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의사결정 참여가능성과 행복
민주주의란 국민에게 국가의 주권이 있으며, 국가적 의사결정은 국민의 행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한 정치 사상이다. 이 사상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모든 국민이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과정을 감독하며, 부족한 점이 있을 때는 수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이 모든 국가적 의사결정에 참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된 민주주의 제도가 국민 다수가 뽑은 대표(들)에게 국민이 가진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한 후, 이 대표들을 통해 국가적 문제를 결정하는 대의 민주주의(간접 민주주의)이다. 현재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가 시행하는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이며,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를 진행할 때, 국민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대의 민주주의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다. 국가적 문제에 대해서는 대표들에게 위임하지만, 비교적 작은 마을 단위(동, 면, 읍)의 의사결정은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 결정하는 경우는 그래도 직접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작동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을의 의사결정도 마을 대표들에게 위임하고, 주민들은 대표를 뽑는 일만 한다면, 이것은 직접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직접 민주주의적(direct democracy)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 누가 더 행복할까? Frey와 Stutzer(2000)은 약 6,134명의 스위스 시민들과 이들이 사는 지역을 대상으로 이 질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먼저 주민들의 행복은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을 통해 측정하였다. 다음으로 주민들로 하여금 다음 세 가지 질문에 6점 척도(1점: 전혀 그렇지 않다, 6점: 매우 그렇다)로 응답하게 함으로써 해당 지역이 얼마나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지 파악하였다.
(1) 지역 규정(조항)을 신설하기 위해서는 주민투표가 필요하다.
(2) 지역 예산을 결정하거나 예산을 추가할 경우 주민투표가 필요하다.
(3) 지역 규정(조항)이나 예산을 결정하기 위한 주민투표일은 공휴일로 지정된다.
더하여 지역에 주민 참여 회의가 있는지 없는지, 지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마을 회의나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파악하였다.
결과적으로 직접 민주주의 점수가 높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그렇지 않은 지역의 주민들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에 주민 참여 회의가 있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주관적 안녕감과 (주관적 안녕감 안에 포함된 척도인) 삶에 대한 만족도가 이것이 없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아울러 지역 안에서 마을 회의와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주민들의 행복감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주민들의 행복감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들은 주민들이 지역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을수록, 즉 지역의 시스템이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울수록 지역 주민의 행복감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직접 민주주의가 주민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근본에는 직접 민주주의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알려져 있는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을 충족시키는 기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Ryan & Deci, 2000). 구체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타의에 의해 결정된 것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의해 결정된 것을 시행하기에 자율성을 충족할 수 있고, 자신이 회의에 참여하고 투표에 직접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므로 유능감을 가지게 될 뿐 아니라, 지역의 문제에 대해 회의하고 투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획득하여 관계의 욕구도 충족할 수 있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된 주민들이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주민들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 알고 싶다면,
Frey, B. S., & Stutzer, A. (2000). Happiness prospers in democracy. Journal of Happiness Studies, 1(1), 79-102.
https://doi.org/10.1023/A:1010028211269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http://dx.doi.org/10.1037/0003-066X.55.1.68
Happiness Study Ske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