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경제력만큼 행복하지 않은가?
: 2017세계행복보고서와 심리사회적 자원의 중요성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가 발표되기 시작한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이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South Korea)의 행복순위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 사례만 소개하면, 2015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158개국 중 47위에 위치하였고, 2016년에는 157개국 중 58위에 위치하였으며, 2017년에는 155개국 중 55위를 기록하였다(Helliwell, Layard, & Sachs, 2017). 이렇게 보면 한국은 행복상위 30% 이내에 속하는 상당히 행복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필자의 이런 평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먼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의 자살률이 1위라고 들었는데, 한국인의 행복이 상위 30%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나라가 상위권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 수도 있다. 또 내가 아는 사람들을 봤을 때도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고 늘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데, 그렇다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상한건가라고 의아해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 답변하자면, 세계행복보고서는 삶 전반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0-10점 사이로 측정한 후, 이 데이터의 국가별 평균을 구하고 순위를 부여한 것이다. 우리는 절대평가 점수가 몇 점인지 보다, 순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언론들도 순위를 보고하기에 바쁘다), 순위는 어디까지나 국가들 사이의 행복을 비교하기 위한(상대평가하기 위한) 도구이지, 그 나라 사람들의 실제 행복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즉 그 나라 사람들의 진짜 행복점수를 알기 위해서는 절대평가 점수, 다시 말해 10점 만점 중 몇 점을 받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행복 순위가 최상위권인 나라들의 행복 점수를 살펴보자. 2017년 세계행복 보고서를 기준으로 할 때 행복순위 1위인 국가는 노르웨이이고, 노르웨이의 행복점수는 10점 만점에서 7.537점이다. 2위는 덴마크로 7.522점이다. 3위는 아이슬랜드로 10점 만점 중 7.504점을 기록하였다. 10점 만점에서 7.5점 이상을 기록했다는 것은 이 나라 국민들이 평균적으로 매우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순위상으로 13위 미국부터는 행복점수 평균이 7점에 미치지 못하고 6점대로 떨어진다. 13위 미국은 6.993점이고, 31위 프랑스는 6.442점이다. 이 국가의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하지만, 아주 행복하지는 않아 보인다.
46위 폴란드부터는 행복이 5점대로 떨어진다. 폴란드의 5.973을 시작으로, 51위 일본은 5.920, 그리고 55위 한국은 5.838점을 기록한다. 즉 순위로는 전 세계 상위 30% 안에 든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순위일 뿐이며, 행복점수 그 자체로 볼 때 한국인은 10점 만점 중 평균 5.8점 정도의 행복을 가진다. 즉 한국인은 딱 중간정도의 행복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아주 행복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드물고, 대체로 행복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존재하며,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한국의 행복 점수(매년 약 5.8점 내외)는 한국의 경제력 순위와 매우 대조적인데, 2017년에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한국의 국민 일인당 총생산 순위는 전 세계 191개국 중 29위(https://goo.gl/aecrFX)로 국민 일인당 매년 29,730달러(약 3천만원)의 생산력을 가진다. 구매력 기준 국민 1인당 총소득 순위는 이보다 더 높아서 세계 160개국 중 19위(https://goo.gl/UowFnM)이며, 29,010달러(약 3천만원)의 구매력을 가진다.
이제 우리는 올바른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왜 한국은 국민 일인당 경제력 순위는 세계 최상위권인 것에 반해 행복 순위는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경제력 점수(연봉 3천만원)는 매우 높은 측에 속하지만, 행복점수는 그에 미치지 못할까? 더 간단하게는 왜 한국인의 행복은 경제력에 미치지 못하는 걸까? 혹자들은 한국인이 왜 불행할까라고 질문하지만, 이 질문은 명백하게 잘못되었다. 우리는 불행하지는 않다. 그저 딱 중간정도의 행복 점수를 가질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올바른 질문은 “왜 우리는 불행한가?”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행복해질 줄 알았고, 경제적으로 풍요해지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으며, 마침내 어느 정도 풍요로워 진 것 같은데 왜 생각했던 것보다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질문이 세계인의 행복을 측정하여 세계행복보고서라는 출판하게 만든 질문이고, 2009년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했던 고민이자,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 고민을 함께 하기 위해 만든 사르코지 위원회의 고민이었다(Stiglitz, Sen, & Fitoussi, 2010). 그리고 이 고민의 결과물 “Mismeasuring our lives: Why GDP doesn’t add up”(우리 삶을 잘못 측정하고 있었다: 왜 GDP가 더 이상 행복하게 못하는가?)에 나타나 있는 질문을 우리 한국인도 피해갈 수 없는 시점이 되었다(한국어로는 『GDP는 틀렸다』라고 번역 출간되었지만, GDP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외형적 경제성장이 더 이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음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제 GDP 외의 다른 요소들이 보완되어야 함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림 1. 2011년 OECD국가들의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 한국이 1위이고, 리투아니아가 2위이다.
그림 2. 2013년 OECD국가들의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 한국이 2위이고, 리투아니아가 1위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한국의 자살률이 2011년과 비교할 때 현저히 감소했다는 것이다.
아직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리긴 어렵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원인을 진단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이 있기에 그 자료들을 소개하는 수준에서 이 글을 마무리 해볼까 한다. 일단 앞서 이야기했던 한국의 높은 자살률부터 다시 살펴보자. 그림-1은 2011년 OECD 국가들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을 보여준다(https://data.oecd.org/healthstat/suicide-rates.htm).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33.3명이 자살하면서 1위를 기록했고, 특히 남자는 10만 명당 50명 OECD 국가 2위(남성 1위는 리투아니아로 58.1명), 여성은 20.2명으로 OECD 국가 1위를 기록했다.
그림-2는 2013년 OECD 국가들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을 보여준다. 한국은 28.7명을 기록하면서 OCED국 2위를 하였다. 여전히 순위는 높지만, 절대적인 수치상으로 볼 때는 약간 희망이 보인다. 그 이유는 한국의 2013년 자살률은 2011년보다 5명이나 감소했고, 2011년 자살률 3위 국가(헝가리)와 12.5명 차이가 나던 것을 2013년에는 9.1명으로 줄였기 때문이다(자살율 2등과 3등의 격차가 크기에 이 차이의 감소가 중요함). 참고로 2013년 자살률 1위 리투아니아는 34.8명으로 32.2명이었던 2011년보다 오히려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매우 높은 편인데, 이는 한국인들의 많은 수가 행복하지 않으며, 때로는 심각하게 우울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럼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추가해 보자. 한국인들 중에는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불행하다고 느끼고 우울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Diener 등의 2010년 연구가 한 가지 힌트를 준다. Diener 등(2010)은 OECD 89개국 사람들에게 네/아니오로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하면서 각 국가 사람들의 긍정 정서, 부정 정서, 그리고, 심리사회적 욕구 충족상태를 파악하였다.
[긍정정서 파악을 위한 2가지 질문]
-어제 하루 당신은 아주 즐거웠습니까?
-어제 많이 웃었습니까?
[부정정서 파악을 위한 4가지 질문]
-어제 하루 화가 났습니까?
-어제 하루 슬펐습니까?
-어제 하루 걱정이 많았습니까?
-어제 하루 우울했습니까?
[심리사회적 욕구 충족 확인을 위한 5가지 질문]
-존중의 욕구: 어제 하루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았습니까?
-관계의 욕구: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었습니까?
-배움과 성장: 어제 하루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까?
-유능의 욕구: 당신은 뭔가 잘하는 일을 했습니까?
-자율의 욕구: 당신의 시간을 당신 스스로 쓸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림 3. Diener 등(2010)의 주요 결과
그림-3은 이 질문들의 응답에 대한 순위를 보여준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제력 순위와 비교할 수 있도록 첫 줄에는 국민 일인당 GDP 순위(GDP/capita)를 삽입해두었고, 세 번째 줄에는 삶의 만족도(Self-Anchoring Striving Scale) 순위를 삽입해두었다. 앞서 논의한 것과 같이 한국의 경제력(GDP)은 24위로 매우 높다(첫 줄). 그런데, 심리사회적 욕구충족 상태는 83위로 최하위이며, 삶의 만족도는 38위로 경제력보다 낮아지고, 긍정 정서 충족은 58위로 하위권이며, 부정 정서를 경험하지 않는 것은 77위로 최하위권이다.
그림 4. OECD 국가들의 심리사회적 욕구 충족. 한국은 당당하게 꼴등을 했다(OECD, 2017).
요약하면, 한국은 경제력과 삶의 객관적 질에 있어서는 상위권이지만, 심리사회적 욕구 충족, 긍정 정서를 경험하는 빈도는 최하위권이고, 부정 정서를 많이 경험하는 것에 있어서는 최상위권이다. 가장 최근 조사에서도 한국인의 심리사회적 욕구 충족은 최하위를 기록했다(실제로 꼴등을 했다). 그림-4는 이 결과를 보여준다(OECD, 2017). 구체적으로 한국인인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적었는데, OECD 평균이 88.6%인데 반해, 한국은 75.9%만이 있다고 답변했다. OECD 평균보다 13%나 적은 응답일 뿐 아니라, 평균보다 높은 나라들이 90% 이상인 것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결과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지난 조사기간 동안의 응답비율이었던 78.2%(이것도 높은 수치가 아니었다)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이기에 충격을 준다. 즉 한국인들은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고, 계속 줄어가는 추세이다.
그림 5. 2016년 OECD 국가들의 GDP대비 사회적 지출 규모. 한국은 가장 적은 사회적 지출 규모를 가진 나라이다.
즉 한국이 경제력보다 행복하지 않은 유력한 원인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믿고 의지할 사람이 적다는 것은 OECD국가들의 GDP 대비 사회적 지출(Social spending: GDP 대비 저소득층, 고령자, 장애자, 실업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개인과 정부의 지출 규모) 비율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그림-5(https://data.oecd.org/socialexp/social-spending.htm)의 2016년 OECD국가별 사회적 지출 규모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한국은 개인과 국가를 통합하여 ‘저소득층, 고령자, 장애자, 실업자, 미성년자를 지원하는데 사용하는 돈’이 GDP의 10.4% 수준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참고로 GDP 대비 사회적 지출 비율의 OECD 평균은 21%이다.
경제 성장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하고,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 성장과 함께 심리사회적 자원들도 함께 성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심리사회적 자원 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혹은 문화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심리사회적 자원 구축은 경제성장이라는 가시적 목표로 인해 그 동안 소외되어 왔던 비가시적 목표였다. 지금부터라도 이 비가시적 목표를 위해 모두가 조금씩 노력한다면, 10년, 20년 뒤에는 우리나라도 노르웨이나 덴마크처럼 불행한 사람들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은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알고 싶다면,
Diener, E., Ng, W., Harter, J., & Arora, R. (2010). Wealth and happiness across the world: Material prosperity predicts life evaluation, whereas psychosocial prosperity predicts positive feel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9(1), 52-61.
http://dx.doi.org/10.1037/a0018066
Helliwell, J., Layard, R., & Sachs, J. (2017). World Happiness Report 2017. New York, NY: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http://worldhappiness.report/ed/2017/
OECD. (2017). How’s Life? 2017: MeasuringWell-being. Paris, FR: OECD Publishing.
http://dx.doi.org/10.1787/how_life-2017-en
Stiglitz, J. E., Sen, A., & Fitoussi, J. P. (2010). Mismeasuring our lives: Why GDP doesn’t add up. New York, NY: The New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