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 설정점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혼의 상처
사람들은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상처 받은 자기 자신에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 ‘시간이 약이야’라고 말한다. 또 사람의 행복과 가장 관련성이 강한 요인으로 알려진 유전적 설정점(set point)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사람들은 모든 환경에 빠르게 적응(adaptation)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유전적으로 설정된 행복의 수준, 즉 설정점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 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
– 2010년 8월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 Homme(창민, 이현)의 《밥만 잘 먹더라》 가사 중에서
위 노래 가사처럼 아무리 모진 사랑의 시련을 겪더라도 ‘한 순간 뿐이고,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자고,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말 이것이 자명한 사실일까? 시간이 정말 모든 것을 해결해줄까? 너무 자명한 사실이기에 정말 그런지 검증해볼 필요도 없는 것일까?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과학(Science)이다. 과학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기술해주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만약 세상의 풍파를 겪더라도 한 순간 뿐이고,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자고, 죽는 것도 아니라면 그러한 현상이 관찰되어 그렇게 기술될 것이지만, 아니라면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Lucas(2005)의 종단연구는 바로 이 상식-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에 대한 것이고, 이 상식이 잘못되어 있음-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을 보여준다.
Lucas(2005)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상식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은 무려 18년이다. 즉 이 연구는 1984년부터 시작되어 2002년까지 계속되었다. 1984년 당시 가정을 이룬(결혼 상태인) 사람 3만 명 이상이 참여하였는데, 이들의 과제는 자신의 삶의 만족도(Life satisfaction)을 0-10점 사이로 보고(0: 최악의 삶, 10: 최상의 삶)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날 때마다 삶의 만족도를 보고함과 동시에 그 사이에 이혼을 했는지 등을 보고하게 하였다.
18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삶의 만족도를 매년 보고하면서 그 사이에 이혼을 하는 조건을 충족한 사람은 817명이었다(조사를 시작한 해에 이혼한 사람은 이전 데이터가 전무하므로 제외). 이제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재료가 모두 모였다. 바로 이 817명의 행복이 지난 18년 간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한다면, 이혼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의 가장 좋은 약이 시간이었는지 아닌지가 드러날 것이다.
그림. 이혼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있기 전과 후의 행복 변화. X축은 18년간의 시간 흐름을 보여준다. ‘0’은 이혼이 있었던 해이고, -8년은 이혼이 발생하기 8년 전을 6은 이혼이 발생한 후 6년 후를 의미한다. Y축은 삶의 만족도의 변화인데, 각 사람의 삶의 만족도 평균, 즉 각자의 행복 설정점을 ‘0’으로 표준화한 후, 0보다 낮은지 높은지로 표현한 수치이다.
그림은 바로 이 분석의 결과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각 사람이 이혼한 해를 0으로 전환했을 때, 이혼 전과 후의 삶의 만족도(행복)가 어떤 패턴으로 변화하는지를 모형화한 것이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혼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이혼하기 8년 전부터(-8) 설정점(각자의 평균, 그래프에서는 ‘0’) 이하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혼이 발생하기 직전 해(-1년)의 삶의 만족도가 최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혼한지 6년이 지났지만, ‘0’점 즉 개인의 삶의 만족도 설정점(set point)로 회복하지 못하고, 설정점보다 0.42점 낮은 만족도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삶의 만족도가 설정점보다 낮은 정도가 남성이 여성보다 더 심했는데, 이혼 남성은 6년이 지나도 설정점보다 0.56점 낮은 만족도를 보였고, 여성은 6년이 지나도 설정점보다 0.28점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본 연구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상식이 과학적 사실이 아닌, 신화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과학적 사실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아울러 인간의 행복과 관련성이 높은 또 다른 조건인 자발적 행동(voluntary behavior)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증진시키려는 노력이 설정점 수준으로 행복을 회복하는 것과 설정점 이상의 행복을 지속시키는 것에 모두 유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Time does not heal all wounds.
시간이 모든 상처를 낫게 해주진 않는다.
*더 알고 싶다면,
Lucas, R. E. (2005). Time does not heal all wounds: A longitudinal study of reaction and adaptation to divorce. Psychological Science, 16(12), 945-950.
https://doi.org/10.1111/j.1467-9280.2005.01642.x
General Happiness S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