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7_현재 프레임,
과거와 미래가 왜곡되는 이유
우리가 고대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은 당대에 자신들을 고대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의 관점에서 우리가 그렇게 부를 뿐이다. 미래를 보는 시각도 우리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처럼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해석하는 핵심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1. 후견지명 효과
과거에는 없고 현재에만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결과’다.
현재에만 존재하는 결과론적인 지식이 과거에도 존재했던 것처럼 착각하고 ‘내 그럴 줄 알았지’ ‘난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심리 현상을 ‘사후 과잉 확신(hindsight bias)’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런 형상을 선견지명 효과에 빗대어 ‘후견지명(hindsight) 효과’라고 부른다.
[1] 여기서 hindsight는 영어의 behind와 sight가 결합한 말로, 글자 그대로 결과를 알고 난 후에 ‘뒤에서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는 의미다.
성수 대교 및 삼풍 백화점 붕괴 등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던 당시 신문과 방송을 보면 후견지명 효과의 극치를 엿볼 수 있다. 모든 매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예고된 인재’라고 보도했다.
예고된 인재라고 그렇게 확신하는 전문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왜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단 말인가? 과거에 이루어진 정책을 후세에 평가하는 것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가 그의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지적했듯이, 현재의 프레임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마치 1900년대 초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에 와서 그 당시 사람들을 체포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과거가 아직 과거이기 전에는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는 현재의 눈으로 볼 때만 질서 정연하고 예측 가능한 것이다.
2. 그럴 줄 알았지
후견지명 효과는 사후에는 무엇이든지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서 기인한다. 자기 생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 ‘설명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설명 능력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어떤 결과든 사후에는 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에도 좀처럼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되면 임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들었다고 해보자, 많은 독자들이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거야 당연하지! 입양하면 임신에 대한 부담감이 적어지니까. 교수들이 기껏 이런 연구나 하다니..”
그런데 반대로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되면 임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결과를 들었다고 하자. 이번에도 역시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거야 당연하지! 입양했으니 임신하려는 노력을 안할테니까. 그걸 꼭 연구해야만 알 수 있나?”
A결과에 놀라지 않았으면 not-A 결과에는 놀라야하지 않는가? 그러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그 어떤 상황도 별로 놀랍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당연시하며 그 일이 처음부터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이 자신할 때, 우리는 현재 프레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후에 내리는 모든 판단에 대한 확신을 지금보다 더욱 줄여야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떄 ‘내가 진짜 알았을까?’라고 솔직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10년 전의 나는 행복했을까?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을까? 젊은 날의 나는 부지런했을까?
만일 우리가 경험한 과거의 모든 사건들과 순간순간 경험했던 감정을 저장해놓은 데이터가 있다면 이런 질문에 답하는 건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정확하게 담아놓은 것은 없다.
[2] 따라서 과거 회상은 다시 보기 작업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
[3] 1973년과 1982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 마커스(Markus) 교수 연구팀은 898명의 중년 부모들과 그들의 자녀 1,135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태도 조사를 실시했다.
1973년 당시 자녀들의 평균 나이는 25세였고, 부모들의 나이는 54세쯤 되었다. 그로부터 9년 후인 82년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조사에서는 ‘사회보장제도’ ‘소수민족 우대 정책’ ‘마리화나에 대한 처벌’ ‘정칮ㄱ으로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 등을 포함한 다양한 질문들을 던졌다. 82년 재조사에서는 이들로 하여금 각 이슈들에 대해 73년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 회상하도록 했다.
연구 관심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73년의 태도와 82년에 회상한 73년의 태도 사이의 유사성이었다. 분석결과, 이 둘 사이에는 0.39~0.44 정도의 상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년전 태도와 회상한 태도와 어느 정도 유사함을 보여준다.
두 번째 관심사는 82년에 대답한 실제 태도와 82년에 회상한 73년 당시의 태도 유사성이었다. 분석 결과, 이 둘 사이에는 0.56~0.79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태도와 회상한 73년의 태도 사이에 꽤 높은 유사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연구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82년 회상한 73년의 태도가 73년에 실제 측정한 태도보다 82년 회상 당시의 태도와 더 깊은 상관관계를 보였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사람들이 회상해낸 자신의 과거 모습은 과거의 실제 모습을 닮았다기보다는 현재의자기 모습과 더 닮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버릇없고 자기 절제가 부족하다고 꾸짖는다. 또한 교수들은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것은 상당 부분 근거가 엇다. 어른들은 자신이 어렸을 떄도 지금처럼 절제력이 있고 책임감이 강했다고 잘못 회상한다. 자신의 완벽한 과거 모습과 비교하면 현재 젊은이들이 부족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랫사람에게 ‘우리 땐 안그랬는데’ 같은 말이 튀어나오려 하면 ‘정말 그랬을까?’하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3. 과거 죽이기
현재 프레임은 과거를 현재와 유사한 것으로 부활시키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현재와 전혀 다른 과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특히 어떤 사건이나 특정 시점을 계기로 스스로 발전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높은 경우에 그렇다.
결혼하게 되면 전보다 더 철이 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존재한다. 결혼 후에도 철이 들지 않은 사람들은 이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킬까? 바로 결혼 전의 자기 모습을 실제보다 더 형편없게 회상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변화를 겪은 경우에도 동일한 매커니즘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종교인들은 종교에 귀의 전 자신이 벌레만도 못했다고 고백함으로써 현재 자신이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믿는다.
[5] 이런 ‘과거 죽이기’ 현상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 사람이 심리학자 마이클 콘웨이(Michael Conway)와 마이클 로스(Michael Ross) 교수다.
이들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공부 기술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시점에 참여 학생들은 자신의 공부 기술을 스스로 평가했다. 총 3주의 프로그램이 종료된 후에 참가자들은 자신의 공부 기술을 다시 평가했고, 프로그램이 시작되던 시점에 자신이 평가한 공부 기술을 회상하게 했다.
그 결과, 훈련 프로그램을 마친 학생들은 프로그램 참여 전 자신의 공부 기술을 당시에 평가한 것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회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훈련을 통해 공부 기술이 향상되리라는 기대가 강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과거의 자신을 더 깎아내려서 심리적 향상을 경험하려 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과거의 영광을 과장되게 부풀려 기억함으로써 현재의 초라한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은퇴한 복서는 자신의 챔피언 시절을 되돌아보고, 더 이상 천재 소리를 듣지 못하는 평범한 대학생은 잘나가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과거가 실제보다도 더 부풀려져서 영광스럽게 재구성된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날카로운 이빨은 지니지 않은 존재들은 과거 자신의 이빨이 얼마나 날카롭고 강했는지를 떠올리며 현재를 보호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과거는 실제보다 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한다.
4. 자서전의 비밀
서재필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1866년생이라고 강격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1882년 과거 급제 당시의 <국조방목>에는 그가 1863년생이라고 되어 있다.
[6] “서재필은 자신이 13~14세 때 최연소자로서 장원급제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광린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그는 20세 때인 1882년 … 병과 3등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가 당시 합격자 중 최연소자임은 사실이나 장원급제자는 아니었다.”
위에서 인용한 문장은 역사학자 주진오 교수가 <역사비평>에 기고한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주진오 교수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의 회고록에 왜곡이 심하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서재필의 자서전을 예로 들었다. 다음은 주진도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들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은 그것을 ᅟᅩᆼ하여 그들이 살다 간 시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나아가 그것을 하나의 귀감으로 삼기 위해서다. 따라서 그것은 신화를 만드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7] 사회심리학자인 지바 쿤다(Ziva Kunda) 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한 실험은 자서전이 현재 프레임에 의하여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대학생 실험 참가자들에게 ‘외향적인 사람들이 직업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런 후에 절반의 참여자들에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과 얼마나 활발하게 교류했는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넸는지 등을 평가하게 했다.
다른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내성적인 사람이 직업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고 같은 질문을 제시했다.
그 결과, 외향성–성공 조건의 참여자들이 자신을 더 사교적이고 활발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먼저 말을 걸었던 경우처럼 사교적으로 행동한 구체적 사례들을 기억하게 했더니, 외향성–성공 조건의 참여자들이 그런 사례를 더 많이 기억해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꺼내주는 마술 보따리와 같다. 모든 것을 의심의 눈길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비교 검증도 하지 않고 사실이라고 단정 짓는 습관은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더욱이 우리가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가는 우리 스스로의 자서전 작업에는 비판적 시각을 더 철저하게 견지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5. 서태지의 멜빵바지
유명 연예인들의 데뷔 시절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들의 과거 모습이 한결같이 촌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담하건데 그 시절의 스타들은 자신의 스타일이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우리 모습을 10년 후 쯤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게 된다면 우리 역시 한없이 촌스러운 지금의 모습에 웃고 말 것이다. 현재의 프레임으로 보는 과거의 모습은 늘 촌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10년 후에 스스로 자신을 얼마나 촌스럽게 여길지 상상하면서 킬킬대거나 주눅들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어느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의 관습과 제도 역시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미개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과거의 선조들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관대해져야 할 것이다.
6. 계획표의 함정
[8]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 연구팀은 37명의 4학년생들에게 자신의 학부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 데 며칠이나 소요될지 예측하게 하였다. 평균 대답은 33.9일 이었다. 이들 중 자신이 예측한 시간 내에 논문을 제출한 사람은 겨우 30%에 불과했다. 실제로 논문을 제출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55.5일이었다.
‘현재 프레임’은 과거에 대한 회상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 과정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미래에 대한 상상도 현재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과 동시에 어김없이 만든 것이 바로 동그라미 계획표다. 그러나 방학 첫날부터 동그라미 계획표는 빛을 잃고 그 계획표는 그저 방학숙제 제출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 과정을 초등학교 내내 반복하는 것도 모자라 중고등학교에서도 반복한다. 이번만은 예외라는 현재의 의지가 미래에 대한 상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은 의지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애초부터 미래에 대한 우리의 계획이 현재의 의지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현재에 의지에만 집착하여 미래 계획을 세우다보면 관심이 자기 내면으로만 집중하게 된다.
미래를 예측할 때 현재 존재하는 자기 내면의 의지만 보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는 존재하게 될 여러 상황 요인들을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을 세우는 사람의 말은 한 번 정도 걸러내고 듣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7. 예측하기 힘든 내일의 감정
우리가 현 시점에서 내리는 선택과 판단은 미래에 누리게 될 것들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우리 삶의 질은 미래 감정에 대해 우리가 현재 내리는 예측의 정확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분야의 연구들은 미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예측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거듭 보여준다.
점심에 된장찌개를 먹은 사람이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음 날 점심 메뉴를 미리 정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그럼에도 내일 또 먹겠다고 결정할 확률은 생각보다 낮다. 왜냐하면 또 된장찌개를 먹으면 지겨울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그다음 날도 된장찌갤ㄹ 먹을 때 만족감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하면 내일 점심을 먹기까지 저녁, 내일 아침을 먹어야하므로 내일 점심에 된장찌개를 먹어도 연이어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안겨주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일까? 바로 현 시점에서는 미래의 시간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예측 속에서 경험하는 미래의 시간에서는 세부 사항들이 생략한 채 현재와 미래가 바로 연달아 일어나는 것처럼 여겨진다.
미래에 무엇을 할지 선택해야 할 때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편이 좋다. 그 편이 이것저것 다양하게 섞어놓은 종합선물세트를 골랐을 때보다 실제 만족도가 더 크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8. 선물 세트가 잘 팔리는 이유
[9] 저자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쓸 물건을 살 때보다 다른 사람에게 줄 선물을 살 때 훨씬 더 다양하게 물품을 구입한다. 똑같은 물건을 반복해서 사용할 경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서 ‘물리는 현상’이 더 빨리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우리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평소 가장 즐겨먹은 특정 스낵을 5일 연속으로 먹게 될 경우 5일 간의 만족도를 예상해보도록 했다.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만족도는 어떠할지도 예상하게 했다. 그 결과 자신도바는 타인이 더 빨리 질려할 거이라고 예상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미래 시간을 예측할 때 시간 수축 현상이 훨씬 더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미래 24시간보다 타인의 미래 24시간이 훨씬 더 짧게 수축되어 상상되기 때문에, 선물을 살 경우 다양성의 유혹에 빠질 확률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선물용으로 나온 제품들에 ‘세트’ 종류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9. 마음의 면역체계
미래를 예측할 때 현재에 존재하는 것들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 역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요인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사건에 직면했을 때 작동하게 되는 마음속의 면역체계다.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면역체계가 존재하듯이 마음에도 심리적 면역체계가 존재한다.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게 되면 심리 면역체계가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스스로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나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미래의 스트레스 상황을 상상만 할 때는, 그런 면역체계가 작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인 사전의 충격을 과대하게 예측한다.
[10] ‘정서 예측(affective forecasting)’이라는 개념으로 연구되고 있는 이 분야의 대표적 학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대니얼 길버트와 버지니아 대학교의 팀 윌슨(Tim Wilson) 교수다.
이들 연구자들은 실험 참여자들에게 현재 사귀고 있는 연인과 헤어진다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오랫동안 비참할 것인지 예측하도록 했다. 또한 실제로 실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이 현재 얼마나 비참한지, 얼마나 행복한지 보고하게 했다. 그 결과, 상상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삶이 비참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제로 실연을 경험한 사람들은 상상만 했던 사람들의 예측보다는 훨씬 더 빨리 행복을 되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 면역체계의 탁월한 활동은 우리를 실연이라는 역경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나게 해준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이러한 면역체계의 존재와 활동을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인과 헤어지면 자신이 오랫동안 괴로워할 것이라고 과대 예측하게 되는 것이다.
—
Chapter 07을 나가며
이미 일어난 일들의 ‘결과’로 둘러싸인 현재는 과저를 예측 가능한 곳으로 보게 한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면 예방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현재는 과거로부터 파생되는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과거에 대한 이러한 자신감은 현재가 만들어내는 축복인 동시에 함정이다.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만 질서 정연하게 보인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럴 줄 알았지’라고 외치며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하거나 합리화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할 일에 대한 ‘의지’로 둘러싸인 현재는 미래를 실제보다도 낙관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 긍정적인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마음의 습관도 중요하지만, 현재가 만들어내는 미래의 장밋빛 착각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 또한 반드시 갖춰야 할 지혜로운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