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소속 욕구
Baumeister와 Leary(1995)에 따르면 소속욕구(the need to belong)는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대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욕구 혹은 동기를 말한다. “나는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친밀한 대인 관계를 원하는 정도와 그 필요를 표현하고 충족시키는 방법에 문화적, 개인적 차이(Baumeister & Leary, 1995)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소속욕구란 특정한 상황에서 누구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지 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선천적으로 대인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이렇게 서로 결속하려는 근본적 소속욕구 덕분에 인간은 적으로부터 보호 받고, 협력하여 적을 무찌르거나, 큰 동물사냥에 성공할 수 있었고, 생존과 번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가진 결속을 향한 근원적 동기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목은 자기통제력이다. 자기통제력은 높은 과제 수행 능력, 학교나 직장에서의 성공 등 개인적 업적 및 성취에 긍정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있다. 흥미롭게도 자기통제력은 사회적 상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자기통제력이 충동적 반응과 이기적 행동을 억제하고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도록 도와 긍정적인 대인 관계 형성과 유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Duckworth & Gross, 2014; Tangney et al., 2004; Baumeister et al., 2005; Dou et al., 2019).자기통제력이 자기 욕구 충족을 위해 과용될 경우 대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는 않을까 라고 질문 했던 연구자들이 있다(Stavrova et al., 2021; Baumeister & Exline, 1999). 이 같은 질문에 Baumeister와 Vohs (2007), 그리고 DeBono 등 (2011)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자기통제력은 자기 만족과 사회적 규범 사이의 갈등을 조절하고 사회에 순응하며 사회 결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우리가 가진 내적 자원도 사회의 결속, 연합, 원활한 대인관계를 이뤄가는 방향으로 사용되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좌절된 소속 욕구와 정신-신체 건강
소속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소속감 형성이 좌절하거나 대인관계가 결핍 될 때 사람들은 외로움이란 부정정서를 경험하게 된다(Hawkley et al., 2009). 외로움은 단순 부정 정서의 경험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우울증, 사회적 불안, 편집증 등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를 일으키고(Lim et al., 2016; Rico-Uribe et al., 2018), 수면의 질을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Jacobs et al., 2006), 장기적으로 신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Cacioppo & Cacioppo, 2018) 심혈관 질환과 당뇨 등 각종 질병 이환율(Cantarero-Prieto et al., 2018)과 사망 위험을 증가시킨다(Caspi et al., 2006; Rico-Uribe et al., 2018; Thurston & Kubzansky, 2009). 좌절된 소속감이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소속감 결핍이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정도이니 말이다.
최근 전세계가 외로움의 쓴 맛을 톡톡히 경험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COVID-19 Pandemic)이다. 코로나의 높은 전염력으로 인해 모든 사회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실천하는 것으로 감염을 예방하고자 하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사람 간의 관계를 단절 시켰다. 주로 노인이나 1인 가구에 국한 되어있던 사회 관계 단절과 외로움을 연령이나 가정형태의 제한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게 된 것이다(Luchetti et al., 2020). 팬데믹 기간 대인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외로움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생애 최초의 소속감 형성과 신체 건강
인간이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대상은 누구인가? 바로 양육자, 대게는 엄마, 아빠이다. 생후 1-2년간 부모와 아이 사이에 애착 관계가 형성되는데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민감하고 지속적이며 일관된 부모의 반응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Bowlby, 1969, 1973). 민감한 엄마의 양육 태도를 통해 안정감을 경험한 영아는 양육자가 신뢰할 만한 대상임을 배우며, 양육자를 안전 기지로 삼아 세상을 탐색할 수 있다. 탐색 과정에서 위험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안식처인 엄마에게 돌아가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안정된 애착 관계를 통해 감정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따라서 애착 행동은 “선천적인, 타고난 자기 조절 매커니즘”이라고도 불린다.
영유아기 형성되는 애착 관계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이는 발달 심리학자들의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다. 이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연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미국 소아 비만학회(Pedatric Obesity)에 발표된 “Self-regulation linking the quality of early parent–child relationship to adolescents’ obesity risk and food consumption (Kim & Bost, 2022)” 연구로 영유아기 형성된 부모와 자녀의 관계 질(애착관계와 엄마의 민감한 양육 태도)이 청소년기를 거쳐 식생활과 비만에 영향을 미치는 매커니즘을 주제로 하였다 (Figure 1).
본 연구에서는 미국 엄마-자녀 1,237쌍을 대상으로 하였다. 영유아기 부모-자녀 관계 질(Quality of relationship)은 생후 15,24,36개월 애착관계와 부모의 민감한 양육 태도(sensitivity)를 통해 측정되었으며, 청소년기 식습관은 지난 일주일간 먹은 음식 종류와 섭취 횟수 (과일 야채와 건강한 음식 vs 햄버거 탄산음료와 건강에 해롭지만 맛 좋은 음식), 청소년기 비만도는 몸무게와 키를 직접 측정하여 환산되였다. 이전 발달 단계에서의 비만도와 성별, 엄마의 우울감 등은 중요한 통제변수로 사용하였다.
구조모형 분석 결과 부모-영유아 간 관계 질은 청소년기 식생활과 비만도에 직접으로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두 관계(①엄마-영아 관계 질-맛 좋은 음식을 먹는 식습관, ②엄마-영아 관계 질-비만도)는 아이의 자기조절능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 되어있었다 (Figure 3). 이 간접 경로를 해석하면, 엄마가 민감한 양육태도 갖고 아이와 안정적인 애착관계가 형성했을때 4-5세 아이의 정서, 인지, 행동 조절능력이 높았고, 높은 수준의 자기조절능력은 도넛, 햄버거와 같은 맛 좋은 음식을 적게 먹게 하며, 비만도를 낮췄다. 앞서 언급 되었듯 어려서부터 어려운 상황에서 부모로부터 민감한 반응과 도움을 받아 본 아이들은 이 경험을 통해 여러 영역의 조절기능을 발달시키고,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 여러 음식 환경에 놓였을 때 맛은 좋지만 건강에는 해로운 햄버거, 탄산음료, 도넛 등을 먹는데 보다 잘 절제할 수 있으며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다스리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비만의 위험을 낮춰줄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유아기 부모-자녀 관계의 질이 청소년기 신체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정리하며
친밀한 대인관계 형성과 유지는 인간의 선천적 욕구이며, 이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결과 중 하나로 한 연구를 통해 생후 3년간 엄마와 안정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쌓은 어린이는 이후 청소년이 되었을 때 건강한 식생활과 신체발달을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이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아이는 이후 식생활과 신체발달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외톨이 섬이 아니다(John Donne, 1975). 인간은 관계를 위해 태어난다고 말해도 될 만큼 우리는 관계를 원하며, 친밀한 관계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나는 바다에 홀로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 사람들에게서 웰빙(well-being)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주현 박사(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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