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_나이가 들수록 더 지혜로워지는가?
노년과 지혜는 결코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이 책을 쓰기 전 나는 내 나이 쉰에 이 연구를 위해 국립노화연구소에 보조금을 신청했다. 그런데 거절 당하고 말았다! 신청서를 검토한70세 심사위원장은 노화를 쇠퇴라는 관점에서 정의하면서 어떻게 노화에 관해 연구할 수 있겠냐며 강한 의문을 피력했다. 그 위원장은 노화를 “가능한 한 뒤로 연기하고 싶은 노쇠 과정이 아니라, 생기 넘치는 삶의 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나는 그의 충고 덕분에 노화에 대해 다시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고, 노화를 삶의 한 과정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보조금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제시했던 주요 주제가 바로 ‘70세가 50세보다 더 현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우연히 젊은 친척들로부터 지혜에 관해 아주 훌륭한 두 가지 정의를 듣게 되었다. 먼저, 젊고 현명한 조카 메리언 브로벨은 “지혜는 풍부한 경험의 산물이며, 다른 사람과 진정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축적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한편 젊은 내 사위 마이클 뷸러는 “판단을 내려야 하거나 다른 사람과 의견 충동이 생길 경우, 균형 있는 시각을 갖게 될 때까지 기꺼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바로 지혜라고 했다.
지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지혜의 정의를 다르게 내린다. 그러나 지혜를 정의하는 언어는 각자 다를지 모르나, 그 어조는 모두 동일하다. 지혜는 매우 다양한 측면을 지닌다.
[1]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바로 성숙, 지식, 경험, 지적 정서적 이해력을 꼽을 수 있다.
지혜가 성공적인 노화의 필수 요소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노년에 이른 사람들이 30세를 갓 넘긴 이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첫째, 구역에 등장하는 솔로몬왕은 나이 들어서보다는 젊었을 때가 훨씬 더 지혜로웠다.
[2] 젊은 솔로몬왕이 “오 주여… 나는 한낱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들고 나는 것도 모릅니다”라고 울부짖자,
[3] 하나님이 “보라! 나는 이미 네게 현명하고 이해심 넘치는 가슴을 주었느니라.” 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위 젊은 솔로몬 오아은 유명한 솔로몬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솔로몬왕은 노년에 이르자 리어왕만큼이나 어리석은 왕이 되고 말았다.
둘째,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현자들을 떠올려보자. 제퍼슨, 간디, 마틴 루터 킹, 무하마드 알리, 링컨,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등은 모두 30세에서 50세 사이에 지혜의 절정에 다다른 이들이다.
셋째, 한때 지혜로운 능력을 발휘했지만 지금은 평범한 할머니로 늙어가는 한 터먼 여성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그녀는 2차 세계대전 당이 총명한 20대 여성이었다.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의 처지를 알게 되었고 그들은 외국인을 혐오하는 영국계가 많은 분위기 때문에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그녀는 영향력 있는 시의원들에게 일본계 미국인들에게도 투표권이 있으며, 그들의 수가 순수 미국 시민들보다 더 많다고 강조하면서 다음 선거에 일본인 시장, 교장, 경찰 서장등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마침내 주민들은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고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젊은 정치운동가는 역사의 맥락을 이해했기 때문에 시내 약제사 가족에게만큼은 예외를 적용해서 약제사가 자기 약국안에서 만큼은 차별을 지속하는 것을 용인했다. 간호병이었던 약국집 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루손 섬 바탄에서 일어난 ‘죽음의 행진’에 휩쓸려 잔인하게 처형되었기 때문이었다.
지혜의 다양한 측면들에 관해 살펴보면, 첫째, 이 젊은 여성은 어느 한 문화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문화를 똑같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 둘째, 사리분별력과 건전한 도덕적 통찰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셋째, 과거와 미래의 맥락을 이해했기 때문에 모든 코디 주민이 그녀에게 신뢰를 보냈다. 넷째 사물의 핵심을 꿰뚫을 줄 아는 지적인 존재였다. 덕분에 평화를 해결책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다섯째, 정서적인 이해력도 풍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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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에서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지혜로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래 살수록 경험의 폭은 넘넘 넓어지고 편견은 줄어든다. 지혜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아마 지혜도 경험이나 흰머리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늘어난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진행되어 온 경험적 연구들은 이러하 믿음을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4] 예를들어, 한 연구에서 회고적 판단에 근거해 면담을 진행해본 결과, 분명 35세까지는 지혜가 늘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 시기 이후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5] 또 다른 한 연구에서는, 중간관리자들이 사회적 관계를 풀어나가는 능력면에서 볼 때, 28세에서 35세 사이나 45세 사이에서 55세 사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65세에서 75세 사이에는 관리자로서 업무 수행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6], [7] 다른 연구들에서도 이와 같은 결과를 공고히 하는 실험 결과들이 주를 이루었다.
[8]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폴 발테스는 지혜에 관한 연구를 이렇게 요약했다. “전문적 식견이나 지혜의 영역에서 나이 많은 성인 대다수는 확실히 젊은이들보다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삶의 경험이라는 면만 봐도 노인들이 지혜로운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는 한다.
[9] 그래서 한 연구에서는 각기 다른 연령대를 대상으로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꼽아보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20대가 꼽은 인물들은 평균 50세였고, 40대 들은 평균 55세의 인물들을 꼽았으며, 60대 이상은 70대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진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나이가 들수록 경험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혜는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체득되기 때문이다.
[10] 성인발달연구에서는 지혜를 측정하는 한 방법으로 워싱턴 대학교의 제인 뢰빙거가 개발한 필답식 문장완성검사 SCT를 도입해보았다.
이 검사에서 응답자는 제시된 문장을 완성해야 한다. 그 검사를 통해 대인관계, 정서적 상태, 도덕적 성숙 등은 평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버드 출신자들의 경우, 문장완성검사가 곧 방어 기제의 성숙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문장완성검사에서 높은 점수가 성공적인 노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통해 글과 말만으로는 사람들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할 수 없다.
지혜의 발달에 대해 전향적 연구를 시도해던 라베나 헬슨과 폴 윙크도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11] 그들 역시 필답검사를 통해 ‘지혜’를 측정했다. 그들은 27세에서 52세 사이에 꾸준히 지혜가 늘어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그들이 시행한 필답검사 결과 역시 실제 일이나 사랑에서의 성공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우리는 방어기제의 성숙도를 통해 지혜를 가늠해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방어기제는 연구 대상자들의 말이아니라 행동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12] 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철학교수 로버트 노작은 지혜의 개념을 가장 보편적인 의미로 정의 내리기를, “잘살고 잘 대처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버드 집단의 한 연구 대상자 역시 그 교수와 비슷한 맥락에서 지혜를 정의했다. 다시 말해 지혜와 성숙한 방어기제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우리 성인발달연구에 근거해 보면, 방어기제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성숙되었다. 그러므로 지혜도 나이가 들수록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