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의 고마움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참 감사하다.
“범사에 감사하라 (In everything give thanks)”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살다보면 지루하리만치 반복되는 일상의 고마움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리고 “왜 나에겐 감사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거지?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하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지 한 번 살펴보자.
그림. 통계청이 2016년에 발표한 사망자수와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연합뉴스에서 편집한 것이다.
(출처: https://goo.gl/Y9NjfZ)
[그림]은 2016년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한국인 사망자수와 사망원인 통계이다. 여러분이 뉴스나 교통사고만 다루는 방송 때문에 발생한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 heuristic)으로 인해 ‘한국인 사망원인’이라는 말을 듣자마다 ‘순위에 있을 거야’라고 추측했을 교통사고 사망자는 순위에 들지도 못할 정도로 더 강력한 사망원인들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2015년 한 해 168,425명이 다양한 원인으로 죽었다(Kim, 2016). 그중 가장 강력한 원인은 암으로 독보적인 원인이며, 2015년 한 해에만 76,855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그 다음은 심근경색 등의 심장질환으로 역시 2015년 한 해에 28,32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다음으로는 뇌혈관 질환이 비슷한 정도의 생명을 빼앗았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보통 21세기 과학문명 사회에 이런 걸로 죽겠어?”라고 생각하는 폐렴이 당당 4위를 차지했으며, 2015년 한 해에만 14,718명의 목숨을 잃게 했다. 순위에는 없지만, 여전히 매년 2,136명이 결핵으로 죽는다(Kim, 2015). 한국은 OECD 결핵환자 1위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13,513명이나 된다. 특히 10대부터 30대 사이에서는 자살이 가장 강력한 사망원인이다. 40대와 50대는 자살 비율이 낮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두 번째로 높은 원인이다. 2015년 통계이지만, 매년 이정도 인원이 이정도 비율로 죽는다.
조금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이렇게 다양한 사망원인, 심지어 여러분이 폐렴이나 결핵같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정도만 해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쯤 되면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다니, 오늘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니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다가 아니다. Emmons와 McCullough(2003)의 과학적 연구결과는 이렇게 소소한 일상과 살아 있음 그 자체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관찰했다. 구체적으로 연구자들은 192명의 참가자들을 모아 65명은 감사하기 조건에, 64명은 불평하기 조건에, 67명은 통제조건에 무작위로 할당하였다. 참가자들이 할 일은 10주 동안 매주 1번 씩 연구자가 요청한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감사하기 조건에 할당된 사람들에게는 “살다보면 크게 때론 작게 감사할만한 일들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보면서, 감사할 만한 일을 5개를 적어주세요”라고 요청하였다. 불평하기 조건에 할당된 사람들에게는 “살다보면 크게 때론 작게 불만스럽고 짜증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보면서, 불평할 만한 일을 5개를 적어주세요”라고 요청하였다. 통제조건에 할당된 사람들에게는 “지난 한 주를 되돌아보면서,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5개를 매주 한 번 씩 적어주세요”라고 요청하였다.
과연 감사하기 조건에 할당된 사람들은 어떤 내용을 감사했을까? ‘복권에 당첨되어서 감사하다’와 같이 대단한 내용을 기대했다면,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참가자들은 ‘아침에 일어날 수 있어야 감사하다’, ‘나에게 판단력이 있었음에 감사하다’, ‘부모님과 함께 해야 감사하다’, ‘좋은 음악을 들어서 감사하다’와 같이 소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해 했다. 아마 한두 가지 사건은 참가자 자신에게는 정말 대단한 일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5개 까지 써보려고 하니 결국 소소한 일상이 감사함을 알게 되었던 것이리라.
불평하기 조건은 어땠을까? ‘나에게 정말 큰 사건 사고가 있었나서 힘들었다’와 같이 비극으로 가득차 있었을까? 이번에도 그런 내용은 드물었다. 참가자들은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웠다’, ‘기숙사 공동 부엌을 아무도 치우지 않았다’, ‘건강 심리학 시험을 망쳤다’, ‘내가 도와줬는데, 친구가 고맙다고 안했다’와 같이 소소한 일상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나마 가장 강력한 것이 시험을 망친 정도다. 즉 사람들은 실제로 엄청난 것에 불평하지도 않는다.
통제조건의 사람들은 ‘심폐소생술을 배웠다’, ‘신발장을 정리했다’, ‘의대에 대해 의사와 상담했다’, ‘축제에 참여했다’ 등을 일상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주부터는 감사/불평/통제 조건 관련 이벤트 보고와 함께 전체적인 삶의 질이 어땠는지(life as a whole, 1: 끔찍했다, 2: 행복했다), 다음 주가 얼마나 기대되는지(upcoming week, 1: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7: 매우 기대한다), 지난 한 주간의 신체적 증상(physical symptoms), 운동한 시간(hours of exercise)을 측정해보았다.
표. Emmons와 McCullough(2003)의 연구결과
[표]는 이 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먼저 매주 동안 매주 감사하기(Grateful) 리포트를 제출했던 사람(평균 = 5.05)이 불평하기(Hassles) 조건 참가자(평균 = 4.67)와 통제하기 조건(Events)의 사람(평균 = 4.66)보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의 질이 높았다. 또한 다음 한 주에 대한 기대치도 매주 감사했던 사람(평균 = 5.48)이, 매주 불평한 사람(평균 = 5.11)과 통제 조건 사람(평균 = 5.10)보다 강함을 확인하였다.
두통, 경련/현기증, 복통/통증, 호흡 곤란, 가슴 통증, 여드름/피부 자극, 콧물/코피, 근육통/뭉침, 위통, 메스꺼움, 과민성 장염, 식욕 부진, 기침/목 아픔(headaches, faintness/dizziness, stomachache/pain, shortness of breath, chest pain, acne/skin irritation, runny/congested nose, stiff or sore muscles, stomach upset/nausea, irritable bowels, hot or cold spells, poor appetite, coughing/sore throat)과 같은 ‘신체적 증상’의 측면에서도 매주 감사한 사람들은 평균 ‘3.03’건을 보고하면서 매주 불평한 사람들의 ‘3.54’건 그리고 통제조건의 ‘3.75’건 보다 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 시간에 있어서도 매주 감사했던 사람들은 주당 평균 4.35시간을 운동하면서 주당 평균 3.01시간을 운동한 불평조건과, 주당 평균 3.74시간을 운동한 통제조건의 사람들보다 건강을 잘 관리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소소한 감사하기의 위력이다. 소소한 감사하기를 실천한 사람은 불평한 사람과 감사도 불평도 하지 않은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더 건강하고, 더 건강관리를 잘한다.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면 좋겠지만, 그것을 하나의 업무를 받아들여서 스트레스를 받으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매일 소소한 일에 감사하면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에 다 유익하며, 더 행복하다는 뜻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더 알고 싶다면,
Emmons, R. A., & McCullough, M. E. (2003). Counting blessings versus burdens: an experimental investigation of gratitude and subjective well-being in daily lif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2), 377-389.
Kim, D. (2016, September 27). The first cause of death is ‘cancer’: 10 to 30 are the most suicide deaths. Yonhapnews. Retrieved from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9/27/0200000000AKR20160927083700002.HTML
Kim, S. (2015, October 19). It’s more frightening than Mers. 60 times more tuberculosis deaths. Weekly Donga. Retrieved from http://weekly.donga.com/List/3/all/11/1510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