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4_자기 프레임, 세상의 중심은 나
1. 자기중심성
[1] 미국 코넬 대학교의 스턴버그 교수는 어리석음의 첫 번째 조건으로 ‘자기중심성’을 꼽는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아주 재치 있게 보여주는 실험이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수행되었다.
이 실험은 대학생 두 명을 한 조로 묶고 한 명에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려서 어떤 노래를 연주하게 하고, 다른 한명에게는 노래 제목을 알아맞히게 하는 실험이었다. 이때 오로지 손가락 연주만으로 노랫가락을 표현하게 했다.
연주자의 기대치와 청중의 정확도는 얼마나 맞아떨어질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주자들은 청중이 자신의 손가락 연주를 듣고 맞출 확률을 최소한 50%는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청중이 제목을 맞춘 비율은 2.5%에 불과했다.
연주자는 손가락을 두드리면 자신이 연주하게 될 가락이 귓가에 들려올 것이다. 그러나 청중은 손가락을 두드리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감흥을 느낄 수 없다. 그런데도 연주자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경험했던 그 환상적인 연주가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자기라는 프레임에 갇힌 우리는 우리의 의사 전달이 항상 정확하고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프레임에서 보자면 애매하기 일쑤다.
우리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라며 상대방을 추궁하지만, 실상 개떡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들릴 수밖에 없다.
2. 나의 선택이 보편적이라고 믿는 이유
나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내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현실 사이에는 어떤 왜곡도 없다고 믿는 경향을 철학과 심리학에서는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고 한다. 소박한 실재론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선택한 것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다.
[2]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리 로스(Lee Ross) 교수 연구팀이 1970년대 말에 수행했던 실험 내용이다.
연구팀은 실험실에 모인 대학생들에게 ‘회개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캠퍼스를 돌면서 학생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 과제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물론 원하지 않으면 다른 과제로 대체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어떤 학생은 동의했고, 어떤 학생은 거절했다. 참여의사를 밝히고 나면 각 학생들에게 본교 학생 중 몇 %가 이 요구에 YES, NO라고 답할지 추정하게 했다.
분석 결과, 하겠다는 학생들은 스탠퍼드 학생의 64%가 자기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거절한 학생들은 불과 23%만이 그 요구에 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연구 결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늘 보편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양쪽 학생들 모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정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도 자신처럼 상황을 해석하리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자기중심적 프레임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고 하는데 자신의 의견이나 선호, 신념, 행동이 실제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착각하는 자기중심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이 세상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3. 이미지 투사
[3] 자기중심적인 프레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타인에게 투사하는 버릇이 있다.
심리학자 레비츠키(Paul Lewicki)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을 능력 차원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도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에 자신을 정의하는 데 있어 ‘따뜻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타인을 평가할 때도 동일한 차원에서 본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평가나 내용을 보면,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보다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많이 드러낸다. 그러니 자기 주변에 남을 헐뜯는 사람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주변 사람이 실제로 남을 헐뜯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남의 허물을 습관적으로 들춰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옛말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셈이다.
4. 뇌 속의 자기 센터
세상의 줄심에 자기가 있다면 우리 뇌에도 ‘자기’와 관련된 정보만을 취급하는 특별한 영역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4] 놀랍게도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자기’와 연관 짓는 작업을 할 때는 뇌의 영역 중 내전전두피질이라는 부위가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단어라도 그 단어의 의미를 다른 사람과 연관지어 생각하거나, 혹은 그 단어의 의미가 아닌 물리적 속성으로 생각해볼 때는 내전전두피질 부위가 강하게 활동하지 않는다. 오직 그 단어가 자기 자신을 기술하는지를 생각할 때만 그 부분이 활성화된다는 점은 그 영역이 일종의 ‘자기 센터’임을 암시한다. 우리의 뇌 속에서도 ‘자기’는 글자 그대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5. 마음의 CCTV, 조명 효과
출근 할 때마다 직장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오늘은 또 뭘 입고 나가지?’ 이다. 옷장 안에는 옷들로 꽉 차 있지만 막상 입고 나갈 옷이 없어서 난감하다. 연이어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면 사람들이 금방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에 새 옷을 사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옷장에 옷이 가득해도 아침이면 또다시 입을 옷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이러한 착각은 ‘조명 효과(spotlight effect)’라는 심리 현상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연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신도 스타들처럼 조명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쓴다.
[5] 코넬 대학교의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 교수가 대학원생들과 함께 수행한 실험은 이 같은 ‘조명 효과’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40대 이상이라면 배리 매닐로라라는 미국 가수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매닐로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민망한 일이었다.
길로비치 교수는 이 실험에서 한 학생에게 매닐로의 티셔츠를 입게 하고 4~6명의 대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실험실에 들어가 잠시 머물게 했다. 그 후에 티셔츠를 입은 학생에게 실험실에서 만난 학생 중 몇 명이나 자신이 매닐로 티셔츠를 입었는지 알아차렸을까 추측하게 했다. 실험실에 있던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그 학생이 무슨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지 물었다. 그 결과, 티셔츠를 입은 학생은 46% 정도가 자신이 매닐로 티셔츠를 입고 있었음을 알아맞힐 거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23%만이 그 학생이 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답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마음속에 CCTV를 설치해놓고 자신을 감시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제 그 CCTV를 꺼버려야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자신을 조용히 내려놓는다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일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6.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알고 있다
자기 프레임을 과도하게 쓰다 보면 ‘나는 너를 알지만 너는 나를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자신은 결코 치우침 없이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오해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오해는 집단 수준으로까지 확대된다. 우리 집단, 우리 민족은 다른 집단이나 다른 민족에 의해 왜곡되어 그려지고 있지만, 우리가 다른 문화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하다.
[6] ‘나는 너를 잘 알지만 너는 나를 잘 모른다’라는 생각의 뿌리를 좀 더 깊게 파헤쳐보기 위해 우리 연구팀은 다음과 같은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질문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 10번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몇 번 정도 만나면 그 상대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반대로 그 상대방이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몇 번이나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분석 결과,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자신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적게 보았다. 다시 말해 ‘나’의 입장에서 타인은 짧은 시간에도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이지만, 나 자신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쉽게 파악할 수 없난,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복잡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나는 너를 알지만 너는 나를 모른다’는 생각은 자기중심성이 만들어낸 착각이고 미신일 뿐이다. 정답은 ‘나도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른다’ 거나 ‘나는 네가 나를 아는 정도만 너를 안다’이다.
7. 내가 사는 이유, 네가 사는 이유
누군가에게 본인이 외향적이냐고 물었을 때 가장 빈번히 나오는 대답은 ‘그때그때 다르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성격에 대해 같은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자신 있게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그 사람은 외향적이거나 내향적이거나 둘 중 하나다.
[7] 다른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신념 같은 내적인 요소들로 설명하지만, 우리 자신의 행동은 상황적인 요인들로 설명한다.
네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무책임하기 때문이고, 내가 늦은 것은 차가 막혔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동에 대한 이런 식의 판단은 인간관계에서 심각한 오해를 불러온다.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먼저 고려하기보다는 ‘넌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규정짓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마음의 습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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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4를 나가며
심리학자들은 ‘자기’를 가리켜 ‘독재 정권’이라고 부른다. 국민들이 읽고 말하고 보는 것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독재 정권처럼 ‘자기’라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순간 삶의 여러 면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사람들이 어떤 일에 깊게 몰입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어지는 상태를 몰입(Flow)이라 하고, 몰입 상태가 행복과 성취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정신병리학자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기 자신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경향이야말로 정신 건강을 해치는 주범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자기’에 대한 지나친 생각이 남들과 자기 자신을 자주 비교하게 만들고 결국 행복을 저하시킨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자기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소통의 창구가 되는 것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지혜는 우리에게 이런 자기중심성이 만들어내는 한계 앞에서 철저하게 겸허해질 것은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