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성_CHAPTER 3 :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기
로리와 레바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뿐 실제로는 그들이 잘 모르고 있다고 의심한다. 그러나 행복하다는 사람의 말을 의심하기 전에 과연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모를 수 있는지 또한 그런 일이 이론적으로나마 가능한지를 먼저 짚어보아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 경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가 느끼지 않는 것을 느끼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1. 감정에 대한 우리의 무지
우리 주변에 보는 있는 어떤 대상을 보기 위해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한번 짐작해보라. 빛이 눈에 도달하는 시간과 최종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의 아주 짧은 간격 동안, 우리의 뇌는 그 물체의 특징을 추출하고 분석해서 기억속에 있는 정보와 비교한다. 이는 실로 복잡한 일이며 어떤 과학자고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그 어떤 컴퓨터도 이 방법을 흉내 낼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상상도 못할 속도와 정확성으로 이 복잡한 작업을 실행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 먼저 설계되고 덜 중요한 기능은 수십만년의 세월을 거치며 서서히 추가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뇌 밑바닥에 깔려있고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위, 예를 들면 기질을 통제하는 부위는 마치 콘 위에 얹어놓은 아이스크림처럼 뇌 윗부분에 놓여있다. 오소리인지 개인이 파악하는 일보다 도망치는 것이 포유동물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수단이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우선 어떤 물체가 중요한지 아닌지 결정을 내리고 그 다음에 그 물체가 무엇인지 결정한다. 즉, 당신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 당신의 뇌는 오소리라는 것을 알지 못해도, 무시무시한 것을 보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연구에따르면 정체를 규명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대략적인 정보만을 가지고도 사람들은 그 물체가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인식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뇌가 두려운 것을 만났다고 판단하면, 체내의 호르몬선에서 높은 생리적 각성 상태를 일으키는 호르몬을 생산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따라 우리는 행동을 개시할 준비를 하게 된다. 뇌가 충분한 분석을 거쳐 그 물체가 오소리라는 사실ㅇㄹ 알아차피리도 전에 이미 우리 몸은 도망갈 사전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생리적으로 흥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우리의 정서 상태를 정확히 모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2. 실제 경험하는 감정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생리적 각성도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그 각성을 유발했다고 믿는 것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공포를 욕정으로, 염려를 죄책감으로, 수치심을 불안으로 오해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감정 경험을 무엇으로 부를지 모른다고 해서, 그 경험 자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은 아니다. 그 경험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그리고 무엇이 그것을 유발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항상 알고있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
우리의 시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우리의 자각은 뇌의 서로 다른 영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뇌손상은 이 시각 경험과 그 경험의 자각 중 하나만을 손상시킴으로써 평소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험과 자각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사람들의 뇌를 촬영해보면 뇌 부위의 활동이 감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자극을 보지 못했다는 그들의 말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뇌 촬영 결과가 보여주는 또 다른 사실은, 시각과 관련된 뇌 영역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활동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벽에 한 점의 빛을 비추고 맹인에게 보았느냐고 물으면 못보았다고 하지만 어디에 빛이 있는지 추측하라 하면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정확하게 추측해낸다. 본다라는 말이 빛을 경험하ㅗ 그 정보를 얻는 것을 뜻한다면, 그는 지금 보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자신이 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을 뜨한다면 그는 보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자각과 경험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가 감정의 측면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리하게 기분과 감정을 인식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괜찮아, 별로 안좋아 같은 정도의 표현만으로 자신의 감정세계를 충분히 표현한다.
결론적으로 행복, 슬픔, 지루함 혹은 호기심 같은 감정을 실제로는 경험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3. 행복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대부분의 과학하자 동의하는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측정이 불가능한 현상은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혹자는 측정을 통해 수량화할 수 없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과학이 밝힌 그 어느 것보다 값지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적 탐구의 대상은 반드시 측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한 개인의 행복을 측정하고 그 값의 신뢰도와 타당도를 확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거나 어떻게 느꼇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설사 그 느낌을 다 알고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그들의 경험과 그 경험의 묘사가 서로 얼마나 일치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주관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제대로 측정하기
목공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전제가 있다. 그것은 완벽하지 못한 연장은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로 못을 박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이다. 주관적 경험은 그 특성산 완벽한 행복 측정기, 즉 조금의 오차도 없이 사람의 행복을 재고 기록하고 또한 그 값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 가능하도록 해주는 도구를 만드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관찰과 측정이 지닌 어느 정도의 모호함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두 번째 전제는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주관적 경험의 측정치 가운데 가장 결험이 적은 것은 한 개인이 주의를 기울여 제공하는 실시간 보고라는 점이다. 물론 행복을 측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중 어떤 방법은 행복을 느끼는 당사자의 말보다 더 정밀하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근전도 검사 같은 것.
실시간 자기 보고에 의존하는 과학자들은 종종 이러한 보고가 위의 생리적 측정치와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이것은 앞뒤가 뒤바뀐 논리다. 왜냐하면 근육 움직임에서 피질 혈류에 이르기 까지 여러 증상들을 행복의 지표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바로 그러한 경험을 할 때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자들은 광대뼈 근육이 수축하고 눈을 더 천천히 깜빡이며 좌측 전뇌 영역이 혈액으로 가득 차는 현상을 행복의 신체적 증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 보고하는 사람의 말에 당황할 수도 있고 신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미심쩍어도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는 사람은 오직 당사자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물린 자기 보고를 통해 우리가 그 사람의 내면 세계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찰자인 우리 입장에서는 자기 보고가 그의 내면세계에 가장 근접하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에 만족해야 한다.
– 여러번 측정
세 번째 전제는 측정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주관적 경험에 대한 자기 보고에 존재하는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 해답은 통계작자들이 다수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다수의 마법이 주관적 경험을 측정할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해줄 수 있다. 동전 던지기 횟수가 많아 진다면 앞면이 나올 확률이 뒷면의 확률 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가? 직관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확률이다. 동일한 논리가 주관적인 경험의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이 신경 써서 제공하는 자기 보고가 그들의 내면 경험을 나타내주는 불완전한 근사치라 할지라도, 그것이 무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부다. 따라서 확실한 것을 원한다면 다수의 법칙에 의거하여 불완전함이 상쇄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측정하면 된다.
4. 맺음말
우리가 무언가 좋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을 위해 좋은지를 말해야 한다. 인류가 좋다고 평가하는 많은 사물과 경험을 모두 가져다놓고 과연 그것이 무엇을 위해 좋은 것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오직 한 가지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데 좋은 것들이다. 느낌은 중요하기 때문에 느낌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과학자들이 바라는 만큼 정확하게 느낌을 측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기 개발한 방법론적, 개념적 도구가 한 사람의 느낌을 완벽하게 측정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그것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반복해서 측정해 완벽성을 높일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