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평론가는 잔인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관계를 이어온 친구 두 명이 오랜만에 만났다. 차 한 잔을 하면서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외모에서 좋은 점을 칭찬하며, 과거에 있었던 미담들을 되새기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머뭇거리더니 “우리 이제 진지한 이야기 좀 할까?”라고 말문을 꺼낸다.
대화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갑자기 자신이 힘들었던 이야기, 미래가 불확실하고 두렵다는 이야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사실 아까 웃고 있었지만 웃는 것이 웃는 게 아니었다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다른 이야기도 살펴보자. 회사의 중역들이 모여 내년도 회사의 성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회사가 걸어온 길, 위기를 잘 극복한 사례, 뛰어나고 성실한 사원들의 헌신, 거래 업체들의 성장, 신제품 개발의 성공들을 이야기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때 지위가 어느 정도 높으신 분이 기침을 한 번 하시면서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우리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라고 말문을 꺼낸다.
회의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원자재 가격 상승, 경쟁 업체의 성장과 시장 점유율 확대, 경쟁 업체에서 높은 연봉으로 데리고 간 뛰어난 인재, 개척하려고 했지만 실패한 시장, 효과가 없었던 광고와 홍보, 강화된 환경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미래는 어둡고, 불확실하다는 이야기들이 오고가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부정적인 이야기, 힘든 이야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로 바뀌어야 하는 걸까? 왜 꼭 본론으로 들어가면 어두운 미래, 낮은 성장 가능성, 반대로 높은 실패 가능성, 높은 위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그 전까지 한 이야기들은 다 장난이었다는 말인가?
맛있는 코스요리를 먹으러 가면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나오다가 가장 맛있는 메인 메뉴가 본론에서 등장하는데, 왜 대화나 회의는 본론으로 들어가면 가장 맛이 없어지는 걸까?
Amabile(1983)은 이러한 의문에 답을 제시하고자 한 가지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에 참여한 100명의 참가자는 New York Times의 일요일 신문에 제시된 한 저서에 대한 서평 두 개를 읽었다. 서평 중 하나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서평이었고, 다른 하나는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서평이었다. 어떤 서평을 먼저 읽는지에 따른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참가자의 절반은 긍정적 서평부터 읽고 부정적 서평을 읽었고, 다른 절반은 반대의 순서로 읽었다. 서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긍정적 서평] 전체 128쪽에 달하는 첫 작품의 한 면 한 면마다 독자들을 고무시키는 앨빈 하터 Alvin Harter는 뛰어난 미국의 청년 작가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기나긴 새벽 A Longer Dawn>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짤막한 소설이다. 아니 산문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삶의 기본적인 요소인 생명, 사랑, 죽음을 다루는데, 그 강렬함이 대단해서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더욱더 탁월한 작가적 역량이 느껴진다.
[부정적 서평] 전체 128쪽에 달하는 첫 작품의 한 면 한 면마다 독자들을 실망시키는 앨빈 하터 Alvin Harter는 자신이 철저히 재능이 결여된 미국의 청년 작가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기나긴 새벽 A Longer Dawn>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짤막한 소설이다. 아니 산문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삶의 기본적인 요소인 생명, 사랑, 죽음을 다루는데, 너무 밋밋해서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더욱더 작가적 역량이 형편없음이 느껴진다.
참가자들의 과제는 이 서평을 읽은 후, 서평의 전문성(Literary expertise), 평론가의 지적 수준( intelligence), 평론가의 유능성(competence), 평론가의 친절함(kindness), 평론가의 공정성(fairness), 평론가에게 호감이 가는 정도(likability), 평론가의 개방성(open-mindedness)에 대해 1(매우 낮음) – 40(매우 높음)점 사이로 평가하였다.
표-1은 본 연구의 결과를 보여준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참가자들은 긍정적 평론가(Positive reviewer)의 전문성, 지적 수준, 유능성보다 부정적 평론가(Negative reviewer)의 전문성, 지적 수준, 유능성을 더 높게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긍정적 평론가가 부정적 평론가보다 더 친절하고, 공정하다고 평가하였으며, 긍정적 평론가가 부정적 평론가보다 더 호감이 가고, 긍정적 평론가가 부정적 평론가보다 더 개방적이라고 평가하였다.
정리하면 전문성, 지적 수준, 유능성이라는 평론가가 갖추어야 할 능력과 관련된 측면에서는 부정적 평론가가 긍정적 평론가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친절함, 공정성, 개방성이라는 평론자의 태도 혹은 정서와 관련된 측면에서는 부정적 평론가가 긍정적 평론가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뛰어난 평론가는 잔인하다(Brilliant but cruel).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서평을 먼저 읽었는지, 반대로 부정적인 서평을 먼저 읽었는지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드물게 부정적 평론가의 유능성에서 측면에서는 어떤 리뷰를 먼저 읽었는지에 따른 대비효과(contrast effect)가 비교적 명확하게 나타났는데, 부정적 리뷰를 먼저 읽었을 때보다 부정적 리뷰를 나중에 읽었을 때 부정적 리뷰어에 대한 유능감을 더 높게 평가하였다.
이는 부정적 리뷰를 먼저 읽었을 때는 유능감을 평가하기가 어려워 40점 척도의 중간인 20점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부정적 리뷰어의 글을 읽고 긍정적 리뷰어의 글을 읽었을 때는 긍정적 리뷰어가 더 유능해 보이지 않았지만, 부정적 리뷰어의 글을 긍정적 리뷰보다 나중에 읽었을 때는 부정적 리뷰어가 긍정적 리뷰어보다 매우 유능해 보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본 연구는 어떤 사안이나 사건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지적이지 않고, 무능하며, 전문성이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대로 어떤 사안이나 사건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지적이고, 유능하며, 높은 전문성을 가진 듯한 이상을 준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한 없이 낙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순진하다’ ‘세상 물정 모른다’ ‘철이 안들었다’라고 말하는 근본에 사람들이 긍정적 평가 혹은 낙관적 평가를 지적 수준이 낮고, 무능하며,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각하는 기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무엇인가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역시 뭘 좀 안다’ ‘사람이 똑똑하다’ ‘중요한 지적을 하였다’라고 말하는 근본에는 사람들이 부정적 평가 혹은 비관적 평가를 지적 수준이 높고, 유능하며, 전문성이 높다고 지각하는 기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가 ‘이제 진지한 이야기를 하자,’ 혹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할 때 왜 긍정적인 이야기가 부정적인 이야기로 전환되었을까? 그 이유는 우리가 긍정적인 이야기를 높은 지식을 사용하지 않은 것, 인지적이라고 보다는 감정적인 것(친절함, 공정함, 개방성), 그렇기에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부정적인 이야기야 말로 높은 지식과 전문성, 유능함을 동원하여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긍정적인 평가가 지적이고, 전문성 있으며, 유능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평가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나 데이터가 함께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평가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뭔가를 부정했다는 그 자체로 지적이고, 전문성 있으며, 유능하게 보일 가능성이 있지만, 긍정적인 평가는 객관적 근거가 함께 제시되지 않는 한 지적이고, 전문성 있으며, 유능한 이야기로 받아들여 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끝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할 때는 잔인해 보이거나, 공정하지 않아 보이고, 차가워 보일 수 있기에 따뜻한 감성을 제공하는 것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평가가 지적이고, 유능하고, 전문성 있어 보이는 것으로 끝나면 좋지만, ‘그래, 너 잘 났다,’ ‘너는 나중에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에 대한 평판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알고 싶다면,
Amabile, T. M. (1983). Brilliant but cruel: Perceptions of negative evaluator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19(2), 146-156.
https://doi.org/10.1016/0022-1031(83)90034-3
General Happiness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