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2등과 편찮은 2등
: 1등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의 행복
그림 . 1등이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1등이 아니어도 가치를 찾는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 Choi와 Choi (2017)의 연구는 후자가 더 행복한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개개인의 관점은 발생한 사건에 대한 대응방식 혹은 태도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물론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관점을 일상생활에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올림픽과 같은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특히 자국의 선수들이 금 ․ 은 ․ 동메달을 획득하거나, 그러한 메달이 종합되어 국가별 순위가 발표될 때, 감춰져 있던 한 사람의 관점이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기억을 되살려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올림픽을 떠올려 보자. 동계올림픽도 좋고, 하계올림픽도 좋다.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주 종목은 쇼트트랙이며 보통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같이 보게 된다. 쇼트트랙에서 1등을 했는가? 아니면 못했는가? 1등을 했다면, 같이 보던 사람들이 순위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겠지만, 1등을 못했을 때는 같이 경기를 시청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보게 된다. 화를 내면서 밖에 나가는 사람, 담배를 한 대 피고 오겠다고 하는 사람, 텔레비전을 당장 끄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분한 태도로 그래도 열심히 했다, 1등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 선수들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계올림픽 때의 양궁 경기는 어떤가? 이 역시 한국의 금메달 종목 중 하나다. 그런데 요즘에는 양궁의 규칙이 많이 바뀌기도 하고, 한국의 코치들이 전 세계 양궁팀을 맡으면서 한국의 선수들만큼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간혹 1등을 놓치는 일들이 벌어진다. 자! 이때 같이 보던 사람들의 태도가 어땠는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화를 내거나, 선수들 실력이 왜 저런지 모르겠다고 말하는가? 아니면 열심히 잘 했다, 1등 아니어도 고생한 선수들 칭찬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앞선 예에서 1등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나는 사람은 1등이 아니면 의미도 없고, 가치가 없다는 관점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1등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1등이 아니어도 그 과정 자체가, 그 노력 자체가, 또는 함께 경기를 시청했다는 자체가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는 관점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어떤 관점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할까? Choi와 Choi(2017)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였다. Choi와 Choi(2017)의 연구는 올림픽마다 반복되는 논쟁거리 하나에서 출발한다. 바로, 메달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전 세계적으로 금메달의 개수를 우선적으로 비교하는 국가들이 있는 반면, 메달의 총 개수로 순위를 매기는 국가들도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이 공식적으로 국가별 메달 순위를 집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논쟁은 매 올림픽 때마다 뜨거운 감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은 51개의 금메달과 100개의 총 메달을 획득한 한편, 미국은 36개의 금메달과 110개의 총 메달을 획득하였다. 금메달 우선 방식을 채택한 중국은 ‘중국 올림픽 1위’라는 타이틀을 내걸었고, 총 메달 방식을 채택한 미국 역시 ‘미국 올림픽 1위’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이렇게 메달 순위를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금메달 우선집계 방식은 “승리가 모든 것”이라고 보지만, 총 메달 집계방식은 모든 메달을 동등한 가치로 보게 된다. 이러한 차이는 금, 은, 동메달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잠재적인 요인인, ‘행복’을 추측하게 한다. 겉보기엔 도발적인 생각이라고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행복과 관련된 연구들을 살펴보면, 행복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의 차이는 ‘작은 것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느냐’에 있다고 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작은 것들로부터 행복을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불행한 사람들은 작은 것에서는 행복을 거의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작은 것에 얼마나 가치를 두는지의 차이가 올림픽 메달에 대한 가치의 인식에도 반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총 세 번의 실험을 거쳐 연구를 진행하였다. 우선 한국인 대학생 160명을 상대로 두 가지 실험을 벌였다. 첫 번째 실험은 이들에게 “올림픽에서 국가 순위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금메달 우선 방식(the gold-first method)과 총메달 방식(the total-medal method) 중 어떤 방식이 더 좋은 방법인가”라고 물었다. 이 결과, 행복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총 메달 방식을 금메달 우선 방식보다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메달 방식이 전적으로 좋다는 답을 8점, 금메달 우선 방식이 전적으로 좋다는 답을 1점으로 하는 등 전체 응답을 8점 척도로 나누고,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룹(행복 상위 50% 참가자)과 그렇지 않은 그룹(행복 하위 50% 참가자)으로 나눠 점수를 매겼다. 이 실험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행복그룹의 평균값은 4.67점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그룹의 평균값은 4.14점이었다. 이 수치는 행복한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메달 색깔에 덜 예민하며, 은메달과 동메달의 가치를 더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실험으로 이들 대학생들에게 “올림픽 금메달 1개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은메달 수와 동메달 수는 각각 몇 개인가”라고 물었다. 이 실험에서는 행복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금메달 1개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은메달과 동메달의 숫자를 더 적게 말했다. 행복한 그룹은 금메달 1개와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은메달과 동메달의 숫자를 각각 2.58개와 5.75개로 응답했다. 그렇지 않은 대학생 그룹은 그 수를 각각 4.85개와 11.16개라고 답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도 역시 행복한 사람들이 은메달과 동메달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런 경향성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인 성인 230명을 대상으로 세 번째 실험을 벌였다. 이들에게 두 번째 실험의 물음을 똑같이 던졌다. 온라인 조사로 이뤄진 측정 결과,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행복 상위 50% 미국인들은 금메달 1개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은메달과 동메달의 수를 각각 2.7개와 5.85개로 응답했다. 반면 행복 하위 50%의 미국인들은 그 숫자를 각각 3.38개와 8.06개로 말했다. 미국인들도 한국인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다는 게 확인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행복한 사람일수록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이런 믿음이 클수록 은메달과 동메달의 상대적 가치를 높게 지각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왜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보다 작은 것에 더 많이 감사하는 것일까? 더 연구해보아야겠지만 선행 연구들을 단서로 추리해본다면, 행복한 사람은 금, 은, 동메달을 “성취”라는 포괄적인 범주로 묶어 동등하게 보는 반면, 불행한 사람은 금, 은, 동이라는 각각의 범주로 따로 구별하여 보기 때문일 수 있다. 연구에서 우리는 ‘행복’이 심리적 과정과 행동의 중요한 예측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한 사람의 행복은 그 사람이 사회에서의 성공을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하는지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행복이 먼저 인지, 1등이 아니더라도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관점이 먼저 인지는 이 연구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1등만 의미있다는 관점을 가진 사람보다는 2등, 3등 혹은 순위에 들지 못했다 하더라도 진행 과정과 그 사이에 내가 깨달은 것들, 개인적인 진보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관점을 가진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혹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내가 1등만 의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행복은 메달색을 보지 않는다.
Happiness is medal-color blind
*더 알고 싶다면,
Choi, J., & Choi, I. (2017). Happiness is medal-color blind: Happy people value silver and bronze medals more than unhappy people.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68, 78-82.
https://doi.org/10.1016/j.jesp.2016.06.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