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_다시 사랑하고 웃기 위해
데이브와 나는 사랑과 우정을 주고받고 서약을 지키며 11년 동안 살았다. 그러다 갑자기 데이브가 세상을 떠났다.
[1] 2만 4000명을 이상을 대상으로 15년 동안 결혼 상태의 변화를 연구한 결과, 결혼하더라도 평균 행복지수는 약간 증가했을 뿐이다.
가령 0부터 10 범위에서 행복지수가 6.7인 독신이 결혼하면 6.8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행복은 결혼식을 치를 무렵 약간 커졌다가 일반적으로 결혼한 지 1년 이내에 희미해진다. 피험자가 배우자를 잃고 재혼하지 않은 경우에 8년 후 평균 행복 지수는 6.55였다.
[2] 또한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은 삶에 매우 만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3] 심리학자 벨라 드파울로는 “독신은 고정관념에 희생되고 오명을 쓰고 무시당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행복하게 산다”고 주장한다.
사랑은 애도할 때, 건드릴 수 없는, 금기시되는 주제다. 배우자를 읽고 나서 즐거움을 찾는 행동보다 유일하게 감정적으로 더욱 난처한 일은 바로 사랑을 찾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한다고 생각만 해도 슬픔이 밀려오고 이내 죄책감에 시달린다.
데이트를 시작할 수 있는 적기는 대체 언제일까? 나는 남편을 잃고 4주 후 남편의 친한 친구와 사귀기 시작한 영국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연애를 그토록 빨리 시작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4]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원한다면 나를 비난해도 좋아요. 하지만 슬픔을 겪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요.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지 4개월가량 지났을 때다. 동생인 데이비드는 조심스럽게 누나가 데이트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데이트를 하면 정신을 분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5]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남성은 대부분 여성보다 일찍 데이트를 시작한다.
배우자를 잃은 미국 중년 성인이 1년 후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는 여성이 7퍼센트인 반면에 남성은 54퍼센트다.
[6] 한국에서는 50대 이상의 성인 배우자와 사별한 후에 재혼하는 비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8.5퍼센트 많고,
새 생활을 시작한 남성이 가혹한 비난을 받을 가능성은 같은 상황에 있는 여성보다 낮다.
성별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는 까닭은 여러 쟁점에 뿌리내리고 있는 이중 잣대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미망인들은 여전히 잔인한 대우를 받고 있다.
[7] 인도 일부 지역에서 미망인들은 가족에게 쫓겨나 구걸하며 살기도 한다.
[8] 나이지리아의 일부 마을에서는 발가벗겨진 후에 죽은 남편의 시신을 닦은 물을 마시도록 강요당한다.
[9] 중국인의 54퍼센트, 터키인의 70퍼센트, 한국인의 81퍼센트가 미망인에 대한 차별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10] 많은 국가에서 미망인은 재산권을 획득하기 어렵다.
몇 달 후 나는 필에게 이메일을 주고받는 친구가 생겼는데, 거의 연애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필의 첫 반응을 보다 내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당신의 친구예요. 하지만 데이브도 내 절친한 친구죠. 나는 아직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을 수 업세요.”
그 날 늦게 필은 이모와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어색한 대화를 꽤 잘 다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모는 “네 태도는 정말 끔찍했어”라고 반박했다.
필은 나를 찾아와 사과하면서 어떤 문제라고 함께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훨씬 배타적이었다. 내가 교제를 시작했다고 언론이 보도하자 한 남성은 “쓰레기 같은 창녀”라고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다행이 내 입장을 이해하는 글도 인터넷에 올라왔다.
[11] 저자인 아벨키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내를 떠나보내고 난 후에 데이트를 시도했던 경험을 블로그에 올렸다.
“아내가 죽고 처음으로 다른 여성과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마치 죽은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았다 … 그만큼 배신한 듯한 느낌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6개월 후 아벨은 교회에서 만난 여성과 첫 데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여성은 뒤로 물러서며 다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아버지가 기회를 줘보라고 딸을 설득했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은 혼자만으로도 차고 넘칠 만큼 슬픔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들을 판단하는 행동은 그런 감정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데이트하는 것을 배신으로 생각하지 말고, 슬픔을 극복하고 즐거움을 찾으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
[12]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스캔 사진은 에너지와 행복에 취한 상태를 보인다.
[13] 사랑에 빠지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생기고 정체성이 확대된다.
새 파트너가 지닌 자질의 일부를 닮아가므로, 호기심이 많거나 차분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 우리에게도 같은 성향이 생긴다.
사랑이 애도의 금기사항이라면 웃음도 그렇다. 죽음 앞에서는 어떤 농담도 엄청나게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농담을 불쑥 내뱉고 깜짝 놀라는 일은 줄어들었다.
유머는 회복탄력성을 증진시켜준다.
[14] 코미디를 시청하는 수술 환자가 진통제를 요구하는 획수는 코미디를 시청하지 않는 환자보다 25퍼센트 적다.
[15] 농담을 하는 군인은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더 뛰어나다.
[16] 배우자를 잃고 6개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웃음을 되찾은 사람은 환경 적응력이 더 크다.
[17] 함께 웃는 부부는 결혼생활을 유지할 확률이 더 높다.
[18] 생리적으로 유머는 심장박동 수를 늦추고 근육을 이완시킨다.
진화론적으로도 웃음은 상황이 안전하다는 걸 의미하는 신호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무디게 해서 긴장을 해소한다.
유머는 악행을 꼬집는 약간의 윤리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19] 영화감독이자 배우 멜 브룩스는 자신이 히틀러와 나치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언급하면서 “그들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축소시킬 수 있으면 우리가 훨씬 앞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에서도 흔히들 농담을 한다.
[20] 절망적인 상황에서 던지는 교수대 유머가 슬픔을 이기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넬 스코벨은 나와 <린 인>을 공동 집필하기 전에 텔레비전 코미디 각본을 썼다. 그녀에게는 형제가 넷 있는데, 어머니의 장례식 때 봉투를 집어들어 “이 봉투 안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자식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라고 선언하며 추도 연설을 시작했다. 넬의 친구는 남편을 잃고 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죽은 남편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이제 그는 훨씬 나은 경청자가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코미디언 재니스 메싯의 남편은 결혼식을 올린 지 2주 만에 갑자기 사망했다. 남편을 어떻게 잃었느냐(lost)는 질문을 받은 메싯은 이렇게 되받았다.
[21] “남편이 길을 잃은 건 아니에요 (He’s not lost) 방향 감각이 뛰어나거든요. 죽은 거예요.”
이렇듯 유머는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긴장을 풀어준다.
사람들은 결혼할 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서약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이미지는 능동적이다. 모두 사랑하는 대상이 살아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세상을 떠난 배우자를 더 이상 껴안을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지만, 심지어 다른 사람을 사귀거나 사랑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한결같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22] 극작가인 로버트 우드러프 앤더슨은 이러한 사실을 완벽하게 포착하고 이렇게 정리했다. “죽음은 삶의 끝이지만, 관계의 끝은 아니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삶의 부침을 극복하게 도와줄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싶어 한다. 새로 연애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 하기가 대체로 쉬워 보인다.
[23]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랑에 빠져있을 때는 말다툼을 해도 애정이 커질 수 있다.
애정 어린 장기적 관계를 토대로 회복탄력성을 구축하려면 배우자와 매일 형성하는 상호작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4] 잘 알려진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신혼부부 130쌍을 초청해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민박 형태의 ‘사랑 연구소 love lab’에서 하루를 보내게 했다.
심리학자들은 부부가 “인위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어떤 결혼이 오래 지속될지 예측했다. 연구자들은 다음 6년 동안 이혼할 부부를 83퍼센트의 정확도로 가려냈다. 부부가 상대방에게 관심이나 애정,지지, 웃음을 구하기 위해 시작하느 대화에 비결이 숨어있었다. 배우자가 “저기 새 좀 봐요!” 라서나 “집에 버터가 떨어졌나요?” 같은 말로 대화를 시도한다. 이때 상대방에게는 두 선택 사항이 이싸. 물러서거나 쫓아가는 것이다. 물러서는 것은 상대방의 시도를 물리치거나 무시한다는 뜻이다. 쫓아간다는 것은 동참한다는 뜻이다.
다음 6년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한 신혼부부는 대화하려는 시도에 86퍼센트 가량 응한 반면에 이혼한 신본부부는 33퍼센트만 응했다. 신혼부부들이 다퉜던 원인은 대부분 돈이나 성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형성하려는 ‘대화 시도’에 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25] 애덤의 동료 제인 더튼이 내린 정의에 따르면, 회복탄력성을 갖춘 관계는 격렬한 감정을 전달하고 중압감을 견디는 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관계는 회복탄력성을 갖춘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것을 뛰어넘어 회복탄력성이 연결 자체의 속성이 된다.
유대관계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활동에는 작은 일을 함께하는 것이 포함된다.
[26] 대부분의 커플은 타오르던 사랑이 희미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때 불길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새롭거나 흥미진진한 활동을 함께 시도하는 것이다.
관계를 오래 지속하려면 부부가 갈등을 풀 수 있어야 한다.
이혼한 부부들이 가장 빈번하게 맞닥뜨리는 상황은 이렇다. 아내가 화제를 꺼내면 남편은 시비를 걸거나 방어 태세를 취한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에게 슬픔이나 반감을 드러내거나 대화하려는 시도를 멈춘다.
[27] 결혼 생활을 오래 유지하는 부부를 보면 부정적 성향을 확대하지 않고 유머와 애정을 보였다.
자신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절충할 길을 찾았다. 또한 이들은 서로 다투고 있더라도 좀 더 기은 차원에서는 관계가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배우자와 언쟁할 때는 자신의 관점에 갇히기 쉽다. 따라서 관점을 좀 더 넓히면 갈등을 해소하는 데 유용하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 부부들에게 자신들의 싸움을 외부인이 지켜봤을 때 싸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것에 대해 써보라고 지시했다.
[28] 결과적으로 부부들이 다음 한 해 동안 원만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편당 7분 정도 투자해서 일기 3편을 쓰는 것으로 충분했다.
사랑으로 회복탄력성을 구축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사랑을 공유하면서 살아갈 힘을 발견하는 것이다. 삶의 기복을 견뎌내면서 계속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삶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잔인하게 사랑을 빼앗겼을 때 다시 사랑하고 웃을 수 있다는 희망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 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계속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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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계속 행진한다. 어떤면에서는 나도 행진했지만 전혀 나아가지 못한 면도 있다.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뒤 데이비스 구겐하임이 말해주엇듯이, 나는 이제 ‘슬픔을 펼쳐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쓰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내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슬픔은 파도처럼 덮쳐 우리는 산산이 부수는 것만큼이나 썰물처럼 밀려 나가기도 한다. 현실에 남겨진 우리는 그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더욱 강해진다. 옵션B는 여전히 우리에게 여러 옵션을 제시한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 … 우리는 여전히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이제 내가 오뚝이처럼 다시 튀어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상황은 벌어지기 마련이고 우리는 어쩔수 없이 버티다 보니 성장하는 것이다.
앨런 러커는 자신의 마비에 대해 이렇게 썼다.
[29] “마비는 변장한 축복입니다라고 말해서 당신 피부에 소름이 돋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이익도 있고 손실도 있는 법이다. 어떨 때는 이익이 불가피한 손실만큼 크지 않다고, 아니 그보다 훨씬 크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
비극은 개인적이지도 침투적이지도 영구적이지도 않지만 회복탄력성은 그렇다. 우리는 회복탄력성을 구축해 평생 간직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안에 있는 힘을 발견하고 함께 힘을 구축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에 결코 꺼지지 않을 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