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4_자기연민과 자신감
25세 되던 해, 캐서린 호크는 에이즈를 앓는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남편과 함께 루마니아로 선교 여행을 떠났다. 뉴욕으로 돌아온 후에는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했다.
그때 한 친구가 교회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텍사스 주 소재 교도소를 방문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주말마다 텍사스까지 날아가 교도소에서 창업 교실을 열고 수감자들을 가르쳤다.
[1] 그녀가 관심을 갖고 조사해보니 미국인 4명 중 거의 1명꼴로 범죄 경력이 있고, 20명 중 1명은 징역형을 살았다.
[2] 대부분의 수감자는 석방된 후에 일하고 싶어 했지만 범죄 경력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캐서린은 전과자들에게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저축한 돈을 모두 털어 전과자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찾거나 창업하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인 ‘교도소 사업 프로그램 Prison Entrepreneurship Program’을 만들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5년 만에 주 전체로 확대 실시되면서 졸업생 600명을 배출하고 스타트업 60곳을 출범시켰다.
[3] 텍사스 주지사는 캐서린의 활동을 높이 사서 공공서비스상을 수여했다.
하지만 캐서린의 사생활은 산산이 부서졌다. 결혼한 지 9년 되던 해, 남편이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면서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렸다.
캐서린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한 집단만은 자신을 비난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바로 교도소 사업 프로그램 졸업생들이었다.
캐서린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신랄한 고통을 겪는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졸업생들은 캐서린이 이사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감정이 불안정한 시기에 캐서린은 경계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졸업생 중 한명 이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텍사스 주 형사사법부는 그녀가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그녀가 텍사스 주 교도소를 출입할 수 없도록 조치했고, 그녀가 계속 관여한다면 프로그램도 폐지하겠다고 경고했다.
여러 해 동안 캐서린은 직원들과 기부자들에게 마음을 열라고 촉구하면서 전과자처럼 자신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로 자신이 정의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그녀의 삶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캐서린은 전과자들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려고 헌신했다. 그때는 전과자들에게 연민을 품었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연민을 품어야 했다.
자기연민 self-compassion은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충분히 거론되지 않는다. 아마도 성가신 사촌뻘인 자기동정이나 방종과 자주 혼동되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친구에게 베푸는 것과 동일하게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자기연민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연민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비난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염려하고 이해하는 심정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4] 자기연민의 출발점은 불완전성이 인간의 속성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연민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역경을 더욱 빨리 극복한다.
[5] 결혼생활이 파탄 난 사람들의 회복탄력성을 연구해보면 이혼하기 전에 보였던 자부심, 낙관주의, 우울한 기분은 물론 관계를 유지하거나 별거한 기간도 이와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이 시기에 고통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유용하게 작용한 비결은 자기연민이었다.
[6]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장에서 귀국한 군이 가운데 자신에게 너그러웠던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병률이 현저하게 낮았다.
[7] 자기연민을 품으면 행복과 만족이 커지고 감정상 어려움과 불안이 줄어든다.
[8] 자기연민으로 남녀 모두가 혜택을 얻을 수 있지만 여성은 자신에게 더욱 가혹한 경향이 있으므로 더욱 큰 혜택을 얻는다.
[9]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는 자기연민이 “우리가 때로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잔인한 태도에 대한 방어수단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자기연민은 흔히 자책감과 공존한다. 그렇다고 과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자신을 몰아세워 스스로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다. 자기연민은 나쁜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행위자인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님을 인식하게 한다.
[10]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1] 자신의 성격이 아니라 행동을 탓하면 수치심이 아니라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12] 유머 작가인 에르마 봄베크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받는 선물”에 비유했다.
[13] 죄책감은 떨쳐버리기 힘들 수 있지만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도록 만든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은 바로잡고 미래에는 더욱 나은 선택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수치심은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사람들을 분노에 차 공격하게 만들거나 자기동정에 빠져 움츠러들게 해서 자기 자신을 작고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14] 수치심을 느끼는 성향의 대학생이 마약과 알코올 문제를 일으킬 확률은 죄책감을 느끼는 성향의 대학생보다 높았다.
[15] 수치심을 느낀 수감자의 재범 확률은 죄책감을 느낀 수감자보다 30퍼센트 높았다.
[16] 죄책감을 느끼는 성향의 초중등학생은 갈등을 완화시킨 반면에, 수치심을 느낀 초중등학생은 더욱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17] 인권보호단체 ‘동등한 정의 계획 Equal Justice Initiative’을 이끄는 인권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은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손에 의해 망가진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헤쳐왔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개인은 자신이 여태껏 해온 최악의 행동 이상의 존재”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캐서린 호크는 이 말의 의미를 깨닫고 가장 먼저 목사를 찾아갔다. 목사는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보상하라고 격려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고 7500명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자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캐서린의 경우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글을 쓴 것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18] 글쓰기는 자기연민을 배울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에게 경기를 하다가 코스를 잊어버렸거나, 운동 시합 도중에 넘어졌거나,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지는 등 기분을 상하게 만든 실패나 굴욕을 기억하라고 요청했다. 피험자들은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에게 쓴다고 가정하고 그러한 심정을 이해한다는 내용으로 자신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이 지닌 긍정적 속성만 글로 쓴 통제 집단과 비교했을 때, 자신에게 너그러운 태도로 글을 썼던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40퍼센트 더 높았고, 분노는 24퍼센트 더 낮았다.
[19]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 역경을 다루고 극복하는 데 유익하다.
수십 년 전 건강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대학생 두 집단에게 하루에 15분씩 4일 동안 일기를 쓰라고 요청했다. 단, 한 집단에게는 비감정적인 주제에 대해 쓰고, 다른 집단에게는 성폭행, 자살 시도, 아동 학대를 포함해 자신이 살아오며 겪은 가장 충격적인 경험에 대해 쓰라고 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자 두 번째 집단의 경우(충격적 경험을 쓴) 행복은 감소하고 혈압은 상승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6개월 후 추적연구를 실시한 결과, 영향이 반전되어 자신이 겪은 정신적 외상에 대해 글을 썼던 집단의 정서와 건강이 상당히 개선되어 있었다.
그 후 100여 건 이상의 실험을 거치면서 일기 쓰기의 치료 효과가 입증되었다. 일기 쓰기의 혜택은 의과대학생, 만성 통증 환자, 범죄 피해자, 수감자, 출산한 여성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국가, 문화를 아우르며 효과가 입증됐다.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글을 쓰면 불안과 분노가 감소하고, 학업 성적이 올라가고, 실직에 따른 정서적 영향력과 결근이 줄어든다.
건강 면에서는 면역 활동을 하는 T 세포 수가 늘어나고, 간 기능이 개선되고, 항체 반응이 강화된다.
[20] 꼬리표를 붙이면 부정적인 감정을 좀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꼬리표의 내용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막연하게 “기분이 안 좋다”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마음이 외롭다”라고 표현하는 편이 감정을 처리하는 데 유용하다. 감정을 던어로 표현하면 감정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21] 한 연구에서 거미 공포증이 있는 피험자들은 조만간 거미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들었다. 또 그러기 전에 주의를 딴 데로 돌리거나, 거미를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거미를 보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꼬리표를 달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마침내 거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에 꼬리표를 달았던 사람들은 생리적 자극 반응이 훨씬 안정적이었고, 심지어 거미에게 자진해서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22] 비극이나 위기가 발생한 직후에 일기를 쓰는 것은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너무 쓰라려 아직 감정을 추스릴 수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23] 상실을 겪고 나서 글을 쓰면 외로움이 줄어들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슬픔이나 우울증 증상이 반드시 완화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을 통해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
[24]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녹음기에 대고 말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미술이나 음악이나 춤을 통해 정신적 외상을 표현하는 방법은 효과가 덜하다.
1년 동안 심리치룔르 받고 나서 캐서린은 사람들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과거를 초월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새로 출발할 장소를 뉴욕으로 정한 그녀는 과거 및 현재 수감자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조언과 훈련을 제공하는 ‘디파이 벤처스(Defy Ventures)’를 설립했다.
캐서린은 직업에서뿐만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자신감을 회복했다.
디파이 벤처스의 사명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찰스 호크와 2013년 결혼한 것이다. 금융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결혼한지 1년 후 캐서린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25] 자신감은 행복과 성공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감이 없으면 자신의 결점을 곱씹기 마련이다. 그러면 새로운 도전을 수용하지 못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없다. 커다란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자그마한 위험조차 감수하지 못하고 주저한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는 평생 자기의심과 씨름했다. 대학생 때는 시험을 볼 때마다 낙제할까 봐 겁이 났다. 성적 때문에 당황할 일이 벌어지지 않거나, 심지어 성적이 좋을 때도 교수들이 용케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26] 이것이 가면 증후군 impostor syndrome (자신이 이뤄낸 업적이나 능력을 스스로 의심하며 무능함이 밝혀질까 봐 불안해하는 심리 현상을 가리킨다)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가면 증후군은 남녀 모두에게 나타나지만 여성이 더 강렬하게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27] 거의 20여 년이 지난 뒤, 많은 직장 여성이 나처럼 자기의심을 품고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나서 테드 강연에 나가 여성들에게 당당하게 “테이블에 앉아라”라고 격려했고,
강연 내용을 토대로 <린 인 Lean In>을 썼다.
그리고 데이브를 잃었다. 사람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당연히 슬픔에 빠지고 분노한다.
[28] 그런데 이때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아니 적어도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정신적 외상이 삶의 모든 측면에 자기의심을 퍼뜨린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자신감 상실은 침투성의 또 다른증상이다. 한 가지 영역에서 허우적대느라 다른 영역에서 발휘하는 자기 능력을 갑자기 불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기 쓰기는 내 회복 과정의 주요 활동이 되었다. 나는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지 4일째 되어 장례식을 치른 날 어침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침에 겪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인간 존재에 관한 결코 대답할 수 없는 질문까지 온갖 생각과 감정을 모조리 적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생명이 없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까닭을 깨닫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글을 쓰겠다는 강박이 나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여러 순간을 기억해 글로 남기자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후회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29] 철학자 쇠린 키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삶은 다만 돌이켜 이해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일기를 쓰면서 내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와 미래를 헤쳐 나갈 자신감을 새롭게 구출할 수 있었다.
애덤은 매일 일기를 쓰면서 당시 내가 한 일 중에서 잘한 일 세가지를 함께 써보라고 제안했다. 나는 처음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제대로 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대체 어떻게 잘한 일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30] 하지만 잘한 일을 적으면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작은 승리 small wins”에 집중할 수 있으므로 유의미하다는 증거가 있다.
[31]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잘한 일 세 가지와 그 이유를 일주일 동안 매일 기록했다. 다음 6개월 동안 피험자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어린 시절 기억을 기록한 집단보다 커졌다.
[32] 좀 더 최근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정말 잘한 일과 그 이유를 하루 5~10분 동안 기록했다. 3주 만에 피험자들의 정신 및 신체 건강과 관련된 고통이 완화되었고, 물론 스트레스도 감소했다.
이전에는 나 자신을 위해 감사 목록을 유익하게 사용했다면, 지금은 다른 목적으로도 유익하게 사용하고 있다.
[33] 애덤과 동료 제인 더튼은 자신이 받은 축볼을 센다고 해서 자신감이나 노력이 증가하지는 않지만, 기여한 일을 세면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애덤과 제인의 설명에 따르면, 감사는 수동적 성격을 띠어서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게 만든다. 반면 기여는 능동적 성격을 띠어서 스스로 변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상기시키는 까닭에 자신감을 북돋는다.
나는 직장에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해줬던 말을 나 자신에게도 했다. ‘완벽함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자기 능력을 늘 믿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약간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점점 더 기여의 양을 늘릴 수 있다고 믿으면 된다.’
내가 직장에서 실수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중압감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나를 도우려고 했다.
“그렇게 힘든 일을 겪었는데 업무인들 어떻게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가 아닌 오히려 자신감을 북돋아줬던 말을 “그래요? 나는 당신이 회의 시간에 좋은 의견을 내줘서 우리가 좀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요”였다.
자기의심이 드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사람에게도 자기의심은 슬그머니 찾아온다. 애덤의 친구이자 동료 심리학자인 제네사 샤피로는 30대 때 전이성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제네사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물론 죽음이었다. 그 다음은 직업을 잃는 것이었다.
낙인을 연구한 전문가인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34] 그래서 동료 몇 명과 함께 이러한 가설을 시험해본 결과, 암 생존자들은 구직 면접에서 합격하는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초청받지 못한 제네사는 이렇게 의심했다. “사람들이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내게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제네사의 남편은 “당신이 암에 걸리지 않았을 때도 하루에 논문 한 편을 쓰지는 못했어”라고 상기시켜 아내가 좀 더 자기연민을 품고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제네사의 동료도 힘을 보탰다.
어쨌든 제네사는 종신 재직권을 받았다. 하지만 실직에 따른 두려움은 미국 전역에 만연해 있다.
[35] 2017년 한국에서 실직자는 100만명에 이른다.
해고당하거나 감원당하거나 강제로 직장을 나와야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실직 경험이 사람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36] 수입이 사라지면 엄청난 경제적 압박을 받을 뿐 아니라 우울증, 불안, 기타 건강 문제가 발생하면서 2차 상실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37] 소득이 사라지면서 자기 삶에 대한 통제감을 박탈당하고 실제로 신체적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저하되기도 한다.
[38]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사적인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받아 가정에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된다.
[39] 미시간대학교 심리학자들은 실직 후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울 목적으로 교회, 학교, 도서관, 시청 등에서 일주일 단위로 워크숍을 열었다.
수백 명의 실직자가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네 시간에 걸쳐 구직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설계된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실직자들은 구직 정보를 수집하고 경쟁력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탐색했다. 면접 보는 연습을 하고, 앞으로 직면할 가능성 있는 장애물은 무엇이며, 동기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목록으로 작성했고, 그 결과 작은 승리를 거둬나갔다. 그 후 두 달 동안,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새 직장을 구하는 확률은 20퍼센트 증가했다. 이후 2년 동안 그들은 자신감이 더욱 커졌고 자리를 유지할 가능성 역시 더욱 커졌다. 분명히 짚어두건대, 자신감이 실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란 뜻은 아니다. 사회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교육과 지원을 제공해야 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경우에는 사회보험 혜택을 제공해서 도와줘야 한다.
[40]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프로그램 같은 방법들을 통해서도 분명 변화를 달성할 수 있다.
직장에서 발휘하는 자신감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자주 거론되고 있지만, 가정에서 발휘하는 자신감은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자주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내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내가 <린 인>을 발표한 뒤 배우자가 없는 여성들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해서 쓰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옳았다.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야 가정의 실제 모습에 대한 내 이해와 예상은 점점 더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41] 미국에서 편모의 수는 1970년대 초에 비해 현제 거의 두 배 정도로 증가했다.
세계 아동의 15퍼센트는 한 부모 가정에서 생활하고, 이 가정의 85퍼센트는 여성이 가장이다.
[42] 한국의 경우 미성년 자녀가 있는 가구의 8퍼센트 이상이 한 부모 가정이고, 이들 가정의 대다수는 편모가 가장이다.
많은 편모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 역할을 제외하고도 한 가지 이상의 직업에 종사한다.
질 높은 탁아 서비스는 비용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한다.
[43] 네 살짜리 아이 한 명과 갓난아기 한 명을 탁아 서비스 기관에 맡기는 비용은 미국 어느 곳을 막론하고 연평균 중간 수준의 집세를 초과한다.
[44] 이처럼 고되게 일하는데도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거의 모든 국가에서 편모의 빈곤율은 편부보다 높다.
[45] 미국에서는 편모가 자녀들의 거의 3분의 1이 식량 부족을 경험하고,
[46] 흑인과 라틴계 편모가 가장인 가정은 생활하기가 훨씬 힘들어서 빈곤율이 40퍼센트에 가깝다.
우리는 이런 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첨단산업지역)에 거주하는 세 가정 중 한 가정이 식량 원조를 받고 있다.
[47]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지역 푸드뱅크인 ‘제 2의 수확 Second Harvest’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매달 9만 명에 가까운 아동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아이들을 위해 일어서라 Stand up for Kids’운동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해당 운동의 취지에 따라 한 지역의 자율형 공립학교에 음식을 지원하기 시작한 이후 학생들의 징계 사례가 감소했다. 다른 학교에서도 동일한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학생들의 결석과 건강 관련 불평이 줄어들도 학업 성과가 향상되었다.
워킹맘 중에서도 특히 미혼모는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미국은 전 세계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유급 출산휴가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다.
[48] 한국에서는 워킹맘에게 90일의 유급 출산휴가를 준다.
애덤이 밝힌 연구 결과는 미국 기업의 정책이 개인 문제가 직장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하여 근시안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9] 개인적인 곤경을 극복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직원들의 충성을 사는 데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직장인이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데 필요한 휴가를 확보할 수 있도록 공공 정책과 기업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또한 자녀는 결혼한 이성 부모 밑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구식 전제도 버려야 한다.
결정의 방향타 역할을 해주던 데이브가 없으므로 나는 친구들과 가족의 피드백에 크게 의존해야 했다. 직장 동료가 내 업무에서 긍정적인 점을 지적해주었을 때처럼, 친구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집에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또 예전에 지키던 규칙을 좀 더 융통성 있게 수정하고, 자신과 아이들에게 좀 더 인내심을 가지라고 조언해주는 것처럼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을 솔직하게 알려주는 것도 좋았다.
정신적 외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데이브가 없는 생활에 적응하면서 일기 쓰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기라는 배출구가 없으면 감정이 폭팔하고 말 것 같은 느낌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데이브의 48번째 생일 다음 날 나는 애도의 단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여전히 슬프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도움을 구하는 법을 배웠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곁에 있어줄 것이라는 믿음도 강해졌다. 세상을 살아가기가 여전히 두렵기는 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주위에서 말하듯 나는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