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 저마다 바라는 바를 담은 목표를 세우곤 합니다. 1월 1일에 결심한 굳은 다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 녹듯 녹아내려 일주일을 채 실천하지 못하고 끝을 맺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작심삼일’은 이러한 현상을 잘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검색어 빈도를 살펴보면,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매해 1월에 작심삼일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프로 작심 삼일러’라는 신조어와 함께 3일마다 결심하는 작심삼일 다이어리의 등장도 매해 반복되는 작심삼일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목표를 세우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전과 다른 새로운 나의 모습 또는 성장을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일상의 변화가 필요하고, 이러한 변화가 상당기간 지속되어야 합니다. 목표를 세우는 것과 달리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는 생각했던 것 이상의 어려움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새해 결심이 일주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하향 조정되거나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하는 상황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보고 또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목표를 향한 실천이 꾸준히 이어지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등산을 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새해부터 등산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현재 상태와 괴리감이 큰 비현실적인 목표는 지속되지 못하고 작심삼일에 그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에 대한 설렘에 집중한 나머지 이를 실천하는데 중요한 현실의 여건을 과소평가한 것 역시 그 이유가 될 수도 있죠. 새해 목표가 작심삼일에 그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나에게서 내일의 나에게, 그리고 내일의 나는 그 다음 날의 나에게 미루게 되고 결국 새해부터 달라지겠다는 다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오늘의 나와 다른 내일의 나
‘부탁해! 내일의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게 만듭니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요?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과 그 동료들의 연구(2009)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연구자들이 수행한 흥미로운 두 개의 연구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실험 참여자들에게 매우 끔찍한 음료(케첩과 간장이 섞인, 보기에도 맛도 모두 끔찍한)를 권했습니다. 그래야만 다음 절차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이 끔찍한 음료를 마셔야만 했죠. 불행 중 다행스러운 점은 참여자들은 이 끔찍한 음료를 얼마나 마실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음료를 선택하기 전, 참여자들은 실험 조건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설명을 들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총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 그룹(‘오늘의 나’ 조건)의 참여자들은 지금 당장 끔찍한 음료를 마셔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그룹 참여자들은(‘미래의 나’ 조건) 오늘 실험이 다음 학기로 미뤄졌기 때문에 다음 학기에 끔찍한 음료를 마셔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죠.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다른 사람’ 조건)은 참여자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 끔찍한 음료를 얼마나 먹일지 선택할 수 있었죠. 각 그룹의 참여자들은 이 끔찍한 음료를 얼마나 먹겠다고 했을까요?
그림 2(위)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당장 끔찍한 음료를 먹어야만 했던 ‘오늘의 나’ 조건의 참여자들이 가장 적게 마시겠다고 선택하였습니다. 이는 나중에 끔찍한 음료를 마셔야 하는 ‘미래의 나’ 조건과 다른 사람이 마실 양을 선택한 ‘다른 사람’와 비교하면 훨씬 적은 양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미래의 나와 다른 사람 조건의 참여자들 선택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마셔야 한다면 끔찍한 음료를 더 많이 마시겠다고 하였고, 그 양은 다른 사람에게 마시도록 하는 양과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죠.
이어서 두 번째 연구도 소개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설문에 응답을 모두 완료한 참여자들에게 복권을 지급하였습니다. 이 때 참여자들은 두 개의 복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지금 당장 현금 50,000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복권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2달 뒤 70,000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복권이었죠. 앞서 소개한 첫 번째 연구와 마찬가지로 참여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고, 각 그룹에 따라 오늘 당장(‘오늘의 나’ 조건) 복권을 받거나, 학기말(‘미래의 나’ 조건)에 복권을 받게 될 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그룹은 참여자 본인이 아닌 연구에 참여하는 다른 학생들이(‘다른 학생’ 조건) 받게 될 거라는 설명을 들었죠. 각기 다른 상황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복권을 선택했을까요?
연구 결과는 그림 2(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 당장 복권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2달 뒤 받게 되는 더 큰 보상이 있는 복권을 선택한 사람은 50%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참여자들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금액은 적지만 지금 현금 50,000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복권을 선택한 것이죠. 반면에 학기말에 받게 되거나 다른 학생들이 복권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참여자들(약 10명 중 8명)은 2달 후에 더 큰 보상이 걸린 복권을 선택하였습니다. 첫 번째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미래의 나는 마치 다른 학생들이 받는 조건과 비슷한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들을 종합하면, 오늘의 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최소화하고(첫 번째 연구), 작지만 즉각적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선택(두 번째 연구)을 선호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나와 달리, 미래의 나를 위한 선택은 다른 사람을 위한 선택과 다를 바 없었죠. 미래의 나는 마치 남과 같이 대한다는 것을 이 연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 철학자인 데렉 파핏(Derek Parfit)은 훨씬 이전부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파핏은 1971년 논문에서 현재 자신과 미래의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에, 때로는 미래의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여긴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 때문에 오늘의 나에게는 관대한 반면, 미래의 나에게는 조금 가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미래의 나도 모두 나 자신
이번 새해에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고 계획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일의 나에게 미루지 않고 오늘의 내가 지금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사람들은 고통은 회피하고 즐거움을 주는 자극에 끌리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에 대한 경계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이 어떻게 새해 목표를 달성하는 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설명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림 3에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두 개의 원이 있고, 두 원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다른 7개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이제 아래 질문에 대해답해 주세요. (옳고 그름이 있거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 솔직하게 선택해 주셔도 됩니다)
“현재의 자신과 10년후 자신이 얼마나 동일하다고 생각하나요?”
1번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맞닿아 있지만 겹치지 않은 상태이죠. 숫자가 높아질수록 겹치는 범위가 많아져서 7번에 이르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거의 동일하게 됩니다. 이 질문은 어스너 허시필드(Ersner-Hershfiled)와 그의 동료들이 한 연구(2009)에서 실제로 사용된 도구입니다. 현재와 미래의 자신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 즉 동일하다고 생각하는지 측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현재와 미래의 자신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생각과 저축 금액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저축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고통이 따르죠. 이런 점에서 은행에 저축하는 것은 미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동일시할수록(즉, 7점에 가까울수록) 은행 저축 금액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목표 달성에 수반되는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나 자신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새해 결심을 1년 내내 실천하는 사람의 비율이 약 8%라고 합니다. 이번 새해에 결심한 목표를 이룬 8%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제의 내가 바로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내가 된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에 도움이 되는 손쉬운 방법 한 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달력에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 감정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한 해 동안 꾸준히 이용하게 되는 것이 달력입니다. 이렇게 자주 이용하는 달력에 짧은 기록을 남겨보세요. 그 날 하루의 감정을 한 단어로 쓰거나(예, ‘모처럼 편안함’), 일상에서 경험한 의외의 발견들을 기록해 두는 것도 좋습니다. 기록할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 날 맛있게 먹은 식사 메뉴를 기록해도 괜찮습니다. 한 가지 기억하셔야 할 점은, 꼭 좋은 감정이나 행복한 일들만 작성할 필요는 없고 또 숙제를 하듯이 강박적으로 하실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달력에 기록하는 것도 좋지만, 만약 새해를 맞이하여 달력을 선물로 받는다면 손으로 자신의 기록을 남겨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나에 관한 기록들이 쌓이게 되면, 미래의 나를 남처럼 느끼지 않는데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다가올 2024년의 나를 위한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자료>
Ersner-Hershfield, H., Garton, M. T., Ballard, K., Samanez-Larkin, G. R., & Knutson, B. (2009). Don’t stop thinking about tomorrow: Individual differences in future self-continuity account for saving.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4(4), 280-286.
Pronin, E., Olivola, C. Y., & Kennedy, K. A. (2008). Doing unto future selves as you would do unto others: Psychological distance and decision making.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4(2), 224-236.
📃김남희 책임연구원(서울대행복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