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4_먼저 돈을 내고 나중에 소비하라
1. 후불 결제의 탄생
[1] 1949년 한 중년의 사업가가 뉴욕의 어느 음식점에서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던 찰나였다. 그는 호텔방에 지갑을 두고 나온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의 아내가 급히 달려와 계산을 해주어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는 자신처럼 곤혹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현금을 대체할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최초의 신용카드(다이너스 클럽 카드 Diners Club card)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사업가였던 프랭크 맥나마라 Frank Mcnamara이다.
저녁시간 자리에서 곤혹을 치른 한 사업가의 경험에서 기술 혁신이 비롯된 이래, 빨리 소비하고 나중에 돈을 내는 경향이 널리 퍼졌다.
2010년 소비자 가전협회 Consumer Electronics Association, CEA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평화와 행복이 크리스마스 소원 리스트에서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2] 그런데 2011년 이 두 가지 소원은 모두 아이패드에 밀려나버렸다.
소비자들은 아이패드 같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온갖 콘텐츠를 즉시 다운로드 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이런 ‘선 소비 후 지급’ 패턴은 오히려 행복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2. 당신이 금요일을 좋아하는 이유
우리는 이미 가진 것보다 장차 가질 것에 흥분을 더 느끼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네덜란드에서 1,000명 이상의 행랑객을 대상으로 조사가 실시되었다.
[3]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행랑객들은 여행을 떠난 지 몇 주 후보다 여행을 가기 몇 주 전에 더 행복감을 표출했다.
[4]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보낸 사람들은 실제로 그날을 체험할 때보다 11월에 그날을 기다리면서 그날의 정서적 이미지를 강하게 느꼈다.
이 조사 결과는 무엇을 암시할까?
[5] 동일한 사건이라 해도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일로 떠올릴 때, 우리는 ‘시간의 주름 wrinkle in time – 시간과 공간의 주름을 접어 순간 우주 먼 곳으로 이동한다는 의미, 판타지 소설<시간의 주름>’을 체험하며 더한 정서적 이미지를 느낀다.
미래를 떠올리며 희미하게 느끼는 정서적 활력은 간혹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6] 항암 치료를 받는 암 환자들은 흔히 치료를 하기 전 24시간 내내 구토 등의 부작용에 시달린다.
이런 현상은 일요일만 되면 이상하게 머리가 지끈거리는 원인을 찾는데 단서가 될 수 있다.
[7]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기 전 날, 블로거들은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말로 찬사를 늘어놓는다.
[8]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는 그날을 즐겁게 마무리하는 메시지로 넘쳐난다.
그런데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는 요일을 꼽으라고 하면, 대학생들은 휴일인 일요일이 아니라 수업이 있는 금요일을 꼽는다. 왜 그럴까?
일요일에는 월요일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9] 한 학생은 “죽음이에요. 월요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요”라고 말했다.
[10] 그럼에도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마음은 대개 기분 찝찝한 일보다는 유쾌한 일에 이끌리며, 끔찍한 상상보다는 기분 좋은 상상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금요일은 아침 8시부터 한창 분자생물학 수업을 듣는 동안에도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 얼마나 환상적일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매긴 것이다.
미래를 두고 즐거운 사고를 하는 태도는 심리적 건강의 전형적 특징이다.
[11]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은 부정적 사고에 빠져 있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사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 그래서 정상적인 사람이 불안감에 젖을 때는, 현재의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미래에 대한 장밋빛 비전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13] 기분 좋은 일을 기대하면 즐거움과 보상의 체험을 관장하는 대뇌 측좌핵(uncleus accumbens)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래서 기분 좋은 상상을 스스로 훈련해나가다 보면 실제로 효과를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2009년 벨기에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2주에 걸쳐 저녁마다 몇 분간 다음날 일어날 몇 가지 즐거운 일을 상상했다.
[14] 이를 테면, 아름다운 여성과 데이트를 한다거나 유명한 음식점에서 최고급 요리를 먹는다고 상상한 것이다.
공상에 잠겼던 2주가 지나간 뒤에 그 ‘마음의 시간 여행자들’은 전체적인 행복 지수가 상당히 올라갔다.
앞서 소개한 마샤 피아멘고는 우주에서 6분을 보내는 영광의 대가로 버진 갤럭틱에 20만 달러를 냈다. 우주여행의 가치는 어느 정도 우주여행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된다. 또한 버진 갤럭틱은 고객들의 기다리는 맛을 최대한 높이는 면에서 탁월했다. 또 우주비행사들을 서로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15] 그래서 마샤 피아멘고는 우주여행 항공권을 구매한 뒤 다른 우주비행사들과 친분을 쌓았고, 과학 교육 기금 100만 달러를 모으는 일에 동참했다.
좀 더 현실적인 체험을 기대할 때 또한 행복감이 상승할 수 있다. 그래서 몇몇 혁신적인 기업들은 그런 측면서 소비자의 기대감을 최대한 불러일으키는 쪽으로 상품의 기능을 소개한다. 여행 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닷컴에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호텔과 음식점, 이름난 관광지 등에 관한 사진과 리뷰를 볼 수 있다. 또한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무 정보도 없이 여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기능들은 분명히 가치를 발휘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행객들이 그 외의 목적으로 사이트를 활용한다.
[16] 여행객들의 20퍼센트는 여행 준비를 다 마친 후 다시 사이트를 방문한다. 개인전용 해변과 뜨끈뜨끈한 돌 스파 사진을 보기 위해서다.
답답한 사무실 칸막이에 갇혀 살다가 뜨거운 소파에 몸을 담구면 천국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3. 미래는 왜 밝아 보일까?
아직 입에 대지도 않은 상그리아 포도주가 왜 그토록 달콤하게 느껴질까? 아직 그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마찬가지로 악몽 같은 데이트를 연이어 경험한 남자가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여자와 매혹적인 데이트를 하고 황홀한 밤을 보내는 꿈을 꾸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새로이 선출된 정치인은 지긋지긋한 현실에 있는 대중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도록 해준다.
[18] 그래서 영국의 한 국회의원이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두고 “블레어는 달디단 푸딩과 같습니다. 첫 한입은 기분 좋지만, 그 다음에는 지긋지긋해지죠”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또 한 예로,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대개 퇴임 때보다 취임 때 더 높게 나오는 것을 들 수 있다.
[19] 이는 퇴임할 때까지 이런저런 일을 저질러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지지율 하락 현상의 예외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클린턴의 지지율은 시작부터 전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더 이상 떨어질 것도 없었다.)
[20] 버지니아대학교에서 실시한 어느 실험에서 학생들은 고디바 초콜릿, 버지니아대학교 머그잔 등 작은 선물 여러 개를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두 가지를 골랐다.
이어 첫 번째 집단 학생들은 두 가지 선물 중 어느 선물을 받을지 이야기를 들었고, 두 번째 학생들은 두 가지 선물을 다 받는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세 번째 집단 학생들은 좀 더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다. 그들은 잠시 후 두 가지 선물 중 하나를 받지만, 어떤 선물을 받을지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학생들은 선물 사진을 보면서 기다렸다.
이후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세 번째 집단 학생들은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들은 선물을 하나만 받았어도 두 개를 받은 학생들보다 행복감을 더 많이 느꼈다.
버치박스 Birchbox라는 화장품 회사는 불확실성이 주는 즐거움을 활용하여 화장품 견본품 시장을 개척했다. 이들은 한 달 10달러만 내면 신제품이나 최고 인기 상품이 담긴 조그만 분홍색 상자를 회원들에게 배달해준다.
헤일리 버나는 매달 이메일로 회원들에게 배송정보를 알려주는데 이에 대한 회원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한다.
[21] “트위터가 폭발할 지경입니다. 하나같이 자신의 뷰티박스가 도착한다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불확실성이다.
회원들은 웹사이트와 유튜브 등을 돌아다니며 사소한 단서라도 찾으려 한다. 배송이 빨라서 뷰티박스를 일찌감치 받은 회원들은 즉시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그런데 그 순간 긴장감이 흐른다. 뷰티박스의 내용물을 확인하여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은 충동에 이끌리는 탓이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불확실성을 없앤다면)하면, 재미가 반감될지도 모른다.
[22]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순간, 무언가를 기대할 때 반응하는 뇌 부위(대뇌 측좌핵)에서 관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이다. 그보다는 이미 실재하는 특성을 강화한다고 할 수 있다.
불확실성으로 인해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확대될 수 있다. 때문에 먼저 돈을 내고 나중에 소비하여 순전히 긍정적인 기분을 자극하는 구매를 무난히 실천할 수 있다.
4. 왜 군침이 돌면 더 맛있을까?
[23] 우리가 기쁨부터 절망에 이르는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체험하는 것은 일정 부분 우리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미래를 여행할 때 우리의 정신은 흔히 골치 아픈 문제를 없애고 기분 좋은 것만 계속 떠올리면서 믿을 만한 방식으로 현실과 다른 곳에 도달한다. 하지만 너무 기대했다가 스스로를 실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지는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 예상 밖의 일로 기대가 무너졌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대와 현실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겠지만, 이 정도 차이는 우리 삶에서 비교적 드물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거의 매일 우리 자신이 상상하는 것과 기대하는 것 사이에 비교적 가벼운 차이가 생긴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의 뇌가 우리 자신을 돕기 위한 다른 묘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4] 한 실험에서도 만화가 웃길것이라고 확신했던 사람들은 마지막에 더 많이 웃었다.
[25] 또 다른 실험에서도 한 대통령 후보의 뛰어난 토론 실력을 확신한 사람들은 그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던 사람들보다 그의 업적을 훨씬 더 높이 평가했다.
또한 소비를 나중에 하면 긍정적인 체험을 만들어낼 시간이 생기기 때문에 상상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는 능력이 높아진다.
[26] 이와 관련된 실험이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비디오게임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1분간 상상했다. 학생들은 이후 게임을 하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이들은 게임 참여를 기다리면서 트립어드바이저닷컴을 방문한 예비 여행객들처럼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소비를 지연하면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어낼 기회를 가질 뿐만 아니라 이른바 ‘군침 돌게 만드는 인자’를 강화하여 소비의 즐거움을 늘릴 수 있다.
[27] 얼마 전 한 실험에서 대학생들은 허쉬 키스나 허쉬 허그 초콜릿 중 하나를 선택했다.
초콜릿을 선택한 학생들은 초콜릿을 먹지 않고 30분을 기다렸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30분을 기다린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초콜릿을 더 맛있게 먹었고 허쉬 초콜릿을 더 사 먹고 싶다는 의향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소비 지연의 효과가 극대화되어 투자 대비 최고의 행복감을 누리게 되는 것은 언제일까?
– 소비를 지연하면, 매력 있는 것들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 : 대기하는 사이 앞으로의 체험에 대한 긍정적 기대감과 흥분감이 생긴다. 트립어드바이저 닷컴과 버치박스의 사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구매에 대한 기대감으로 ‘군침이 돌 때’, 최종적인 소비의 즐거움이 커진다 : 허시 허스 초콜릿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그에 반해서 엔진오일 교환 또는 치과 치료 같은 썩 내키지 않는 지출 등은 달갑지 않은 형태로 군침이 돌게 만든다. 그처럼 중립적인 필수품의 구매를 지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소비 체험 자체는 잠깐이면 끝난다 : 우주여행을 생각해보자. 우주여행의 경우, 체험을 연기함으로써 그 체험 자체 말고도 즐거움을 끌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생긴다.
5. ‘지금의 힘’이 가진 모순
소비를 미룬 효과에 대해 깨달은 사람들은 오로지 소비를 지연시킬 기회를 찾아다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혜를 깨닫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실험에서 초콜릿을 기다렸다 먹은 학생들은 즉시 먹은 학생들보다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전자의 학생들은 소비를 지연시켜 얻는 혜택을 인식하지 못했다.
[28] 그들은 평소보다 초콜릿을 더 많이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다림 자체는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다음번에는 초콜릿을 즉석에서 먹고 싶다고 말했다.
소비를 나중에 해야 즐거움이 커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알지 못할까? 이와 관련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어떤 멋진 일을 지금 당장 할 수 있다면, ‘지금의 힘’이 다른 모든 것을 작아 보이게 만든다고 한다.
이를테면 지금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25달러짜리 스타벅스 상품권을 선물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날짜가 흘러도 프라푸치노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는 한, 여러분은 상품권을 지금 당장 받든 석 달 안에 받든 상관없이 금세 행복감에 젖어야 할 것이다.
[29] 공짜로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좋지만, 상품권을 받는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석 달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 상품권을 받으면 기분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힘’으로 인해 사람들은 현재를 과대평가하고 나중에 소비하여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소비를 미뤄 얻는 혜택을 인식한 경우에도 그로 인해 생기는 부가가치에 대해 비용을 치르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30] 예컨대 평소 선망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내일 갈지 2주 후에 갈지 선택하라고 했더니, 응답자의 60퍼센트 정도는 2주를 기다리면 기대감이 더해져 콘서트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용을 치를 의향이 있는지 물었더니, 응답자의 19퍼센트만이 2주 후에 가는 콘서트에 비용을 더 쓰겠다고 말했다.
이런 유형의 비용 지급을 거부하는 성향과 관련하여 분명한 예외도 있다. 평소 좋아하는 스타와 키스하는 기회를 제공한 실험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키스를 3일 뒤로 미루는 대가로, 비용을 50퍼센트 이상 더 내려 했다.
[31] 짐작컨대 순간으로 끝낼 환상적인 체험을 72시간 동안 떠올리고 음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유명 인사들이 이런 실험에 참여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실험의 결과는 가정일 뿐이라는 점을 유의하자.
예컨대 최저 가격 비교 사이트인 카약닷컴은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미국의 투손으로 가는 항공편을 검색해주면서 ‘현재 아메리칸 항공을 검색했다’ 라든가 ‘델타 항공을 검색 중이다’ 라는 식으로 검색 작업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32] 이와 관련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객들은 기다리는 동안 자신을 대신하여 일이 처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으면 기다리면서도 높은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노동의 착각’ 효과는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두고도 고객들이 즉각적인 서비스보다 대기해야 하는 서비스를 더 선호하게 만들 정도로 매우 강력하다.
6. 즉각적인 지출의 고통
온갖 고생 끝에 번 돈을 지출하는 기분은 찜찜하고 불편해서 지출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33] 이에 행동경제학에서는 지출이 고통을 유발한다는 의미로 ‘지출의 고통’이라는 용어를 쓴다.
[34] 최근 지출한 일을 떠올리는 경우, 실제 육체의 고통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런 현상과 관련된 몇 가지 근거를 신경경제학자들이 발견했다. 아주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테면 ‘발가락을 차일 때 느끼는 고통’과 연결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35] 스탠퍼드대학교에서도 관련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실험 참가자들은 두뇌 스캐너 안에서 ‘쇼핑가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연구진은 고디바 초콜릿, 스탠퍼드대학교 티셔츠, MP3 플레이어처럼 보기만 해도 탐나는 물품들을 컴퓨터 화면에 띄운 다음, 실험 참가자들에게 상품의 가격을 보여주었다.
실험참가자들은 화면을 보며 각 상품을 구매할지 결정했다. 그러자 매력적인 상품을 본 실험 참가자들의 대뇌 측좌핵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콜릿 한 상자 같은 간단한 상품을 사더라도 이렇게 구매의 쾌감과 지출의 고통을 저울질하여 지갑을 열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소비의 쾌감과 지출의 고통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소비의 즐거움이 높아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즉시 소비하고 나중에 지출하는 방식으로 그런 수수께끼를 해결한다. 하지만 지출을 나중에 하여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7. 카드빚의 유혹
[36] 수백 년 전, 태평양 서부의 얍 섬에 사는 주민들은 매우 구체적인 형태의 화폐를 사용했다. 그것은 20명 정도가 달라붙어야 이동시킬 수 있는 거대한 돌 바퀴였다.
모든 화폐는 그 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런데 얍 섬의 돌 화폐는 화폐 자체가 바닷물에 가라앉아버렸다. 주민들은 바다에 가라앉은 돌의 시장가치를 그대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 돌은 바다 밑에 있었음에도 여전히 화폐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이 머나먼 섬에서 돈은 구체적 실체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옮겨갔다.
이 이야기는 최근의 미국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20세기 들어 미국에서는 차갑고 단단한 화폐(금)의 사용이 감소했다. 이후 미국 닉슨 정부는 금본위제를 폐지했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신용거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변화가 일어나자 결국에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37] 미국의 풍자 주간지 <어니언>은 2011년 ‘엄청난 신용카드 사기로 드러난 비자 Visa exposed As Massive card scam’라는 제목의 머리기사에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아냈다.
어니언의 가짜 기사에 따르면, 비자는 평판 좋은 대출 기관인 양 행동했다. 그러면서 은행들을 통해 그럴싸해 보이는 가지각색의 신용카드를 퍼뜨려서 소비자들이 형편에 상관없이 과도한 지출을 하도록 사기를 쳤다.
여러 연구 조사 결과는 신용카드가 지출을 늘리게 만드는 기발한 혁신 상품임을 보여준다.
[38] 예컨대 좌석이 매진된 스포츠 경기의 관람권 두 매를 입찰할 수 있게 해주자, 현금을 가진 학생들은 다음 날까지 입찰가로 평균 26달러를 내겠다고 했다. 반면에 신용카드를 사용한 학생들은 입찰가로 평균 60달러를 제시했다.
실험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세상 물정에 밝은 MBA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굳이 신용카드를 쓰면서 수수료를 왕창 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구매하는 순간에 느끼는 지출의 고통이 경감된다. 신용카드로 인해 일종의 분리감이 생겨 현명하고 상식 있는 사람들도 쉽게 지름신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39] 이와 관련하여 실험 참가자 30명에게 월말 청구서를 확인하기 전에 카드 대금을 계산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각 개개인은 카드 대금을 평균 30퍼센트 가량 낮게 계산했다.
[40] 2010년 기준으로 미국 가정의 평균 신용카드 빚은 6,000달러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41] 또한 신용카드 사용자들의 약 3분의 1이 카드 대금을 월말에 결제하지 않고 이월한다고 밝혔다.
[42] 미국 사람들의 거의 절반은 빚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미국인들의 경우, 소득과 행복의 관계성은 꽤 미미하다.
[43] 하지만 개인의 행복, 그리고 카드 대금 연체 여부, 이 두 요소 사이에는 아주 강력한 관계성이 있다.
개인이 성취한 것보다 빚을 진 상태를 보고 행복 수준을 훨씬 더 잘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44] 영국에서는 빚이 많은 가정일수록 낮은 행복 수준을 보인다고 한다.
빚은 특히 결혼생활에 해가 된다.
[45] 빚이 많은 부부는 성관계로 갈등하는 등 결혼 생활의 모든 면에서 갈등을 심하게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급을 미루면, 즉각적인 소비의 즐거움이 커질 수 있다.
[46] 하지만 어느새 즐거움은 사라지고 지급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두려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카드빚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청산하고 나면, 다른 어떤 일에 지출했을 때보다 충만한 행복감을 맛볼 수도 있다.
[47] 그렇지만 빚 청산으로 인한 정서적 혜택 때문에 저축의 혜택이 미미해 보일 수 있다. (저축도 정서적 혜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말이다.)
8. 모히토 칵테일을 공짜로 즐기는 비결
지금까지 사례로 든 모든 연구는 공통된 결론에 이른다.
구매의 순간 혹은 채무가 누적된 상황에서 비용 지급의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는 경우, 소비의 즐거움은 반감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하인즈와 그녀의 남편 테리는 ‘일괄 지급의 마법’에 의존하고 ‘당장 비용을 치르는’ 영리한 전략을 통해 육아 문제를 해결했다.
부부는 평일에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부부는 일주일 치를 한 번에 지급했다. 엘리자베스 하인즈는 이렇게 말한다. “평일 오후, 하루는 밤늦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고 공고를 냈어요. 그랬더니 남편과 밤에 데이트를 나가도 별도의 비용이 들어갈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나도 멕시코의 휴양 리조트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비슷한 방법을 썼다. 나는 모든 부대비용을 몇 달 전에 다 냈기 때문에, 하객들에게 결혼식에 온 김에 리조트에서 며칠 쉬고 가라고 권유했다. 하객들은 마음껏 즐겼다. 물론 모든 것은 공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몇 달 전에 모든 비용을 다 냈기에 모든 것을 ‘공짜’로 맛볼 수 있었다.
즉각적인 지급의 효과를 고려한다면, 그런 효과는 최근의 경기침체기에 긍정적인 면이 있을지 모른다.
요즈음 신용카드 대신 ‘사용 금액을 즉시 결제’하는 직불카드가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48] 거대 소매업체인 타깃 Target은 2008년 2/4분기에 금융위기가 닥친 이래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결제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떨어지고 직불카드 사용이 늘었다고 발표했다.
[49] 최근 들어 미국 중부부터
[50] 말레이시아에 이르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직불카드 사용이 급증했다.
이처럼 ‘즉시 지급하는’ 카드를 사용하면 지출이 줄어든다.
[51] 이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대규모 조사가 실시되었다. 그에 따르면, 소득, 신용 기록 등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직불카드 사용자들이 직불카드 비사용자들보다 부채비율이 약 네 배나 낮았다.
이처럼 직불카드를 사용하면, 비용을 즉시 지급하기에 빚질 일이 없어지고 행복감이 높아진다.
2011년 출시된 카드 케이스라는 애플리케이션은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연결하여 지갑을 열 필요 없이 모바일로 결제를 하게 해준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파하드 만주는 이 애플리케이션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52] “휴대전화를 꺼내지 않아도 되고, 애플리케이션을 열지 않아도 됩니다. 사인할 필요도 없고, 카드를 인식기에 댈 필요도 없습니다. 잔돈을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가게에 있는 동안 휴대전화를 몸에 지니고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카드 케이스가 결제를 인증합니다. 따로 할 일은 없습니다.”
이런 유형의 결제가 정말로 끝내주는 방식임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장에서 논의한 연구 조사 결과는 한 가지 사실을 암시한다. 카드 케이스 같은 혁신 기술로 인해 장기적으로 지출을 많이 하게 된다는 점이다.
9. 선 지급, 후 소비 원칙을 적용하라
‘선 지급, 후 소비’ 습관을 들이면, 기다리는 즐거움과 소비하는 즐거움이 배가되는 데 더해 그 밖의 지출 원칙을 잘 지켜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다짐도 고가의 인기 토스터기나 고급 침대 매트리스 앞에서는 약해지기도 한다.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53] 그럼에도 즉시 소비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 체험의 추상적인 장점이 다 자세히 보이게 된다.
사람들은 상점에서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물건 값을 낼 때, 과일이나 견과류 같은 건강식 위주로 장을 보는 경향이 있다.
[54] 되도록 과자, 치즈 케이크 등 살찌는 음식을 충동구매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즉 현금으로 물건 값을 계산하면, 지출의 고통이 심해지는 등 즉각적인 고통이 일어나 과자 매장을 돌아다니는 즐거움이 반감된다. 소비를 미루어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55] 예컨대 사람들은 배송이 오래 걸리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건전한 구매 행위를 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쿠키와 치즈케이크를 ‘특별한 체험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소비를 지연시킨다고 해서 말할 수 없는 자제심을 발휘하는 수준으로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행복감이 최고조로 달하게 된다. 사실상 비교적 먼 미래에 소비를 하는 경우, 사람들은 ‘선 지급, 후 소비’ 원칙을 실천하며 특별한 체험의 기회를 잡으려 애쓸 것 같다.
[56] 예컨대, 미국의 한 공항에서 수백 명의 여성에게 경품 응모권을 하나씩 나눠주고 다음의 두 경품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 피부 미용권, 현금 85달러
여성들은 다음 주에 응모권 당첨 발표가 있다고 생각한 경우, 소수(18퍼센트)만이 스파 패키지를 선택했다. 반면에 두 달 후에나 응모권 당첨 발표가 있다고 생각한 경우, 전자의 여성들보다 두 배나 많은 여성들(36퍼센트)이 스파 패키지를 선택했다.
[57] 한 여성은 현금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라면 아마도 제가 정말로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사는 데 그 돈을 썼을거에요! 스파 마사지를 받으러 가겠다고 한 지가 4개월에서 5개월은 되었으니까요.”
우리는 멀리 거리를 두고 나중의 소비에 초점을 맞춰볼 때, 흔치 않은 체험을 만끽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먼 미래를 추상적으로 바라보며 특정한 행동 방침이 얼마나 바람직한지 따지려 한다.
[58] 그러면서 가까운 장래를 생각할 때는 실행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상품을 소비할 시간이 오면, 한참 전에 했던 지출의 결실이 이루어지게 된다.
[59] ‘매몰비용 sunk cost의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말이다.
1년에 한 번 있는 카운티 페어 축제(북미 최대 축제 중 하나)의 첫날 밤 개막식 입장권을 샀다고 상상해보자.
만일 그날 아침에 모든 비용을 치렀다면, 5시간 내내 복통에 시달린다 해도 환불을 받지 못한다. 여러분은 어쨌든 움직여보기로 마음먹을 것이다.
일찌감치 지급을 마친 경우, 입장권의 매몰비용은 기분 찜찜한 손실 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에 비용을 치렀다면, 마음이 덜 불편하다.
‘선 지급, 후 소비’ 방식은 매몰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일부 돈 개념이 확실한 독자들은 이번 장의 주제에 반기를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돈을 불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아야 할까? 돈을 불린다는 목표에 ‘올인’하는 태도는 과대평가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한 행복을 얻기 위한 지출 원칙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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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돈을 내고 나중에 소비하기’위해 기억할 것!
–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구매하는 순간에 느끼는 지출의 고통이 경감된다.
– 직불카드를 사용하면, 비용을 즉시 지급하기에 빚질 일이 없어지고 행복감이 높아진다.
– 돈을 불린다는 목표에 ‘올인’하는 태도는 자신의 행복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한 행복을 얻기 위한 지출 원칙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