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무게와 세상의 무게
: 무거운 마음 상태가 환경 지각에 미치는 효과
그림 1. 두 개의 녹색 선분 중 어느 것이 더 길어 보이는가? 뒤에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자로 두 선분의 길이를 재보자. 두 선분의 길이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가? 그러나 신기한 것은 두 선분의 길이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에 뒤에 것이 길어보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는 내가 본 그대로, 내가 들은 그대로, 내가 느낀 그대로를 보고, 듣고, 느낀다고 믿는다. 즉 세상에 있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감각(sensation)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림-1을 살펴보자. 그림-1을 보면 두 개의 녹색 선분이 보일 것이다. 어느 것이 더 길어 보이는가? 여러분이 정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뒤에 것이 길어 보일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자를 사용하여 두 선분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해 보자(자가 없다면 손대중으로 해도 좋다). 어떤가? 두 선분의 길이는 정확하게 일치한다(복사 붙여넣기를 했으니까). 그리고 이제 다시 두 선분을 보자. 두 선분이 일치하게 보이는가? 만약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거짓말을 했거나, 당장 안과에 가봐야 할 수 있다. 우리의 시각체계는 우리가 두 선분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뒤의 선분을 길게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우리 마음의 착시가 이렇게 크기와 같은 시각적인 수준에서만 일어날까? 무게와 같은 촉각적인 것이라거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장면을 보는 것에서도 나타나지 않을까? Min과 Choi(2016)는 바로 이 질문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슬픈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음이 무겁다(heavy-hearted)’고 하고, 행복하고 기분이 좋을 때면 ‘마음이 가볍다’고 한다. 우울하고 힘들 때는 마음이 무겁고, 기분이 좋고 행복할 때는 마음이 가볍다. 이렇게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무게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할까?
마음과 관련된 표현 외에도, 심리적 상태와 신체적 무게가 함께 쓰인 표현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을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이라고 표현하고, 무엇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거나 비난을 받을 때 ‘어깨가 무겁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심리적 상태와 신체적 무게를 동반해서 쓰는 언어 표현은 신체적 경험(예를 들어, 무게)에 한정된 개념을 적용하여 추상적 개념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의 경향성을 나타낸다.
Lakoff와 Johnson(1980)은 이러한 은유적 표현은 단순한 언어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전체적인 개념 구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유는 추상적인 개념을 정교화하고, 해석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은유적 표현은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경험하는지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선행연구들에서는 이를 지지하는 결과들을 보였다.
“무거운 마음”이라는 은유적 표현은 심리적인 무게를 상징하는 아주 중요한 힌트가 된다. 그렇다면 “무거운 마음이 문자 그대로 무거운 느낌을 주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가질 수 있다. 심리적인 경험, 무거운 마음 또는 가벼운 마음의 활성화는 무게 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마음이 무겁다는 느낌이 어떤 물체의 무게를 더 무겁게 인식하게 할 것이며, 성공 가능성을 낮게 예측하게 할 것이라고 가설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1은 마음이 무거운 혹은 마음이 가벼운 느낌이 물리적인 무거움의 느낌을 유발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대학생 109명을 대상으로 과거에 마음이 무거웠던 사건 혹은 마음이 가벼웠던 사건을 회상하고 그에 대한 에세이를 쓰도록 했다. 에세이 작성 이후 옆방으로 이동시켜 7kg짜리 박스를 들어보게 하고는 “박스를 들었을 때, 표면이 얼마나 미끄러운가? 박스가 얼마나 큰가? 박스가 얼마나 무겁다고 생각하는가?” 등 박스의 촉감, 크기, 무게에 대해 평가하도록 하였다. 이 결과, 마음이 무거운 참여자들은 박스를 평균 4.59kg로 예상한 반면, 마음이 가벼운 참여자들은 박스를 평균 3.25kg로 예상했다. 즉, 마음이 무거운 참여자들이 박스를 더 무겁게 지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2에서는 물체에 대한 지각에 국한되어있던 연구 1을 확장시켜 타인의 움직임에 대한 인식도 이러한 결과가 나타날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연구 2에서는 대학생 90명을 통제집단과 실험집단으로 나누어, 실험집단에게는 과거에 마음이 무거웠던 사건 혹은 마음이 가벼웠던 사건을 회상하고, 10분간 그 경험을 최대한 생생하게 작성하도록 요청했다. 그러고는 여덟 번의 장대높이뛰기 시도를 하는 스포츠 영상을 보여주고 매 영상이 끝날 때마다 ‘각자의 선수들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예측하도록 하였다. 반면 통제집단에게는 캠퍼스 지도를 묘사하는 글을 작성하도록 요청한 후 동일한 스포츠 영상을 보여주고 같은 질문을 하였다. 이 결과, 마음이 가벼운 조건의 참여자들은 영상에서 선수들이 성공할 확률을 60.89%로 예측한 반면, 마음이 무거운 조건의 참여자들은 52.58%로 낮게 예측하였다. 반면, 통제조건의 참여자들은 57.66%로 중간 수준으로 예측하는 결과를 보였다. 즉, 스포츠 영상을 볼 때, 마음이 무거운 상태의 참여자들은 마음이 가벼운 상태의 참여자들보다 장대높이뛰기를 성공할 가능성이 더 적다고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는 심리적인 무거움이 물체를 더 무겁게 느끼는 물리적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혔으며(연구 1), 이러한 경향성이 타인의 신체적 움직임에 대한 관찰과 인식에서도 전이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밝혔다(연구 2). 즉, 은유적 표현은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적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경험하는 방식, 우리가 매일 하는 일들이 모두 은유의 문제인 것이다. 사실 ‘마음이 무겁고, 가벼운 것‘은 슬픔이나 죄책감, 행복감, 즐거움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떠한 특정 감정이 은유적 표현과 연관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본 연구는 감정적인 요소가 아닌 은유 자체에 관심이 있음을 주목하고 있으며, 어떤 특정한 감정이 무거운 마음의 은유에 의해 유도되는지 유도되지 않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연구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행복과 같은 특정 감정이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는 후속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연구가 진행된다면 무거운 마음(가벼운 마음)과 슬픔(행복)의 결과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은유의 차별화 된 효과 (vs. 감정)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무게가 곧 세상의 무게다.”
*더 알고 싶다면,
Min, B., & Choi, I. (2016). Heavy-heartedness biases your weight perception. The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156(5), 513-522.
https://doi.org/10.1080/00224545.2015.1129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