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적은 것이 더 가치있는가?
: 올림픽 메달리스트들 사이에서의 사후가정적 사고와 만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운동경기가 끝난 후, 메달을 수여받기 위해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흔히 생각할 때, 3위 선수보다 성적이 더 좋은 2위 선수가 더 밝은 표정을 지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은메달을 딴 선수는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반면, 동메달을 딴 선수는 너무나도 신나고 행복해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구하기 위해 1992년 하계 올림픽 경기를 분석하였다. 그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본 경기를 보도한 NBC(National Broadcasting Company)의 영상을 두 개의 테이프로 제작하였다. 테이프에는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가 경기 직후 결과를 알게 되었을 때, 메달 시상대에 올랐을 때가 각각 들어있었다. 메달 장면은 은메달이 20개가, 동메달이 15개였다. 참가자인 20명의 코넬대학교 학생들은 영상을 보며, 각 운동선수들의 모습에서 표현되는 감정을 10점 척도(1점=‘극도의 고통’, 10점=‘최상의 황홀경’)로 평가하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림 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보다 평균적으로 더 행복해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메달 시상대에 올랐을 때보다 경기 직후 결과를 확인하였을 때 더 행복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 행복해 보이는 정도의 평균
까만 막대가 은메달 선수의 행복 평균이고, 무늬가 있는 막대가 동메달 선수의 행복 평균, 숫자가 클수록 더 행복보임을 의미한다.
그림 1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선수들이 경기 직후 즉각적으로 반응할 때, 동메달을 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7.1의 점수를 얻었으며, 은메달을 딴 사람들은 4.8의 점수를 얻었다. 메달 시상대에선,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평균 5.7, 은메달을 딴 선수들은 평균 4.3로 평가되었다. 경기 직후보다 시상대에 올랐을 때 차이가 좀 줄어들기는 하였으며, 두 시점 모두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덜 행복해보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2위와 3위의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3위는 4위와의 경쟁에서 ‘이겼고’, 2위는 1위와의 경쟁에서 ‘졌다’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승패 여부가 둘의 행복지수를 가를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육상, 수영, 체조 경기와 같이, 스스로의 성적에 따라 간단히 1위, 2위, 3위를 가르는 종목들을 대상으로 다시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 분석에서도 마찬가지로, 동메달을 딴 사람들이 은메달을 딴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고 평가되었다. 즉, 직전 경기의 승패 여부는 원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기 전 그들이 가진 기대치와 실제 결과가 많이 달라서가 아닐까도 원인으로 재기되었다. 그러나 각 선수에 대해 경기 전 기대되던 성적(Sports Illustrated의 Olympic preview 참고)과 실제 성적을 대조한 결과, 동메달리스트는 차이가 없었고 은메달리스트는 오히려 기대보다 실제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상대적으로 더욱 행복해 해야 할 것 같은 은메달리스트의 침울한 반응은 경기 전 기대치와의 차이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닌 것이다.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최종적으로 ‘사후가정적 사고(counterfactual thought)’로 인해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사후가정적 사고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과는 반대되는 상황을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는, 벼락치기로 시험을 준비해 시험을 망친 학생을 들 수 있다. 이 학생이 ‘만약 내가 그때 벼락치기가 아니라 미리미리 시험공부를 했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사후가정적 사고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후가정적 사고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향 비교와 상향 비교가 그것이다. 하향 비교는 현재보다 더 안 좋은 상황 즉, 최악의 결과에 대한 사고를 의미한다. 반대로 상향 비교는 현재보다 더 좋은 상황 즉, 보다 나은 결과에 대한 사고를 뜻한다.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동메달리스트는 전자에, 은메달리스트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고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즉, 동메달을 딴 선수는 ‘와 난 메달을 아예 못 딸 뻔했는데, 동메달이나 땄네!’라고 하향 비교를 하고, 은메달을 딴 선수는 ‘아 내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을 텐데’와 같은 상향 비교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영상 속 운동선수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은메달리스트들은 그들이 어떻게 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는지 계속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까? 동메달리스트들은 메달을 놓칠 뻔한 상황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릴까? 정확하게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메달 순위를 알게 된 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구 2에서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사후가정적 사고에 대해 알기 위해 1992년 하계 올림픽 경기에 대한 NBC의 보도 내용을 다시 한 번 조사하였다.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NBC에서 경기 직후와 시상식 이후 메달 수상자들(은메달리스트 13명, 동메달리스트 9명)에게 한 인터뷰들을 두 개의 테이프로 만들었다. 실험은 10명의 코넬 대학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연구 1과 유사하게 진행하였다.
참가자들은 영상을 보고 두 가지를 평가하였다. 첫째로, 인터뷰 속 인물들의 말을 10점 척도로 측정하였다. 여기서 1점은 ‘적어도 나는 ~’, 10점은 ‘나는 거의 (~를 얻을 뻔했다)’이었다. 즉 1점에 가까울수록 만족 또는 하향 사고를, 10점에 가까울수록 상향 사고를 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a) “선수는 자신의 상황이 얼마나 더 나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 같고,
자신보다 순위가 낮은 경쟁자와 비교한다.“
(b) “선수는 자신이 어떻게 더 잘 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 같고,
자신보다 앞선 순위의 경쟁자와 비교한다.”
(c) “선수는 자신이 성취한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고 경쟁자와 비교하지 않는다.
둘째, 인터뷰 속 운동선수들의 생각이 아래의 세 범주에 해당되는 정도를 평가하였다. 각각의 항목에 0%부터 100%까지 부여할 수 있었으며, 합이 100%이 되어야 했다.
결과는 Medvec과 그의 동료들이 예상한 것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평가에서 은메달리스트들의 생각(평균 5.7점)은 동메달리스트들의 생각(평균 4.4점)보다 ‘나는 거의’(즉 상향비교)에 가깝다고 평가 되었다. 두 번째 평가에서는 ‘자신의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카테고리’에서 ‘상향비교를 하는 카테고리’에 할당된 비율을 빼 결과를 얻었다. 이 평가에서 은메달리스트들과 동메달리스트들 간에 유효한 차이가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동메달리스트(평균 53%)가 은메달리스트(평균 16%)보다 덜 상향 비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2를 통해, 은메달리스트들은 ‘거의’ 얻어낼 뻔 했던 금메달에 집중하는 듯하였고, 동메달리스트들은 “최소한 나는 이것을 잘했다”는 생각에 만족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 분석은 선수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Medvec과 그의 동료들은 실제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연구 3을 진행하였다.
연구 3은 뉴욕에서 유명한 아마추어 운동경기로 뽑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게임(Empire State Games)’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1994년, 이 게임에서 메달을 얻은 115명(은메달 60명, 동메달 55명)이 실험에 참가하였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개별적으로 연구 2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10점 척도로 자신의 수행 능력에 대한 생각을 평가했다. 연구 3의 결과 또한 앞선 연구들과 동일하였다. 은메달을 딴 선수들의 생각(평균 6.8)은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생각(평균 5.7)보다 ‘나는 거의’에 더 집중했다.
모든 연구들을 종합하여 볼 때, 은메달을 딴 사람들은 동메달을 딴 사람들보다 덜 행복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성취보다 성취하지 못한 것(금메달)에 초점을 맞추는 상향 비교 사후가정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객관적인 성취와 상관없이 비교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덜 행복하거나 더 행복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단기적인 행복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의 행복은 아직 알 수 없다. 이후 업적에서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인 행복과 업적 달성에서 은메달리스트가 동메달리스트보다 더 나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 더 알고 싶다면,
Medvec, V. H., Madey, S. F., & Gilovich, T. (1995). When less is more: Counterfactual thinking and satisfaction among Olympic medalist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69(4), 603-610.
https://doi.org/10.1037//0022-3514.69.4.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