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직면하지 말고, 멀어지기
*본 내용은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의 엉터리 심리학(Psychobabble) “2장 속마음을 표현해야 건강하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후, 버펄로 대학의 연구팀은 같은 날 2000명의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9.11 테러 이후 심적 변화에 대한 글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조사 대상으로 삼은 사람 중 4분의 3이 응답을 했고, 나머지 4분위 1은 요청을 무시했다. 그 후 2년간 버펄로 대학 연구팀은 조사 대상에 포함된 모든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면서 감정적인 고통이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최초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은 응답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감정적으로 안정돼 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써서 보낸 사람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 전에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이 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써서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덜 상처받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사연을 많이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두 집단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아니라, 처음부터 겪었던 경험의 강도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카르니 긴즈부르크(Karni Ginzburg) 박사와 동료들이 심장마비를 겪고도 살아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이들은 감정을 억누른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을 곰곰이 되씹어보았던 사람들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긴즈부르크 박사의 결론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고, 이러한 사람들의 경우 억누르는 스타일 때문에 감정적인 사람들보다 상황에 더 잘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분노를 묻어두지 않는 편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맞는 말일까?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된 한 연구는 과연 이 통념이 그토록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 문제에 대한 40년간의 연구를 검토한 제프리 로어(Jeffery Lohr)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연구를 거듭할수록 결론은 같았다.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공격적인 성향을 감소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는 분노를 마음껏 분출하면 잠깐 동안은 기분이 좋아질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그 감정을 감소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1872년 찰스 다윈은 ‘감정을 외부 신호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하면 감정이 더욱 강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이 말을 더 깊이 되새겨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의 주장은 행동을 통해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실질적으로 그것이 더욱 확고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감정이라는 것이 행복과 사랑이라면 꼭 나쁠 것은 없겠지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면(분노, 질투, 경멸) 괜히 속 마음을 드러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만 얻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실시된 연구 중에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있다.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 열을 실험 대상자의 팔뚝에 가져다 대는 실험으로, 참가자들은 이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각각 긴장을 푼 표현, 중립적 표현, 부정적 표현을 사용하도록 미리 지시 받았다. 부정적인 표현을 채택한 사람들은 다른 두 집단보다 더 높은 수준의 통증을 호소했다. 이는 감정의 표현 그 자체가 어느 정도는 우리의 진짜 감정에 영향을 미치며, 이 두 영역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쩌면 속마음과는 다르게 항상 예의 바르게 웃고 있는 일본인들이나 불편이나 불만,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을 교양없다고 판단하는 태국인들은 이러한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더 알아보고 싶다면,
스티븐 브라이어스(Stephen Briers). 속마음을 표현해야 건강하다? 엉터리 심리학(Psychobabble) (구계원 역) (2장, pp. 39-49). 서울, 서울: 동양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