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2_돈에 대해 꼭 알아야 할 10가지
_가치 없이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려면
6. 고통을 회피하려는 습관
해피엔딩
– 어떤 경험의 끝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경험의 끝은 나중에 그 경험을 회상하거나 기억하거나 혹은 그 경험 자체를 평가할 때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1] 도널드 레델마이어 Donald Redelmeier와 조엘 카츠 Joel Katz 그리고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은 대장내시경 검사의 마지막 결말 부분이 전체 과정에 대한 피검자의 기억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실험했다.
연구자들은 한 무리의 피실험자들에게는 표준적인 방식으로, 다른 피실험집단에게는 마지막에 5분이 걸리는 과정을 추가했다. 추가된 과정은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고통은 덜했다. 의사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고통을 줄인 과정을 마지막으로 내시경 검사를 끝냈을 때 피검자들은 대장내시경 검사 전체의 과정의 고통이 덜하다고 평가했다. 총합으로 따지자면 표준적인 방식의 과정을 거친 피검자보다 오히려 고통이 컸음에도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지불의 고통이라는 용어의 뜻은 말 그대로다. 뭔가를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할 때 사람들은 심리적 고통을 경험한다.
[2] 이 현상은 드라젠 프렐렉 Drazen Prelec과 조지 로웬스타인 George Loewenstein이 <적자와 흑자 The Red and the Blacks: Mental Accounting of Savings and Debt>라는 논문에서 처음 제안했다.
지불의 고통이란 자기가 가진 돈을 포기한다는 생각을 할 때 우리가 느끼는 통증이다. 이 고통은 지출 자체가 아니라 지출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지출을 생각하면 할수록 고통은 그만큼 더 커진다. 그래서 지출을 떠올리며 그렇게 구입한 것을 소비할 때면 지불의 고통이 소비 전체 경험을 실제보다 덜 즐거운 것으로 느껴지도록 그 경험 전체를 진하게 물든인다.
최근에는 뇌영상과 자기공명영상 MRI을 이용한 여러 연구저작들이 돈을 지출하는 행위가 신체적인 고통을 처리하는 뇌 영역을 실제로 자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많은 돈을 지출할 때는 이러한 뇌 메커니즘이 더 강한 자극을 받는데, 고통을 유발하는 것은 단지 높은 가격만이 아니다.
[3] 가격도 물론 고통을 야기하지만, 어떤 것을 포기할 때도 사람들은 고통을 느낀다.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고통이 없을까?
고통을 느끼면 보통 처음에는 그 고통을 제거하려는 반응을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누그러뜨리고자 한다. 고통을 스스로 통제하길 원한다.
기불의 고통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지불의 고통을 회피하면 장기적으로는 더 큰 고통이 유발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보다 중요한 변수는 생각하지 않은 채, 고통이 동반되는 지출에서 고통이 동반되지 않는 지출로 도망을 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의 고통 회피에는 도움이 되지만 이 일로 인해서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 회피는 강력한 동기유발 요인이자 교활한 적이다. 고통 회피는 진정한 가치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은 물건의 가치가 아니라 구매 과정에서 본인이 경험하는 고통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허점투성이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다.
고통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알려주는 신호이다.
뜨거운 난로에 손을 덴 아기는 고통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그런 고통을 유발하는지 깨우친 후 뜨거운 난로에는 손을 대면 안된다는 것을 배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고통을 유발하는지 배우고 또 그것을 피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과연 어떨까? 우리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행동을 멈출까, 아니면 그 행동을 계속하려고 통증을 마비시킬까?
지불의 고통은 당연히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지출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옳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통의 종식 대신에 고통을 누그러뜨릴 여러 방법을 고안해낸다. 신용카드, 전자지갑, 자동이체 등을 사용하는 것은 ‘금융 헬멧’을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고통이라는 증상을 치료하긴 하지만 그 증상의 근본 원인인 지불을 치료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것이 지출과 관련하여 스스로 내리는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실수다.
지불의 고통은 다음 주 가지의 확실한 요인에 따른 결과이다. 하나는 돈이 자기 지갑에서 나가는 시점과 그렇게 구입하는 것을 소비하는 시점 사이의 시간적 간극이고, 또 하나는 지불 그 자체에 기울이는 주의력이다. 이렇게 해서 다음 공식이 성립한다. ‘지불의 고통 = 시간 + 주의력’
우리는 고통 생성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 돈을 지불하는 시각과 그렇게 산 물건을 소비하는 시각 사이의 간극을 넓히고, 지불에 요구되는 주의력을 줄인다. 즉, 시간의 문제이고 주의력의 문제이다.
예를들어, 패키지 여행으로 큰돈이 한꺼번에 지출되는 경우에 그 상황에서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패키지 여행을 즐기기 위해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쯤 지불의 고통은 이미 먼 과거의 일이 됐다. 때문에 패키지를 통한 경험과 즐거움과 음식은 공짜로만 느껴질 것이다. 비용 지불에 대한 의사결정은 이미 끝난 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행지에 머무는 동안 뭔가를 하고 싶을 때마다 돈을 지불해야하는 경우, 지불의 고통을 느껴야 했으며, 또 그 고통 때문에 즐거움이 줄어들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금액이라도 지불은 지불이고, 따라서 그때마다 고통이 동반된다.
때로는 화끈하게, 때로는 냉철하게
지불의 고통을 제거하면 돈을 보다 더 자유롭게 쓰고 소비를 더 많이 즐기게 된다. 반대로 지불의 고통을 늘리면 지출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져서 지출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지불의 고통을 늘리거나 줄여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진다.
평생 몇 번하지 않는 경험이 있다. 신혼여행도 이런 경험에 속한다. 이런 경험이라면 지불의 고통을 줄이고 마음껏 즐기는 것이 좋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불의 고통을 늘려야만 하는 범주가 분명히 있다.
요컨대, 어떤 순간에서든 거래를 하며 느끼는 지불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키울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런 통제력도 발휘하지 않은 채로 지불의 고통이 저 스스로 알아서 늘어나거나 줄어들도록 방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즐거움이 어느 정도인지 혹은 자신이 줄이려고 하는 지출이 어느 정도인지를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지불의 고통을 키우기도 하고 또 줄이기도 해야 한다.
시간은 째깍째깍 계속 흐른다, 내 지갑 속으로
지불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날 때 소비에 따르는 즐거움은 크게 감소한다. 이 두 행위가 시간상 떨어져 있을 때는 사람들이 지불에 그다지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지불 행위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그 결과 구입한 물건이나 경험을 그만큼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시간 유형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선불 유형과 소비할 때마다 지불하는 현장 지불 유형, 그리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후불 유형이다.
[4] 호세 실바 Jose Silva와 댄이 시간과 관련해서 했던 실험을 살펴보자.
연구자들은 심리 실험실에서 45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조건으로 피실험자인 대학생들에게 10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피실험자들로서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10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그들에게 특별한 선택권을 제시했다.
본인이 원한다면 일반적인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온라인 정보를 구매해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피실험자들이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정보의 범주는 세 가지였다.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카툰과 그 다음으로 선호하는 뉴스와 과학 관련 기사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장 적에 선호하는 포스트모던 문학에 대한 교양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피실험자들은 이 가운데 무엇이든 원하는 가격을 지불하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범주에 매겨진 가격이 제각기 달랐다. 카툰은 하나에 3센트였고 뉴스와 과학 기사는 하나에 0.5센트였으며 포스트모던 문학 관련 교양 기사는 무료였다. 그런 다음 피실험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는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기록했다.
덧붙여 연구자들은 피실험자들이 카툰이나 기사를 보는 대금의 지불 방법을 피실험자 집단별로 다르게 설정했다. 후불 집단에게는 실험이 모두 끝난 뒤 보수 10달러를 지급할 때 대금을 차금하고 주겠다고 했다. 선불 집단에게는 미리 10달러를 전자 지갑으로 지급하고 카툰이나 기사를 볼 때마다 지불하도록 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면 현금으로 환전하게 했다. 마지막 세 번째 집단은 소액결제 방식으로 대금을 지불하도록 했다. 이 집단에서 사람들은 지불하겠느냐는 질문에 “예”를 클릭하면 즉시 결제가 이뤄졌으며 잔액이 화면 상단에 나타났다.
이 실험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집단의 피실험자들이 동일한 콘텐츠를 볼 때는 동일한 가격을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모든 집단의 피실험자들은 그다지 많은 돈을 지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험 결과를 보면 집단별로 지출 규모에 차이가 상당히 크게 나타났다.
참가비를 미리 지급받은 선불 집단에서는 평균 18센트를 지출했다. 이에 비해 후불 집단은 평균 12센트를 지출했다. 이 사실을 놓고 보면 특정한 활동에 쓸 용도로 계정을 따로 마련해두면 지출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실험에서는 무려 50퍼센트나 더 많이 지출했다. 인상적인 효과는 소액결제 집단에서 나타났다. 이 집단에 속한 피실험자들은 지출을 할 때마다 그 지출을 할지 말지 강제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야 했는데, 이들은 평균 4센트 밖에 지출하지 않았다.
이 결과를 종합하면, 지불이 특별히 두드러질 때, 즉 후불 방식을 선불 방식으로 바꿀 때 우리의 지출 양상도 바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지불이 개별 항복별로 이뤄질 때 지출 양상이 극적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지불의 고통 때문에 선불 방식일 때는 보다 많이 지출하고 후불 방식일 때는 보다 적게 지출하며, 개별 항목을 살 때마다 지불하면 지출이 훨씬 줄어든다. 이처럼 지출의 타이밍은 매우 중요하다. 피실험자들로 하여금 그 재미없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공부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 실험의 피험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관련 내용을 읽는 것을 즐기지 않았고, 실험이 끝난 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읽으니 차라리 칠판을 못으로 긁는 소리를 듣는게 나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관련 내용을 공짜로 읽는 활동이 지불의 고통 총량은 가장 적게 만들었지만 소비의 고통 총량은 가장 많게 만들었음을 뜻한다.
피실험자들은 카툰보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소비하는 경험을 훨씬 적게 즐겼다. 그러나 피실험자들은 카툰 대금 지불의 고통을 회피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결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소비의 고통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소액결제 조건의 피실험자들도 4센트가 아니라 12센트를 지출할 수도 있었고, 45분 동안 진행된 그 실험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좋게 만들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불의 고통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선불
선불은 전체적으로 볼 때 더 많은 비용을 치뤘을 수도 있지만 그때 누린 기쁨도 훨씬 더 크다. 이런 양상을 사업가들은 놓치지 않았다. 선불 제도는 하나의 추세로 자리를 잡았다.
로스앤젤레스의 트루아 맥(Trois Mex)과 시카고의 알라니아(Alinea) 그리고 뉴욕의 아테라(Atera)같은 팬시 식당들은 이제 고객들에게 온라인으로 선불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새삼스러운 추세가 아니다.
어떤 것을 소비하기 전에 미리 그 대가를 지불하면 그것을 실제로 소비할 때는 거의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게 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고통 없는 거래이다.
아마존 닷컴은 프라임 회원제 제도를 운영하면서 배송비를 선불로 받고 있다. 프라임 회원제의 연회비는 99달러지만 1년 내내 무료배송을 보장해준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지면 완전히 무로는 아니다. 이미 99달러를 지불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1년 동안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배송과 관련된 대금을 지불하는 고통에 추가로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그때마다 우리는 배송비가 공짜라는 느낌을 받는다.
선불은 또한 기프트카드나 카지노 칩처럼 경험의 내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20달러의 현금을 스타벅스 카드로 바꾸고 나면, 이 20달러는 커피를 사는 데 지불된 돈으로 쓰임새가 고정된다. 이렇게 돈이 그 범주의 계정에 할당되고 나면, 우리는 지불이 이미 완료된 것처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기프트카드로 뭔가를 살 때는 자기 돈을 쓰지 않는 것이 되고, 따라서 죄의식도 느끼지 않는다. 기프트카드가 환기하는 감정은 현금을 지불할 때 느끼는 감정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말로 하면 너무도 뻔한 얘기 같지만 사람들은 모두 뭔가 소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소비에 대해 돈을 지불하기는 싫어한다.
[5] 그러나 드라젠 프렐렉과 조지 로웬스타인이 밝혀냈듯, 지불은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며 자신이 이미 대금을 지불한 것을 소비할 때는 기분이 상대적으로 더 좋아진다.
현불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안에 대금을 지불하는 현불 방식은 지불의 고통 및 가치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줄까?
어떤 것을 소비하는 동안에 대금을 지불하면 지불의 고통이 보다 예리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소비의 즐거움도 줄어든다.
소비와 지불이 같은 시간에 이뤄지면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업계의 사례가 있다 AOL이라는 작은 회사가 지불과 소비를 분리했는데,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자. AOL은 세계 최대의 미국 통신업체이다.
1996년에 AOL의 사장 밥 피트먼 Bob Pittman은 기존의 요금 체계를 19.95달러만 내면 무제한 접속을 허용하는 정액제의 단일 체계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AOL의 직원들은 요금체계의 변동으로 사용자들이 회사 서버에 연결하는 총 시간이 늘어날 것에 대비했다.
그글은 고객들의 사용 양상을 살펴본 뒤에, 새로운 요금체계 도입으로 전체 고객 중 아주 일부분만이 인터넷을 예전보다 더 많이 사용하고 대부분은 기존에 사용하던 만큼 사용하리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이런 추정을 통해 서버 용량을 아주 조금밖에 늘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용 총시간은 하룻밤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났다. 물론 AOL은 이런 사태에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온라인 서비스 업체들의 서버를 빌려야 했는데, 이 업체들로서는 약점이 잡힌 AOL을 상대로 마음껏 비싼 임대료를 물릴 수 있었으니 횡재를 한 셈이었다.
어째서 AOL에 있던 데이터 관련 도사들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만일 AOL의 해당 팀이 지불 및 지불의 고통과 관련된 심리적인 여러 측면을 면밀하게 살펴봤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던 기존 요금체계에서는 고객이 비용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할 것임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사실을 AOL 팀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요금체계에서는 즐거움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런 체계가 사라지는 순간 지불의 고통도 함께 사라졌다. 사람들은 보다 더, 훨씬 더 오랫동안 인터넷 접속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자 했고 그래서 AOL 고객의 전체 사용량이 하룻밤 사이에 두 배로 뛰어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지불의 고통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자신의 지출을 보다 예리하게 의식하게 만들어준다. 이와 관련해서 자동차 기름이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다.
자동차 기름을 넣을 때면 주유기에서 기름 값을 나타내는 수치가 빠르게 올라간다. 우리는 그걸 바라보며 지출을 의식하면서 지불의 고통을 느끼고 ‘연비 좋은 자동차를 사야하나’ ‘카풀 모임에 가입해야 하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집에서는 전기 사용량을 보여준 두꺼비집이 대개는 바깥에 있거나 보이지 않도록 숨겨져 있다. 또한 청구서에는 사용량이 그저 월 단위로 표시된다. 그리고 알아서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의 지출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정에서의 과도한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이는 3장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후불
미래에 이뤄지는 지불 방식이 고통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이해하려면, 사람들이 미래의 돈을 현재의 돈보다 낮은 가치로 평가한다는 사실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일 지금 당장 100달러를 갖는 것과 하루나 한 달 뒤, 1년 뒤에 100달러를 갖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 당장 갖는 쪽은 선택한다.
[6] 미래의 돈은 할인된 가치를 지닌다(미래소득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비이성적인 온갖 태도와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어떤 금액을 미래에 지불하겠다고 계획을 갖고 있을 때는 지금 당장 같은 금액을 지불할 때보다 고통이 덜하다. 그리고 미래의 시점이 멀수록 고통도 줄어든다.
“신용이 있는 사람에게 신용을”
이는 신용카드 업계에서 만들어낸 천재적으로 사악한 꼬드김이다. 신용카드는 소비하는 시간과 그것의 대금을 지불하는 시간을 분리하는 심리적 힘을 주되게 사용한다. 신용카드는 미리 소비하고 지불은 나중에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돈 문제와 관련해 시야를 흐리게 만들며 기회비용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지불의 고통도 줄여준다.
신용카드는 지불의 고통을 피하는 우리의 욕망을 이용한다. 신용카드는 지출이 보다 덜 두드러지게 하고 지불과 소비 사이의 시간을 벌려서, 어떤 것을 사고 돈을 지불할 때 느끼는 고통을 최소화한다. 신용카드는 보다 많이 지출하게 만드는 무심함을 만들어낸다.
[7] 엘리자베스 던 Elizabeth Dunn과 마이클 노튼 Michael Norton은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에서 이런 무심한은 구매 시점의 감정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지출을 했는지 기억하기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구매 경험 자체를 바꿔버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8] 많은 연구저작들이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보다 기꺼이 지출하고자 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보다 많은 금액의 구매를 하게 되고 보다 많은 팁을 주며 또 지출에 관한 의사결정을 보다 빨리 내린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더 나아가,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스티커, 결제기 같은 장치가 고객의 눈에 잘 띄게 하는 것만으로도 신용카드의 영향을 받는 행동이 촉발된다.
[9] 1986년에 있었던 한 연구는 신용카드 홍보용 사은품을 어떤 사람의 책상 위에 올려놓기만 해도 그 사람이 보다 많은 지출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용카드는 자신이 구매한 것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만든다. 즉, 현금 지불은 구매의 부정적인 측면과 돈이 자기 수중에서 떠나갈 때의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데 비해서, 신용카드는 구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유도한다.
[10]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디저트가 얼마나 맛있을까 혹은 어떤 것을 벽난로 위에 놓아두면 멋질까를 생각하지만, 현금 지출을 할 때는 똑같은 것이라고 그걸 먹으면 얼마나 살이찔까 혹은 어떻게 하면 벽난로를 없애버릴까 하고 생각한다.
동일한 가격의 동일한 제품임에도 지불 방식에 따라서, 얼마나 쉽게 지불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유발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평가된다는 말이다.
그녀는 돈을 쓰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신용카드는 시간상의 변환 뿐만 아니라 지불에 들어가는 주의력을 감소시키는 측면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보다 적은 주의력을 기울이고 보다 적은 고통을 느낄수록 우리는 어떤 것을 근거도 없이 평가한다.
신용카드는 현금을 점원에게 건네주고 다시 거스름돈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것 보다 훨씬 쉽다. 또한 신용카드는 한 달 동안의 총 구매내역을 한꺼번에 보여줌으로써 지불을 더 쉽게 만들고 고통은 덜 느끼게 만든다.
지출 금액을 하나로 합칠 때 나타나는 효과, 즉 고통을 줄이고 가치 평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효과를 유발하는 금융 도구는 신용카드만이 아니다. 금융계에서 자문하는 사람들은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명목의 수수료를 받아 돈벌이를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 1퍼센트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투자자가 돈을 벌 때, 투자자의 전체 자산 가운데 1퍼센트를 떼어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투자자는 그 1퍼센트를 구경조차 하지 못한다. 자기 계정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1퍼센트 지출에 대해 지불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제한된 사용처가 있다면?
기프트카드에 대해서 다시 얘기해보자. 같은 맥락의 지불수단(사용처가 제한된 지불수단)은 카지노 칩과 항공 마일리지가 있다. 이런 것들을 사용하면 고통이 놀라울 정도로 줄어든다. 이런 것들은 심리적 회계에 의해 이미 우리의 통상적인 가치단서와 분리돼 있다. 제한된 지불수단은 의사결정이라는 고통스러운 짐의 많은 부분을 제거해줌으로써 지불이 한결 쉽게 이뤄지게 한다.
현실에는 지불에 드는 노력이 소비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수도 없이 많다. 지불의 어려움이 가치를 평가하는 우리의 감각을 바꿔서는 안 되겠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엄연히 일어난다.
지불을 의식할 수 있는가?
아마존닷컴이 방어하고 나선 첫 번째 특허가 ‘원클릭’ 기술이라는 걸 알고 있는가? (이는 등록된지 18년 만인 17년 9월 12일에 만료됐다)
단 한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뭔가를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지출을 너무도 쉽게 만들어준다. 또한 이 과정에는 고통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이야말로 아마존닷컴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지패스 기술은 통행료를 자동적으로 부과하는데, 이때 부과된 통행료가 얼마인지 사람들은 월말에 고지서를 받아보고서야 안다. 그것도 궅이 확인하려고 따로 노력을 기울여야만 알 수 있다.
나중에는 홍채 스캔으로도 지불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발전’이 지불을 한결 간편하게 만들어준다는 건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는 어떤 저항이나 마찰, 고통도 없다. 생각도 없다.
현금 지불은 그 자체에 지불이 부각되어 쉽게 인식되는 ‘두드러짐’이 내장돼 있다. 돈을 보고 느끼며 세어서 넘겨주고 또 거스름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좌수펴는 현금보다는 덜 두드러지지만 본인이 직접 금액을 적고 나서 상대방에게 건네야 하므로 두드러짐 수준이 상당히 높다. 앞서 살펴보듯 신용카드는 두드러짐이 훨씬 덜하다.
어떤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손쉽고 고통 없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다. 현명하고 사려 깊은 것보다는 손쉽고 고통 없는 것을 선택하려 한다. 언제나 그렇다.
지불의 고통은 죄의식을 느끼게 하고 또한 충동구매를 막아주기도 한다. 미래에는 지불 과정에서 거의 모든 마찰(저항)이 제거될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면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결과는 어떨까? 장기적인 차원의 건강이나 저축률에는 당연히 해로울 것이다.
공짜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바보들
공짜는 이상한 가격이다. 그렇다 공짜고 가격은 가격이다. 어떤 것이 공짜일 때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는 비용 – 편익 분석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즉, 공짜가 아닌 것은 물리치고 공짜를 선택하는데 실제로는 공짜가 언제나 최고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두 개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하나는 12퍼센트 연이율이 적용되지만 연회비가 없고, 다른 하나는 연이율이 8퍼센트밖에 되지 않지만 연회비가 100달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연회비를 지나치게 크게 평가하기 때문에 연회비를 받지 않는 연이율 12퍼센트짜리 신용카드를 선택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연체를 하거나 잔고부족이 이어질 때가 있기 때문에 이 카드가 더 비싸게 먹힌다.
공짜는 처음에 공짜로 제공되던 것을 나중에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하기는 매우 어렵게 한다. 이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자. 지불의 고통이 0일 때 흔히 사람들은 지나치게 흥분한다.그리고 공짜라는 그 가격이 익숙해진다.
노래를 찾아주는 무료 앱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든 무료 앱을 사용하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앱이 사용하려 할 때마다 팝업창을 띄우고는 이 앱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려면 딱 한번 99센트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고 해보자.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공짜에서 1달러로의 가격 변화는 사람들의 태도를 엄청나게 바꿔놓는다. 여태까지 공짜로 사용해온 것에 1달러를 대가로 지불하기를 사람들은 망설인다. 라테 한 잔을 마시는 데 하루에 4달러씩 쓰는 건 전혀 망설이지 않으면서도 지금까지 공짜로 쓰던 앱에 1달러를 쓰는 것은 망설인다고? 정말 말이 안되는 심리다.
지불의 고통을 쪼개는 방법
[11] 여러사람이 함께 어떤 음식을 소비하는 자리에서 그 비용을 똑같이 나눠서 내게 될 것임을 모두 알고 있을 때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씀씀이가 커지는데, 유리 그니지 Uri Gneezy, 에르난 하루비 Ernan Haruvy, 하다스 야페 Hadas Yafe는 이런 사실을 비싼 와인을 동원한 실험을 통해서 입증했다.
비용이 공평하게 나눠질 때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주문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 최상의 지불 방법은 모든 사람이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계산하게 한다고 처음부터 공표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가장 즐거움을 많이 누릴 수 있는 선택일까? 고통에서 가장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선택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신용카드를 모아놓고 점원이 그 중 하나를 뽑아 계산하게 하는 신용카드 룰렛을 왜 좋아할까? 만일 모두가 각자 자기 몫의 비용만 부담한다면 제각각 어느 정도씩 지불의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 그에 비해 한 사람이 전체 비용을 부담하면 그 사람에게는 지불의 고통이 크겠지만, 다른 모든 사람에게 면제된 고통의 합보다는 이 고통이 적다.
지불의 고통의 강도는 지불하는 금액에 비례하지 않는다. 함께 식사한 세 사람의 몫까지 계산한다고 해서 지불의 고통이 4배 늘어나지는 않는다.
신용카드 룰렛의 가장 큰 미덕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고통 없이’ 식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팀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스포츠 정신의 고전적인 사례인데, 여기에서 ‘팀’은 친구들이고 ‘희생’은 식사비를 혼자서 계산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재정적인 차원에서 개인에게 효율적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식사비는 경우에 따라 많을수도, 적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하는 자리의 비용을 돌아가면서 한 사람이 맡아서 낼 때 누군가는 조금 적게, 누군가는 조금 많게 낸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지불의 고통을 상대적으로 적게 느끼고 상대적으로 많은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방식을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사실은 지불의 고통이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지불의 힘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면 개인의 재정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