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트라우마와 언어사용의 변화
*본 콘텐츠는 제임스 패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의 저서 단어의 사생활(What our words say about us) (김아영 역) “5장 줄리아니 뉴욕 시장과 리어왕, 그들은 왜 갑자기 단어를 바꿔 말했을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그림 . Cohn, Mehl, & Pennebaker (2004)의 논문에서 발췌한 연구결과. Preoccupation with 9/11은 이 사건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측정하기 위해 블로거들의 글에 9/11 테러 사전에 등재된 27개 단어가 얼마나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것이다(The preoccupation index was calculated using a list of 27 target words such as Osama, World Trade Center, hijack, and Afghanistan (the September 11 dictionary). 상위 25%는 high 그룹으로, 26~75% 까지는 중위 그룹으로, 하위 25%는 low 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소식을 들은 후 몇 분에서 몇 시간 동안은 그 개인적인 트라우마에서 심리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얘기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집단 트라우마를 겪을 때는 이런 현상이 더 큰 규모로 일어날까? 미국에서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의 암살, 1941년 진주만 공습, 9/11 테러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는지 평생 기억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문화적으로 공유하게 되었을 때도 개인적인 사건을 겪을 때처럼 자기 자신에게서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할까?
이전의 문화적 격변과 달리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꽤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자주 이용하던 때였다. 우리 연구팀 중 컴퓨터를 상당히 잘 다루는 마이클 콘은 테러가 일어난 지 몇 주 후 내 사무실에 들러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수천 개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분석하여 테러 이전에서 테러 이후 몇 주 몇 달 후까지 사람들의 글과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추적해 보자는 것이다.
Cohn, Mehl과 Pennebaker (2004)는 당시 인기 있던 블로그 사이트 LiveJournal.com과 협력하여 1,084명의 블로거가 올린 게시물을 모았다. 이들은 9/11 두 달 전부터 두 달 후까지 일주일에 최소 서너 번씩 글을 올렸다. 우리는 미국에 사는 광범위한 연령대의 블로거를 선택했다. 요컨대 우리가 모든 자료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 올리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글이었다. 7만 건 이상의 블로그 게시물을 분석해 보니 테러 전후와 그 사이에 대명사와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사용에서 놀라운 변화가 드러났다.
누군가 죽은 직후의 음성 메시지와 블로그 게시물처럼, 블로거들이 9월 11일 사건을 알게 되자마다 <나>라는 단어의 사용 비율이 뚝 떨어졌다(그림-1D 참고, 사건과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기 위해 1인칭 단수 대명사 사용이 감소하면 심리적 거리는 증가함, 또한 확신을 가지지 않기 위해 would, should, could 조동사 사용이 증가함). 이게 다가 아니다. <나>라는 단어의 감소와 동시에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 비율이 훌쩍 뛰어올랐다(그림-1C 참고, 우리라는 단어 사용이 증가는 사회적, 관계적 정보처리가 증가했다는 증거).
세계무역센터 건물 붕괴 직후 24시간 동안 올라온 블로그 게시물 중 92퍼센트가 그 사건을 언급했다. 이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가족, 공동체, 국가의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이도록 강력히 촉구했다.
블로그에서 사용된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에 대한 연구는 대명사에 대한 연구 결과와 상통했다.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순간적인 감소와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폭발적인 증가 이후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사용은 평소대로 돌아갔다. 게다가 사람들은 테러가 일어나기 전보다 긍정적 감정을 더 많이 표현했다. 이러한 경향을 포착하기 위해 우리는 컴퓨터에 긍정적 감정을 반영하는 단어(사랑하다, 행복한, 축복)의 비율과 함께 부정적 감정을 반영하는 단어(미워하다, 울다, 걱정하다)의 비율을 계산했다.
사건 직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긍정적 단어의 사용 비율이 기저선 수준에서 급감했다(그림-1A 참고). 그러다가 4일 정도가 지났을 때 본래 기저선 수준으로 돌아갔다. 반면, 사건 직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부정적 단어의 사용 비율이 기저선 수준에서 급증했다. 그러다가 4일 정도가 지났을 때 기저선 수준으로 돌아갔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사항은 4일 후에 다시 기저선 수준으로 돌아갔던 긍정적 단어의 사용 비율이 10일이 지난 후에는 다시 기저선 수준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9/11 연구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그림-1B 참고). 사건 후 5일에서 6일이 지나는 동안 블로거들은 전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인지적 단어를 사용했다. 인지적 단어에는 인과적 사고를 반영하는 단어인 ‘왜냐하면, 야기하다, 영향을 끼친다’와 자기성찰적 단어 ‘이해하다, 깨닫다, 의미한다’를 반영하는 단어가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인지적 단어의 사용은 사람들이 자기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사건 직후 인지적 단어가 증가하는 현상은 이해할 수 있다. 다들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9/11 테러 일주일 후부터 두 달 동안 블로거들의 인지적 단어 사용 비율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낮아졌다.
1,084명의 블로거를 대상으로 한 이러한 분석은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거대한 감정적 격변 후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9/11 테러 이후 며칠 내로 대다수의 블로거들이 쇼핑 계획, 남자 친구, 포르노, 애완동물 등 다시 일상적인 주제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하지만 어떤 주제를 다루든 공통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당시 블로거들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양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통의 트라우마는 사람들을 화합하게 한다
공통의 트라우마가 있을 경우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더 많이 쏟고 자신의 공통의 정체성의 일부로 언급한다. <우리>라는 말을 <당신과 나>라는 따뜻한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데서도 이런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공통의 트라우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이 경우 사람들은 슬프기는 해도 우울하지는 않다. 정말로 우울한 사람들은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사용한다.
공통의 트라우마는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경험이다
9/11 이후 적어도 두 달 동안은 사람들이 긍정적 감정을 더 많이 표현했고 사건 이전 몇 달 동안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 연결되어 있었다.
공통의 트라우마는 사람들을 정보 순응적으로 만든다
9/11 이후 두 달 동안 사람들은 덜 분석적인 상태가 되었다. 사건 직후 일주일까지 사람들은 더 단순한 스타일로 글을 썼고, 이것은 그들이 그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때 사람들은 더 수동적이고 새로운 정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상태인 듯했다.
트라우마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은 감정적 격변을 겪은 후 몇 시간, 며칠, 몇 주 안에 대대적으로 변한다.
*더 알아보고 싶다면,
Cohn, M. A., Mehl, M. R., & Pennebaker, J. W. (2004). Linguistic markers of psychological change surrounding September 11, 2001. Psychological Science, 15(10), 687-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