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주면 시간을 생긴다
: 시간이 없어서 못 돕는 게 아니라 돕지 않아서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와 같은 말을 자주 입에 달고 다니지는 않는가? 초단위로 바뀌는 현대 세상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시간에 쫓기게 만들고는 한다. 심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인심이 점점 더 강퍅해지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물리적 시간에는 변화가 없더라도 타인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친사회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심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아래에 Mogilner와 동료들이 진행한 일련의 연구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타인을 돕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과 그냥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이후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도록 만들까?’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첫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스트코스트 대학생 218명은 5분간 중병으로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주어진 라틴어 텍스트 중 ‘e’가 몇 개 들어 있는지 세었다. 전자는 ‘시간을 할애하는 조건’이며, 후자는 ‘시간을 낭비하는 조건’이다. 5분간 과제를 한 후 참가자들은 Lang and Carstensen(2002)의 미래시간전망 척도(Future Time Perspective scale)의 4가지 문항에 응답했다. (예 : “내 미래는 무한해 보인다”, 1 = 매우 그렇다, 7 = 매우 그렇지 않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아픈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 사람들이 라틴어 철자 ‘e’의 개수를 센 사람들보다, 자신에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더 많다고 평가했다. 즉, 시간을 타인을 위해 할애한 사람들은 시간을 낭비한 사람들보다 자신의 미래에 시간이 훨씬 많다고 느낀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위의 실험(실험1a)에서 ‘e’의 개수를 세는 것에 대한 불쾌감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타인을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해 사용한 시간의 양이 미치는 영향을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Cassie Mogilner와 동료들은 추가적인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험 참가자는 온라인 실험자 150명이었다. 이들은 시간을 할애하는 대상이 ‘나’ 또는 ‘다른 사람’인지, 소비하는 시간의 양이 ‘10분’과 ‘30분’인지에 따라 네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졌다. 각 집단의 참가자들은 “오늘 할 계획이 없었던 것들 중 무언가를, 당신 스스로를 위해 10분간 하십시오”(나x10분), “오늘 계획하고 있지 않았던 무언가를, 다른 사람을 위해 30분간 하십시오”(타인x30분)와 같은 지령을 수행한 후, 이전 실험과 동일한 척도에 응답했다.
그림 1. 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왼쪽)과 나를 위해 시간을 쓴 사람들(오른쪽)이 인지한 미래시간
그림 1은 이 실험(실험1b)의 결과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사람(Another)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은 자신(Self)을 위해 시간을 쓴 사람들에 비해 미래의 시간을 더 많게 여겼다. 이것은 10분이든 30분이든 할애한 시간의 양과는 상관이 없었다. 즉 남을 위해 내 시간을 쓸 때, 나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쓸 때보다 시간에 대한 심적 여유가 더 생기는 것이다.
Cassie Mogilner와 동료들이 품은 또 다른 의문은 다음과 같다. 시간을 할애하는 상황과 반대로 여유시간이 갑자기 생기는 상황에서는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또 지금 이 순간에 미래 시간을 판단한 것이, 실제로 그 미래 시간이 현재가 된 시점에 영향을 줄까?
시간에 대한 실험 2는 이스트코스트 대학생 136명을 통해 실시되었다. 그들은 1시간짜리 연구 세션에서 45분을 보낸 후, 15분짜리 마지막 과제를 하게 되었다. 마지막 과제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속하는 지역의 공립 고등학교 위험군 학생들의 연구 에세이를 교정하여 돕는 것이었다. 한 집단은 빨간 펜과 에세이가 받아 교정을 했고(시간을 할애한 집단), 다른 한 집단은 교정이 이미 끝났으니 일찍 떠나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15분의 여유시간이 생긴 집단). 두 집단 모두 집에 가기 전에 ‘시간은 소모되는 자원이다’에 대해 동의하는 정도를 7점 척도(1=전혀 그렇지 않다, 7=매우 그렇다)로 응답하였다. 또한 ‘얼마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에 대해 -5(매우 여유시간이 적음)에서 +5(여유시간이 많음)사이로 응답하였다. 마지막으로 다음 주 중에 온라인 봉사활동에 얼마나 참여할 것인지(0분, 15분, 30분 또는 45분)에 대해 물었다. 일주일 후,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의 실제 온라인 로그인 기록을 확인하였다.
그림 2. 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Gave Time)과 여유 시간이 생긴 사람들(Got Time)의 봉사활동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한 시간(왼쪽)과 실제로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간(오른쪽)
교정을 통해 위험군 학생들을 돕는 것에 시간을 할애한 집단은 여유시간이 생긴 집단보다 시간을 소모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시간적 여유도 더 많다고 평가했다. 그림 2를 보면, 시간을 타인을 위해 할애한 사람들이 여유시간을 얻게 된 사람들보다 온라인 봉사활동에 더 오래 참여하겠다고 말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주일 후, 실제로도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이 반대 집단에 비해 더 오래 온라인 봉사활동을 했다. 실험 2의 결과를 종합하자면, 타인을 위해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시간을 인식함에 있어 더 여유롭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행동은 친사회적 활동(봉사활동 등)에 대한 참여를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그런 행동을 실제로 하도록 만든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하는 걸까? Mogilner와 동료들은 원인을 사람의 ‘자기 효능감’에서 찾고자 하였다. 여기서 자기 효능감이란 스스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타인을 돕는 것은 개인의 자기 효능감을 높여준다. 높아진 자기효능감은 주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인식하게 하며, 시간의 전체적인 총량도 더 크게 생각하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이 관계에 대해 알아내고자 실험 3이 진행됐다.
실험 3은 아마존의 M-Turk를 통해 모집한 105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참가자들은 최근에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위해 또는 타인을 위해 한 일을 회상하였으며 그것에 할애한 시간을 기록하였다. 이후 시간에 대한 심적 여유 인식과 자기 효능감, 사회적 유대감, 의미, 즐거움 등을 관련 척도로 측정하였다.
타인에게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시간을 할애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졌다고 느꼈으며, 자기효능감도 더욱 높게 나타났다. 즉 전자가 후자에 비해 심적으로 더 시간적 여유가 있고, 스스로의 능력도 좋게 평가하는 것이다. 더불어 Mogilner와 동료들이 예측한 것처럼 타인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자기 효능감을 향상시키고, 향상된 자기효능감이 심적인 시간 인식을 더욱 여유롭게 해준다는 관계성 또한 나타났다. 사회적 유대감과 의미, 즐거움은 관계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타인에게 기꺼이 내 시간을 쓰는 것은 여러 가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시간을 쓴 당사자는 시간에 있어서 좀 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할애 받은 타인도 객관적으로 더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서로 win-win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 쓰는 시간에는 상한선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무작정 남을 위해 시간을 쏟아 붓는 것이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시간에 쫓겨 초조한가? 그득그득 쌓인 할 일을 보며 ‘시간 없어, 바빠!’를 연신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소중한 친구, 가족, 이웃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족했던 시간이 오히려 더 늘어나는 신기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 더 알고 싶다면,
Mogilner, C., Chance, Z., & Norton, M. I. (2012). Giving time gives you time. Psychological Science, 23(10), 1233-1238.
https://doi.org/10.1177/0956797612442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