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_프레임에 관한 프레임
1.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 프레임
프레임은 한마디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다. 바라보는 관점, 마인드셋(mindset), 은유, 고정관념 모두 프레임의 범주에 포함되는 말이다.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2. 핑크대왕 퍼시
서양 동화 – 퍼시는 핑크색을 광적으로 좋아해 세상의 모든 것을 핑크로 바꾸려했으나 바꾸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하늘이었다. 핑크 대왕은 자신의 스승에게 방법을 찾아내도록 했으며 마침내 스승은 핑크빛 렌즈를 끼운 안경을 만들었다. 핑크 대왕은 그날 이후 매일 핑크 안경을 끼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백성들은 더 이상 핑크색 옷을 입지 않아도 되었다.
[1] 핑크 안경을 낀 대왕의 눈에는 세상은 언제나 핑크였다.
우리도 각자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핑크대왕 퍼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3/ 프레임의 역할
[2] 프레임에 대한 철학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람의 지각과 생각은 항상 어떤 맥락, 어떤 관점 혹은 일련의 평가 기준이나 가정 하에서 일어난다. 그러한 맥락, 관점, 평가 기준, 가정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위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프레임이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다시 철학 사전을 들여다보자.
“프레임은 우리가 지각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선택적으로 제약하고, 궁극적으로는 지각과 생각의 결과를 결정한다.”
프레임은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 판단하는지, 행동하는지의 과정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결국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프레임에 대한 철학적 정의를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레임이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4. 프레임은 맥락이다
프레임의 가장 빈번한 형태는 맥락으로 나타난다. 일명 ‘악마의 편집’은 맥락이 얼마나 강력하게 프레임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다수를 위해서는 때로 소수가 희생될 수 있다.” 이 주장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맥락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맥락이 제공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쉬워진다.
[3]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의 맥락에서 이 질문을 살펴보자.
트롤리 딜레마 : 트롤리의 방향을 바꾸면 한명의 인부만 죽고, 왼쪽 선로의 다섯 명은 살게 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연구에 의하면 다수가 기차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선택한다. 어느 쪽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맥락을 바꿔보자. 스위치가 아닌 육교 위에서 당신이 남자를 밀면 트롤리가 그 남자를 치면서 멈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섯 명의 인부는 살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이 경우에는 소수만이 다리 위의 남자를 희생시키겠다고 선택한다. 아무리 다수를 위한다고 해도 소수를 희생시키는 일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 후의 선택 차이는 프레임, 즉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판단을 내리기란 어렵고, 맥락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의견의 일치를 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5. 프레임은 정의(definition)다
프레임은 대상에 대한 정의다. 따라서 프레임을 바꾼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정의를 바꾼다는 의미다.
[4] 한 연구에서 초콜릿의 맛을 평가하는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한 번에 초콜릿 하나씩을 주면서 “자, 이번에 먹을 초콜릿입니다”라고 말했다. 초콜릿을 먹은 다음에는 각 초콜릿의 맛을 평가하도록 했다.
네 번째 초콜릿까지 먹고 평가를 마친 뒤,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자, 이번에 먹을 초콜릿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시 초콜릿을 주었다. 반면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자, 이제 마지막 초콜릿입니다”라며 초콜릿을 제공했다.
실험 결과,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은 참가자들이 다섯 번째 초콜릿을 평가할 때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가장 마음에 드는 초콜릿 또한 마지막 초콜릿이라고 한 집단에서는 64%가 다섯 번째 초콜릿을 선택했지만, 알지 못한 집단에서는 22%만이 다섯 번째 초콜릿을 선택했다.
똑같은 초콜릿이지만 ‘마지막 초콜릿’이라고 정의하면 맛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까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노인의 행복도가 젊은이의 행복도보다 결코 낮지 않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바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시간에 대한 프레임(“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이 그들의 행복을 극대화시켜주기 때문이다.
6. 프레임은 단어다
대상에 대한 정의가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프레임은 정의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프레임은 단어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어 사용은 단순한 어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프레임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다.
미국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 역할을 했던 프랭크 런츠(Frank Luntz)는 ‘보수 진영이 쓰지 말아야 할 14개의 단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5] 런츠는 어떤 단어들이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진보적 프레임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프레임과 단어의 관계를 실감해보기 위해 그중 하나만 살펴보기로 하자.
런츠는 보수 진영에 ‘undocumented workers’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권한다. 런츠에 따르면, 이 말에는 ‘노동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들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진보적 시각을 자연스럽게 유발한다. 대신 ‘illegal alien(불법체류자)’라는 말을 쓰라고 제안한다. 불법체류자라는 단어를 쓰면 국경을 몰래 넘거나 배 밑에 숨어 플로리다 해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국경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 것이 런츠의 주장이다.
프레임 싸움은 ‘단어 싸움’이다.
–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연설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연설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둘 중 어떤 질문을 던져야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연설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올까?
[6] 연구에 따르면, 답은 두 번째 질문이다.
‘금지’는 매우 강한 단어다. 따라서 금지해야하는지 무르면 ‘아무리 그래도 금지까지야..’ 하며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프레임을 유도한 결과다.
미 국방부의 원래 이름은 ‘Department of War’였지만 지금은 ‘Department of Defense’이다.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평화적인 노력을 하는 부서하는 설명을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방어하는 부서로 이름을 바꾸자 큰 노력 없이도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빈곤 국가가 개발도상국으로, 사망보험에서 생명보험으로 바뀐 것도 같은 사례다.
얼핏 보면 말장난 같고 탁상공론인 것 같지만, 프레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단어가 곧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7. 프레임은 질문이다
프레임이 질문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질문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순서 역시 이에 못지않다.
다음 소개 연구는 프레임과 질문 사이의 깊은 관련성을 잘 보여준다.
[7] 연구자들은 행복에 미치는 데이트의 중요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두 가지 질문을 미혼자들에게 던졌다.
A질문지
– 당신은 요즘 얼마나 행복하신가요?
– 당신은 지난달에 데이트를 몇 번 했나요?
=> 분석 결과, 데이트 횟수와 행복 사이에는 약 0.1 정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B질문지
– 당신은 지난달에 데이트를 몇 번 했나요?
– 당신은 요즘 얼마나 행복하신가요?
=> 순서를 바꾸었더니 행복과 데이트 사이의 상관관계가 0.6으로 높게 나타났다.
질문의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앞의 질문이 뒤에 나오는 질문을 해석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A의 경우 첫 질문에 자신이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해서 지난달 데이트 횟수를 왜곡할 수는 없다. B의 경우 지난달에 데이트를 많이 했다고 답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데이트 프레임’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추가로 보여준다. 바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판단하기 직전에 던진 질문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주된 프레임이 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직전에 던지는 질문은 평소에 자주 던지는 질문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평소에 자신이 자주 던지는 질문을 점검해야 한다.
‘프레임 = 질문’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 투표다. 서울시에서 공개한 주민 투표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A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다. ( )
B 소득 하위 50퍼센트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 무상급식을 시행한다. ( )
찬성/반대로 치면 A가 찬성에, B가 반대에 해당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찬/반 대신 ‘전면 무상급식 vs 단계적 무상급식’ 질문은 사용했을까?
대개 사람들은 어떤 이슈이든 ‘전면적’ 보다는 ‘단계적’이라는 말에 안심한다. 급격한 변화에 대해 본능적으로 불안과 불확실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찬/반 보다는 전면적/단계적으로 물었을 때 단계적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뒤늦게 눈치 챈 야당, 시민단체, 서울시 교육청은 이 질문지를 “꼼수”라고 비난했지만, 실은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려는 서울시의 고도의 프레임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8. 프레임은 은유(metaphor)다
은유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은유 : 전달할 수 없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유사한 특성을 가진 다른 사물이나 관념을 써서 표현하는 어법
은유는 크게 보면 비유에 속하므로 비유의 뜻을 보면 은유가 프레임으로 작동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비유 :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경우 비유를 들어 설명하거나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 도구로 사용하는 비유가 사람들이 그 실체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인생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이생에 대해 갖고 있는 비유가 다른 경우가 많다
개인이나 조직이 어떤 은유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들의 프레임을 알 수 있다. 학생과 교수의 관계에 대한 비유 중에 우리 사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다. 스승을 왕과 아버지에 비유하는 것이다. 이 비유 때문에 어느 문화권에서보다도 우리나라에서는 스승이 존경받는다. 그러나 이 비유 때문에 학생들이 교사, 교수의 권위에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침묵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교육은 한국 사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왔으나 오늘날 창의성 부재라는 난제에 봉착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사제지간에 대한 한국적 비유에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 가정, 조직, 국가에는 나름의 은유가 작동한다. 강력한 은유는 우리가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프레임을 바꾸고 싶다면 그런 은유를 찾아내서 바꾸어야 한다.
9. 프레임은 순서다
프레임은 뜻밖의 형태로도 작동한다. 바로 ‘경험의 순서’다.
일상에서 순서에 대한 고민은 자주 일어난다. 발표 순서를 먼저 할 것인가, 나중에 할 것인가, 누구 다음에 할 것인가 등은 누구나 하는 고민이다. 우리는 왜 이런 고민을 할까?
그 이유는 앞에서 한 경험이 뒤에서 하게 될 경험을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8] 카너먼은 수면 내시경이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 내시경 검사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내시경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실시간으로 보고하게 하였다. 고통의 정도를 나타내는 다이얼을 손에 쥐고 있다가 고통이 심해지거나 약해지면 좌우로 다이얼을 돌리게 했다. 다음은 참여한 두 사람의 실시간 고통 그래프다.
검사 동안의 경험한 고통의 총량은 A 환자보다 B 환자에게서 압도적으로 많았다. (A환자는 9분 만에 끝났지만 B 환자는 25분이 지나서야 끝났다.) 검사를 마친 후 검사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하게 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전반적 평가에 있어서 B 환자가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연구팀은 인간의 정서적 경험에 대해 놀라운 비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고통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A 환자는 고통을 경험한 그 순간 검사가 종료되었다. 반면 B 환자는 조금씩 고통이 줄어든 후에 천천히 검사가 종료되었다.
앞에서 지적한 순서 프레임의 우너리를 생각해보면 B 환자는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고통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하루를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다면 경험의 순서를 현명하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만일 좋은 일과 안 좋은 일 중 무엇을 먼저 경험하겠는지 묻는다면 대체로 안 좋은 일을 먼저 경험하는 것이 낫다. 안 좋은 일 다음의 좋은 일 경험은 더 달콤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앞서 경험한 안 좋은 일을 긍정적으로 재해석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일을 먼저 경험하고 그 즐거움을 이용해 이후의 고통을 이겨내려는 노력도 효과가 있다.)
10. TV가 프레임이다
인간에게는 유독 큰 전전두엽이 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그럴듯한 설명이 있다. 하나는 정교하고 복잡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인간의 뇌가 커졌다는 것이 첫 번째 설명이다. 또 다른 설명은 인간이 수많은 멘탈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서 큰 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이런 선택의 홍수 속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한 방법은 모든 대안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다. 이는 비현실적이며 인간에게는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모든 시뮬레이션을 담당하기 위해서 큰 뇌가 필요하다는 것이 두 번째 설명이다.
TV는 현대인의 멘탈 시뮬레이션을 도와준다. TV는 시뮬레이션을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보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TV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TV로 인해 생긴 프레임 때문에 세상을 보는 시각에서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보인다.
– 첫째,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세상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둘째, TV를 많이 보는 사람은 사람들을 덜 신뢰한다.
– 셋째, TV를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세상에 대해 음모론적인 시각을 갖기 쉽다.
– 넷째, TV를 많이 보는 사람일수록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강하다.
TV 뿐만 아니라 모든 매체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프레임 역할을 한다.
11. 프레임은 욕망이다
욕망은 프레임의 강력한 원천이다. 심리학적으로 풀어 쓰면 ‘욕망이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보게 하는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심리학계에서 논란이 됐던 연구 하나는 프레임으로서의 욕망의 힘을 잘 보여준다.
[9] 하버드대에서 진행된 이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열 살 된 아이들 30명에게 여러 가지 동전을 보여주고 동전과 크기가 같은 원을 그려보게 했다.
절반은 부유한 집, 절반은 가난한 집 아이들이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돈이 더 귀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난한 집 아이들이 돈에 대한 욕망이 더 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보통 중요한 것과 큰 것을 동일시한다. ‘거물’ ‘큰 이슈’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수긍될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돈이 중요하기 때문에 동전의 크기를 실제보다 더 크게 그릴까? 놀랍게도 답은 ‘그렇다’였다.
우선 집단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실제보다 큰 원을 그렸다. 돈은 어떤 아이에게나 중요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결과는 가난한 아이들이 더 크게 그렸다는 점이다.
[10] 이 실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구가 최근에 수행되었다.
참여자들에게 컴퓨터 화면에 숫자가 나오면 오렌지 주스를, 글자가 나오면 건강에는 좋지만 향은 좋지 않은 건강 주스를 마시게 된다고 알려주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반대 상황이 주어졌다.
실험에서 사용된 자극은 다음과 같다. 13 -> 숫자 혹은 글자(B)로 보일 수 있는 애매한 자극이었다. 결과는 숫자가 나와야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으면 숫자를 보고하였고 반대인 경우 글자를 보고하였다. 우리 눈에는 보고 싶은 것이 보인다. 욕망은 아주 강력한 프레임이다.
[11]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32명의 여대생을 대상으로 미국의 식품산업 전반에 대한 의견 조사를 했다.
TV에 등장하는 음식 광고가 10년 전보다 줄었는지, 아니면 늘었는지를 비롯하여 여러 질문을 던졌다. 모든 조사가 끝난 후 참가한 여대생들은 다이어트 여주에 대해 질문했다. 식사량에 신경을 쓰는지, 지방이 많은 음식은 피하려 노력하는지 등.
분석 결과, 현재 다이어트에 신경 쓰고 있는 여대생들이 Tv의 식품 광고가 늘었다고 보고했다. 다이어트를 하는 여대생들은 음식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프레임은 고정관념이다
[12] 아버지와 아들이 야구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의 시동이 기차선로 위에서 갑자기 꺼졌다. 달려오는 기차를 보며 아버지는 시동을 걸려고 황급히 자동차 키를 돌렸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기차는 차를 그대로 들이받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아들은 크게 다쳐 응급실로 옮겨졌다. 수술을 하기 위해 급히 달려온 외과 의사가 차트를 보더니 ‘난 이 응급환자를 수술할 수 없어. 얘는 내 아들이야!’ 라며 절규하는 것이 아닌가?
상황이 이해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의사가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읽어보라.
당신이 시나리오를 조금이라도 의아하게 생각했다면 그 이유는 당신이 ‘외과 의사 = 남자’라는 전통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 고정관념의 프레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곧바로 그 의사가 엄마임을 짐작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고정관념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인종, 성, 나이, 국가, 사회적 지위, 옷차림, 외모, 학력 등이 만들어 내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고정관념이라는 폭력적인 프레임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타인과 만나는 일은 일생을 걸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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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을 나가며
프레임은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우리의 가정, 전제, 기준, 고정관념, 은유, 단어, 질문, 경험의 순서, 맥락 등이 프레임의 대표적인 형태다. 사람들은 흔히 프레임을 ‘마음가짐’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프레임을 갖추기 위해서는 좋은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프레임은 결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설계’의 대상이다. 프레임 개선 작업은 나의 언어와 은유, 가정과 전제, 단어와 질문, 경험과 맥락 등을 점검한 후에 더 나은 것으로 설계하고 시공하는 작업을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