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2_돈에 대해 꼭 알아야 할 10가지
_가치 없이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려면
4.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고객의 생각을 존중하는 JC페니 백화점
2012년, JC페니의 신임 CEO 론 존슨이 이 백화점의 오랜 전통을 부숴버렸다. 그 전통이란 바로 제품의 가격을 높게 책정한 다음 그걸 다시 깎아서 가격표를 매기는, 그러니까 살짝 사기성이 있는 가격정책이었다.
존슨이 CEO가 되기 전 20년 동안에 JC페니는 고객들에게 늘 쿠폰을 줬고 재고할인과 흥정할인을 해줬다. 이런 것들이 JC페니가 마치 가격을 깎아주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할인가격이 다른 곳의 정상가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론 존슨이 JC페니의 백화점 가격을 ‘공정하고 정직하게’ 만들어버렸다.
존슨은 소비자를 우롱하지 않는 이 정책이 보다 투명하게 비칠 것이며 또 소비자로부터 찬사와 존경을 받으리라고 믿었다. 그의 이런 믿음은 물론 잘못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고객은 이 제도를 증오했다. 그랬기에 충성을 다하던 백화점으로 향하던 발길을 뚝 끊었고, 사기를 당한 느낌에 사로잡혀 불행했으며, 실제 가격에 배신감을 느끼면서 공정하고 정직하며 정당한 그 가격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결과 1년 만에 JC페니는 무려 9억 8,500만 달러나 손해를 봤고, 론 존슨은 해고됐다.
존슨이 해고된 직후 JC페니에서 파는 물품의 가격은 대부분 60퍼센트 이상 인상됐다.
[1] 예컨대 150달러에 팔리던 어떤 협탁에는 ‘정상가’ 245달러라는 가격표가 붙었다.
그런데 정상가격이 높아지긴 했지만, 할인의 가짓수와 선택폭도 그만큼 더 늘어났다. 매장에서는 딱 1달러만 깍아주는게 아니라 ‘할인 가격’과 ‘원래 가격’과 ‘감정 가격’ 등을 함께 제시했다. 이 가격은 존슨이 해고되기 전이나 해고된 후나 거의 비슷했다.
JC페니 고객들은 자신의 지갑을 갖고 투표를 했으며, 이 투표를 통해 스스로 속임수를 당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은 설령 정상가격을 부풀린 것이었음에도 차라리 흥정과 할인과 세일을 원했다.
JC페니와 론 존슨은 가격책정의 심리학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자면, JC페니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이성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어떤 사업을 진행하면 성공하리라는 진리를 학습한 셈이다.
헨리 루이스 멩켄 H. L. Mencken(미국의 문예 비평가)도 “미국인의 지능을 낮게 평가한 사람들 가운데서 망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실제 가치와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방식으로 가치를 평가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 중 하나인 상대성이 발휘하는 여러 가지 효과 가운데 몇몇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무엇이 상대적이라는 말일까? 바로 맨 처음 책정된 가격에 대해 상대적이라는 말이다. JC페니는 할인되는 금액을 퍼센트로 제시하고 또 ‘세일’이니 ‘특별’이니 하는 말을 붙여서 그 놀라운 상대적 가격에 집중되도록 했다.
당신이라면 다음 두 셔츠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하나는 60달러라는 가격표가 붙어있고 다른 하나에는 100달러라는 가격과 함께 ‘40퍼센트 세일! 단돈 60달러!’라는 문구가 추가된 가격표가 붙어 있다.
사실 어느 것이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의식 깊은 곳에서 상대성이라는 개념이 작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위 두 가격을 동일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서 JC페니의 단골고객이라면 늘 세일 중인 셔츠를 선택한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논리적일까? 그렇지 않다. 상대성 개념을 이해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일까? 그렇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까? 그렇다. 이 일이 CEO가 쫓겨날 정도로 중요할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문제는 상대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니라 이를 적용하는 방식에 있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다른 모든 것과 비교한다면 기회비용을 고려하게 될 테고 따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평가하고자 하는 어떤 대상을 다른 하나와만 (때로는 두 개와만) 비교한다. 바로 이럴 때 상대성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 수 있다.
JC페니의 할인가격은 소비자에게 중요한 가치단서를 제공했다. 이것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보통은 유일한 단서이다. 이는 고객들에게 그 거래 하나하나가 모두 매력적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론 존슨은 할인과 구매 포인트와 쿠폰을 제거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자신의 의사결정이 올바르다고 느끼게 해주는 요소를 박탈해버린 셈이다. 정상가격 옆에 붙어있는 할인가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객은 스스로가 상당히 똑똑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암시를 받는다.
착각을 만드는 상대성
상대성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의 통상적인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
[2] 예를 들어서 <나는 왜 과식하는가 Mindless Eating>의 저자인 브라이언 완싱크 Brian Wansink는 상대성이 우리의 허리 둘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사람들은 식사량을 자기몸이 실제로 소화하는 양을 기준으로 결정하지 않고 주어진 여러 선택권을 비교한 결과로 결정한다. 예를 들어 점심식사로 햄버거를 먹는데, 세 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치자. 각각 8온스, 10온스, 12온스 짜리이다. 이때 사람들은 대개 10온스 짜리 햄버거를 먹고는 매우 만족한다. 그런데 주어진 햄버거가 10온스, 12온스, 14온스라면 또 가운데 있는 12온스짜리를 먹고는, 앞서보다 확실히 더 많이 먹었으며,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과 열량 그리고 포만감을 넘어섰음에도 역시 만족스럽게 여긴다.
또 음식을 자기가 놓은 환경 속 다른 사물들과 비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음식의 양을 그 음식이 담긴 그릇의 크기와 연관시킨다. 브라이언이 했던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수프를 계속 주입할 수 있는 호스가 바닥에 연결돼 있는 그릇을 마련했다. 물론 피실험자들은 이 장치를 알아챌 수 없는데, 연구자는 이 그릇에 담긴 수프를 피실험자들에게 양껏 먹으라고 했다. 사람들이 수프를 먹을 때 연구자는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호스로 그릇에 수프를 계속 조금씩 주입했다. 결국, 수프가 계속 주입되는 그릇으로 먹은 피실험자들은 평험한 그릇으로 먹은 피실험자들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을 먹었다. 연구자가 그만 먹으라고 했을 때(연구자는 피실험자들의 과식 상태를 우려해서 더는 수프를 먹지 못하게 해야만 했다) 그들은 심지어 자기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까지 말했다. 이른바 ‘바닥이 없는 그릇’을 사용한 피실험자들은 자기가 먹은 실제 식사량이나 자기가 느끼는 ‘배부름–배고픔’정도에서 만족감의 단서를 얻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그릇에 담긴 수프가 줄어든 정도를 기준으로 만족감을 판단했다.
이런 유형의 비교는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다이아몬드 상인인 살바도르 아셀 Salvador Assael이 유망 상품이던 타이티 흑진주 Tahitian Black Cultured Peral를 시장에 soshklT을 때 처음에는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친구이자 세계적인 보석상인 해리 윈스턴 Harry Winston을 설득해서 뉴욕의 5번가에 있던 그의 보석가게 진열장에 전시하되 흑진주 주변에 진귀한 보석으로 장식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사가들 사이에 이 흑진주에 대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만일 흑진주가 우아한 사파이어 목걸이와 나란히 진열될 정도로 고급스러운 취급을 받는다면 그 가치가 엄청나게 높을 것이라고 세상사람들은 믿었다.
이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상대성이 인간 정신이 수행하는 기본적인 계산법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상대성이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데 영향을 미친다면 자신이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매우 강력한 방식으로 알려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일상적인 돈의 상대성
흥정이나 할인 외에 상대적인 가치가 실제 가치를 흐리도록 내버려두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 자동차 매장에서 신차를 살 때 우리는 추가 옵션을 제안 받는다. 자동차 판매원은 2만 5000달러나 되는 돈을 쓰며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에게 200달러짜리 CD 체인저 같은 추가 옵션은 전체 지출 비용에 비해 하찮을 정도로 싸게 보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CD 체인저만 볼 때 과연 우리는 이걸 살까? 그렇지 않다. 지금 CD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없다. 그러나 이 돈이 자동차 전체 가격의 0.8퍼센트밖에 되지 않기에 우리는 그 제안을 떨쳐내기 어렵다.
-> 화려한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은 조금만 걸어서 다른 곳에 가면 1달러에 살 수 있는 음료수에 4달러나 내라고 해도 보통 화를 내지 않는다. 그 비싼 전체 휴가비와 비교하면 4달러는 상대적으로 아주 적은 푼돈이기 때문이다.
늘 바라왔던 어떤 것과 우연히 맞닥뜨린다고 치자. 이것을 위젯widget이라고 부르자(사실 위젯이라는 용어는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가리는 동시에 전통적인 경제학 교과서를 읽는 독자들을 고문하기 위해 고안된, 상표 없는 상품을 가리키는 말로서 전통적인 경제학 교과서에 흔히 나오는 표현이다.) ‘우리의 위젯이 세일 중이다! 50퍼센트 할인이다!’ 이런 말에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그러나 잠깐 멈추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세일에 신경쓸까? 과거 가격이 얼마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아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 가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중한 위젯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현재의 가격을 세일 이전의 가격과 비교하는 동시에 과거의 가격이 현재의 놀랍도록 높은 가치를 드러낸다고 받아들인다.
흥정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특별하다고 느끼게 해준다. 흥정해서 물건 값을 깎을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가치를 자기는 발견하고 그 가치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100달러짜리 셔츠를 사면서 40달러를 절약하는 것은 다른 용도로 지출할 수 있는 40달러를 공짜로 얻는 것처럼 보였다. 보다 이성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지출하지 않는 것의 가치는 측정하지 말아야 하고 지출하는 60달러의 가치만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에게 작동하는 원리나 우리가 하는 행동은 이성적이지가 않다.
이런 종류의 비교가 작동하는 또 다른 영역이 바로 대량구매 할인이다. 대량구매는 자신에 정말로 그 많은 양이 필요할까, 혹은 필요할까 하는 의심을 쉽게 잊어버리고 만다.
만약 알베르토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였다면 아마도 그는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을 ‘E=MC2’이 아니라 ‘100달러 > 200달러 반값 할인>으로 바꿨을 것이다.
달러와 백분율, 무슨 차이일까?
이런 설정을 한번 해보자. 토요일 아침에 두 일을 하려 집을 나선다. 먼저, 한동안 봐왔던 운동화를 사야한다. 그래서 가게에 가서 60달러짜리 그 운동화를 집어 든다. 그런데 가게 아르바이트 직원이 솔직하게 털어놓기를 자동차를 타고 조금만 더 가면 다른 신발 가게가 있는데 거기서 똑같은 운동화를 40달러에 판다고 한다. 그렇다면 20달러를 절약하는 게 5분 동안 자동차를 몰고 이동할 정도로 가치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다고 답한다.
신발을 산 뒤 우리는 두 번째 일을 하러 나선다. 테라스에 둘 테이블과 의자를 사야 한다. 한 가든스토어에서 안성맞춤인 물건을 찾았다. 테이블에 파라솔까지 달렸고 가격은 1,060달러이다. 그런데 그곳 직원이 5분만 자동차를 타고 가면 다른 가게가 있는데 거기서는 세일을 한다고 일어준다. 그 가게에 가면 20달러를 깎아준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동할 정도로 가치가 있을까? 그런데 이 질문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두 경우에서 우리는 절약하는 20달러라는 금액의 절대적인 가치를 바라보지 못한다. 60달러에 대한 20달러, 1,060달러에 대한 20달러로만 본다는 말이다. 전자는 33퍼센트나 절약되고 후자는 1.9퍼센트밖에 절약되지 않기에 후자는 5분이라는 이동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절약되는 20달러라는 돈은 두 경우에 동일하다.
이 모든 것은 어떤 금액을 지출할 때 실질적인 지출금액 자체가 아니라 전체 지출 가운데 차지하는 백분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이 과연 논리적일까? 아니다. 그러하면 이런 선택이 옳을까? 흔히 그렇지 않다. 이런 선택이 쉬울까? 매우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쉬운 결정을 한다. 바로 이 점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커다란 문제 중 하나다.
서두르면 손해인 이유
두 질문이 있다. “저녁에 뭐 먹고 싶니?”, “치킨, 피자 중 저녁으로 어느 것 먹을래?” 이 두 질문 중 어떤 질문에 보다 빠르고 단호하게 대답할까?
첫 질문에는 선택권이 무한히 많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는 두 가지 뿐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질문에 대답이 보다 빠르게 나온다. 비교가 한결 쉽고 따라서 대답하기 매우 쉽기 때문이다.
이른바 ‘의사결정 지름길’ 세트가 있는데, 상대성은 두 개의 세트를 토대로 형성된다. 첫째, 절대적인 가치(절대적인 평가)에 접근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비교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둘째, 사람들은 손쉬운 비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에일린 에이딘리 Aylin Aydinli, 마르코 베르티니 Marco Bertini, 아냐 람브레히트 Anja Lanbrecht는 그루폰(Groupon –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된 세계 최초의 소셜커머스 기업)이 ‘가격 할인 프로모션’이라면서 제시하는 이메일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상대성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 이메일이 ‘정서적으로 강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사람들은 가격할인 프로모션을 접할 때는 그 외의 다른 선택권을 고려하는 데 상대적으로 시간을 덜 썼다.
[3] 또한 제안받은 내용을 상세하게 기억해보라고 나중에 요구하면 해당 상품에 대한 정본느 덜 기억했다.
가격할인은 멍청함을 부르는 독약이다. 가격할인은 의사결정 과정을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시켜버린다.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것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너무도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품이 세일중이라고 하면 손쉬운 길을 선택해서 그 세일 가격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저항이 가장 적은 경로를 선택한다. JC페니 고객들이 어떤 상품에 내재된 절대적인 가치를 힘들게 노력해서 알아내기보다는 손쉬운 경로를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의분산과 미끼에 현혹되기 쉬운 사람들
상대성 그리고 손쉬운 선택을 선호하는 일반적인 경향 때문에 우리는 가격을 설정하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개입 및 조작에 쉽게 휘둘린다. 미끼도 그런 개입과 조작 가운데 하나다.
댄 애리얼리는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상대성 문제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이코노미스트 economist> 구독료를 예로 들었다. 구독자는 59달러 가격의 온라인 정기 구독과 125달러 가격의 오프라인 정기구독 그리고 역시 125달러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정기구독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댄이 피실험자로 삼았던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학생들처럼 똑똑하다면, 우리 중 84퍼센트는 125달러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정기구독을 택할 것이고, 125달러의 오프라인 정기구독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온라인 정기구독을 하는 사람은 16퍼센트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자, 이 정도면 우리도 상당히 똑똑해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59달러 온라인 정기구독과 125달러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정기구독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68퍼센트가 온라인 구독을 선택하고 나머지 32퍼센트만 125달러 정기구독을 선택한다.
누가 봐도 불리하고 그래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오프라인 정기구독이라는 선택지 하나를 포함시킴으로써 <이코노미스트>는 125달러 가격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정기구족 매출을 세 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냐하면 온라인을 제외한 오프라인 정기구독이라는 선택지는 상대성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정기구독으로 유혹하는 미끼였기 때문이다.
댄의 실험은 상대성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자주 우리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은 오프라인 정기구독을 오로지 오프라인 및 온라인 정기구독하고만 비교한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명쾌하며 또 가장 판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 두가지 선택지는 특성이나 가격 면에서 가장 비슷해서 간단히 비교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또 하나의 선택지, 즉 보다 복잡한 비교를 필요로 하는 선택지를 쉽게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거나 회피한다.
손쉬운 비교라는 함정에 쉽게 빠지는 또 다른 상황이 있다. 바로 선택지는 많은데 그중 어떤 것도 쉽게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 그렇다. 댄은 텔레비전이라는 사례를 사용했다.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다.
690달러짜리 36인치 파나소닉 제품과 850달러짜리 42인치 도시바 제품, 그리고 1,480달러 짜리 50인치 필립스 제품이 있다고 해보자. 이 선택지를 두고 대부분은 가운데인 도시바 제품을 선택한다. 가장 비싼것과 가장 싼 것은 우리를 중간치 선택지로 유도하는 표지판이다. 이때 상대성은 특정한 제품을 다른 제품과 비교하도록 우리를 강제하지 않고, 특정한 제품 속성에 집중하도록 유도해서 그 속성의 범위를 상대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상대적인 것을 선택하는데 흔히 그 범위의 중간쯤에 있는 것을 고른다.
이것이 반드시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제품의 진정한 가치와는 거의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근거를 바탕으로 내려진 선택임은 분명하다.
이처럼 우리는 자주 손쉬운 비교에 의존한다. 마케팅 담당자, 메뉴판 설계자 그리고 정치인은 이를 잘 알고 있으며, 전략을 세울 때 이런 속임수를 사용한다.
이제 우리는 이런 속임수에대해 배웠고 따라서 이 지식으로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제 당신도 잘 알겠지만, 어쩌면 상업적인 거래가 이뤄지는 운동장은 조금 기울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묶음판매의 노림수
판매되는 상품이 여러 개의 특성과 선택지를 동시에 갖고 있을 때도 상대성은 가치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성이 복잡한 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구를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로 인해 또 다른 유형의 문제가 발생하거나 보다 큰 혼란이 유발될 가능성이 커진다.
패스트푸드점의 세트메뉴를 놓고 생각해보자. 이런 묶음 판매는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다. 왜냐하면 가치를 정확하게 어디에 설정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묶음판매 앞에서는 우리는 그 묶음에 포함된 개별 상품의 가치를 쉽게 평가하지 못한다. 만약 그것들 중 하나를 빼면 전체의 가격구조가 바뀌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구매 상황도 살펴보자. 어떤 제조업자의 휴대전화 및 여기 딸린 서비스를 경쟁업체들의 것과 비교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 항목은 독자적인 가치를 따지기 어렵게 의도적으로 설계됐다. 구성된 서비스(4G 네트워크, 데이터 초과 사용 비용, 음성통화량, 로밍 등등…)의 각각의 상대적 가치를 평가하기에는 하나로 통합돼 있는 작은 요소가 너무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휴대전화와 월별 서비스의 총 비용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빅한다. 심지어 그 각각의 가치나 비용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일상 속 상대성의 영향
상대성은 사람들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준다. 손꼽히는 일류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이들 가운데 일부는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말 잘 처리한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성공한’ 최고 수준의 동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자신의 업무능력이 뒤처진다고 느낀다. 이런 경우는 흔하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들은 자신의 성공을 자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기 주변의 소수의 동료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처지가 실망스러운 수준밖에 안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요컨대, 상대성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다. 그것도 매우 강력하게.
어떤 사람이 느끼는 행복 역시 흔히 그가 실질적으로 느껴 마땅한 행복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한 결과다. 대부분의 경우 이 비교는 건강하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다.
한편 후회라는 개념도 비교의 또 다른 버전이다. 후회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여러 대안들의 가상적인 결과와 현재의 자신을 비교한다. 우리는 지금의 나를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될 수도 있었던 이런저런 자아들과 비교한다. 이것 역시 건강하지 않고 유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