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관계.
행복, 정신건강이란 주제로 연구하다보면 돌고 돌아 또다시 관계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다. 이번 행복 뉴스레터의 테마가 또다시 관계인것 처럼 말이다.
역대급 휴일이 기대되는 올 추석, 명절과 휴일 준비를 위해 가족들과 더 빈번한 연락이 오고간 바쁜 9월이였다. 다양한 종류의 대인관계(예: 또래 관계, 연인 관계, 교사-학생 관계 등)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이 맺는 가장 처음이자 근본이 되는 대인 관계, 부모-자녀 관계(parent-child relationship)를 둘러싼 재밌는 연구 방법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 애착 스크립트의 기원(The origin of my security-based script)
인간이면 누구나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대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구, 바로 소속 욕구(the need to belong) (Baumeister & Leary, 1995)를 지닌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원초적이면서 강력한 소속 욕구를 찾아본다면, 그것은 바로 “엄마를 향한 영유아들의 강한 손짓, 울음”일 것이다.
발달 심리학자들은 주양육자와 가까이 있기를 원하고(proximity seeking), 함께 있는 것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contact maintaining) 아이들의 행동을 “애착 행동”이라 부른다. 영유아기 애착 행동은 익숙하고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 보다 낯선 상황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영유아들의 애착 행동을 관찰하고 애착 유형을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표준화된 절차는 이름하여 “낯선 상황 실험(Strange Situation Paradigm: SSP)” (Ainsworth et al.,1978)
아이는 엄마와 장난감에 둘러 쌓여 재밌게 탐색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낯선 사람(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이 등장한다. 잠시 후 엄마는 문밖으로 나간다.
아이와 낯선 사람은 방에 남겨져 있고 잠시 후 엄마가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누가 봐도 낯선 상황. 1-2세 영유아들에게는 더더욱 낯선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낯선 상황을 실험으로까지 ‘연출’하는 이유는 엄마가 문밖으로 나갔을 때 그리고 엄마가 방으로 되돌아왔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애착 유형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실험 과정에서 어느 수준 이상의 강한 울음이 지속되면 실험은 중단된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안정적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경우, 아이는 엄마가 방을 떠날 때 분리불안(Separation distress)을 보이고 낯선 사람이 울음을 달래려 해도 잘 달래지지 않기도 하지만 이내 엄마가 되돌아오면 강한 애착 행동과 함께 분리 불안이 (드디어) 해소되고 다시 탐색 놀이로 돌아간다. 애착 이론에서 분리 불안은 안정적 애착 관계가 형성된 아기의 적응을 위한 정상 반응으로 여긴다.
반면, 엄마와 아이 간에 불안정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 아이는 엄마가 방을 떠나거나 말거나, 돌아오거나 말거나 어떠한 분리불안, 애착행동을 보이지 않기도 하고 혹은 엄마가 방을 떠나면서 붉어진 울음이 엄마가 돌아와 달래려 애를 써도 잘 달래지지 않는다.“위협적인 상황에 누구에게 엄마는 안식처이지만 누구에게는 아니다.” 이것이 애착 유형을 가르는 중요한 단서인 샘이다.
🤱정서적 안전 기지(Secure base)에서 애착 스크립트(Secure Script)까지
생후 6개월에서 2년 사이의 몇 달의 기간동안 아기들은 자신에게 민감하고 반응을 지속적으로 잘 해주는 성인과 애착관계를 형성(Bowlby, 1969, 1973)한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도록 돕는 주요인은 주양육자의 민감성(sensitivity)이다. 주양육자가 (특별히 불편한 상황에서)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거나 민감하게 대응할 때 아이는 안정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민감한 엄마의 양육 태도를 통해 안정감을 경험한 영아는 양육자가 신뢰할 만한 대상임을 배우며, 양육자를 안전한 기반으로 사용하여 세상을 탐색한다. 특히 기거나 걸어다닐 무렵의 아이는 친숙한 애착대상을 하나의 안전기지(secure base)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이 안전기지를 토대로 주변을 탐험(exploration)했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고, 동시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시 안전기지 즉, 안식처(haven)로 돌아와 평정을 찾는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 아이는 엄마를 통해 위안을 얻고 안식을 찾지 못한다. 앞서 말한 낯선 상황 실험에서 엄마를 통해 울음이 달래지지 않았던 이유는 양육자의 부재 또는 양육자의 민감하지 못한 양육방식으로 아이의 다양한 불안 신호들이(cue) 적절히 다뤄지지 못하고 충분한 안정감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아이가 민감한 돌봄을 받게 되면 “안전기지로서의 양육자”에 대한 생각 혹은 지식(Secure-based Script Knowledge: SBSK)을 쌓게 되고, 매일의 계속되는 상호작용을 통해 이 지식은 점차 아이에게 내면화 된다. 이것이 훗날 나의 ‘내적 작업 모형(Internal working model)’ 혹은 ‘애착 표상(Security Script)’이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애착 관계는 이렇게 애착 스크립트로 표상화, 내면화되어 지속되기 때문에 (쉽게 말해 내 머리에 “애착 표상”으로 저.장. 되기 때문에) 생애 전반에 걸쳐 행복을 포함하여 여러 영역에 (또래 및 연인과의 긴밀한 관계, 성격, 감정 조절, 자아 개념, 감정 이해 등)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Thompson, 2008).
🤱애착 스크립트 측정(Attachment Script Assessment: ASA)
아이가 애착과 관련된 ‘안전기지 스크립트(secure base script)’를 발달시킨다는 점에 착안하여 애착 스크립트를 측정할 수 있는 척도인 Attachment Script Assessment(ASA)가 개발되었다 (Waters, Ridgues & Ridgeway, 1998).
흥미롭게도 ASA는 일반적인 사용되는 설문도 관찰 평가도 아닌 이야기 (narratives)를 기반의 측정법이다. 앞서 말한 낮선 상황의 실험과 비슷하게 “문제 상황”이 제시되고 (폭우 속 캠핑, 여드름 사건 등) 나열된 단어들을 사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연구자는 참여자가 만든 이야기에서 일련의 애착행동과 불안 해소의 요소가 담겨있는지 확인한다 (이야기 코딩을 위해서는 심도있는 트레이닝에 참여해야 한다). 애착 스크립트는 “1) 안정적 탐색 지원, 2) 장애물이나 위험 상황 시 도움 요청, 3) 어려움의 해결과 교류, 4) 탐색 및 활동으로의 복귀”과 같은 연속적인 사건들로 표현된다고 한다. 다음은 Water (n.d.)가 제안한 애착 기반 스크립트 요소이다.
이 방법론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과학적 유용성이 증명 되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엄마의 애착 스크립트가 유아의 애착안정성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졌으며(Vaughn et al., 2007), 애착 스크립트의 구조와 내용에서 종단적인 일관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Vaughn et al, 2006).
🤱애착 스크립트 테스트
아래는 실제 측정에 사용되는 두개의 에피소드이다. 각 행에 있는 단어들을 쭉 따라 내려가며 읽으며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
위 제시 단어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나의 애착 스크립트는 어떠한가? 애착의 주요 요소들이 담겨있는가? 우리 가족들은 어떤 애착 스크립트를 가지고 있을까? 추석연휴 삼삼 오오 모인 가족들과 위 단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애착의 주요한 요소들 중에 무엇이 빠져있는가? 우리 아이는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지 않는가? 혹은 누구로도 그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가? 앞으로 우리 관계에서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글쓴이: 김주현 박사(서울대학교 대학주관연구소 의학연구원 연구조교수)
<출처>
Ainsworth, M. D., Blehar, M. C., Waters, E., & Wall, S. (1978). Patterns of attachment: Psychological study of the strange situation. Hillsdale, NJ: Lawrence Erlbaum
Thompson, R. A. (2008). Early attachment and later development: Familiar questions, new answers. In J. Cassidy & P. R. Shaver (Eds.), Handbook of attachment: Theory, research, and clinical applications (pp. 348–365). The Guilford Press.
Waters, H. S., Rodrigues, L. M., & Ridgeway, D. (1998). Cognitive underpinnings of narrative attachment assessment. Journal of experimental child psychology, 71(3), 211-234.
Waters, H. S. (n. d.). Narrative assessment of adolescent attachment representations: The scoring of secure base script content. Unpublished manuscript
Vaughn, B. E., Coppola, G., Verissimo, M., Monteiro, L., Santos, A. J., Posada, G., … & Korth, B. (2007). The quality of maternal secure-base scripts predicts children’s secure-base behavior at home in three sociocultural groups. International Journal of Behavioral Development, 31(1), 65-76.
Vaughn, B. E., Waters, H. S., Coppola, G., Cassidy, J., Bost, K. K., & Veríssimo, M. (2006). Script-like attachment representations and behavior in families and across cultures: Studies of parental secure base narratives. Attachment & human development, 8(3), 179-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