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유지편향과 손실회피
오랜 세월 변화에 적응해온 인간은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두뇌 신경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효율적 정보처리 시스템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 한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의 변화를 제외하고는 변화를 최소화하여 무엇인가를 새로 학습하는데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인간의 이 시스템은 인간으로 하여금 차이보다 유사성에 주목하게 만들고, 변화보다는 일관성에 더 높은 가치를 두며, 다양성보다는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원리에 더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인간의 시스템은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매우 효율적으로 작용한다. 이 시스템은 한 마리 맹수의 특성을 파악하여 도망치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면, 새로운 맹수의 특성을 또 학습할 필요 없이 유사한 것을 보면 바로 도망칠 수 있게 해주면서 생존력을 높여주었고, 어떤 동물이 어떤 풀을 먹고 죽는 것을 보면, 그것에 독이 있으니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까지 알려주었으며, 그와 유사한 것도 먹지 않게 해주었다.
간혹 이 시스템이 오류를 범할 때가 있는데, 맹독성의 식물이나 과일이 겉보기에는 독이 없는 식물이나 과일과 너무 닮아 있어서 사람들이 이것을 먹고 탈이 나게 되는 경우나, 농경시대에 한 땅에서 계속 같은 방법으로 같은 작물만 키우다보면, 지력이 쇠하여 수확량이 계속 줄어든다는 점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매우 드물게 잃어나며, 대부분의 경우에는 유사성을 파악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규칙을 통해 일반화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현재 상태나 구조를 변화시키기보다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두뇌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 이러한 정보처리와 행동 경향성에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Kahneman, Knetsch, & Thaler, 1991).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유지편향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무엇일까? 또 이러한 현상유지편향이 나타나는데 기여하는 인지적 기제는 무엇일까?
먼저 현상유지편향이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한 Hartman, Doane과 Woo의 1991년 연구를 살펴보도록 하자. 연구자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Pacific Gas and Electronic Company(PG&E)가 두 가지 서로 다른 서비스를 통해 전력을 공급하는 지역에 소속된 거주자 2,2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내용에는
1) 최근 1년간 정전이 몇 번이나 발생했는가?(frequency of outages per year)
2) 한번 정전이 시작되면 평균 몇 시간 정도 지속되었는가? (average duration)
가 포함되었다.
연구자들은 이 두 가지 설문조사를 토대로 정전 횟수가 적고, 정전 지속 시간이 짧아 비교적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제공하지만, 값이 비싼 서비스가 무엇이고, 정전 횟수가 많고, 정전 지속 시간이 길어 안정적이지 못한 전력 공급을 제공하지만, 값이 저렴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며칠 후, 위 설문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시 한 번 설문을 진행하였다. 설문은 현재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전력 공급 서비스를 포함한 총 6개의 전력공급 서비스 각각의 1년 간 정전 발생횟수와 정전 1회당 지속시간 평균, 현재 서비스보다 몇 퍼센트 비용을 더 내야 하는지 혹은 덜 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확인한 후, 향후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은지 선택하는 것이었다.
표 1. 6가지 전력 수급 서비스에 대한 정보. A는 사전 설문조사를 통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받고 있었던 집단이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은지 선택한 결과이고, B는 사전 설문조사를 통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안정성이 낮은 전력공급을 받고 있었던 집단이 어떤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은지 선택한 결과이다.
표-1은 참가자들에게 제공한 설문지와 현재 가격은 높지만 안정적인 서비스 받고 있는 집단과 가격은 낮지만 안정성이 낮은 서비스를 받고 있는 집단이 향후 어떤 서비스로 전력을 공급받고 싶은지 선택한 결과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표-1의 A는 안정성과 가격이 높은 서비스를 받고 있는 집단이고, B는 안정성과 가격이 낮은 서비스를 받고 있는 집단이다.
표-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 안정성 높고 가격도 높은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A집단의 60.2%가 가격이 5% 더 비싸지만, 더 안정적인 선택지(2번)와 5% 가격이 인하되면서도 비슷한 정도의 안정성을 가진 서비스(3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쓰던 전력공급 서비스(1번, status quo)를 선택하는 현상유지편향을 보였다.
더 극적인 결과는 안정성도 낮고 가격도 낮은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B집단에서 나타났다. A와 마찬가지로 B집단의 58.3%가 비슷한 안전성을 보이지만 10%나 저렴한 가격의 서비스(2번) 혹은 정전 지속시간이 짧기에 더 안정적 이지만 10% 정도 가격 인상이 있는 서비스(3번)가 아니라, 현재 서비스를 계속 사용하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처럼 현상유지편향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유지편향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현상유지편향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손실회피(loss aversion)이고, 다른 하나는 현시선호(revealed preference)이다(Kahneman et al., 1991).
먼저 손실회피란, 현재 이득을 기준으로 새로운 사건이나 대상의 장점보다는 단점, 이득보다는 손실에 주목하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이는 동일한 양의 이득에서 지각된 행복감보다 동일한 양의 손실에서 지각된 손실감이 더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사람들은 10만원을 얻었을 때 증가하는 행복감보다, 10만원을 잃었을 때의 손실감이 더 크다. 심지어 10만원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이에 2배인 20만원 획득해야 한다.
Hartman과 동료들(1991)에서도 손실회피 경향성이 나타난다. 현재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받고 있는 A집단 사람들은 현재보다 더 안정적이지만, 가격이 5% 인상되는 서비스를 볼 때는 더 안정적이라는 장점보다는 5%라는 손해에 더 주목하였다. 또한 안정성은 낮지만, 가격면에서 이득인 서비스에 대해서는 낮은 안정성에 주목하였다. 이렇게 손해되는 측면만 살펴본 결과, 현재 서비스보다 더 이익을 주는 서비스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가격이 같으면서 서비스의 안정성만 더 높아지는 것이겠지만, 이 세상에 그런 서비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현재 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받고 있는 B집단 사람들도 현재보다 더 안정적이지만, 가격이 10% 인상되는 서비스를 볼 때는 10% 손해에 더 주목하였다. 또 현재보다 덜 안정적이지만, 10% 더 저렴한 서비스를 볼 때는 서비스의 안정성이 더 낮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B집단도 현재 선택지보다 나은 서비스를 찾을 수 없었다.
두 집단 모두, 안정성과 금전적 이득을 둘 다 가져오는 못하는데 굳이 현재 서비스를 바꿀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현상유지편향의 두 번째 원인은 현시선호이다. 현시선호란, 겉으로 드러난 것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불확실한 것보다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전력을 공급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겉으로 드러난 것은 바로 현재 공급받고 있는 서비스이며,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문서로만 정보를 확인한 다른 서비스들이다. 즉 사람들에게 아직 사용해보지 않았기에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다른 서비스들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위험 감수 행동(risk taking)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에 도박을 걸기보다는 확실한 선택지를 선호하기에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risk taking이 발생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사람들은 이득보다는 손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손실회피(loss aversion) 경향과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위험회피(risk aversion) 성향이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향성은 사람들의 현상유지편향을 촉진한다.
*더 알고 싶다면,
Hartman, R. S., Doane, M. J., & Woo, C. K. (1991). Consumer rationality and the status quo.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06(1), 141-162.
http://www.jstor.org/stable/2937910
Kahneman, D., Knetsch, J. L., & Thaler, R. H. (1991). Anomalies: The endowment effect, loss aversion, and status quo bias. Th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5(1), 193-206.
http://www.jstor.org/stable/1942711
General Happiness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