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2_돈에 대해 꼭 알아야 할 10가지
_가치 없이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려면
7. 자신을 믿는 어리석음이 부르는 화
1987년에 애리조나대학교의 교수인 두 연구자 그레고리 노스크래프트 Gregory Northcraft와 마거릿 닐 Margaret Neale이 재미있는 일을 실행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투손에서 가장 존경과 신뢰를 받는 부동산 중개인 몇 명을 한 명씩 따로 어떤 집으로 초대했다. 이들은 다른 누구보다 그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꿰뚫고 있었다. 노스크래프트와 니은 그들에게 집을 꼼꼼하게 살펴보라고 한 다음에 몇 가지 엇비슷한 판매 가격과 MLS (미국의 부동산 유통 시스템)에서 뽑은 정보 등을 제공했다.
이 부동산 중개인들은 그 집에 대해서 딱 한가지만 제외하고 동일한 정보를 받았다. 다른 정보란 바로 집주인이 팔겠다는 가격, 즉 호가였다. 어떤 집단에게는 호가가 11만 9,900달러, 다른 집단에게는 12만 9,900달러, 세 번째 집단에게는 13만 9,900달러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집단에게는 14만 9,900달러라고 했다. 이 호가는 중개인들이 그 집을 살펴볼 때 맨 처음 제공됐다.
그 뒤 투손 지역의 부동산 전문가인 이들에게 그 집의 합리적인 구매 가격을 얼마로 추정하는지 물었다.
[1] 그 집의 호가가 11만 9,900달러라고 들었던 집단의 중개인들은 평균저긍로 11만 1,454달러라고 대답했다. 12만 9,900달러라고 들었던 중개인들은 12만 3,209달러라고 대답했으며, 13만 9,900달러라고 들었던 중개인들은 12만 4,653달러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14만 9,900달러라고 들었던 중개인들은 12만 7,318달러라고 대답했다.
요컨대 호가가 높을수록 부동산 중개인이 추정한 집값이 높았다.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능력이 의심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일반인 대상으로도 똑같은 실험을 했다. 호가는 마찬가지로 추정가격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 영향의 폭이 전문가 집단보가 훨씬 크게 나타났다.
두 사람이 진행한 실험의 정말 재미있는 부분은 따로 있다. 실험에 참여한 부동산 중개인 중 81퍼센트나 되는 압도적 다수가 자기는 추정가격을 결정할 때 호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집단은 63퍼센트가 추정가격을 결정할 때 호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호가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줄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이는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어쩌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가치판단을 할 때 의식하든 안하든 자기 자신이 탁월하게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의존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신뢰는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또 이때가 가장 위험하기도 하다. 첫 인상을 결정할 때는 앵커링 효과 anchoring effect(닻내림 효과)의 오류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앵커링 효과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의사결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에 좌우돼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즉, 타당하지 않은 정보가 의사결정 과정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위험한 이유는 그 잘못된 출발점이 미래 의사결정의 준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손의 부동산 중개인들에게서 바로 이런 앵커링 효과가 나타났다. 그들은 어떤 숫자를 봤고, 그 숫자를 놓고 생각했으며, 그 숫자에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자신을 신뢰했다.
익숙함에 빠진 닻을 올려라
수요공급 법칙에 따르면 유보가격(소비자가 제품에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대 가격)을 설정할 때는 그 물건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리고 다른 지출 선택지에는 무엇이 있는지, 이 두가지만 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우리는 판매가격을 너무도 많이 고려한다. 평범판 식료품점에서는 가격이 얼마일까, 호텔이나 공항에서는 판매될까? 이처럼 판매가격은 수요공급이라는 틀 바깥에 존재하는 고려사항이지만 우리가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들어 음료수 한 캔이 통상적으로 1달러쯤 팔리기 때문에 기꺼이 1달러를 지불할 마음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앵커링 효과다. 세상이 사람들에게 음료수 한 캔이 약 1달러라고 말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가격을 지불한다.
[2] 앵커링 효과를 최초로 입증한 연구자는 아모스 트버스키 Amos Tversky, 대니얼 카너먼인데, 이 두사람은 1974년에 유엔과 관련된 실험을 통해서 그 개념을 입증했다.
연구자들은 한 집단의 피실험자 대학생들에게 숫자판을 돌리게 했고, 이 숫자판은 (별도의 비밀스러운 조작에 의해) 10이나 65에 멈췄다. 그 후 실험 진행자들은 피실험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1. 유엔에서 아프리카 국가 비율은 ( 10퍼센트 // 65퍼센트 )보다 높은가, 혹은 낮은가?(숫자판이 멈춘 숫자, 즉 10이나 65에 맞춰서 이 둘 중 하나의 질문을 한다)
2. 유엔에서 아프리카 국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인가?
첫 질문에서 10퍼센트로 설정된 질문을 받은 피실험자들은 두 번째 질문에서 평균적으로 25퍼센트라고 답했다. 이에 비해 첫 질문에서 65퍼센트로 설정된 질문을 받은 피실험자들은 다음 질문에 평균적으로 45퍼센트라고 답했다. 이 결과는 첫 질문이 상관없는 두 번째 질문에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앵커링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참고로 1970년대 유엔에서 아프리카 국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23퍼센트였다.
이 실험은 우리가 뭔가의 가치를 알지 못할 때 자신에게 제시된 어떤 것에 특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투손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데, 그 부동산 중개인들은 다른 어떤 이들보다 정보와 경험이 많아서 주택의 진정한 가치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추정할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투손의 부동산 중개인 이야기에서 우리가 짚어야 할 핵심은, 이런 빗나간 추정이 전문가들에게도 일어나니 일반인들에게는 얼마나 더 자주, 더 큰 폭으로 일어날까 하는 점이다.
앵커링은 자기 자신을 믿기 때문에 나타난다. 닻이 일단 의식 속으로 들어오고 이를 수용하고 나면, 우리는 그것이 타당하며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했으며 또 매우 이성적인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믿게 된다. 어쨌거나 자기가 스스로를 잘못된 길로 유도하지는 않으리라는 발상도 이런 믿음을 강화한다.
이는 거만함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게으름에 관한 얘기다.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선택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쉽고 낯익은 결정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 결정이 흔히 우리 뇌에 닻을 내린 어떤 시작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문제이다.
앵커링 효과를 넘어서서
‘군중심리 herding(따라하기)’ 혹은 ‘자기 따라 하기 self-herding’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보자. 군중심리란 집단과 행동을 함께 하는 것. 즉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근거로 삼아 어떤 행동이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군중심리는 본질적으로 옐프(Yelp – 지역 기반 소셜네트워크의 하나) 같은 리뷰 사이트가 번성하도록 만드는 인간 심리이다. 줄이 선 식당이나 클럽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는 이유도 바로 이 군중심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당 주인이 대기 장소를 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일부러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 자체가 군중심리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신호이기 때문이다.
자기 따라 하기는 앵커링의 한층 더 위험한 요소다. 자기 따라 하기는 기본적으로 군중심리와 도일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이 아닌 자신의 과거에 대린 비슷한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즉, 자기가 예전에 뭔가를 높게 평가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그것을 높게 평가하는 식이다.
이렇게 단 한번의 의사결정으로 앵커링이 시작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앵커링이 ‘자기 따라 하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기기만과 오류의 부정확한 가치평가의 영속적인 순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앵커링 및 자기 따라 하기와 사촌 격인 가치조작의 단서가 하나 있는데, 바로 ‘확증편향 confirmaation bias’이다. 확증편향은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과 기대를 지지하는 쪽으로 새로운 정보를 해설할 때 머리를 디밀고 나타난다. 또한 기존에 내렸던 의사결정을 확인하고 지지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의사결정을 내릴 때도 작동한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지지하는 자료를 찾으면서 자신의 의사결정이 옳다는 생각에 한층 더 강력하게 사로잡힌다. 그 결과 과거의 의사결정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강화되고, 더 나아가 현재와 미래에도 과거 그 의사결정의 원칙과 방법과 경로를 충실하게 따른다.
과거 의사결정에 대한 신뢰는 어떤 점에서는 충분히 일리가 있고 가치 있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 즉 최초에 가치를 평가하는 의사결정을 했던 자아에게 상당한 압력을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3] 앵커링 효과는 단지 부동산 가격책정뿐 아니라 연봉협상에서 주식 가격, 심사위원특별상 그리고 ‘열두 개를 사면 한 개는 공짜’라는 문구의 표지판을 보고 다섯 개만 사려다가 열두 개를 사기로 마음을 고쳐먹는 경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곳에서 나타난다.
공짜라는 덫
앵커링은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데도 이용될 수 있다. 돈을 쓰지 않고 아끼기만 하는 것이 사물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한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말한 무료앱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앱들은 몇 개의 가격 범주로 깔끔하게 분류돼 있는데, 일단 가격이 설정되고 나면 사람들은 어떤 앱에서 얻을 수 있는 편익을 그 앱에 들일 돈을 다른 데 써서 얻을 수 있는 편익과 비교해서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최초의 앵커를 기준으로 가격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한 번에 15분 씩 한 주에 두 번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앱의 가격이 13.5달러라면 어떨까? 이 가격은 낮은걸까 높은걸까? 이 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효용의 절대적 가치가 13.5달러라는 돈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여러 가지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이 앱을 다른 앱의 가격과 비교하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앱이 13.5달러의 가치에 못미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 앱은 1년 동안 사용자에게 27시간의 즐거움을 주는데, 이는 영화 열여덟편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는 27시간 동안의 즐거움에 대한 대가로 13.5달러를 지불하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로지 가격만 놓고 이 앱을 다른 앱과 비교한다. 그 가격이라는 것도 공짜에 닻이 내려져 있는 가격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돈을 지출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들은 재정적인 감각이 부족해서 돈을 올바로 쓰지 못한다.
모를수록 소비가 행복해진다
뭔가에 대해 아는 게 적을수록 닻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부동산 사례를 다시 살펴보자. 주택의 가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던 부동산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닻 가격에 영향을 덜 받았다.
이런 사실은 마음속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전문가가 아닌 문회한이라고 해도 가치나 가격의 범위를 의시갛고 있을 때는 가치평가 과정에서 닻에 덜 휘둘리기 때문이다.
[4] 저널리스트인 윌리엄 파운드스톤 William Poundstone은 앤디 워홀이 죽은 뒤 롱아일랜드의 몬탁에 있던 이 예술가의 저택이 부동산 시장에 나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술품 가격이 매우 임의적으로 책정되는 듯 보인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미국 팝아트 선구자가 썼던 그 저택의 가격은 어떤 식으로 매겨질 수 있었을까? 무엇이 가치의 표지가 될 수 있을까? 그의 존재, 그의 아우리,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은 유명해질 수 있을 거야”라고 했던 그의 말? 몬탁 저택에는 무려 5,0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매겨졌다.
그리고 나중에 이 호가가 4,000만 달러고 깎였다. 이럴거면 애초에 왜 그토록 높은 가격이 매겨졌을까? 앵커링 효과 때문이다.
충분히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저택은 2,750만 달러에 팔렸다.
이처럼 정확하게 가격을 책정할 수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 앞에서는 앵커링 효과가 매우 강력하게 발휘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들고 나왔을 때, 그 물건을 예전에 본 적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잡스는 ‘999달러’라는 수치를 스크린에 띄우고는 모든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서 그 물건의 적정 가격이 999달러라고 말하더라고 제품 설명회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마침내 가격을 공개했다. 499달러였다! 얼마나 훌륭한 가격인가! 사람들의 머리가 폭발했다! 아이들은 좋아서 엉엉 울었다. 전자업계에 대혼란이 일어났다!
댄은 전에 어떤 실험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을 의뢰받았을 때 보수로 얼마를 달라고 요구할지 물었다. 그 일이란 자기 얼굴을 파란색으로 칠하기, 신발 세 켤레의 냄새를 맡기, 쥐 한 마리 죽이기… 등등 이었다. 그가 신발의 냄새를 맡는 것과 쥐를 죽이는 것 등을 선택한 이유는 그런 일에는 따로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기준이나 도구가 없었다.
대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해서 그 언저리에서 보수가 결정된다. 닻이 존재하는 활동에 대한 보수를 책정할 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격을 불렀다. 그러나 가지 얼굴에 파란색을 칠하기와 같은 것에는 닻이 존재하지 않았고, 피실험자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이들은 거의 공짜에 가까운 돈을 받겠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수천 달러를 부르기도 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임의적 일관성과 앵커링 효과
이미 눈치 챘겠지만 앵커링은 우리가 맨 처음 바라보는 가격(예를들어 권장소비자가격)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자신이 과거에 지불했던 가격(예를들어 편의점에서 샀던 음료수 가격)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권장소비자가격은 외부적인 닻의 한 예이다. 권장소비자가격은 해당 제품의 가격이 이정도라는 것을 당신 머릿속에 심어주려고 한다. 이에 비해서 음료수 가격은 내면적인 닻이다. 이 가격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5] 이 두 가지 유형의 닻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사실 닻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즐겨 인용하는 실험이 있는데, 드라젠 프렐렉과 조지 로웬스타인 그리고 댄이 했던 일련의 실험이다.
이 중 하나의 실험에서 진행자는 MIT 학부생인 피실험자들에게 컴퓨터 마우스, 무선 키보드, 특수 제조 초콜릿 그리고 높은 등급의 와인 등을 포함한 특정한 제품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물었다. 그런데 실험 진행자는 이 질문을 하기 전 피실험자들에게 자신의 사회보장번호의 마지막 두 자리 숫자를 적으라고 한 뒤에, 각각의 물건을 그 숫자로 이뤄진 가격으로 구매할지 대답하게 했다. 예를들어 두 자리 숫자가 54라면 ‘무선 키보드를 54달러에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흥미롭게도 피실험자들이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금액이 각각의 사회보장번호 마지막 두 자릿수 숫자와 연관성을 가졌다. 그 숫자가 높을수록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대답했고, 숫자가 낮을수록 더 적은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대답했다. 사회보장번호의 뒷 두 번호는 물건의 가치와 아무련 관련이 없음에도 그 숫자는 피실험자들이 각각에 매긴 가격에 영향을 줬다.
그리고 이후 그 번호가 가격 책정 판단에 영향을 줬는지 물었을 때,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앵커링 효과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경우는 완전히 임의적인 앵커링이었음에도 의사결정에 영향을 줬다.
[6] 가장 무작위적인 숫자조차 마음속에 가격으로 설정되고 나면 다른 관련 제품들의 가격을 알려준다,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앵커링 효과는 가격을 책정하는 초기 결정이 중요함을, 즉 초기의 의사결정이 사람의 머릿속에 특정 가격을 설정하고 이것이 나중에 있을 가치 계산 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해낸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닻은 이른바 ‘임의적 일관성 arbitrary coherence’이라는 과정을 통해 장기적인 영향력을 획득한다. 임의적 인관성의 기본적인 개념은 피실험자가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금액이 임의적인 닻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돈과 감각
이는 사람들이 어떤 범주에서 첫 번째 의사결정을 하고 난 다음에는 최초의 닻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첫 번째 의사결정에 준해서 두 번째 의사결정을 한다.
어떤 사람이 사회보장번호 마지막 두 자릿수 숫자가 75이고 그가 와인 한병이 60달러라는 가격을 임의로 매겼다면, 두 번째 와인 가격을 매길 때는 75라는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60이라는 숫자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지금 앵커링에서 상대성으로 넘어가고 있다.
실제 현실에서 우리 대부분은 상대적인 가치평가를 경험한다. 이는 이치에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애초에 타당하지 않은 닻에서 출발한 가격이므로 어떤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젠과 조지와 댄은 임의적인 시작점 그리고 이 닻과 함께 시작된 그 뒤의 가치평가 양상이 질서에 관한 착각을 생성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연하자면, 사람들은 실제 현실에서 생활하면서 특정한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거나 확신하지 못할 때 임의적인 것을 무작정 붙잡고 매달린다.
일단 가격이 제시되고 우리가 그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수긍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바로 그 시점부터 줄곤 그와 비슷한 제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가격을 매기는 데 영향을 준다.
닻 올리기
자신에게 제시된 특정 가격(닻)에 너무도 쉽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휘둘린다는 사실은 가치를 평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깨달음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를 권유하는 홍보물에는 대부분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라는 일종의 면피용 경고가 실려 있다. 앵커링이 물건 가격을 평가하는 능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과거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자주 토대로 작용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리 역시 이 홍보물에 실린 것과 비슷한 경고를 삶에 적용해야 한다. 즉, ‘과거의 의사결정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라고.
이 교훈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도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절대로 믿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