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공백과 공감의 어려움
: 개구리는 올챙잇적 생각을 못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공감한다,’ ‘난 누군가를 이해한다,’ ‘저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라는 말을 통해 누군가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다. 그리고 마치 이렇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잔인한 사람, 냉혈인간으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공감 관련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그 순간 그 사람에게 완전히 감정이 이입되어 그 사람이 처한 입장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다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과거에 비슷한 일을 겪어 봤다는 것에 대한 확인일까?
여기 이 질문을 궁금해 했던 연구자가 있다. 노스웨스텐대학의 심리학자 로란 노드그렌(Loran Nordgren)의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세 조건 중 하나에 무선적으로 할당되었다(Nordgren, McDonnell, & Loewenstein, 2011).
한 조건은 미지근한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끌어안고 있는 과제를 수행한 직후(control condition), 사람을 추운 곳에 노출시키는 미군의 심문방법이 얼마나 괴로울지에 대해 7점 척도(1: 전혀 그렇지 않다, 7: 매우 그렇다)로 응답하였고, 이어서 이것이 고문에 가까울수록 4점으로 수용할만한 것이라고 여겨질수록 1점에 가깝게 평가하도록 하였다.
다른 조건은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안고 있는 과제를 수행한 후, 동일한 질문에 답했다(cold condition). 마지막 조건은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끌어안고 있다가 내려놓고 10분이 지난 후에 동일한 질문에 답했다(prior cold condition).
결과적으로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끌어안았던 집단(M = 6.41, SD = .78)이 미지근한 물(control condition)을 끌어안았던 질문에 답했던 집단(M = 5.62, SD = 1.34)보다 해당 심문방법이 더 괴로울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연구의 흥미로운 점은 바로 차가운 양동이를 들고 있다가 내려놓고, 10분 후에 답변한 세 번째 집단이다. 이 집단은 어느 조건과 가깝게 답변했을까? 혹 차가운 물을 들고 있던 집단과 유사하게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쉽게도 틀렸다.
10분 후에 답변한 세 번째 그룹(M = 5.48, SD = 1.05)은 미지근한 물을 끌어 앉고 있었던 집단과 동일한 수준으로 응답하면서 낮은 공감수준을 보였다.
이 심문법이 고문에 가까운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끌어안았던 집단(M = 3.66, SD = .56)이 미지근한 물(control condition)을 끌어안았던 집단(M = 3.33, SD = .70)과 차가운 물을 들고 있다가 내려놓고 10분 간 휴식 후 응답한 집단(M = 3.20, SD = .65)보다 해당 심문방법을 고문에 가까운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다시 말해 차가운 양동이를 들고 있다가 내려 놓은 지 10분이 흐른 집단은 마치 처음부터 미지근한 물을 들고 있던 집단과 다름없이 행동하면서 공감하지 못했다.
이 현상은 hot-cold empathy gap에 대한 연구결과와 일치하는 것이며(Loewenstein, 1996), 인식의 공백(The perspective gap)이라고 부른다.
본 연구는 누군가에게 공감한다는 것이 단지 그 일을 나도 겪어 봤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도 동일한 일을 겪고 있다면 모를까, 불과 몇 분 전에 겪은 일에도 진정한 공감을 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몇 년 전, 몇 십 년 전에 겪은 일이랴.
개구리는 올챙잇적 생각을 못한다.
*더 알아보고 싶다면,
Loewenstein, G. (1996). Out of control: Visceral influences on behavior.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65(3), 272-292.
Nordgren, L. F., McDonnell, M. H. M., & Loewenstein, G. (2011). What constitutes torture? Psychological impediments to an objective evaluation of enhanced interrogation tactics. Psychological Science, 22(5), 689-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