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해소를 위한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효과
*본 내용은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의 엉터리 심리학(Psychobabble) “5장 대화가 문제를 해결한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우리 얘기 좀 해.”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했더라도 말이다. 소설가 로즈 매콜리(Rose Macaulay)는 한때 이렇게 불평한 바 있다:
“대화를 하고 나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흔한 착각 중 하나이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힘
우선 우리는 ‘언어’보다 더 광범위한 개념인 의사소통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통상 언어를 의사소통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사람들은 몸짓, 표정, 눈짓, 심지어 때로는 침묵으로도 의사소통을 한다.
실상 인간의 언어는 모든 감각정보를 표현하지 못하는 지극히 추상적인 의사소통 도구이다. 대표적으로는 색이 있다. 인간이 색으로 지각할 수 있는 가시광선은 실상 연속적인 스펙트럼이다. 그러나 인간이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색은 그중 지극히 일부이며, 언어에 따라서는 흰색과 검은색만 구분하는 언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각할 수 있는 색이 두 종류인 것이 아니다. 그저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두 가지 밖에 안 되는 것뿐이다.
또한 감정에 대한 언어도 마찬가지 이다. 정말 많이 행복하다는 말로도 감당이 안 될 정도인 행복이 있고, 정말 많이 화가 났다는 말로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화가 나는 상황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아닐지 혹은 화가 났다고 해야 할지 아닐지 애매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부족한 언어는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분노조차 ‘행복, 기쁨, 조금, 많이, 정말, 약간, 분노, 화’와 같은 몇 가지 한정된 표현을 결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러한 극적이거나, 혹은 미묘한 감정은 자동적인 정보처리에 의해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비언어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MIT에서 실시한 알렉스 펜틀런드(Alex Pentland)의 ‘리얼리티 마이닝(Reality Mining)’ 실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장치를 지급한 MIT 연구팀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비언어적 상호작용은 실제로 오고가는 대화의 내용보다 훨씬 믿을 만한 지표라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우리는 이러한 솔직한 신호에 적극적으로 주파수를 맞출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행동과 기분에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펜틀런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솔직한 암시라는 것은 흔치 않은데, 그 이유는 이러한 암시를 통해 신호를 받는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가 신호를 보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2차적 의사소통 채널은 언어적 의사소통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에 모의 연봉 협상의 최초 5분간을 지켜보면서 관련된 비언어적 행동을 세심히 살펴보면 누가 연봉협상에서 더 높은 연봉을 이끌어 낼지 아닐지 87%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
펜틀런드 팀이 초점을 맞춘 비언어적 의사소통 중에는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자동으로 상대방을 모방하게 되는 행동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서로 보디랭귀지, 표정, 언어 패턴, 목소리 톤 등을 모방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이러한 미세한 변화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의식적인 변화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난다.
심리학자 일레인 해트필드(Elaine Hatfield)는 유명한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가 상대방의 공격을 감지하여 펀치로 대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추가적으로 0.24초(240msec)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이보다 더 짧은 0.02초보다도 짧은 시간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한다. 정말 찰나의 순간에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매우 빠르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것이 언어의 한계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한다면 어설프고 어색하게 느껴지며, 상대방은 그런 어색함을 즉시 감지할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뭔가 자신을 통제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아직 이성이 남아 있어서 자기통제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더 문제는 상황이 감정적으로(감정싸움으로) 흐를수록 자기 행동과 의사결정을 감시하거나 수정할 수 있을 확률은 낮아진다는 점이다. 즉 감정싸움이 되면 당신의 보디랭귀지, 표정, 언어 패턴, 목소리 톤 등에 당신의 솔직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서 당신이 말하는 내용이 어떤 것이던(때로는 무엇을 말하는지와 관계없이) 당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경우,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당신의 배우자는 그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우리는 대개 말은 신중하게 선택해서 하지만,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내보내는 비언어적 행동을 통제하는 데에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소위 사회생활에서 말하는 ‘표정관리’가 안 된다). 그러나 상대방, 특히 배우자는 당신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금방 의중을 눈치 챌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당신의 배우자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당신 풍기는 비언어적 뉘앙스와 미묘한 행동의 의미를 학습해왔다. 감정에 대한 비언어적 의사소통 수단은 당신이 숨기려고 노력해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마련이라서 실상 당신이 의도적으로 숨기려고 할수록, “의도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구나”라는 언어적 단서와 함께 더 강조될 가능성이 높다. 이쯤 되면 당신의 배우자는 당신이 실제 감정을 말로 포장함으로 자신을 조종하려 한다고까지 느낄 수 있다.
갈등 상황의 양상은 다양할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 뭔가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보통 이들은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양보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할 경우 합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고, 대부분 의견의 차이만 확인하게 된다.
더구나 부부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때에는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둘 사이에 걸려 있는 이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어느 쪽도 피상적인 행동의 변화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관점에 대해 지지를 받는 것이다. 즉 부부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한쪽이 상대방의 세계관을 인정하는 순간, 인정한 쪽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역할을 맡게 된다. 즉 그 동안의 갈등상황이 양보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보를 하면 큰 희생이 따른다. 이렇게 평화를 위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세계관을 인정하게 되면, 억울함이라는 감정의 잔재가 남아 후에 다른 갈등상황이 발생했을 때 더 크게(때로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분출될 위험이 있다.
작가 알렉산더 페니(Alexander Penny)는 이렇게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동의하지 않는 상대방의 손을 잡아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관계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대화를 하면서 당신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배우자에게 강요하지 마라. 그런 대화는 안 하느니만 못한 대화이다. 비록 그 갈등상황에서 당신이 이긴다고 해도 결국 상처뿐인 승리일 것이고, 나중에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언어적 대화가 위험투성이라면 대안은 무엇일까? 바로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시도함으로써 닫혀 있는 상대방의 마음문을 열어야 한다. 먼저,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상대방의 내부에 있는 긍정적이고 즐거운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 또한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상대방에게 동의를 표시하는 것이다(상대방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 같은 것을 선택하는 것 등).
이것은 나의 단점이나 실패를 알면서도 나를 좋아해주고, 나에게 긍정의 신호를 보내두는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나에게 긍정적 신호를 보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이런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한다. 에느나 뷰캐넌(Edna Buchanan)은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친구는 당신의 참모습을 알고 나서도 계속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가벼운 스킨십의 갈등해소 효과
강력한 애착관계를 촉진해주는 옥시토신(Oxytocin) 호르몬을 생각해보자. 이 호르몬은 모유 수유를 하는 어머니의 몸 안에 분비되어 아기와의 애착을 촉진하고, 오르가슴을 느낄 때에도 분비된다. 또한 옥시토신은 마사지나 지속적인 아이 컨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의 신체적 접촉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서도 분비된다.
갈등상황에 놓인 부부나 친구가 안심시키듯 아이 컨택을 한 후, 미소를 지으면서 어깨를 툭툭 두르리는 것은 지난번 싸움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것보다 더 큰 치유 효과를 불러온다. 또한 적어도 훨씬 더 완화된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바로 이때 옥시토신이 분비됨으로써 갈등상황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신체접촉은 매우 강력한 효과가 있어서 크게 싸운 커플이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꾹 참고 몇분만이라도 손을 잡고 있을 수 있다면, 그 이후에 두 사람이 나눌 대화의 내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꾹 참고 손을 잡는 것이 정말 죽기보다 싫다면,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상대방을 긍정하는 행동을 보여 보자. 그 가운데 상대방의 마음은 풀리기 시작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감정을 회복하고 싶다면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해달라고 호소하는 언어적 대화가 아니라, 그저 상대방을 인정하고 안심시키는 비언어적 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알고 싶다면,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 대화가 문제를 해결한다? 엉터리 심리학(Psychobabble) (구계원 역) (5장, pp. 75-90). 서울, 서울: 동양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