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열면 마음도 열린다
: 적게 질문하고 많이 듣기
물건을 판매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세일즈맨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매, 우엑, 윽(역겨움의 표시)’을 떠올릴 것이다(Pink, 2013).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하여 필요 없는 물건을 사게 만드는 사람, 강요하는 화법으로 듣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당장 물건을 구매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 ‘자신의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은 잘 안 들어주는 사람’, 이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일즈맨에 대한 대표적인 인식이다. 한 조사에서 마흔 네 개 직업을 대상으로 각 직업이 사회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사회적 책임감)에 대해 조사했다. 세일즈맨은 이 조사에서 43위를 기록하면서 세일즈맨보다 낮은 직종은 증권 중개인 하나뿐이었다(Pink, 2013).
그림 1. 사람들은 세일즈맨하면 ‘자신의 말만 많이 하고 남의 말은 잘 안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은 세일즈업계에서도 고객들과 신뢰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명망을 얻음으로써 많은 실적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Grant, 2013).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애덤 그랜트(Adam Grant)의 기브앤테이크 5장의 안경사 킬데어 에스코토(Kildare Escoto)의 사례는 이것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애덤 그랜트, 2016).
에스코토는 노스캐롤라이나 나이트데일에 있는 한 안경점에서 판매실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직원이다. 이 사람의 특징은 모든 손님에게 ‘Sir(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존경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에스코토는 차분하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경청하기 시작한다.
하루는 존스 부인이 시력을 검사기 위해 안경점을 찾아왔다. 한쪽은 근시(가까운 것은 잘 보지만, 먼 것이 희미하게 보임)이고, 다른 쪽 눈은 원시(먼 것은 잘 보지만, 가까운 것이 희미하게 보임)였던 그녀는 안과 의사로부터 다초점 렌즈 처방을 받았지만, 가격이 비싼 다초점 렌즈 안경을 꼭 써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안경점에서 시력 검사를 다시 받아 본 후, 안경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의사의 처방이 적절한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안경을 사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에스코토 안경사에게도 이야기 하였다.
언제나처럼 에스코토는 질문을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하시죠?”
이 질문을 통해 에스코토는 그녀가 컴퓨터 앞에서 일하며 모니터를 볼 때 고개를 돌려 근시인 눈을 사용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운전할 때처럼 먼 곳을 응시해야 할 때는 고개를 반대로 돌려 원시인 눈에 의존한다는 것도 추가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이러한 상황이 몹시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세일즈맨을 앞에 두고 약점을 노출한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존스 부인을 안심시켰다.
“만약 교정 렌즈가 필요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도 부인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될까요? 만약에 다초점 안경을 사신다면 주로 언제 사용하시게 될까요?”
그녀는 그 안경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할 때만 유용할 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실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하루 일과에서 몇 시간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거금을 투자한다는 것은 돈 아까운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대답을 들은 에스코토는 존스 부인이 다초점 렌즈의 용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초점 렌즈는 일할 때 뿐 아니라 운전할 때도 책을 볼 때도 TV를 볼 때도 등등 일상생활 전반에서 쓸 수 있음을 말해주면서 우리 눈의 선택적 주의 능력과 다초점 렌즈의 상호작용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존스 부인은 친절한 설명과 자신이 오해했던 부분에 대해 인정하였고, 다초점 렌즈에 관심을 가졌으며, 시험삼아 한번 써보았다. 그리고 몇 분 후,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725달러(한국 원화로 대략 80만원, 미국의 안경 가격은 테와 렌즈를 포함하여 평균 500달러 정도이다)라는 거금을 들여 다초점 렌즈를 구입했다. 에스코토의 질문과 경청이 성공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와 같이 질문을 통해 대화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경험을 심리학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의 즐거움’이라고 부른다(Pennebaker, 2012). 관련된 연구는 소그룹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것이 구성원들로 하여금 소그룹에 대한 소속감과 호감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관찰하였다.
먼저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몇 개의 소그룹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소그룹별로 15분간 대화 진행하게 하면서 ‘고향, 출신 대학, 직업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변하도록 했다. 그리고 15분이 지난 후에 자신 속한 소그룹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평가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한 사람(발언 시간이 길었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해당 소그룹을 더 마음에 든다고 평가하였다. 즉 자신의 발언시간이 길수록 소그룹에 대한 호감과 소속감이 증가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점이 이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소그룹의 다른 멤버들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었는가?”를 평가하게 하였다. 직관적으로 볼 때 자신이 말을 많이 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은 사람이 소그룹 멤버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고 응답했어야 한다. 그런데 페니베이커(2012)의 연구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소그룹에 대한 호감을 평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발언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던 소그룹 멤버들이 해당 그룹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연구자는 이것에 대해 “우리는 대부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즐거운 학습 경험으로 생각한다”고 해석했다. 즉 앞 이야기의 안경사 에스코토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자세로 질문을 던져 고객 스스로 답변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이다.
뛰어난 협상가들에 대한 연구도 질문하고 경청함으로써 협상 상대방에게 ‘배우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협상의 성공에 중요함으로 보여주었다. 닐 래컵(Neil Rackham)은 9년 동안 뛰어난 협상가와 상대적으로 실적이 낮은 협상가를 연구했다(Rackham, 1999). 그리고 이들의 협상 사례를 100개 이상 분석해 뛰어난 협상가와 그렇지 않은 협상가가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지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뛰어난 협상가는 상대방에게 21% 더 많이 질문하고 경청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협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은 10% 덜 언급함으로써 내가 내 이익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익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음을 표현하였다.
그림 2. 적게 질문하고 많이 들으면, 대화 상대방은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당신에 대한 호감도 함께 증가한다.
애덤 그랜트의 또 다른 연구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고 경청하는 안경사들의 연간 안경판매 평균실적이 제품의 장점만 언급하면서 강압적으로 판매하는 직업들에 비해 68%나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Grant, 2013).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적게 질문하고, 많이 듣는 것이 어떨까? 먼저 내 귀를 열자, 그러면 상대방의 마음이 열릴 것이다.
*더 알고 싶다면,
애덤 그랜트(Adam Grant). (2016). 5장 겸손한 승리. 윤태준 역. 기브앤테이크(원서: Give and Take) (pp. 228~229). 서울, 서울: 생각연구소.
https://goo.gl/e7Hxg9
Frank, R. H. (1996). What price the moral high ground?. Southern Economic Journal, 63(1), 1-17.
http://www.jstor.org/stable/1061299?seq=1#page_scan_tab_contents
Grant, A. M. (2013). Rethinking the extraverted sales ideal: The ambivert advantage. Psychological Science, 24(6), 1024-1030.
http://journals.sagepub.com/doi/abs/10.1177/0956797612463706
Pennebaker, J. W. (2012). Opening up: The healing power of expressing emotions. New York, NY: Guilford Press.
https://goo.gl/n7kgpm
Pink, D. H. (2013). To sell is human: The surprising truth about moving others. New York, NY: Riverhead Books.
https://www.amazon.com/Sell-Human-Surprising-Moving-Others/dp/1594631905
Rackham, N. (1999). The behavior of successful negotiators. Negotiation: Readings, Exercises, and Cases. Burr Ridge, Illinois: Irwin.
https://goo.gl/EuLw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