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게 뭐죠?
: 계속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오늘날 문명이 발달된 사회에서 ‘시간’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소모품이자 정확하게 측정되고, 분배되고, 투자되어야 하는 화폐와 같은 가치로 통용된다(Briers, 2012). 일단 산업화가 자리 잡게 되자 농경 사회에 절기를 제공했던 자연의 부드러운 리듬은 더 이상 그 목적에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산업화와 함께 시간은 현재를 극대화해야 하는 소중한 자원이 되었다. 19세기 이전에는 ‘시간 낭비’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Briers, 2012). 오늘날 우리는 이 개념에 집착하고 있다. 대중 심리학은 이 바통을 성실히 이어받았고, 그 결과 책장은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오늘 일을 내일로 무리는 우를 범치 않기 위해, 깨어 있는 시간의 1분 1초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들로 넘쳐난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철저한 시간 관리는 필수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일상에 많은 일정들을 채워 넣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오히려 정반대가 사실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미치광이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다.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규칙이란 오직 기운이 떨어져 탈진했을 때뿐인 경우가 많다.
1998년과 2005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일주일에 48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의 수는 두 배로 증가하여 전체 근로자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Briers, 2012). 왜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일까? 안타까운 사실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종류의 지나친 헌신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효과까지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연구는 주당 45시간 이상의 근무시간이 고혈압, 우울증, 근골격 질환 등 모든 종류의 신체적, 심리적 질병과 상호 연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Sparks et al., 1997).
‘자유’ 시간이 생기는 경우에도, 우리의 본능은 이 자유 시간을 목적이 분명한 자기 향상 활동으로 채우고 싶어 한다(Briers, 2012). 운동을 하러 체육관에 가고, 어학 강좌나 음악 수업을 듣는가 하면, 독서 그룹에 참가한다. 삶이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어울릴 소중한 기회나 사교적 모임은 먼 미래로 계획해놓는다. 하루하루의 일정이 너무 꽉 차 있어 어떤 부부들은 연애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저녁 데이트를 따로 계획해야 할 정도이다.
일에 대한 맹목적 헌신과 시간관리가 잘못되었다거나 철저한 시간관리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못하니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현대인의 삶이 너무 정신없이 바빠지다 보니 이제 우리는 사실상 게으름의 미학을 전혀 모르게 되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런 계획이 없는 시간을 음미하거나, 재충전을 하거나, 백일몽을 꾸면서 즉흥적이고 아무런 목적 없이 노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 다음 몇 페이지에 걸쳐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모든 일이 왜 잘못되어 있는지 가장 분명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전통적으로 마음껏 쓸 수 있는 무계획적인 시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던 사람들, 즉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십 년간 아이들의 생활 패턴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했다. 미시간 대학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의 아이들은 30년 전 아이들에 비해 자유 시간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중산층 출신의 아이들은 성인이 이끄는 활동에 참여하여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Hofferth & Sandberg, 2001; Hofferth et al., 1991; Sandberg & Hofferth, 2001). 연구자 샌드라 호퍼스(Sandra Hofferth)는 이 아이들이 부모에게 영향받아 ‘시간 부족’ 상황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Hofferth & Sandberg, 2001).
부모들은 매 순 간을 소중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설득시킨 후, 엄청난 강도의 교육 및 과외 활동에 참여시킨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성실하게 아이들을 방과 후 수업에서 피아노 학원, 태권도 등급 심사에서 스카우트 활동으로 실어 날아야 하는 부모의 삶의 속도도 크게 빨라지고 스트레스 역시 심화될 수 밖에 없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고마워할까? 아닌 것 같다. 앨빈 로젠벨트(Alvin Rosenfeld)는 ‘무리한 일정에 시달리는 많은 아이들이 분노와 불안에 가득 차서 녹초가 되어 있다.’고 보고한다(Rosenfeld & Wise, 2010).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읽기, 수학 등의 선행학습을 받은 어린이들의 학습 성취도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1학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이 아이들의 성적이 전혀 미리 학습받지 않고 자유롭게 놀다가 입학한 아이들의 성적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Briers, 2012). 또한 조기 학습을 받은 아이들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매우 높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Sutton-Smith, 1975). 심리학자 브라이언 서턴–스미스(Brian Sutton-Smith)는 “놀이의 반대는 공부가 아니다. 우울증이다”와 같은 무서운 결론을 내렸다.
놀이는 아이들의 마음에만 유익한 것이 아니다(Briers, 2012). 어른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먹기나 자기와 마찬가지로 놀이에 대한 선천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정기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충분히 놀지 않으면, 결국에는 극심한 활동기에 이어 철저하게 붕괴된 침체기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놀지 못해서 생긴 욕망의 빈자리가 나태와 반항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즉 근무시간에 일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딴 짓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상사가 보지 않는 사이에 앵그리 버드(Angry Birds) 게임 한 판만 더 할까?’, ‘사무실에서 일찍 돌아갈 바에야 차에서 잠깐 낮잠이라도 잘까?’, ‘창고 뒤에서 담배 한 개비만 더 피울까?’ 하는 식이다. 충족되지 않은 진정한 욕구가 있는 사람은 심리적인 위협을 느끼고, 잘 놀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분노하거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다(Shen, Chick, & Zinn, 2014). 아마도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게리 칙(Gary Chick)은 “더 잘 노는 사람, 장난기 많은 사람일수록 적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공격적인 성향이 약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잘 놀고 장난기 많은 사람이 생산성이 더 떨어진다거나 성공할 확률이 낮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Briers, 2012). 놀이는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감정 처리를 도와주며 심지어는 기억력까지 향상시키고 문제 해결을 도와준다고 판명 났다. 또한 놀이는 스트레스를 완화해준다. 하라 마라노(Hara Marano)의 주장에 따르면 놀이는 생기를 되찾아주고 재충전시켜 주며 낙관주의를 회복시킨다. 또한 세상의 많은 일들을 성취하기 위한 능력을 재생시킨다(Marano, 1999).
이렇게 자명한 장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면서도, 이상하게 우리는 여전히 놀이에 많은 시간을 쓰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성취하고 나면 그때 인생을 즐기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면서 끊임없이 놀이를 미루고 있다. 왜 그럴까? 신디 애런(Cindy Aron)은 놀이와 게으름을 은근히 동일시하는 현대사회의 뿌리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 즉, 청교도주의가 박혀 있다고 해석했다(Aron, 2001).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멈추었을 때 내면에서 올라오는 심리적 저항감에 맞서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앞만 보고 광적인 속도로 삶을 돌파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Briers, 2012). 우리는 모든 일이 다 중지되었을 때 발현되는 진짜 자기 모습을 진심으로 두려워한다. 어쩌면 스스로 자랑할 만한 자기를 만들려는 현대인의 끊임없는 노력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것이 부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불편한 감정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오히려 더 포상이나 승진, 성취, 부, 권력 등의 겉으로 드러나는 세속적 욕망을 좇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얼마나 우울하고, 허무하고, 지칠지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서턴–스미스(Sutton-Smith)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놀이의 반대는 공부나 일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것 말이다. 완전히 지쳐서 녹초가 되었을 때 놀지 말고, 힘이 남아 있을 때 놀자. 우울하고, 무기력해져서 노는 것이 아니라, 아직 웃을 힘이 남아 있을 때 쉬자. 뭘 하고 놀지 모르겠으면, 일단 눈을 감고 가만히 뭐하고 놀지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정해졌는가? 그럼 놀자.
*더 알고 싶다면,
Briers, S. (2012). Psychobabble: Exploding the myths of the self-help generation. Edingburg, UK: Pearson Education Limited.
Aron, C. S. (2001). Working at play: A history of vacations in the United States.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Shen, X. S., Chick, G., & Zinn, H. (2014). Validating the Adult Playfulness Trait Scale (APTS): An examination of personality, behavior, attitude, and perception in the nomological network of playfulness. American Journal of Play, 6(3), 345-369.
https://search.proquest.com/docview/1547943837?pq-origsite=gscholar
Hofferth, S. L., & Sandberg, J. F. (2001). How American children spend their time.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 63(2), 295-308.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j.1741-3737.2001.00295.x/full
Hofferth, S. L., Brayfield, A. A., Deich, S. G., & Holcomb, P. A. (1991). National Child Care Survey, 1990. Washington, DC: Urban Institute.
http://webarchive.urban.org/publications/104604.html
Marano, H. E. (1999). The power of play. Psychology Today, 32(4), 36-39.
https://www.psychologytoday.com/articles/199907/the-power-play
Rosenfeld, A., & Wise, N. (2010). The over-scheduled child: Avoiding the hyper-parenting trap. New York, NY: St. Martin’s Press.
Sandberg, J. F., & Hofferth, S. L. (2001). Changes in children’s time with parents: United States, 1981–1997. Demography, 38(3), 423-436.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353%2Fdem.2001.0031?LI=true
Sparks, K., Cooper, C., Fried, Y., & Shirom, A. (1997). The effects of hours of work on health: a meta‐analytic review. Journal of Occupational and Organizational Psychology, 70(4), 391-408.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j.2044-8325.1997.tb00656.x/full
Sutton-Smith, B. (1975). The useless made useful: Play as variability training. The School Review, 83(2), 197-214.
http://www.journals.uchicago.edu/doi/abs/10.1086/443187?journalCode=school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