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2_의미있는 삶
좋은 삶이 좋은 기분을 많이 느끼는 삶일 수도 있지만, 좋은 기분만이 좋은 삶의 조건은 아니다. 좋은 기분을 많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살만한 이유와 가치를 충분히 느낀다면 좋을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幸福(행복)이라는 한 단어를 가지고 때로는 행복한 기분을, 때로는 행복한 삶을 가리키기 때문에 종종 오해가 발생한다.
행복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을 행복한 기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의 의미를 간과하는 실수를 범한다.
진화적 관점은 인간과 동물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행복을 설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인간만이 추구하는 행복, 즉 좋은 삶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따라서 순간의 기분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1]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이 두 가지의 구분을 위해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기(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가 있고,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카너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좋은 기분이 아니라 좋은 삶이라는 관저에서, 그리고 경험하는 자기가 아니라 기억하는 자기의 관점에서 핵심 요소인 의미 있는 삶에 관하여 논할 것이다.
Chapter 04_의미의 의미
1. 무거운 의미와 가벼운 의미
의미를 행복의 핵심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에 회의적인 이유는 의미를 지나치게 무겁게 보기 때문이다. 의미를 좋은 삶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의미에는 무거운 의미뿐 아니라 가볍고 경쾌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무거운 의미 혹은 큰 의미란 삶에 대한 목적의식과 소명 의식, 자기희생, 대의명분 같은 것을 뜻한다. 작은 의미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뜻한다. 자기를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의미가 아니며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의미의 의미를 확장하면, 의미 있는 삶에 대한 불필요한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학자들이 정의한 의미의 의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의미란 중요성(significance)이다.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 모두 의미다. 의미 경험은 주관적이어서 타인이 의미 없는 일이라고 간주하더라도 자신이 의미를 경험하면 그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둘째, 의미는 유용성(usefulness)이다. 자신의 행위가 쓸모 있다고 느낄 때 그 일은 의미를 갖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간 낭비가 아니라’라고 느끼는 경험이 의미다.
셋째, 의미는 이해(understanding)이다. 인간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욕구중 하나는 세상을 이해하려는(sense-making) 욕구다.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못할 때, 우리는 ‘의미 없음’을 경험한다.
넷째, 의미는 정체성(identity)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행위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과 연결되어 있을 때, 즉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의미를 경험한다. 의미 있다는 것은 곧 자기다움을 뜻한다.
의미의 의미를 이렇게 해부해보면, 의미를 경험하게 하는 행위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의미 추구는 엘리트 도덕주의자의 강압적 명령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우리의 본성이다.
2. 의미를 향한 인간의 의지
인간은 의미에의 의지가 충만한 존재다.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의 연구와 저술은 의미를 향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보여준다.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는 삶에 대한 희망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아우슈비츠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한 결정적 힘이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닌 삶의 의미, 더 정확하게는 의미를 발견하려는 의지였음을 보여준다.
[2] 프랑클의 저술이 무겁고 큰 의미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Dan Ariely)의 실험은 작고 가벼운 의미의 힘을 잘 보여준다.
애리얼리 실험의 참가자들은 문장들이 가득한 페이지에서 특정 알파벳을 찾아 체크하는 과제를 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완수한 페이지 수만큼 돈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조건에서는 다 마친 종이에 참가자 본인의 이름을 적게 했으며 다른 조건에서는 이름을 적지 않고 바로 파쇄기에서 파쇄 됐다. 참가자들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다. 어느 조건에서 더 많은 양의 작업을 완수했을까?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후자의 조건이 훨씬 유리하다. 적당히 하고 제출해도 들킬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자신의 이름을 적은 조건에서 참가자들은 훨씬 더 많은 과제를 해냈다. 이 실험은 자기 이름을 적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자기 일이라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의미의 발견이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힘이 있다면, 의미의 부재는 쾌락을 고통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가 유발하는 문제는 매우 다양하다. 의미의 부재는 우리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굿 라이프는 의미가 가득한 삶이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준다.
[3] 심리학자 에릭 클링거(Eric Klinger)의 말처럼 “인간의 뇌는 목적 없는 삶을 견딜 수 없다(The human brain cannot sustain purposeless living)”
3. 의미의 원천, 자기다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지혜는 맹목적으로 성공을 추구하는 행위를 경계해왔다. 바벨탑, 소크라테스의 경고등은 인류가 얼마나 가치 없는 성공을 경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의미 없는 성공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너 자신을 알라”는 가르침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제시한 것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인간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규정하고, 삶의 궁극적 목표로서 자아실현, 의미의 실현, 인격적 성숙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인본주의 심리학은 방법론적 엄밀성의 부족으로 인해 주류 심리학으로부터 차가운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는 쾌감으로서의 행복만을 좋은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좋은 삶의 의미 측면을 강조하는 목소리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심리학자 브라이언 리틀(Brian Little)의 ‘개인 프로젝트(personal projects)’ 분석이다. 리틀의 연구는 인간이 경험하는 의미의 중요한 원천이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것, 즉 자기다움의 삶을 사는 것임을 보여준다.
개인 프로젝트란 글자 그대로 한 개인의 일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의미한다. 개인 프로젝트는 다양한 차원에서 평가될 수 있다.
[4] 리틀은 다양한 평가 차원이 아래의 다섯 가지 상위 차원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했다.
<개인 프로젝트의 5가지 차원>
1)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도(self benefit)
2) 성공 가능성(efficacy)
3) 재미(fun)
4) 타인의지지(support)
5) 통합(integrity)
이 중 주목할 만한 차원이 성공 가능성과 통합이다. 성공 가능성은 그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에 대한 개인의 지각을 나타내고, 통합이란 그 프로젝트가 자신의 정체성과 얼마나 잘 통합되어 있는가를 나타낸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 하고자하는 일이 자신의 정체성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나타낸다.
리틀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 프로젝트(어떤 일)의 성공 가능성은 삶에 대한 만족과 현재의 기분과 관계가 있었지만, 삶의 의미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반대로 하고자 하는 일이 자기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는 정도는 삶에 대한 만족이나 감정과는 무관하지만, 삶의 의미와 정적(+)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의미의 중요한 원천이 자기다움에 있음을 보여준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4. 의미형 국가, 영국이 주는 교훈
영국은 최근 들어 행복에 관한 몇 가지 인상적인 노력을 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of Loneliness)을 임명했다. 영국의 시도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이 시도가 그간 영국 정부가 국민들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통계청(ONS: Office of National Statistics)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영국의 행복 측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통계청은 ‘PWB ONS 4’라고 부르는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을 이용해 영국인의 행복을 측정한다.(PWB : Personal well-being)
1) 전반적으로 요즘 당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2) 전반적으로 당신이 인생에서 하는 일들이 얼마나 가치 있다고 느끼십니까?
3) 전반적으로 어제 얼마나 행복을 느끼셨습니까?
4) 전반적으로 어제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습니까?
첫 번째 질문은 삶에 대한 만족(足)을 측정하는 질문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평소의 감정(快(쾌))을 측정하기 위한 질문으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각각 측정하고 있다. 이 세 질문은 1부에서 살펴본 快足(쾌족)을 측정하므로 새롭다할 수 없다.
주목해야할 질문은 두 번째 질문이다. 이 질문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묻는 질문이다. 이는 행복에 대한 영국의 이해가 매우 균형 잡힌 이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영국은 행복한 기분을 넘어 행복한 삶을 측정하고자 하고, 경험하는 자기만이 아니라 기억하는 자기의 행복을 관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의 중요성이 영국에서는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Chapter 4를 나가며—
인간은 의미를 향한 의지가 충만한 존재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을 분명히 해주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의미는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의미의 부재는 괘락을 고통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굿 라이프란 의미가 충만한 삶이다. 의미에는 큰 의미도 있지만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의미도 존재한다. 의미의 일상성을 인식해야 의미있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