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_다시 숨을 쉬다
[1] 너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다.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 아뮈엘 베케트 Samuel Beckett, 아일랜드 출생 프랑스 작가
데이브(저자의 남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쯤 지났을 때다. 오랜 친구의 전화였다.
내 친구는 자신이 멘토 역할을 해주고 있는 젊은 여성이 겪은 황당한 사연을 들려줬다.
그녀는 며칠 전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가 근처에 사는 동료를 차에 태워주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동료는 흉기를 꺼내 들고 그녀를 위협해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했다.
그녀를 위로해줄 방법을 찾던 내 친구는 내가 예전에 그녀를 만난 적이 있으니 그녀와 얘기하며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습득한 교훈들이 그녀에게도 유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회복탄력성의 씨를 심는다.
[2] 사람들이 역경에 대처하는 방식을 수십 년 동안 연구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세 가지 P가 회복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P는 ‘개인화 personalization’를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역경을 겪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침투성 pervasiveness’으로, 그 사건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셋재는 ‘영속성 permanence’으로, 사건의 여파가 영원히 계속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살펴보더라도 성인이나 아이가 자기 때문에 역경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면 역경에서 더욱 빨리 회복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받지 않으며, 평생 역경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부정적인 사건이 자신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우울을 떨쳐버리고 역경에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세 가지 P의 덫에 걸리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4] 도시와 지방을 막론하고 교사가 학생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르쳤고,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됐다.
[5] 경기 성적이 저조했던 대학교 대표 수영 선수들은 심박수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더 나은 성적을 올렸다.
[6] 보험 외판원들은 구매 거정을 자기 자신에 대한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 날 새로운 잠재 고객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동료보다 두 배 이상의 실적을 올렸고 근속기간도 두 배로 늘어났다.
그 젊은 여성과 통화하면서 처음에는 듣기만 했다. 그녀가 동료를 집까지 데려다준 것이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하기 시작하자 나는 공격받은 사건을 개인화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전부 그 사람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나서 다른 두 가지 P인 침투성과 영속성을 거론했다. 그녀의 삶을 형성하는 다른 영역에서 좋은 점을 찾아 끌어냈고, 시간이 흐르면 절망이 누그러질 거라고 위로했다.
성폭행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엄청나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그 방법이 달라서 무척 복잡하다.
[7] 연구 결과를 보면, 성폭행 피해자는 흔히 자신을 책망하고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이러한 경향을 깰 수 있다면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나 역시 세 가지 P의 덫에 걸렸었다.
나는 데이브가 사망한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의료보고서에는 데이브가 운동기구에서 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이 사망 원인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데이브를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거라고 끊임없이 자책했다. 하지만 신경외과 의사인 남동생 데이비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데이브는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한 심장부정맥으로 순식간에 사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데이브의 사망 원인을 제대로 알고 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자책할 다른 이유를 찾았다.
데이브의 사망으로 주위 사람들을 모두 정신적 붕괴 상태에 빠뜨린 것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탓했다.
[8] 그 후 몇 개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미안해요”였다.
결국 애덤은 “미안하다”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내게 조언했다. 아울러 “사과합니다”, “후회합니다” 같은 표현도 쓰지 말라고 덧붙이면서 어떤 것이 됐든 자책하는 행동방식을 고치라고 설득했다.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노력하자 나는 혀를 깨물며 버텨내는 과정에서 차츰 개인화된 사고방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책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모든 일이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슬픔 전문 카운슬러와 심리치료사에게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
직장에 복귀한 것도 침투성을 중단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직장에서 지지와 이해를 받는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왔다. 직접 비극을 겪고 나니 이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직장에서 그런 광경을 바람직할 만큼 흔히 목격할 수 없다.
[9]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 민간 부문 근로자의 60퍼센트만 휴가를 받는데, 그것도 통상 며칠에 불과하다.
[10] 그래서 직장에 복귀하더라도 슬픔을 극복하지 못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또한 상실 뒤에 찾아오는 경제적 압박은 권투 선수가 잽을 맞고 연이어 스트레이트를 맞는 것과 같다.
[11] 미국 기업만 따져보더라도 슬픔에서 비롯된 생산성 손실은 연간 750억 달러에 이른다.
[12] 포괄적인 의료보험, 은퇴, 육아 – 간호 휴직, 병가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들은 직원에게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더욱 충실하고 생산적인 노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직원에게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관대한 동시에 현명한 조치다.
내 경우, 세 가지 P 가운데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은 영속성이었다.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몇 개월 동안 가눌 수 없는 고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내가 겪은 것과 같은 극단적인 투사를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무한정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13] 특정한 사건이나 결과가 발생했을 때 훗날 이를 어떻게 느낄지 예측하는 ‘정서 예측 affective forecasting’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14]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의 영향을 받는 기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재 애인과 헤어졌다고 가정하고 두 달 후에 느낄 불행 정도를 예측해보라고 요청했다. 다른 대학생들에게는 실제로 애인과 헤어진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느끼는 불행의 정도를 보고하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실제로 헤어진 대학생들이 이별 후의 불행을 예측한 경우보다 훨씬 덜 불행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여러 사건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15] 대학교 조교수들은 종신재직권을 거부당하면 다음 5년 내내 낙심하여 지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16] 마음에 들지 않는 기숙사에 배정된 대학생들의 생활이 참담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내 모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가장 불만이 많던 기숙사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 배정받았던 학생만 보더라도 이러한 연구 결과는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17] 인지적 행동치료법도 시도했다.
우선 자신에게 고통을 안기는 생각이 무엇인지 적고,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를 바탕으로 인지치료와 행동수정을 통합했다.
우선 가장 큰 두려움, ‘아이들이 다시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종이에 적은 문장을 보고 속이 쓰리고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어릴 때 부모를 잃은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내 예측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문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데이브의 장례식을 이끈 랍비 냇 에즈레이는 끔찍한 상황을 맞으리라 예상하고 준비하라는 뜻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들다 lean in to the suck”라고 내게 말했다. 유익한 조언이었다.
여러 해 전, 나는 슬프거나 불안할 때 2차로 파생된 감정으로 인해 두 배로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울할 때는 우울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우울해졌고, 불안할 때는 불안하다는 사실에 불안해졌다.
[18] C. S. 루이스가 썼듯, “모든 비참함의 일부는 비참함의 그림자다. … 고통을 겪을 뿐 아니라 스스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뒤 2차로 파생되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부정적 감정이 밀려왔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하지만 랍비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마음이 많이 안정됐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도 깜짝 놀라지 않고, 그러한 감정이 일어나리라 예측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불교 신자들이 깨달아온 교훈을 막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숭고한 진리는 삶이 곧 고통이라는 것이다.
불교 스승 페마 초드론 Pema Chodron은 미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티베트 불교 전통에 따라 승려로 임명받아 선 세계의 천장을 깼다.
[19] 그녀의 글을 읽어보면 이 숭고한 진리를 받아들일 때 실제로 고통이 줄어들고 “내 마음속 악마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내 악마와 밖에서 함께 술을 마시지는 않겠지만 일단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자 이런 악마가 마음에 나타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기가 막히게도, 내게 가장 도움이 됐던 방법 중 하나는 최악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20] 애덤은 내게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데이브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운전하다가 심장부정맥을 일으켰을 수도 있잖아요.” 라는 생각은 그 순간에 아이들이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러난 감사의 마음이 슬픔을 얼마간 덮어줬다.
데이브와 나는 저녁식사를 할 때 우리 가족만의 의식을 치렀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그 날 하루 동안 겪은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돌아가며 말하는 것이다. 이제 가족이 세 명이 되면서 나는 한 가지를 덧붙여 감사한 순간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또 식사 전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에게 기도하다 보면 우리가 매일 축복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축복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축복일 수 있다.
[21] 심리학자들이 한 집단에게 감사했던 일 다섯 가지를 매주 목록으로 작성하라고 요청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다퉜던 일을, 세 번째 집단에게는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게 했다.
감사 목록을 작성한 집단은 9주 후 훨씬 행복해졌고 건강 문제도 개선되었다.
[22] 경제 침체기에 직장에 들어간 사람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자기 직접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직장을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은 축복을 나열하다 보면 삶에서 좋은 점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에 정말로 행복과 건강이 증진된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아무리 슬픔이 밀려오더라도 하루 동안 감사한 일과 감사한 사람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또 우리 가족이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 깊이 감사했다.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하나만 터져도 하루아침에 경제적 안정을 잃는 사람이 많다.
[23] 한국에서는 전체 인구 100명 중 19명 이상이 빈곤에 노출되어 있고,
그 위험성은 여성과 한 부모 가정의 경우, 더욱 높아진다.
[24] 미국인의 60퍼센트는 생계유지 능력을 위협하는 사건을 경험했고, 3분의 1은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해 경제적 위협에 계속 노출되어 있다.
[25] 배우자의 사망으로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초래되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보다 소득이 적고 연금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여성의 경우 특히 그렇다.
[26]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심신이 황폐해지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돈마저 없어 혼자 남겨지는 여성이 많다.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고통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세 가지 P에 대해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난관을 헤쳐 나갈 때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실직하거나 실연당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등 살다 보면 누구나 상실에 직면한다.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지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기 마련이기에, 우리는 여기에 맞서야 한다.
회복탄력성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올 때, 외부의 지지를 받을 때 생겨난다. 자기 삶에 주어진 혜택에 감사하고 최악의 상황에 달려들 때 생겨난다. 스스로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슬픔을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때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실에 대한 통제권이 적을 수도 있고, 특 수도 있다.
나는 삶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더라도 바닥을 박차고 수면으로 올라와 다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