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_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대통령들은
어떻게 단어를 사용할까
영화 <대부 The Godfather>의 한 장면을 보자. 뉴욕에 있는 한 회의실에서 5대 마피아 조직의 두목들이 둘러앉아 있다. 이 회의는 마피아 조직들이 불법 마약 사업을 시작할지 말지 논의하는 자리다. 여기서 돈은 마피아 집단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돈 바지니 : 그럼 우린 합의했소. 마약 거래는 허용되지만 통제될 것이고, 돈 코르레오네는 동부를 보호할 것이고, 그러면 평화로울 거요.
돈 타탈리아 : 하지만 난 코르레오네에게 확답을 받아야겠소. 시간이 지나 그가 강해지면 개인적으로 복수를 시도하지 않겠소?
돈 바지니 : 이보시오, 여기 모인 우리는 다 분별 있는 사람이잖소. 우리는 변호사처럼 확신을 줄 필요가 없소…
다음 장면에서 코르레오네는 회의장을 빠져나와 변호사 톰 헤이건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 간다. 헤이건은 코르레오네가 협의에 대해 보다 자세히 논의하기 위해 다음에 타탈리아를 만날 것이라 생각하지만 코르레오네는 이렇게 말하며 진짜 의사결정자는 타탈리아가 아니라 바지니라고 암시한다.
“타탈리아 그 포주놈… 오늘에야 그게 여태 바지니 짓이엇다는걸 알았네.”
코르레오네는 바지니가 더 강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회의실 장면에서 바지니는 더 여유있어 보이는 반면 타탈리아는 더 뻣뻣하고 불안해 보인다. 두 남자의 언어역시 다르다. 바지니가 주로 사용하는 대명사는 <우리>이며 타탈리아는 <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사실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은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일관성 있는 지표고, <나>라는 단어는 낮은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다. 작가 마이로 푸조는 단어를 권력 및 지위와 연관 짓는 대명서 연구에 대해서는 몰랐겠지만 등장인물들의 언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직관적으로 알았다.
1. 지위를 알려주는 비언어적 요소들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집단의 서열을 알아내려는 머릿속 계산에는 누가 책임자고 누가 제일 아랫사람인지 혹은 누가 그 상황에서 불편해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포함된다. 이때 이용할 수 있는 정보는 <비언어적 단서>와 <언어적 단서>다.
한 세대의 연구자들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각각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해왔다.
[1]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주디스 홀(judith hall)은 수십 건의 뛰어난 과학적 연구를 신중하게 분석하여 몇 가지 유형의 행동만이 지위와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큰 목소리 :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지위가 낮은 사람들보다 더 크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끼어들기 :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더 잘 끼어드는 편이다.
신체적 친밀감 :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앉거나 서는 경향이 있다.
개방성 :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몸이 더 열려 있는 자세를 취한다.
지위와 관련된 이 네 가지 비언어적 요소를 기억하기 전에 이것들도 그렇게 일관성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주디스 홀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어떤 상황에서는 신뢰할 수 있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일부 비언어적 단서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같은 사회적 계층 내 사람들 끼리는 큰 목소리가 우위를 어느정도 예측하는 지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다른 사회적 계층 사람들끼리 대화할 때는 낮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 더 크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주디스 홀의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위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많은 행동들이 지위와 별로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덜 초조해 하고, 덜 웃고, 더 빨리 말하고, 목소리가 더 깊고 여유로우며, 다른 사람들을 더 만지고, 남들에게서 더 멀이 떨어져서 선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서 어떤 특징이 집단 내 지위와 권력을 알려주는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
2.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나>라는 단어를 적게 쓴다
사람들의 여러 가지 글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그들이 사회적 서열관계에서 어디쯤에 속하는지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보여준다. 지위는 내용어보다 기능어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 중 한 가지 척도는 바로 <대명사>다. 높은 위치에 속하는 사람들의 대명사 사용 패턴은 다음과 같다.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한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낮은 지위의 사람들에 비해 <나는>과 같은 1인칭 단수 대명사를 사용하는 비율이 훨씬 낮다.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 비해 1인칭 복수 대명사(우리는, 우리를, 우리의)를 높은 비율로 사용한다.
<너> 혹은 <당신>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말이나 글로 된 대화에서 <너는>, <당신은>, <너희들은>, <당신들은> 등과 같은 2인칭 대명사를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상황에 따라 다른 종류의 단어들이 지위와 관련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나>, <우리>, <너(너희)>와 같은 대명사는 유독 일관성 있게 지위를 드러낸다.
대명사는 모든 단어 범주에서 가장 사회적인 성향이 강하며, 우리는 그런 대명사를 대화할 때 특히 많이 사용한다.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이 대명사에 나타난다. <나>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너>라는 것은 상대방을 보고 있거나 그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대화하는 동안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추적하는 흥미로운 실험 연구들이 몇 가지 있다. 좀 더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들이 말할 때는 듣는 사람들을 보는 반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는 다른 곳을 보는 경향이 있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이와 정반대로 행동한다. 이들은 들을 때는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반면 자신이 말할 때는 다른 곳을 본다.
<나(혹은 저)>라는 단어가 자신을 향한 관심을 반영하는 동시에 사회적 사다리의 낮은 곳을 향한다는 견해는 꽤 합리적이다.
<너> 혹은 <당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말할 때 상대방을 가리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라는 단어와 <너> 혹은 <당신>이라는 단어의 주의 및 지위와의 연관성은 이치에 맞는다. 그럼 <우리>라는 단어는 어떨까?
3. <우리>라는 단어의 다섯 가지 의미
<우리>라는 단어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다른 의미로 쓰인다.
<너와 나>라는 의미의, 우리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우리>다. 이 경우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너 빼고 내 친구들>이라는 의미의, 우리
다른 직장 동료에게 말하길, “그 다음에 우리는 아침을 먹었지” 즉 제 3자와의 경험에 대하여 말할 때 쓰는 <우리>의 사용은 끈끈한 <우리>에 당신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타적이다.
<너희들>이라는 의미의, 우리
이 경우 말하는 사람은 <우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해달라고 정중하게 요구하는 <우리>이다. 예컨대 수업이 시작했음에도 학생들이 떠들고 있으면 나는(글쓴이) “우리 서로 그만 얘기할 수 없을까? 라고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라는 의미의, 우리
가끔 영국 왕실에서 쓰이는 <우리>처럼, <나>라는 의미의 <우리>는 책임을 분산하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암시하기 위해 사용된다.
<생각이 같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우리
생각이 같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우리>는 <우리>중에서도 정치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유형이자 의미가 가장 모호한 유형이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정부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결정적 특징은 이 단어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구체화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리>는 <너와 나>라는 뜻의 <우리>만 진짜로 인칭을 나타내고 사람과 듣는 사람의 유대를 강화하거나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네 가지 <우리>는 오히려 대화하는 사람들 간에 벽을 세운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감에 따라 거리감이 느껴지는 <우리>를 더 자주 사용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종합하면, 비언어적 단서와 언어적 단서는 공식적 지단과 비공식적 집단 모두에서 사람들의 상대적 지위를 드러낼 수 있다.
4. 이메일에서 교묘하게 드러나는 나와 상대방 사이의 지위의 높낮음
당신 자신의 지위를 알아내는 법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최근 당신이 누군가에게 보낸 이메일 열 통을 살펴보고, 반대로 그들이 당신에게 보낸 이메일 열 통과 비교해 보라. 각자 사용한 <나(혹은 저)>라는 단어의 비율을 계산해보라. 시간이 남으면 <너> 혹은 <당신>이라는 단어와 <우리>라는 단어도 똑같이 계산해보라. 통계적으로는 <나>라는 단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지표다.
일반적 원칙에 따르면 <나>라는 단어를 적게 쓰는 쪽이 사회적 서열이 더 높은 사람이다.
[2] 우리가 이것을 아는 이유는 매트 데이비스와 내가 몇 년 전 수행한 이메일 연구 덕분이다. 우리는 지원자 열 명을 모집해 그들이 열다섯 명 정도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분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메일 자체에 더하여 우리는 지원자들로 하여금 이메일을 주고받은 상대에 대하여 다양한 질문에 점수를 매겨보게 했다. 그 중 중요한 질문은 자신과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 지위>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상대는 7점 만점인 질문지에서 상대적 지위로 평가받았다. 예컨대 지원자가 대학원생이면 교수는 6점이나 7점, 고등학교 동생은 1이나 2점을 받을 수 있었다.
결과는 명백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이메일에서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했고, <너> 혹은 <당신>이라는 단어와 <우리>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이것은 미미한 결과가 아니었다. 이러한 경향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상당히 크게 나타났다.
지위의 높고 낮은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다들 드러내놓고 언급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위를 의식하지 못하고, 특히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는 더욱 그렇다.
5.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라는 말은 자신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이다
이메일이나 편지를 주고받을 때와 달리 대화할 떄는 별 생각없이 입에서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이메일이나 대화는 매우 다른 형태의 사회적 상호작용이지만 문자를 이용한 소통에서 지위를 드러내 보이는 단어들은 대화에서도 같은 역할을 한다.
[3] 일상 대화 속 대명사 사용과 지위의 연관성에 대한 초기 연구에서, 우리 대학원생 이와 캐시위츠(Ewa Kacewicz)는 <알아가기 get-to-know-you> 실험을 수행할 학생들을 모집했다.
이 실험에서는 낯선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방에 들어가게 한 다음 10분 동안 마음 가는 대로 대화하게 하고 그 장면을 녹화했다. 대화는 지극히 무난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전공은 뭐예요? 학교 맘에 들어요?” 대화가 끝나면 각각 다른 방으로 들어가 그 대화를 평가했다. 둘 중 어느 쪽이 지위가 높은지, 그리고 누가 대화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었는지에 대해 두 사람 다 동의하는 편이었다.
캐시위츠의 연구와 비슷한 연구들에서 도출된 결과들은 명확하고 연관성 있었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우리>라는 단어와 <너> 혹은 <당신>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한다.
인터넷 채팅에서도 똑같은 양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충격적인 점은 대화에서는 사회적 서열관계가 매우 빨리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캐시위츠의 첫 번째 실험에서 대화를 나누게 될 두 사람은 실험실에 와서 처음 본 사이였다. 이들은 둘 다 자리에 앉고 카메라가 켜질 때까지 말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들은 대화한지 1분 만에 그들 사이의 서열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당신은 인터넷으로 낯선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는 서열이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리 오래걸리지 않는다.
[4] 인터넷 채팅 연구는 내가 동료 샘 고슬링, 대학원생 일라 토스칙과 함께 대형 강의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수행안 연구의 일부였다.
이 연구에 참가한 수백 명의 학생들은 특정한 시각에 인터넷에 접속해서 무작위로 짝을 배정받았다. 이들은 15분 동안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대화를 나누라는 요청을 받았다. 15분 후 그 대화에 관한 설문지에 답했다.
대화 연구와 마찬가지로 서열관계는 3분 안에 명확해졌다. 우리가 이 결과에 놀란 이유는 외모에 관한 단서, 목소리, 두 사람의 지위를 판단할 수 있는 그 어떤 실마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에서 오간 대화를 조금 읽어보니, 서열관계가 정해지는 과정을 이해하기가 조금 쉬워졌다. 대화 초반에 두 사람은 각자 자신에 관한 단서를 던져주는 동시에 상대에 관한 단서를 노렸다. 일부 참가자들은 상대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미묘한 단어를 쓰기도 했다. 다음은 두 여학생이 대화를 나누는 도입부다. B가 두 여학생이 대화 후 작정한 설문지에서 더 우위에 있다고 동의한 사람이었다.
A: 이봐요, 여기 누구 있나요?
B: 나 있어요. 안녕하세요.
A: 오, 안녕하세요
B: 난 브리타니예요.
A: 우리 무슨 얘기 할까요? 난 크리스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B: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당신 남자예요 여자예요?
A: ㅋㅋ 여자요.
B: 크리스는 뭐랄까, ㅋㅋㅋ 좀 헷갈리는 이름이잖아요. 만나서 반가워요. 몇 학년이죠?
A: 신입생이요. 당신은요?
B: 좋네요. 난 2학년이에요. 전공은요?
A: 스튜디오 미술인데 난 사진 보도를 하려고 커뮤니케이션 쪽으로 전과할거예요. 당신은요?
B: 역사학이요.
A: 지금 뭐 준비하는 거라도 있어요?
B: 음, 난 고등교사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데 그거 말곤 없어요. 당신은요?
A: 난 사진가가 되려고 생각 중이에요. 난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싶진 않아요.
B: 사진 좋죠
A: 난 미술을 진지하게 하고 있지는 않아요. 고등학교 때 미술을 해서 여기 미대에 들어올 수 있었죠.
처음 두 사람이 같은 스타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데 주목하자. 하지만 브리타니는 세 번째 발언으로 은근히 기 싸움을 한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이후 둘 다 상대의 서열을 판별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탐색한다. 하지만 브리타니는 크리스가 일단 더 어리고 덜 유망한 분야를 전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심리적으로 주도권을 잡는다.
흥미롭게도 둘은 즐겁게 대화했고 서로 맘에 든다고 대답했다. 대화 시간이 끝날 때쯤 두 사람은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나중에 다시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그들이 만나서 커피 한 잔을 하게 되더라고 여전히 두 사람이 보기에는 브리타니의 지위가 더 높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지위를 판단하는 행동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훨씬 더 간단한 잣대로 지위를 가늠하는 사회도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사회적 서열을 판단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가 나이다. 나이가 같으면 그 다음에는 재산이나 수입으로 판단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서로의 생활에 관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일이 흔하다. 서양에서는 무례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6.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대통령, 그들은 어떻게 단어를 활용할까?
[5] 정치심리학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책 <감성의 정치학 The Political Brain>에서 저자인 드루 웨스텐은 성공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유권자드롸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논리, 지성,이성도 분명 굉장히 좋은 자질이기는 하지만 당선을 좌우하는 것은 선거운동의 사회적, 정서적 차원이다.
정치인들의 사회적 – 정서적 성향은 바디 랭귀지, 어조, 그리고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감지될 수 있다. 언어적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들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단어로 끊임없이 흔적을 남긴다.
사회적 – 정서적 성향을 측정하는 꽤 간단한 방법은 인칭 대명사와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얼마나 자주 사용되는지 세보는 것이다. 일반적인 원칙에 따르면 자기성찰적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나>. <우리>, <너(당신, 너희들, 여러분)>, <그녀>, <그들>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인칭 대명사를 자주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긍정적 및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감정적으로 더 깨어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대통령들이 연설에서 사용한 대명사와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전반적인 사회적–정서적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몇몇 대통령은 전임자보가 훨씬 더 사회적 – 정서적 성향이 강했다.
신년 국정 연설은 본래 이론상 격식 있는 연설이다. 그 어조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목소리가 반영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대통령의 심리학적 기질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지금은 흔히 열리는 기자회견 덕분에 대통령의 언어를 더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시작으로 기자회견은 언론과 대통령 사이의 자유로운 소통의 장으로 녹취나 저장이 가능하도록 발전했다.
흥미롭게도 대통령들의 기자들과 대화하는 방식은 신년 국정 연설과 언어적으로 상당히 비슷하다. 조지 W. 부시는 국정 연설 때와 같이 기자 회견장에서도 가장 사회적 – 정서적 언어를 사용하는 대통령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로 사회적 – 정서적 언어를 가장 적게 사용한 대통령은 단연코 닉슨이었다.
7. <워터게이트 사건> 전후, 닉슨 대통령의 단어 사용에 나타난 변화
상대적 지위에 관한 최고의 자연 실험 중 하나는 한 세대 전에 만들어진 녹음 테이프에서 시작되었다. 녹음된 내용은 미국을 뒤흔들었던 워터게이크 사건이 터지면서 공개되었고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리처드 M. 닉슨은 1968년 미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2년 후 백악관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 비밀 녹음 장치를 설치했다. 이 일에 대해서 소수의 참모만 알고 있었고, 녹음된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닉슨 자신은 숨겨진 마이크의 존재에 그리 개의치 않았다.
4년 뒤 닉슨은 처음부터 여론조사에서 절망적으로 뒤처지던 민주당 후보에 맞서 재선에 도전했다. 닉슨의 고위급 참모들 중 일부는 닉슨의 재선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많은 불법 활동을 용인했다. 이들의 계획 중에는 민주당 선거운동본부에 몰래 숨어들어가 민주당 선거 전략가들의 전화기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건물을 빠져나가는 순간 야간 경비원 한 명 때문에 지역 경찰에 붙잡혔다.
침입 사건 이후에는 이 일을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넉 달 후 치른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젊은 두 기자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든 끝에 닉슨의 최측근 보좌관이 얽혀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3년 호부터 1974년 8월 닉슨이 퇴진할 때까지 대서특필되었다.
이 사건과 가장 관련이 깊은 테이프는 닉슨과 법률 고문 존 딘, 민정수석 존 얼리크먼, 수석보좌관 H. R. 홀드먼과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었다. 이 기록은 나 같은 언어 분석 연구자와 역사가들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것이었다.
[6] 실험실 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위가 높은 닉슨은 보좌관들에 비해 <나>라는 단어를 더 적게 사용했다. 전반적으로 1인칭 단수 대명사는 닉슨이 사용하는 단어 중 3.9 퍼센트를 차지한 데 비해 보좌관들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는 5.4 퍼센트를 차지했다. 닉슨은 <우리>라는 단어(1.4 퍼센트 대 0.8 퍼센트)와 <당신>이라는 단어(3.4 퍼센트 대 1.8 퍼센트)를 보좌관들에 비해 더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녹취록을 자세히 분석해 보니 닉슨은 세 사람과 각각 매우 다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닉슨의 1인칭 단수 대명사 사용 비율은 홀드먼과 대화할 때보다 딘이나 얼리크먼과 대화할 때 현저히 낮았다. 이러한 대명사 사용 패턴은 닉슨이 홀드먼과는 동등하게 대화한 반면 딘과 얼리크먼에게는 훨씬 더 거리를 두었음을 알려준다. 훌륭한 추측이기는 한데 정말 그럴까?
우리가 녹취록을 분석하기 시작할 때 사건에 연루된 사람 중 살아있는 사람은 존 딘 뿐이었다. 그는 나의 이메일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딘 자신과 닉슨의 관계는 공식적이고 정중했다. 흥미롭게도 딘은 워싱턴 정치에 관해서는 자기 <머리 꼭대기에> 있을 때가 많았던 얼리크먼을 거만하지만 불안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딘은 워터게이트 테이프에서 자신과 관련된 부분을 들으면서 얼리크먼이 홀드먼의 자리를 노리고 그토록 기 싸움을 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얼리크먼은 닉슨과 대화할 때 과하게 애를 쓰다 못해 비굴하다시피 했다. 닉스는 더 공식적인 관계였던 딘보다 얼리크먼에게 심리적으로 더 거리를 두며 대했다.
<나>라는 단어에 관한 마지막 분석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매우 높은 지위와 자아 존중감을 즐기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라는 단어를 매우 적게 사용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1972년 6월에서 대략 11월까지 보좌관들과의 대화에서 닉슨의 <나>라는 단어의 사용 비율은 2~4퍼센트였다. 하지만 일이 계속 커지고 닉슨의 지위가 손상됨에 따라 <나>라는 단어의 사용은 나날이 늘어갔다. 1973년 7월, 마지막 테이프가 녹음될 무렵에는 전체 사용 단어에서 <나>라는 단어의 평균 사용 비율이 7~8퍼센트 근처까지 올라갔다. 요컨대 닉슨은 자신의 정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함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덜 지배적이고 덜 강력한 태도로 대하게 되었다.
워터게이트 녹취록은 우리가 닉슨의 눈(혹은 입)을 통해 보좌관들 사이의 서열을 가늠할 수 있음도 보여준다. 우리는 닉슨이 민정수석인 얼리크먼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수석보좌관인 홀드먼의 말에 더욱 민감하고 열린 태도로 반응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대명사 연구를 통해 보좌관들끼리의 상대적 서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대통령 집무실 안에서는 닉슨이 얼리크먼보다 딘에게 더 높은 지위를 부여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 딘과 얼리크먼이 함께 있었을 떄는 얼리크먼이 딘보다 지위가 높았을 수도 있다. 한 집단의 지위 서열의 복잡성은 다른 집단 사람들의 분석을 통해서만 밝혀낼 수 있다.
8. 대통령들이 남긴 단어의 흔적들
사람들이나 과거의 작품을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가 문자로 쓰인 단어라는 사실은 역사학자와 문학 연구자들에게 그리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텍스트 분석보다 주로 역사적인 작품을 읽는 데 의존한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최근 몇 년 사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정치학에서 그렇다.
우리는 역사적 인물들이 남긴 흔적인 단어를 분석함으로써 역사적 사건들을 재해석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는 로널드 레이건
로널드 레이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래 사회적으로 가장 능숙한 대통령으로 여겨진다. 레이건이 연설과 기자회견에서 사적이고 감정적인 언어를 사용한 비율은 항상 평균 근처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의 언어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사회적 – 정서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오해일 수 있다. 레이건은 그보다는 뛰어난 이야기꾼에 가까워 보인다. 이야기를 하려면 사회적 단어와 함께 과거형 동사가 필요하다. 이 두가지 차원을 결합해서 분석해 보면, 이야기꾼으로서 레이건의 점수는 현대 대통령 중 그 누구보다고 훨씬 높다.
레이건의 공식 전기 작가였던 에드먼드 모리스는 레이건으로 하여금 사적이거나 감정적인 측면에서 마음을 터놓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전통적인 전기를 포기했다.
모리스에 따르면 그는 <온화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1988년, 편집자 애드리아나 보쉬는 레이건에 대해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TV 2부작 시리즈를 작업한 후 이렇게 말했다.
“레이건은 자기성찰에 빠지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릐 아들 론이 우리이게 이렇게 말했듯이 말이에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지 알았던 사람은 없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도 자기 자신을 알았던 적이 없죠.>”
버락 오바마는 왜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했을까?
<나>는 구어체에서 흔히 쓰이지만 우리는 <나>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라는 단어가 자신감이나 거만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 있는 사람들이나 항상 <나>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오바마는 이와 관련된 완벽한 연구 대상이다. 2008년 오바마가 당선된 지 며칠 지나지 않다 전문가들, 특히 그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그가 <나>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문제는 오바마의 <나>라는 단어 사용을 굳이 세어보거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실제로 현대의 대통령들 중 누구보다도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한다.
우리 기억속의 어떤 대통령보다도 실제로 오바마가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한다면 왜 그토록 똑똑한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일까?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하거나 겸손한 사람에 비해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나>라는 단어를 훨씬 높은 비율로 사용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 거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뇌는 그 믿음을 입증할 증거를 찾기 시작할 것이다.
오바마의 불쾌한 <나>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 가장 크게 떠들어댄 평론가들이 오바마와 정치적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오바마가 인상적일 정도로 적게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했다는 것은 오바마가 자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헤인즈 존슨은 아이젠하워 이후 대통령들을 연구해온 발군의 정치 보도 경력을 되돌아보며 <오바마는 내가 본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자신감 넘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대명사 사용은 존슨의 관점을 뒷받침한다. 오바마의 언어는 자기 확신과 함께 감정적 거리를 암시한다.
9. 조지 W. 부시, 이라크 전쟁 전후로 단어 사용에 변화가 생기다
<나>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을 따라간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거나, 불안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않는 사람들은 1인칭 단수 대명사를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감이 넘치거나,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나>라는 단어의 사용 비율이 낮아진다.
우리는 부시가 질문에 대답하면서 사용한 <나>라는 단어들을 분석함으로써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을 고려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밝혀낼 수 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된 지 9개월 만에 오사마 빈 라덴과 그 조직원들이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방부 건물을 공격했고 그 사고로 3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못 된 2001년 10월 7일, 부시는 아프가니스탄에 공격을 가했고 빈 라덴을 잡으려는 헛된 시도로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무너뜨렸다. 부시는 이라크로 눈을 돌려 그들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2003년 3월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이것은 대통령으로서 부시가 행한 조치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 중 하나다.
부시가 취한 모순된 조치들은 그의 성격 탓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교적 꾸밈없는 사람이라고 보았고 그는 가끔 소년 같은 기쁨, 심술, 방어적인 모습, 연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기자회견 기록을 읽어보면 한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도 그의 양면적인 성격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상관없이 그 기록들을 통해 따듯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이따금 거만하고 못된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다.
부시의 첫 번째 임기를 규정하는 세 가지의 서로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다. 첫 번째 사건은 9/11 공격이었다. 미국 국민들에게 참고 견뎌야 할 존재였던 부시는 이 사건으로 며칠 만에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이라크를 침공하겠다는 그의 결정이었다. 세 번째 사건은 2003년 3월의 실제 이라크 침공이었다.
위 그래프는 기자회견에서 부시의 <나>라는 단어 사용 빈도를 월별로 나타낸 것이다.
부시의 <나>라는 단어 사용이 처음으로 급격히 떨어진 것은 9/11 테러 직후였다. 이때는 <우리>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테러 사건이 부시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고 이후 몇 달에 걸쳐 그의 신경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테러 대처 등 산적한 긴급 사태로 온통 집중되었다. 그러다 우리는 2001년 11월 이후 부시의 <나>라는 단어 사용 비율이 거의 매달 조금씩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나>라는 단어 사용이 낮아진 시기는 2002년 9월 중순이었다. 이 때 부시 행정부의 몇몇 인사들이 외교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부시 독트린이라고 하는 이 정책의 일부는 미국이 적대적 의도로 한 나라를 선제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라크 침공)
<나>라는 단어의 사용 감소는 위협을 실행하려는 사람들이 보내는 강력한 신호다. 우리는 이와 같은 언어의 양상을 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기 전 트루먼 대통령의 언어에서도,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 히틀러의 언어에서도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흥미롭게도 전쟁이 시작된 이래 부시의 <나>라는 단어의 사용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 2003년 5월 부시가 <임무 완수> 연설을 했을 때, 즉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전쟁이 끝났다고 여겼을 때 <나>라는 단어의 사용 비율은 일시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2003년과 2004년 여름에 나타난 <나>라는 단어의 현저한 감소는 그가 전쟁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2004년에는 그의 결정에 관해 묻는 언론에 대해 취한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10. 단어의 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다
나는 지금껏 단어 분석이 정치와 역사 연구에 열어줄 수 있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소개하려고 노력해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폭력적인 집단이 남기는 언어적 지문이 폭력적이지 않은 집단의 언어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비폭력적이었던 집단이 점점 더 폭력적인 성향을 띠게 될 때 그들의 언어도 따라서 변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언어 분석이 역사적 사건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11. 지도자의 언어
지도자라는 역할이 단어 선택에 미치는 영향
작은 집단 안에서 리더는 정말로 추종자와는 다르게 말한다.
텍사스 대학교 레드맥컴즈 경영대학의 이선 버리스(Ethan Burris)와 연구진들은 경영학과 학생들을 약 40개 팀으로 나누어 팀 과제를 함께 해결하게 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네 명으로 구성된 팀은 작은 컨설팅 회사가 되어 가상의 기업 고객 지원 부서를 개선할 수 있는 컨설팅을 해야 했다. 과제는 팀 별로 협력해서 해결책을 만들어 내야 하는 복잡한 것이었다.
버리스의 연구가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각 팀의 리더를 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이 인성 검사 점수 분석을 바탕으로 가장 잘할 것 같은 리더를 골랐다고 각 팀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실 무작위로 리더를 정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팀원들이 자기 팀 리더가 정말로 유능하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각 팀의 소통 과정은 녹음되고 문자로도 기록되었다. 결과는 우리가 전에 발견했던 사실들과 일치했다. 리더 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나>라는 단어를 가장 적게 사용했고 <너>라는 단어와 <우리>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맡으면 그가 사용하는 단어도 달라진다는 뜻이다.
버리스의 연구는 지도자 <역할>이 언어에 반영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가 쓰는 단어로 장래의 지도자적 자질을 예측할 수 있을까?
지도자를 제대로 선택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이 환경에 따라 훌륭한 지도자가 될수도 아닐수도 있다는 점이다.
유능한 지도자들만의 특정한 언어 사용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평소 언어 생활을 토대로 장래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너무 이른 이야기다.
사람들이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동기와 배경이 있는 예측 불가능한 집단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하려면 단어 분석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지배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더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버리스의 연구에서는 지도자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그 집단이 객관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 효과는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구조가 더 느슨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즉, 이 경우에는 지도자가 지배적인 언어를 사용한 결과 집단의 수행 능력이 더 낮아졌다.
지도자가 사용하는 단어로 전쟁의 발발을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도 제기되어 왔다.
[7] 벨기에의 심리학자 로버트 호겐드라(Robert Hogenraad)는 지도자들이 연설에서 힘과 협력에 대한 주제를 어떻게 언급하는지 연구했다.
지도자가 연설 중에 협력과 친선을 자주 언급하고 힘과 공격성, 지배권 등에 관해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전망은 대체로 양호하다. 하지만 힘과 공격성에 관한 주제가 대두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배려나 관계에 대한 단어들이 감소한다면 경계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힘과 관련된 주제를 자주 언급하고 협력과 관련된 주제를 잘 언급하지 않는 것은 전쟁을 확실히 예측하는 지표다. 북아일랜드나 구 유고슬라비아의 분쟁, 조지아와 러시아 간의 전쟁, 중동의 다양한 분쟁 지역들은 모두 분쟁의 발생에 앞서 해당 국가 지도자들의 언어에 변화가 있었던 사례들이다.
지도자들은 단어 스타일을 바꿔 더 유능해 보일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연설, 광고, 짧은 대화 등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청중 혹은 상대방이 그들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실 우리 뇌는 말하는 사람이 <나>나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기억하고 그에 맞춰 반응한다. 단지 어떤 사람을 지도자처럼 말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의 언어 사용 스타일을 세심하게 다듬어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도자 자리를 얻는 것과 유능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유능한 지도자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 그들이 동의할 만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지도자의 역량은 단지 연설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지도자에게는 광범위한 사고와 사회적 기술이 요구된다.
지도자들은 먼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듣고 분석함으로써 더 유능해질 수 있다. 존 케리에게 <우리>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하면 청중들에게 더 따뜻하고 친해지기 쉬운 인상을 주리라고 잘못 판단했던 케리의 참모들을 떠올려보라.
케리는 자신이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차갑고 진실하지 못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잠재력 지도자로 하여금 자신의 언어와 그 의미에 더 신경 쓰게 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향상시키고 더 나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12. 지위의 몰락은, 단어마저도 바꿔버린다
서열은 서로 소통하기 시작한 지 몇 분만에 정해지고 소통에 참여한 주체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할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지위 경쟁은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회적 서열의 존재는 민주주의와 평등주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어긋날지도 모르지만, 빠르고 효과적으로 서열을 정하는 우리의 습성은 이후 모든 상호작용을 더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당신은 <나>, <우리>, <당신>이라는 대명사가 지위, 권력, 자신감, 거만함, 지도자의 자질 등과 공통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속성들이 모두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최근 시행된 조직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에게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없더라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유능한 지도자는 거만함이나 권력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다른 범주에 속하는 단어들로 지위와 권력을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위와 권력 둘 다 사회적 서열을 알려주는 지표로 간주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