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2_돈에 대해 꼭 알아야 할 10가지
_가치 없이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려면
9. 공정함과 노력에 대한 과도한 염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다섯 살이 넘고 또 정치에 활발하게 관여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은 공정함이라는 개념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공정함을 목격할 때나 공정함을 화제에 올릴 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만, 돈과 관련된 일상적인 의사결정 속에서 공정함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어떤 거래를 평가할 때 전통적인 경제학 모델은 창출되는 가치와 지불해야 하는 가격만 단순 비교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격만 놓고 가치를 비교하지 않고, 공정함 같은 다른 요소까지 가격과 함께 놓고 비교한다. 그래서 아무리 효율적이고 완벽한 경제적 해결책이라고 해도 불공정하게 느낄 때는 그 해결책에 분개한다. 이런 감정은 어떤 거래가 합리적일 때조차, 심지어 본인이 매우 큰 가치를 누리게 될 때조차도 영향을 준다.
기본적인 수요공급 법칙에 따르면 우산은 비가 올 때 수요가 높아지므로 가격이 높아지는게 당연하다. 엔진오일 교환이나 잠긴 문을 열어주는 서비스의 가치는 공정함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야 마땅하다. 얼마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이 처리되는가만 따지면 된다.
그러나 쉬워 보이고 시간도 별로 들지 않는 어떤 일에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할 때 사람들은 화를 낸다. 왜 그럴까? 가격이 공정해야 한다고 믿는 철부지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그 가치가 좋아도 공정하다고 믿을 때는 그것을 거부한다. 불공정함을 처벌하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처벌한다.
사람들이 불공정함을 처벌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입증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이른바 최후통첩게임이다(untimatum games).
이 게임의 기본적인 설정에는 참가자 두 명이 필요하다. 이 때 한 사람은 주는 사람, 다른 사람은 받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이이며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다. 이들은 상대방으로부터 보복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며 어떤 행동이든 취할 수 있다. ‘주는 사람’은 처음부터 돈을 10달러 가지고 시작한다. 이 사람은 돈 가운데 얼마의 돈을 ‘받는 사람’에게 주고 남은 돈 얼마를 가질지 결정한다. 주는 금액의 정도는 상관없고 순전히 본인이 결정한다. 만약 ‘받는 사람’이 제시된 금액을 수락하면 그 순간 실험은 끝나고 두 사람은 각자 그 돈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만일 ‘받는 사람’이 제시된 금액을 거절하면 두 사람 다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그 돈은 실험 진행자의 몫이 된다. 즉, 두 사람 다 꽝이고 빈손으로 돌아서야 한다는 말이다.
슈퍼 컴퓨터처럼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면, ‘주는 사람’이 얼마를 제시하든, ‘받는 사람’은 그 돈을 무조건 받아서 챙기는게 옳다. 심지어 1센트라도 공짜로 생기는 돈이므로 이득이다.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초–합리적이라면 ‘주는 사람’은 가장 적은 금액을 제시할 테고 ‘받는 사람’은 무조건 그 제안을 수락할 것이다. 그러면 끝.
하지만 실제 현실 속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받는 사람’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제안은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거부해버리고 만다. ‘주는 사람’이 전체 금액의 3분의 1 미만을 제시할 때 ‘받는 사람’은 대부분 그 제안을 거부하고, 결국 양쪽 다 한 푼도 챙기지 못한다.
불공정한 제안을 받으면, 알지도 못하고 또 만나서 거래를 하지도 않을 상대방을 응징하기 위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돈을 기꺼이 포기한다. 이런 결과는 공정함에 대한 자기 나름의 기준 때문에 우리가 돈의 가치를 오히려 마이너스로 평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최후통첩게임에서 불공정한 제안이 공정한 제안에 비해 뇌의 다양한 부위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 ‘불공정 관련’ 영역이 활성화되면 불공정한 제안을 거부할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즉, 인간의 두뇌는 불공정함을 싫어하며,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불쾌함을 드러내는 행동을 한다. 어리석기 짝이 없으며 제정신이 아닌 두뇌다.
만일 콜라 자동판매기에 온도기가 장착돼서 기온이 높을수록 가격이 높게 부과되도록 설정된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이런 판매기를 보며 어떤 느낌을 받을까? 온도기가 장착된 자동판매기는 코카콜라 CEO인 더글러스 아이베스터 Douglas Ivester가 콜라 매출을 높이려고 제안했던 발상이다. 그러나 이 발상에 소비자가 분노하고 경쟁사 펩시가 코카콜라를 기회주의자라고 공격하자, 실제 이런 판매기가 생산되지 않았음에도 아이베스터는 사임해야 했다.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 전략은 논리적이며 심지어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발상을 불공정하다고 인식했다.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짓으로 비쳤던 것이다.
[2] 어떤 전화 여론조사에서 (전화 여론조사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응답자의 82퍼센트는 폭설이 내린 뒤에 삽의 가격을 올리는 것은 수요공급이라는 표준적인 경제법칙에서 보면 효율적이고 타당하고 올바르다고 말하면서도, 공정하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2011년 넷플릭스는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조만간 가격정책을 바꿀 것이라고 발표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DVD 대여 서비스를 분리하여 각각 월 7.99달러를 매기겠다는 계획이었다. 본래 두 서비스를 합쳐 9.99달러였기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두 개의 서비스 중 하나만 선택하면 월 2달러를 절약하는 셈이다. 한편 두 서비스를 모두 사용한다면 가격이 6달러 가까이 올라가는 셈이다.
대부분의 넷플릭스 사용자들은 두 서비스 중 하나만 사용했는데, 이들은 이 정책에 분노했다. 가격이 나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불공정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손실회피 심리도 작동한다. 고객들은 두 서비스 중 하나를 이용하지도 않으면서 그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충성스러운 고객들은 JC페니로 갈아탔다. 결국 넷플릭스는 100만명에 달하는 고객들을 잃어버렸으며 주가도 떨어졌다. 넷플릭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야심찬 가격정책을 거둬들였다.
[3] 2013년 뉴욕 시티에 폭설이 내렸을 때 우버는 요금을 평소의 여덟 배로 올렸다. 사실 평소 요금도 일반 택시요금보다 이미 높은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특히 사회적 명사들이 우버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그들에게는 분노할 시간이 있었다). 그러자 우버는 새로운 요금체계는 단지 ‘탄력 요금제’일 뿐이라고 대응했다. 요금이 급등해야 많은 우버 운전사들이 위험한 도로로 나서도록 유인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표도 성난 사람들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평상시면 수요공급에 의한 우버의 요금 상승에 대하여 공정한 가격과 공정한 가치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바꾸려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유연성에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가격의 상승 폭이 크고 갑작스럽고 또 기회주의적일 때 이 가격은 불공정하게 느껴진다.
공정한 노력
어째서 공정함의 원칙이 가치 인식을 바꿔 놓을까? 어째서 사람들은 불공정하다고 믿는 것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까?
공정함이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공정하거나 불공정하게 바라보도록 만들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관통하는 요소는 바로 ‘노력’이다.
모든 것에 투입되는 노력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지불해야 하는 특정 가격의 공정함을 평가할 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손쉬운 지름길이다.
눈에 띄는 두드러진 노력에 돈을 지불하기는 쉽다.그러나 정말로 높은 수준의기술을 갖고 있어서 노력을 별로 들이지 않고서도 쉽고 효율적으로 일을 해치우는 사람에게는 돈을 지불하기가 더 어렵다. 별로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그만큼 가치가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4] 온 아미르 On Amir와 댄은 사람들에게 데이터 복구에 얼마를 지불하는지 물어보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둘은 복구된 데이터 양에 비혜해서 돈을 지불하지만, 기술자가 들인 시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데이터 복구 작업이 몇 분 만에 끝났을 때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의지가 낮았지만, 동일한 양을 일주일 이상 걸려서 복구했을 때는 보다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하려 들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동일한 결과물을 두고 속도가 느린 서비스에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려 든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무능한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셈이다.
파블로 피카소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그가 공원에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서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 여자를 잠깐 살펴보고는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초상화를 그려줬다.
“당신은 단 한 번의 붓질로 나의 진짜 모습을 포착하셨네요. 놀라워요! 그런데 얼마를 드려야 하나요?”
“5,000달러요”
“네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받으려고 하세요? 몇 초밖에 안 걸렸잖아요!”
이 항의에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몇 초라니 무슨 말씀을요, 내 평생의 시간에다 몇 초가 더해진 시간이 걸렸는데요.”
여기서는 전문성과 지식과 경험이 중요하다. 그러나 노력을 중심으로 가치를 평가할 때, 우리는 이런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정확하게 가치를 평가하지도 못한다.
궁극적으로 보다면 문제는 지식과 숙련된 기술에 대한 대가로는 돈을 쉽게 지불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기술을 연마하는 데 들어간 세월을 고려해서 기꺼이 지불할 수 있을 만한 액수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고객이 스스로 내고 싶은 액수만큼만 요금으로 내는 지불방식이 식당이나 예술가들 사이에서 점점 늘어나는 것 역시 공정함과 노력이 가치평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입증한다. 손님들에게 내고 싶은 액수만큼만 음식 값을 받는 식당이 있는데, 이 식상은 예전에 책정했던 가격보다 적은 금액을 사람들이 음식 값으로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식당 주인으로서는 반갑지 않은 결과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식당을 찾았으며, 한 푼도 내지 않거나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5] 전체적으로 보자면 식당은 예전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
이처럼 이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음식 값 지불 의시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이유는 그들이 식당 직원들의 노력을 볼 수 있었으며, 여기에 보답해야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는 한 푼도 내지 않고 그냥 나가는 것은 정직하지 않을뿐더러 공정하지 않게 보인다. 이런 측면은 공정함이 양방향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자기가 내고 싶은 만큼만 요금을 내는 방식을 관객이 늘 절반밖에 들지 않는 어떤 극장에서 채택했다고 상상해보자. 이 경우 관객은 극장이 영화 상영에 노력을 매우 조금밖에 들이지 않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자기들이 오지 않았다면 비어 있었을 의자에 앉히는 것 말고는 극장이 한 건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장이 제작사나 연기자에게 더 밝은 영상이나 더 나은 연기를 요구했을리도 없다.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관람료를 자율적으로 내라고 하면 이들은 아마도 아주 적은 금액만 낼 것이다.
극장과 식당에서 보이는 전혀 다른 행동은 공정성과 노력이라는 개념과 관련해 고정비용 대 한계비용의 문제를 강조한다. 극장의 좌석이나 조명 같은 고정비용은 요리사가 고객에게 내놓을 음식을 내놓기 위해 굽는 생선이나 채소와 같은 한계비용만큼 고객에게 ‘받은 만큼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강하게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극장과 식당의 차이는 또한, 소비자는 자기 눈에 노력이 보이지 않으니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가격에는 응징을 가하지만 노력이 쉽게 눈에 띄기에 공정해 보이는 상품에는 고마워하며 높은 가격임에도 보상을 해주려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입증한다. 이는 사람들이 실제 가치와 아무 상관없는 방식으로 뭔가를 평가하는 또 다른 사례가 아닐까? 그렇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투명성 transparency이라는 개념도 살펴봐야 한다.
투명한 노력의 양면성
생산월가가 얼마인지 알 때,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일 때, 즉 투입되는 노력이 눈에 직접 보일 때 사람들은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어떤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심리를 추동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노력이라기보다 노력의 외양이다.
이게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이 가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꿔놓는가? 아니다. 이런 일이 언제나 일어나는가? 두말하면 잔소리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녹아든 작업을 드러내는 것, 즉 투명성은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우리 돈을 받아간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드러낸다. 어떤 것에 많은 노력이 투입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대 사람들은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서비스를 사고파는 데 인터넷이 만만찮게 어려운 매체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크고 작은 기업이 투명성이야말로 자신들이 들인 노력과 가치를 보여주고 증명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여행 사이트인 카약은 특이 더 투명성에 높은 비중을 둔다. 카약의 웹사이트는 검색 과정여ㅔ서 퀵 메뉴나 스크롤별 항목 그리고 가격부터 비행 편에 이르는 여러 선택권의 조합까지 함께 제시하는 한층 확장된 도표와 풍성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검색 대상이 지닌 제각각의 특성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런 식으로 카약은 자신들이 많은 변수를 고려하고 있으며 이 많은 계산이 이미 수행됐음을 방문자에게 보여준다. 그러면 방문자는 결국 자기를 대신해 수행한 그 모든 것에 감명받고는, 만약 카약이 없었다면 그 모든 정보를 취합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임을 깨닫는다.
진행 과정이 가장 불투명한 분야는 정부 및 기관이다. 그런데 정부의 활동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고자 한 영리한 프로젝트 하나가 보스턴에서 시행됐다. 보스턴에서 도로보수는 이 도시에 길이라는 게 처음 생긴 이후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시 당국은 도로보수 작업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 목적으로 현재 보수를 진행하고 있거나 게획하고 있는 파손된 도로 지점을 모두 온라인 지도에 게시했다. 이런 조치 덕분에 시민들은, 비록 자기네 동네 도로에 움푹 팬 구멍이 여러 개 있지만 아직 도로보수 공사 인부들이 오지 않았다 해도 시 공무원들이 어디선가 땀 흘리며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우리 두 저자의 친구인 마이클 노튼은 투명성의 가치를 입증하는 몇 가지 창조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자기와 잘 어울리는 짝뿐 아니라 잘 어울리지 않는 모든 사람을 보여주는 어떤 커플 매칭 사이트의 사례도 포함돼 있다.
[6]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수천 쌍을 가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솔직히 말해 그들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끔찍한 커플이다) 자신들이 사이트 회원을 분류하는 데 그리고 또 잘 어울리는 쌍을 엮어주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 입증해 보인다.
투명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세상의 여러 가치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작에 쉽게 넘어가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투명성이나 투명성 부족의 제물이 될 수 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투입된 노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때 우리는 그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투명성은 노력을 드러내며 따라서 공정함의 외양을 취하기 때문에, 실제 가치와 거의 관계가 없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치에 대한 우리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
집안일과 노력의 관계
공정함과 노력에 대한 인식은 돈 문제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는 어떤 부부든 두 사람을 따로 만나서 전체 집안일 가운데 본인이 하는 일이 몇 퍼센트나 되느냐고 물을 때 두 사람이 대답하는 백분율의 합이 언제나 100을 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부부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상당히 많은 노력을 집안일에들인다고, 배우자보다 자신이 일을 더 많이 하고 가사분담이 공정하지 않다고 믿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두 부부가 집안일에 들이는 노력의 백분율 합이 100을 넘을까? 사람들이 늘 투명 모드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들인 노력의 세부적인 사항은 살피지만 배우자가 들인 노력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투명성 불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가 쓰레기통을 바깥으로 들고 나가서 쓰레기 버리기의 모든 과정을 수행했을 때는 그 결과를 금방 알아보지만, 배우자가 그렇게 했을 때는 결과를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공정함 – 노력 – 투명성
사람들은 늘 공정함을 요구한다.
공정한건 나쁜 게 아니다. 좋은 것이다.
2015년에 제약회사 튜링 Turing Pharmaceuticals의 CEO 마틴 슈크렐리 Martin Shkreli가 에이즈와 전염병 치료 등에 쓰이는 항생제인 다라프림의 제조권을 사들인 직후에 이 약의 가격을 갑자기 13.5달러에서 750달러로 무려 5,555퍼센트나 인상했다. 사람들이 분노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인상 조치는 터무니없이 불공정한 것으로 비춰졌으며, 다라프림이 여전히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을 때 의약품 가격의 공정성에 대한 때 늦은 관심이 뜨겁게 타올랐다. 이처럼 공정함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유용할 수 있다. 심지어 기업계에서도 말이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공정함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한다. 어떤 가격이 공정하지 않아 보일 때 우리는 그 가격을 매긴 사람이나 기업을 응징하려고 나서는데, 때로는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유익한 가치를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상처만 입히고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공정함은 노력의 함수이며 노력은 투명성을 통해서 드러난다.
투명성은 노력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신뢰를 쌓으며 가치를 생성한다. 그렇다면 부도덕한 어떤 사람이 자기 물건에 추가로 어떤 가치를 부여할 목적으로, 투명성을 갈망하는 우리 마음을 이용해서 실제로 자기가 들인 노력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든 것처럼 보이도록 할 수도 있을까? 우리 두 저자가 이 책을 쓰기까지 모두 합해서 150년 넘게 걸린 길고 힘든 노력의 총합을 걸고 말하자면 그럴 일은 분명히 없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