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6_다시 즐거움을 느끼다
생존자가 느끼는 죄책감은 죽음 때문에 발생하는 2차 상실로, 즐거움을 강탈한다.
[1]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슬픔은 물론 자책이 밀려와 타격을 받는다.
생존자가 느끼는 죄책감은 개인화를 부추기는 함정이다. 격렬한 슬픔을 단계가 지나더라도 죄책감은 남는다.
[2] 회사가 직원을 해고할 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사람들도 생존자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3] 의미 없이 오로지 쾌락만 추구하는 삶은 나아갈 방향을 잃은 삶이다.
반면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삶은 우울하다.
나는 댄스 플로어에서 순간적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나서야 지금까지 행복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 짧은 순간도 죄책감에 떠밀려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기에 순수한 즐거움을 다시는 누리지 못하리라는 예측은 맞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시동생 롭의 “형은 지금도 형수가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라는 전화는 내게 진정한 선물을 안겨주었으며 올케인 에이미는 내 기분이 아이들에게 정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4] 자신만을 위해서는 끌어내기 힘든 동기라도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면 찾아낼 수 있다.
2015년 미 육군 소량 리사 재스터는 육군 특수부대 교육과정인 레인저 스쿨을 졸업하려고 도전했다. 리사는 행군을 하는 도중 구역질이 나고 발에 물집이 잡히면서 결코 완주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자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리사는 남은 3킬로미터를 달려 목표 시간을 1.5분 남기고 결승선을 밟았다.
롭과 에이미의 말이 귀에 맴돌면서 나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생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행복을 허용하는 행위, 다시 말해 죄책감을 떨쳐내고 즐거움을 좇아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것은 영속성에 대한 승리다. 즐겁게 생활하려는 것은 자기연민의 한 형태다. 실수했을 때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하는 것처럼, 삶을 즐기는 문제에서도 자신에게 관대해야 한다.
비극을 피하려면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역경에 직면하더라도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도둑맞은 것을 스스로 되돌리려는 행동이다.
[5] 유투U2의 리드싱어인 보노가 말했듯, “즐거움은 궁극적인 반항 행위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아이를 낳거나, 직장을 구하거나, 가족과 재회했을 때처럼 중대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6] 하지만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긍정적인 경험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7]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을 대상으로 12년 동안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피험자의 26퍼센트가 사별한 후에도 예전과 같은 빈도로 즐거움을 찾았다.
그들에게 두드러진 점은 일상적인 활동과 상호 작용을 재개했다는 사실이다.
[8] 저자인 애니 딜라드는 “하루를 지내는 방식이 바로 삶을 보내는 방식이다”라고 썼다.
작은 일을 하며 행복을 느끼게 되길 기다리지 말고, 자신에게 행복을 안겨줄 작은 일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9] 블로거 팀 어번이 썼듯, 행복은 별로 특별하지 않아 쉽게 잊히는 수백 일의 수요일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즐거운 순간을 포착하고 누리려면 노력해야 한다.
[10] 우리는 긍정적인 순간보다 부정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쁜 사건은 좋은 사건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
[11] 요즘 우리는 일상적인 좌절과 소동에도 마치 목숨이 걸린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운다.
[12] 부정적인 감정에도 그렇듯, 긍정적인 감정에 꼬리표를 붙이면 감정을 처리하는 데 유용하다.
[13] 사흘 동안 즐거운 경험에 대해 글을 쓰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석 달 정도 계속하면 병원을 찾는 일이 줄어든다.
[14] 따뜻한 산들바람을 느끼거나 맛있는 감자튀김을 맛보는 것처럼(특히 다른 사람의 접시에서 집어 먹을 때) 매일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15] 우리는 나이 들면서 행복을 정의하는 기준을 즐거움보다는 평온에서 찾는다.
[16] 베로니카 고인스 목사는 이렇게 정리했다. “평온은 움직이지 않는 즐거움이고,
즐거움은 계속 움직이는 평온이다.”
[17] 긍정적인 사건을 다른사람과 공유하면 그 후 며칠 동안 기분이 유쾌하다.
[18] 인권 변호사로 일하면서 끔찍한 사건을 매일 다뤄야 하는 섀넌 세즈윅 데이비스의 말을 빌리면 “즐거움은 일종의 훈련이다.”
[19] 자기 능력을 총동원해 간신히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에 심리학자들은 “가까스로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 just manageable difficulty”을 극복한다고 말한다.
이 수준에서는 정신을 오롯이 집중해야 하므로 동시에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20] 누구나 몰입해서 무언가에 온전히 빠져들었을 때 커다란 행복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친구와 마주 앉아 깊이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가지 함정이 있다.
몰입 분야의 선구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몰입하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복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그런 감정을 언급하지 않다가 즐거웠다는 정도로 나중에 가서야 묘사한다. 심지어 몰입 상태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그 상태에서 황급히 벗어나기까지 한다. 심리학자가 연구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많은 사람이 몰입하기 위해 운동을 한다.
코미디언 패튼 오스왈트는 아내와 사별한 후, 배트맨 같은 만화책이 슬픔에 대한 반응을 이상하게 묘사한다는 걸 알게 됐다.
[21] “만약 현실에서 아홉 살짜리 브루스 웨인이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지금처럼 인기 있는 히어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주위 사람이 죽으면 그들은 살이 찌고 분노하고 혼란스러워하는가?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즉시 헬스장에 간다.”
[22] 운동을 하면 심장질환, 고혈압, 뇌졸중, 당뇨병, 관절염 등의 발병률을 낮추는 등 신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23] 또한 많은 의사와 심리치료사가 운동은 심리적 행복을 향상시키는 데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24] 주우울증으로 고통을 겪는 50세 이상 일부 성인에게는 운동이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만큼이나 효과적일 수도 있다.
몰입하는 것이 사치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비극을 겪고 나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4년 전 시리아에 살던 웨이파는 남편이 체포되자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 후 남편의 모습을 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세 자녀를 시리아에 남겨두고 가장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남동생과 함께 이스탄불로 피신했다. 얼마 후 시리아에 있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손자가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도저히 믿기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기가 막히게 끔찍한 것은 웨이파가 겪은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 종류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25] 현재 난민의 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다.
나는 웨이파의 사연을 읽고 그녀의 믿기지 않는 엄청난 회복탄력성에 감탄했다. 그녀를 직접 만나 교훈을 얻고 싶었다.
웨이파는 통역을 통해 털어놓았다. “아들이 살해당했을 때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어머니이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웨이파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과 가족과 친구들이 먹을 음식을 요리하면서 위안을 얻고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이스탄불에 있는 이웃이 아팠을 때, 웨이파는 일주일 동안 매일 음식을 만들어주었다. 웨이파에게는 자녀와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이 즐거움의 원천이다.
즐거움을 훈련으로 보든, 반항하는 행동으로 보든, 사치로 보든,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보든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 즐거움은 우리가 계속 살아가고 사랑하고 다른 사람 곁을 지키게 해주는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