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_무심코 내뱉는 하찮은 단어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다들 좋은 아침! 멋진 하루 보내길! 사랑을 담아, 패리스 🙂 – 패리스 힐튼, 유명인
어제 베이루트보다 북쪽에 있는 산악지대에 가서 드루즈 파(이슬람교의 한 종파) 지도자인 왈리드 줌블라트를 만남. 환상적인 경험이었음. – 존 매케인, 미극 상원의원
친구들(석류 마티니)과 놀면서 크리스마스 특집 볼 준비 증. 동부 시간으로 10시, 중부 시간으로 9시, 그 다음엔 캐럴을 부르러 가야지! – 오프라 윈프리, 언론계의 거물이다 TV 쇼 진행자
와인 한 병 마시고 다음 투어를 구상할 시간. 세인트 루이스 공연은 끝내줬다. 나의 무릎엔 아리라이너, 나의 팔꿈치엔 피. 수상해. – 레이디 가가, 가수 겸 작곡가
10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략 5천 년 전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150년 동안에는 전보, 라디오, 텔레비전에 이어 이메일, 문자 메시지, 소셜 미디어에 이르기 까지 온갖 소통 수단을 도입했다. 방식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의견과 경험, 감정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사람이 쓴 글에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 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하나하나가 마치 손의 <지문>과도 같다. 예컨대 트위터에 쓴 글과 그것을 쓴 사람을 서로 짝지어 보라는 객관식 문제가 있다면 대부분 만점을 받을 것이다. 각자의 트윗을 좀 더 분석하기 시작한다면 그들의 동기, 두려움, 감정,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단어를 사용한다.
우리 조상들이 최초의 문장을 말하고 난 후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현대의 기술적 혁명에 크게 힘입어 이제 우리에게는 트위터, 게시물, 편지, 책, 연설, 대화에 사용하는 단어들을 분석할 도구가 생겼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어떻게 그 사람의 사회적, 심리적 상태를 반영할 수 있는지 사상 처음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대학 입학 지원서에 동사를 너무 많이 사용한 학생들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낮은 성적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는가? 아니면 시를 쓸 때 <나는>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시인은 그렇지 않은 시인에 비해 자살할 위험이 더 높다거나, 어떤 세계적 지도자의 대명사 사용 스타일을 통해 그가 자국을 전쟁으로 이끌 가능성을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은 또 어떠한가?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옮기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성격, 감정, 타인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1. 심리학과 단어가 만났을 때
먼저, 내가 이 연구에 이르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 대해 먼저 들려주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사회심리학자인 나는 우연히 언어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 책이 진짜 초점을 두는 부분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다.
[1]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루 15분에서 20분 정도씩 사나흘 연속으로 자신의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글로 써보라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 결과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은 아무런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했던 사람들에 비해 건강이 호전되었음이 증명되었다.
[2] 이후의 연구들에서는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글쓰지 expressive writing가 면역 기능을 높이고, 혈압을 낮추며, 우울한 감정을 줄이는 한편, 평소의 기분도 더 나아지게 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최초의 글쓰기 실험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 전역에서 2백 건 이상의 비슷한 실험이 수행되었다. 연구 결과는 그리 대단치 않을 때도 많지만, 감정의 격변을 <언어로 변환>하는 단순한 과정은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과 꾸준히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 글쓰기의 시작은 <단어 선택>에 있다
글쓰기가 이런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과학자들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되풀이해서 접하다 보면 결국 그 충격이 약해진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의견도 이와 같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과 되새김이 건강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주목한다. 트라우마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일을 마음속에서 계속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격변하는 감정을 동반하는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다 보면 지금의 일과 인간관계에 집중할 수 없고 잠을 설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트라우마에 대한 글쓰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사건들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거나 혼란스러운 감정을 해소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글쓰기가 왜 효과적인지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글쓰기에 대한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각자 겪은 격변을 묘사하는 데 <단어>들을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아마도 표현적 글쓰기의 핵심은 글의 내용에 가려져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것이다.
거의 모든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신체적, 성적, 감정적 학대, 이혼, 약물 문제, 자살, 끔찍한 사고, 패배감, 모욕감, 괴로움에 대해 썼다. 그리고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
유머러스하게 글을 쓴 사람도 있었고, 분노에 찬 사람도 있었으며, 냉정하고 초연하게 사실 중심으로 쓴 사람도 있었다.
임상 심리학자 혹은 일반인들이 이런 글을 읽는다면 글쓰기의 어떤 측면이 건강 증진과 관련이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검증해본 결과, 그렇지 않다는 답이 나왔다.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적 글쓰기가 효과적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접근법이 필요했다.
3. 우리가 쓰는 단어와 우리의 심리 상태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때는 1991년, 컴퓨터 기술이 한창 발전하던 시기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프린스턴, 하버드, MIT에서 수행된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언어 분석 computerized analysis of language> 연구는 몇 번의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내가 트라우마에 대한 글을 분석할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프로그램은 판단을 내리지도, 마음 아파하지도 않는다. 버튼만 누르면 웬만한 답은 얻을 수 있었다.
[3]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간단히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전직 프로그래머였던 대학원생이 마침 우리 연구팀에 들어왔고, 우리는 3년 만에야 언어 조사와 단어 계산 프로그램 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 즉 LIWC라는 프로그램의 첫 번째 버전을 내놓았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심리학적 개념을 포착하도록 고안된 여러 개의 단어 사전들을 만들었다. 예컨대 우리는 증오하다, 격분하다, 살해하다, 난도질하다, 복수하다 등 180개 이상의 단어로 구성된 분노 단어 사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살해>와 같은 어간을 사전에 포함하여 살해자, 살해, 살해하다, 살해당한 등 <살해>에서 비롯되는 단어들도 모두 계산에 들어가게 했다. 우리는 이어서 슬픔, 불안, 행복, 긍정적 감정 등 다양한 감정에 관한 단어 사전들을 만들어 나갔다.
그런데 트라우마에 대한 글들은 감정적 어조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넓은 범위 안의 글들을 모두 포괄해서 다루기 위해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말고도 다른 유형의 단어 사용을 측정하는 어휘 목록도 개발했다. 이를 테면 여러 종류의 대명사, 생각과 관련된 단어로서 인과적 사고를 암시하는 다양한 단어들 (왜냐하면, ~의 원인이 되다, 이유, 근거 등)의 사용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4. 글의 내용이 아닌, 단어 사용 스타일에 주목하다
1990년대에 콜로라도 대학교의 연구자들은 <잠재적 의미 분석 Latent Semantic Analysis, LSA> 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LSA는 하나의 글 안에서도 단어 사용 패턴을 추적할 수 있었고 여러 편의 글을 동시에 다룰 수도 있었다. 또한 두 편의 글이 얼마나 비슷한지 수학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 LSA의 장점이었다.
우리 대학원생이었던 셜록 캠벨은 LSA 프로그램을 제대로 활용하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우리는 LSA 프로젝트를 알면 알수록 우리가 언어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글의 내용이 아니라 언어 스타일을 분석하면 어떨까? 이 작업을 위해서는 LSA를 완전히 뒤집어 생각해야 했다. 우리는 글의 내용을 분석하는 대신 LSA로 명사, 동사, 부사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쓰는 스타일을 보여주는 단어들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글쓰기 스타일은 대개 대명사, 조사, 관형사, 짧지만 흔히 쓰이는 소수의 비슷한 단어들을 포함하는 기능어를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 연구결과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웠다. 글을 쓸 때마다 기능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많이 바꾼 사람들일수록 건강이 더 호전된 것이다. 눈에 띄는 단어군은 인칭 대명사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인칭 대명사(우리, 당신, 당신들, 그들)에 비해 1인칭 단수 대명사(나는, 제가, 나의, 저의, 나를, 저를 등)의 사용 빈도가 많이 변할수록 글쓴이의 건강이 더 좋아졌다. 이 효과는 상당히 컸으며 이후 연구를 통해 뒷받침되었다.
연구 결과들은 난해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요컨대 건강이 호전된 사람들의 글을 살펴보면 한 번은 <나>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그 다음에는 다른 대명사를 많이 사용하는 등, 여러 번 글을 쓰면서 단어의 사용 양상이 변한다. 다시 말해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 한 번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글을 쓰고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본 다음 다시 자신에 대해 글을 쓴다.
실제로 전환의 관점은 심리 치료에서 흔히 쓰인다.
5. 단어는, 거울이자 도구이다
감정의 격변에 대한 글쓰기는 글쓴이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보다 좋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건강에 유익한 글쓰기는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사용,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적당한 사용, 인지적 단어의 사용 빈도 증가, 대명사 사용 빈도의 변화 등과 관련이 있다. 이런 효과들을 일상 언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글쓰기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글을 쓸 때 보다 더 낙관적인 경향을 표출하고, 부정적인 사건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경험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관점을 전환할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러한 발견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몇 가지 <숨어 있는 단어>들을 통해 드러났다는 점이다. 숨어 있는 단어들은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쓰이면서도 글쓴이가 생각하는 방식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를 반영했다.
이러한 언어적 발견들은 분명 흥미롭다.
그렇다면 단어는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것일까, <유발>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로 수 년간 몇 번의 연구가 수행되었다.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재직 시절 내 제자였던 셰릴 휴즈는 정교한 실험을 하나 수행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단어 목록을 나눠주고 그것을 사용하여 감정을 표출하는 글을 써보게 했다. 학생들은 각각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목록,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목록, 인지적 단어 목록을 받은 집단으로 나뉘었고, 아무것도 받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다.
셰릴은 학생들이 예상된 방향으로 단어를 사용하도록 하는데에는 성공했으나 글쓰기는 건강에 아무런 영향도 및지 않았다.
즉 단어 사용은 일반적으로 그 단어를 쓰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미치거나 유발한다기보다 그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놀라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견은 단어 분석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한다.
단순히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어떤 단어들을 많이 쓰게 하는 것만으로는 의미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이렇게 하면 내재된 목적이 아니라 단어에만 집중할 뿐이다. 하지만 트라우마에 대한 글을 쓰게 하되 의미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게 하면 글이 좀 더 역동적인 분위기를 띤다. 이들은 한 발 물러서서 보다 더 넓은 시각으로 트라우마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들이 이야기에 쏟는 인지적 노력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더불어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분석하는 것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들의 생각을 이끌 방향도 제시한다. 단어들은 거울도 될 수 있고 도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6. 흔히 쓰는, 대수롭지 않은 짧은 단어들이 나를 드러낸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엄청난 수의 단어들에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이용할 수 있다.
[5] 나는 누가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알기 위해 밤늦게 텍스트 파일을 분석할 때가 많다. 예컨대 감정을 표출하는 글에 대한 연구는 대개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했는데, 그렇다면 성별에 따라 단어를 사용하는 스타일이 다를까? 그랬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달랐다. 하지만 왜 그런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개 흔히 그러듯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또 한 묶음의 파일들을 분석하다가 이번에도 남녀 단어 사용법의 기묘한 차이를 발견했다.
점점 더 많은 자료를 다룰수록 반복되는 단어의 패턴이 계속 튀어나왔다. 단어 사용의 차이는 성별 뿐만 아니라 나이, 사회적 계층, 감정 상태, 성격 등등 수많은 조건의 차이에 따라서도 단어 사용이 달랐다.
흥미로운점은 대개의 차이가 가장 흔히 쓰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단어들에서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다양한 상황에서의 대화를 공개해서 분석한 수많은 예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심리학과 사회적 행동이다. 나의 세계에서 단어들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자, 모두를 둘러싼 세계와 언어와의 관련성 그리고 언어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매혹적이고 적나라한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