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트라우마와 공동체의 따뜻한 언어사용
*본 콘텐츠는 제임스 패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의 저서 단어의 사생활(What our words say about us) (김아영 역) “5장 줄리아니 뉴욕 시장과 리어왕, 그들은 왜 갑자기 단어를 바꿔 말했을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9/11 연구 결과가 진화론적으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사바나에 작게 무리지어 다니던 집단이 다른 무리에게 공격을 당한다면 한데 뭉쳐서 외부에 주의를 기울이고 앞으로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개인과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적응 반응이다.
집단에 직접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구성원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감정적 사건이 일어날 때도 구성원들의 언어에서 이와 같은 양상이 나타날까? 답은 <그렇다>인 듯하다. 이 답이 그렇다인 것의 증거에는 페니베이커가 진행한 1989년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서 일어난 로마 프리에타 지진(Nolen-hoeksema & Morrow, 1991), 1991년 1차 걸프전(Pennebaker & Harber, 1993), 1997년 다이애너 비의 죽음(Stone & Pennebaker, 2002), 1999년 텍사스 A&B 대학교에서 전통 행사 준비로 모닥불을 쌓아올리다가 열두 명의 학생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사건 등이 포함된다(Gortner & Pennebaker, 2003).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모든 유형의 격변이 사람들을 단합하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더 이타적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쏟고, 다른 사람들과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텍사스 A&M 대학교 공동체는 상징적인 대형 모닥불의 붕괴로 발생한 학생 열두 명의 죽음에 동요했다. 당시의 인터뷰, 블로그,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드러난 이 공동체의 언어 역시 이타적이고 따뜻했다. 그뿐만 아니라 A&M 대학교의 사회적 유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해졌다. 다음해에 학생들의 신체건강을 추적한 결과, 질변으로 학생 보건소를 찾은 학생은 모닥불 사고가 일어나기 전년도에 비해 40퍼센트 줄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A&M과 가까운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는 그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인정하기 정말 힘든 일이지만, 끔찍한 경험은 우리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다. 트라우마는 그 본질상 몇몇 생명을 파괴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분명하지만 직관에 약간 어긋나는 한 가지 연구 결과가 있다. 고통에 쏟았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 건강한 행동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청구서를 지불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집을 청소하는 행동은 모두 심각하게 충격적인 소식에 대처하는 유서 깊은 방법이다. 그 사건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면 말하라. 혼자 있고 싶다면 혼자 있으라. 어떤 한 가지 대처법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를 발휘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1990년대에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사건 직후 72시간 안에 그에 대한 깊은 감정을 털어놓게 하는 선의의 심리학적 개입이 인기를 끌었다. 위기상황 스트레스 해소(Critical Incident Stress Debriefing, CISD)라는 이 프로그램은 꽤 합리적인 것으로 보였고, 구급대원, 대기업, 전 세계 정부 부서에서도 이 방법을 적용했다. 하지만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수많은 연구가 수행된 이후 지금은 CISD가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해롭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은 직후 몇 시간 동안 인터넷에서 단어를 사용하는 스타일을 살펴보면 감정적 사건을 겪자마자 깊은 감정을 다루는 것은 건강한 행동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감정적 격변을 겪은 후 사회적 지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 연구팀들과 내가 블로그를 연구하면서 목격한 가장 인상적인 일 중 하나는 사람들이 타인에게 얼마나 지지를 구하고 받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감정적 격변을 겪은 후 괴로움에 빠진 사람이 잔신의 감정 상태를 언급하기만 해도 친구들과 낯선 사람들에게서 격려의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온다.
*더 알아보고 싶다면,
Gortner, E. M., & Pennebaker, J. W. (2003). The archival anatomy of a disaster: Media coverage and community-wide health effects of the Texas A&M bonfire tragedy. Journal of Social and Clinical Psychology, 22(5), 580-603.
Nolen-hoeksema, S., & Morrow, J. (1991). A prospective study of depression and posttraumatic stress symptoms after a natural disaster: The 1989 Loma Prieta Earthquak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1(1), 115-121.
Pennebaker, J. W., & Harber, K. D. (1993). A social stage model of collective coping: The Loma Prieta earthquake and the Persian Gulf War. Journal of Social Issues, 49(4), 125-145.
Stone, L. D., & Pennebaker, J. W. (2002). Trauma in real time: Talking and avoiding online conversations about the death of Princess Diana. Basic and Applied Social Psychology, 24(3), 173-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