는 존재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중국 진시황제의 불로초를 구하려는 과거의 노력과 인공지능을 개발하여 우주로 보내고 두뇌의 기억정보를 스캔하여 저장한 후 다른 두뇌로 이식하려는 현재의 노력(Brain writing)은 대부분 오래 사는 것, 영원히 사는 것과 맞닿아 있다. 인류의 오랜 지혜를 담고 있는 경전 중 하나인 성경은 인류에 대해 “죽기를 매일 같이 무서워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히브리서 2장 15절).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자들도 이러한 인류의 오랜 고민을 함께 고민해왔다. 특히 건강심리학자라고 불리는 일군의 연구자들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걸까’하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한 연구들을 진행하였다. 지금 소개할 연구는 누가 건강하게 오래 사는지에 대한 건강심리학자들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긍정 정서로 충만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덜 긍정적인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켄터키 대학교의 Danner, Snowdon 및 Friesen (2001)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 연구의 제목은 ‘초기 인생에서의 긍정적 정서와 장수: 수녀 연구를 통한 발견(Positive emotions in early life and longevity: Findings from the nun study)’이며, 이 제목을 줄여 ‘수녀연구(Nun Study)’로 알려져 있다.
Danner 등(2001)이 가톨릭교회의 수녀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에는 환경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연구자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긍정 정서와 수명의 관계에 대한 종단연구를 한다면 그들의 생활습관(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음주, 흡연 등)을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수녀들은 같은 공간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대부분 같은 일과표에 따라 움직이고, 먹는 것과 입는 것, 취침 시간이 동일하다. 또한 아이가 없기 때문에 육아에 얼마나 시간을 소요하는지 등의 변수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
Danner 등(2001)의 연구에 포함된 180명의 수녀들은 1930년대와 1940년에 수녀생활을 시작했으며, 당시에는 22세 전후였다. 수녀들은 수녀로 생활하기 시작할 때 신앙적 서약의 한 부분으로 2~3페이지 분량을 자기소개서를 제출했는데, 연구자들은 교회의 문서보관소에서 이 자기소개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대 시절, 즉 생의 초기라고 할 수 있는 시절의 자전적 글에 담긴 긍정적, 부정적, 그리고 중성적 내용의 단어와 문장 사용빈도를 조사한 후, 이것과 수녀님들의 수명 사이의 연관성을 찾고자 하였다.
그런데, 연구를 진행하는 중 수녀님들의 신앙적 특성상 부정적인 정서는 잘 나타나지 않았기에 긍정적 정서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나는지 적게 나타나는지 집중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아래의 수녀A의 글은 긍정적 정서가 적게 나타나는 예시이다.
수녀A-긍정적 정서가 적게 나타남
“나는 1909년 9월 26일 생이고, 2남 5녀 중 장녀이다. 나는 수녀 견습 시절을 모원(Motherhouse)에 서 화학을 가르치며 보냈고, 2년차는 Notre Dame 수도원에서 보냈다. 하느님의 은혜에 힘입어 나는 성직자로서의 직분과 선교, 그리고 나의 개인적 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수녀A의 글에서는 묘한 거리감과 삭막함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수녀B의 글은 긍정적 정서가 많이 나타나는 예시이다.
수녀B-긍정적 정서가 많이 나타남
“하느님은 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셨다. 작년, Notre Dame 수도원에서 보낸 나의 수녀 견습 시절은 너무 행복하였다. 나는 이제 충만한 기쁨으로 수녀복을 입을 수 있기를, 그리고 하느님 사랑 속에서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을 고대한다.”
수녀B의 글에서는 감사와 기쁨에 풍부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들은 4가지 종류로 구분되었는데, 먼저 긍정적 정서의 표현이 가장 적었던 하위 25%의 수녀들(제1분위), 그리고 긍정적 정서 표현 하위 26~50%의 수녀들(제2분위), 그리고 긍정적 정서 표현 비교적 많았던 상위 26~50% 수녀들(제3분위), 마지막으로 긍정적 정서 표현이 가장 많았던 상위 25%의 수녀들(제4분위)이었다. 즉 4가지 집단에 45명 씩 배정되었다. 그리고 이들 수녀님들의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각 집단별 생존비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하였다.
그림 2. Danner 등(2001)의 연구결과. 가로축은 연령이고, 세로축은 생존비율이다.
그림-2는 이 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연구의 결과는 매우 극적이다. 85세 시점을 보면, 가장 긍정적인 제4분위 집단의 수녀님들의 80%가 생존해있었던 반면 가장 긍정적이지 못한 제1분위 집단의 수녀님들의 생존률은 54%에 불과했다. 90세와 94세까지 생존률을 비교해 볼 때도 전자의 경우 각각 65%와 54%였던 반면, 후자의 경우는 각각 30%와 15%로 차이가 났다.
자전적 글 속에서 긍정적 정서를 포함하는 비율이 1% 증가할 때마다 사망 확률은 1.4%씩 감소하였고, 긍정적 정서를 다양하게 표현한 수녀와 그렇지 않은 수녀 간의 평균적인 수명 차이는 무려 10.7세 였다. 또한 가장 긍정적이었던 수녀는 가장 긍정적이지 못했던 수녀보다 12년을 더 생존하였다. 즉 인생초기에 긍정적 정서 표현은 장수와 높은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더 알고 싶다면,
Danner, D. D., Snowdon, D. A., & Friesen, W. V. (2001). Positive emotions in early life and longevity: Findings from the nun stud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0(5), 804-813.
http://dx.doi.org/10.1037/0022-3514.80.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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