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2_돈에 대해 꼭 알아야 할 10가지
_가치 없이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려면
5. 돈은 대체 가능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심리적 회계란 실제적인 가치와 전혀 상관없이 돈에 대해 생각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때로는 유용한 도구일 수도 있지만 이는 대개 형편없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고 만다. 특히 자신이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때 더더욱 그렇다.
돈의 특성으로 언급했던 ‘대체할 수 있음’이라는 개념을 기억하는가? 돈은 다른 돈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1달러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각각의 1달러를 바라보는 방식은 자신이 그 1달러와 처음 연관시켰던 항목에 따라 결정된다.
동일한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지출 범주에 따라 제각기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이런 경향 및 접근 방식은 돈을 다루는 데는 확실히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그러나 기회비용과 실제 가치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면 이 전략은 예산운용을 엄격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럼으로써 지출 방식과 관련된 문제에서 보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 회계를 함으로써 우리는 ‘대체할 수 있다’는 돈의 기본적인 원리를 깨뜨리고 만다. 돈의 이러한 특성이 부여하는 편익을 자기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는 말이다. 즉, 일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돈과 관련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실수를 하게 된다.
심리적 회계라는 개념은 리처드 탈러 Richard Thaler(미국의 심리학자로 <넛지>등의 베스트셀러 저자이며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맨 처음 소개했는데, 사람들이 돈과 관련된 행동을 회사나 기관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발상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큰 규모의 조직에서 일한다면, 이 사람은 해마다 모든 부서가 적정한 예산을 배분받아서 필요한 사업에 잘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일 어떤 부서가 회계연도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그 부서에 배정된 예산을 다써버렸다면 큰일이다. 다음 회계를 배정받기 까지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산에 대한 이런 접근법이 개인의 재정 생활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개인 생활에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쓸 돈의 각각의 지출 범주들에 할당한다. 보통은 의류비, 오락비, 집세, 관리비, 투자자 등이다. 그리고 기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범주 안에 있는 돈을 모두 다 써버리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다. 보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범주의 돈이 남으면 사람들은 그 돈을 쉽게 써버린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당신이 브로드웨이 최신 뮤지컬 관람 티켓을 100달러 주고 샀다고치자. 그런데 개막일 맞춰서 극장에 도착한 뒤 당신은 끔찍한 일을 당한다. 티켓이 없는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지갑에는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있다. 그렇다면 이 돈으로 티켓을 다시 살까? 이 질문에 대부분 아니오라고 답한다. 돈을 주고 티켓을 샀는데 티켓을 잃어버렸다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티켓을 새로 사서 그 뮤지컬을 봤다고 가정할 경우, 그날 밤 공연 관람에 얼마의 돈을 지출했는지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대부분은 잃어버린 티켓을 사는데 들어간 돈까지 포함해 200달러라고 답한다.
그런데 다른 설정을 해보자. 당신은 티켓을 예매하지 않았지만 극장에 갔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보니 분명 100달러 두장이 있어야 하는데 한 장 밖에 없다! 당신은 100달러만큼 더 가난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100달러가 남았기에 뮤지컬을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대부분은 티켓을 사려고 한다. 100달러 지폐를 잃어버린 것은 뮤지컬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때 뮤지컬 공연에 얼마를 지출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100달러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두 상황에 다르게 반응하지만,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 둘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어쨋거나 이 둘이 어떻게 큰 차이를 만들어낸걸까?
이 뮤지컬 구입이 기업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뮤지컬 관람 예산이 배정돼 있었고 티켓 구매에 그 예산을 다 썼다면, 다른 항목에서 뮤지컬 관람 예산을 끌어올 수는 없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티켓 대신 새로 티켓을 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돈이 그냥 지갑에서 빠져나와 없어졌다면 사람들은 그 돈이 어떤 특정 항목 예산에서 지출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뮤지컬 관람 예산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돈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뮤지컬 관람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이 심리적 회계의 논리는 상당히 논리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속기 쉬운 지출 계정
완벽하게 이성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출 관련 의사결정은 가상의 예산계정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 계정의 형태나 위치나 타이밍이 달라진다 해도 말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늘 이런 유형의 심리적 회계를 수행한다. 몇 가지 방식을 생각해보자.
-> 자기가 가진 돈의 일부를 낮은 금리의 보통예금 계좌에 넣어두고서 고금리가 적용되는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 전체는 심리적 회계의 거대한 사례이다. 이 도시의 관광 담당 공무원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심리적 회계를 충실히 수행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람들의 지출계정 분리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도록 “라스베이거스에서 생긴 일은 라스베이거스에 묻어두고 가라 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라는 마케팅 구호까지 만들어뒀다.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자기가 가진 모든 돈을 정신적인 라스베이거스 계정에 몰아넣는다. 도박에서 져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 돈을 라스베이거스 계정이라는 항목에 달아뒀으니 말이다.
[1] 개리 벨스기 Gary Belsky와 토마스 길로비치 Thomas Gilovich는 <행동경제학 교과서 Why Smart People make big money mistakes and how to correct them>에서 5달러로 룰렛 게임을 하는 사람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이 사람은 초반에 엄청나게 운이 좋아서 무려 3억 달러까지 번다. 그러나 한 차례 잘못된 배팅으로 모든 돈을 잃어버린다. 아내가 기다리는 호텔 객실로 돌아갔을 때 아내가 게임이 어땟느냐고 묻자 그는 5달러를 잃었다고 대답한다. 만일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면 분명 적어도 5달러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잃은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3억 달러를 잃었다는 느낌을 들지 않을 것이다. 그 5달러 만이 ‘내 돈’의 전부라고 느껴지는데, 그날 저녁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갖고 있던 돈이 5달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날 밤 모든 1달러를 “딴 돈”으로 범주화 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우리는 딴돈 3억 달러를 몽땅 잃는다 하더라도, 처음 갖고 있던 5달러만 잃은 것으로 느낄 것이다.
내가 쓰는 돈, 저축하는 돈 등 모두 ‘내 돈’이라는 동일한 우물에서 나온다. 이를 염두에 둔다면 방금 소개한 시나리오들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내 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사람들은 돈을 심리적 차원의 여러 범주에 할당하며, 이 범주화는 실행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 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한다.
심리적 회계라는 매우 특별한 문제
심리적 회계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돈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실체적인 모습과 인간이 지닌 인지 차원의 한계를 고려한다면, 오히려 유용한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심리적 회계가 현명하게 사용될 때 특히 더 그렇다.
우선 심리적 회계가 어째서 독특한지 살펴보자.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치자. 첫째, 완벽하게 이성적인 사람 이른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둘째, 인지적 한계가 있긴 해도 어느 정도 이성적인 사람. 이 사람은 충분한 시간과 정신적 역량만 주어지면 최고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셋째, 인지적인 한계가 있긴 해도 어느 정도 이성적인 동시에 감정도 지니고 있는 사람, 즉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사람.
완벽하게 이성적인 사람에게 심리적 회계는 명백하게 실수이다. 돈은 어차피 똑같은 돈이니 완벽하게 교환될 수 있어야 한다.
인지적인 한계가 있는 사람에게는 심리적 회계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가 실생활에서 온갖 정보를 유지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리적 회계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유용한 체험적 지침(즉, 지름길)을 제공해준다.
단순성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계정을 설정하고 구획하면, 지출을 할 때마다 기회비용 전체의 세계를 구석구석 헤집을 필요가 없다.
심리적 회계를 사용하면 예를 들어 커피와 저녁과 유흥이 들어가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예산과 그에 따른 기회비용만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유용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심리적 회계는 제 3의 인간 유형, 즉 감정과 스트레스와 짜증스러움과 마감시한 그리고 수많은 의무사항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인간을 우리에게 데려온다.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사람들이다.
특정 물품을 사고 싶을 때마다 선택의 이해득실을 생각해야 한다면 엄청난 고통에 짓눌릴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섭취 음식의 칼로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계산하라고 요구한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포기해버릴 수 있다.
우리 삶이 워낙 복잡하고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심리적 회계를 보다 유용하게 활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불쾌함을 털어내는 방법
돈을 범주화하면 돈을 대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지만, 우리는 돈을 범주화하는 명확한 방법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돈을 획득한 방식과 쓰는 방식, 그리고 쓸 때 느끼는 감정 등을 토대로 자신의 돈을 여러 개의 심리적 회계계정에 나눠두며, 이 각각의 계정은 제각기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돈을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벌었는가, 아니면 길에서 주운 복권이 당첨돼서 벌었는가에 따라 규칙이 달라진다.
[2] 사람들이 돈을 범주화하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발견이 있는데, 돈을 벌어들인 방식에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그 돈의 일부를 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기 돈을 바라볼 때의 느낌이 돈을 지출하는 방식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사람들이 돈을 각각의 지출계정으로 분산, 할당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숨어있는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그 돈에 대한 각자의 느낌, 즉 기분이다.
조너선 레바브 Jonathan Levav와 피트 맥그로 Pete McGraw는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돈을 획득하면 사람들이 이를 ‘세탁’하려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친척으로부터 돈을 상속받았다면 이 돈은 기분 좋게 느껴지고 금방이라도 이 돈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어떤 부의 원천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면 그 돈은 기분 나쁘게 느껴진다. 그래서 돈에 묻은 부정적 감정을 씻어내기 위해 가장 먼저 이 돈의 일부를 떼어내 기부와 같은 긍정적인 쪽에 지출한다. 이렇게 해서 그 돈이 깨끗하게 느껴지고, 그 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쓴다.
조너선과 피트는 이를 ‘감정적 회계 emotional accounting’라고 부른다. 감정적인 돈세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일에 사용함으로써 세탁할 수 있다.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돈과 연관된 나쁜 감정을 씻어주고, 따라서 나머지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
[3] 이런 유형의 감정적 돈세탁은 누가 봐도 이성적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장미는 이름이 장미가 아니어도 가격은 매한가지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돈을 관리할 때도 마치 개인적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기업의 회계부서 직원과 똑같이 행동한다.
악명 높은 에너지 기업 엔론 Enron을 기억하는가? 2000년대에 기업 사기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 회사는 회계 조작을 통해 내부자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줬다. 엔론의 직원들은 해외 계좌를 만들어 비용을 숨기고 허위 수익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분식 회계를 했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사기를 저질렀다.
얼마나 완벽하게 회계를 조작했던지 심지어 본인들조차도 자신들의 분식회계 논리가 진짜인 것처럼 믿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많은 부분 회계 부정 때문에 발생했다. 이들은 최상층에서부터 사기 음모를 꾸몄으며, 자기들에게 편리하고 수익이 높고 유리한 이런저런 파생상품 펀드를 내세워서 여러 계정의 위치나 순서를 이리저리 바꾸고 서로를 뒤섞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이와 비슷하게 회계 부정을 저지른다. 제 각각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면서 신용카드를 사용하고서는 그걸 금방 잊어버린다. 저금하려던 돈에서 일부를 빼서 쓴다.
우리 개인은 엔론 만큼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심리적 회계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감정, 이기심, 충동, 계획 부족, 단기적 사고, 자기기만, 외부 압력, 자기합리화, 혼란 그리고 탐욕 등으로 인해 우리는 쉽게 엇길로 나가고 만다. 이는 ‘돈과 관련된 10대 죄악’이라고 볼 수 있다. 치명적 죄는 아닐지언정 좋지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심리적 회계는 비록 비이성적이긴 하지만 기업 회계와 마찬가지로 잘만 활용하면 얼마든지 유용할 수 있다. 예산 범주들은 예산 계획을 세우고 지출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심리적 회계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여전히 회색지대가 많기 때문이다. 몇몇 기업이 ‘창의적인 회계’를 동원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듯 우리 역시 융통성 넘치는 지출 논리로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규칙을 바꿔서 잘못된 지출이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그럴듯한 핑계와 이야기를 꾸며낸다.
마크 트웨인 Mark Twain은 이런 창의적인 규칙 조작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시가를 하루에 한 대만 피우기로 마음먹었다.
[4] 그런데 그런 뒤 그는 점점 더 큰 시가를 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목발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커다란 시가’를 사서 하루에 하나씩 피웠다.
사회과학자들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이런 창의적인 회계 유형을 ‘융통성 있는 심리적 회계 malleable mental accounting’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출한 돈을 모호하게 분류하거나 제각기 다른 심리적 계정에 창의적으로 할당하면서 바로 이런 융통성을 발휘한다. 이런 식으로 융통성 있는 심리적 회계는 계정의 주인(자기 자신)을 속이는데 도움을 준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예산에 따르자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근사한 외식을 할 방법을 찾아낸다.
우리는 다양한 범주를 설정하고 사용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그 범주들을 규정하는 규칙까지도 바꾼다.
그리고 합리화할 수 있을 때마다 이런 허위의 규칙을 만들어내고 나쁜 선택인 줄 알면서도 그 선택을 한다.
그 규칙을 만든 사람이 자기고 게다가 그 규칙을 아는 사람도 자기뿐인 경우가 많으므로, 그걸 바꾸거나 아니면 아예 뒤집어버리기란 너무도 쉽다.
악화가 양화를 뒤좇는다
횡재를 했을 때(복권 당첨과 같이) 우리는 평소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보너스 계정의 좋은 기분이, 늘 긴장하며 사용하던 여러 계정으로 스며들어서 생각하지 않고서 이 돈을 쉽게 써버린다.
그리고 이런 지출을 특별한 지출이라고 합리화한다.
융통성 있는 심리적 회계 역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저축을 깨도록 유도한다. 긴급한 상황에서조차도 보건 항목의 지출을 유도한다. 또 완전히 새로운 예산 범주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도록 유도한다. 더 고약한 사실은, 이렇게 새로운 범주가 생성되고 나면 예전과 달리 한결 더 수월하게 이 범주에서 지출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창의적인 회계를 실행하는 방법은 또 있다. 바로 ‘통합 integration’이다. 두 개의 전혀 다른 지출이 있을 때 작은 지출을 큰 지출에 합쳐서 두 지출이 사실은 하나의 지출일 뿐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만 5,000달러짜리 자동차를 사면서 200달러짜리 CD 체인저를 옵션으로 추가 구입했을 때, 사람들은 이 200달러의 지출을 자동차 구입 지출에 합쳐서 생각한다.
우리는 또한 분류를 잘못해서 회계 부정을 저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일선물에 돈을 지출하고 싶지 않아 장장 네 시간에 들여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다고하자. 그런데 이때 들인 시간과 노력도 당연히 일정한 가치를 가진다. 아마 케이크를 만들면서 보낸 네 시간은 선물로 살 수 있었던 액자보다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정말 엄격하게 돈만 따져서 말하자면, 돈을 아끼려고 네 시간 동안 힘들게 수고한 것은 잘못된 의사결정이다. 이는 계정 분류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탐욕을 부리거나 어리석거나 천성적으로 악하지 않다. 뻔뻔하거나 무모해서 자신의 심리적 회계계정을 어기는 게 아니다.
[5] 하지만 우리는 규칙에 어긋나는 지출 관련 의사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규칙의 융통성을 이용한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속임수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거의 모든 지출을 손쉽게 합리화하기 위해서 창의성을 최대한 활용한다. 지난번에는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었으니까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콘 하나쯤은 사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시간은 늘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시도를 한다. 사실 심리적 회계에서 속임수를 쓰는 가장 공통적인 방법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거나 잘못 생각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것에 지불하는 시간과 이를 소비하는 시간 사이의 간극이 문제다.
돈 문제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여러 특성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어떤 지출항목을 집어넣는 심리적 계정 및 그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 또한 이때의 감정은 그 상품을 살 때부터 사용할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6] 엘다 샤퍼 Elder Shafir와 리처드 탈러는 와인을 연구하면서 사람들이 와인을 추가로 구입할 때 이를 ‘투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
몇 달 혹은 몇 년 뒤에 와인을 개봉해서 냄새를 맡을 때 그 소비는 공짜처럼 느껴진다. 그날 저녁에 마시는 멋진 와인에는 한 푼도 지출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그 와인을 바로 그날에 샀다면, 혹은 와인을 깨기라도 했다면, 그 와인에 지출된 돈은 오늘의 예산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구매 시점 그리고 구매와 소비 사이의 시간 간극에 따라 우리는 와인을 사는 데 들인 비용을 매우 다르게 생각한다.
타이밍은 지출과 관련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요소다. 돈을 버는 것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봉급 생활자들이라면 한 달 1,000달러씩 봉급을 더 받는 것과 연말에 1만 2,000달러를 보너스로 받는 것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할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전자가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매 달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1만 2,000달러를 한꺼번에 받는 것을 선택한다. 자기를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 특별한 것을 하는 데 큰 돈을 한거번에 쓰고 싶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봉급 생활에서 큰 돈을 모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돈을 다달이 받는다면 이 돈은 봉급이라는 범주에 묶일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 돈을 통상적인 지출에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보너스는 다달이 지급되는 봉급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돈은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죄의식이 들어서 선뜻 하지 못했던 것에 출될 수 있다.
‘공짜’라는 속임수
도시에 사는 사람은 교외에 사는 사람보다 자동차를 덜 탄다. 그러므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시 거주자들은 택시를 이용하고 이따금씩 교외에 있는 할인매장에 장을 보러 갈 때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편이 유리하다. 여기에 지출되는 비용이라고 해봐야 자동차를 소유할 때 들어가는 비용보다 훨씬 적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 자동차를 사용할 때마다 경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도시에 살며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은 택시나 렌터카를 이용할 때 드는 돈을 절약하는 기분과 더불어 그야말로 공짜 여행을 즐긴다는 느낌을 만끽한다.
휴가 때 머물 숙소를 확보해두려고 타임쉐어 제도를 이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당한 금액을 미리 낸 다음에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숙소를 사용할 권리를 획득하는 제도인데, 돈을 낼 때와는 달리 사용할 때는 공짜다! 하지만 진짜 공짜일리는 없고 비용이 이미 치러진 상태다. 객실을 사용할 때는 공짜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구매 시점과 실제 사용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외상이 필요한 이유
심리적 회계는 돈을 지출하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출해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각하도록 지시하기도 하고 반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나쁘지만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의 인지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때로는 심리적 회계 덕분에 유용한 지름길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돈 문제와 관련해서 질서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가치를 평가하는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느슨한 회계 규칙이 자주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비를 통한 즐거움과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하는 고통을 분리할 때 특히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