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8_위기를 극복할 힘을 함께 구축하는 법
[1] 우리는 단일 운명에 묶여 피할 수 없는 상호관계의 그물에 걸려 있다. 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이든 전체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2] 1972년 우루과이를 출발해 칠레로 향하던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을 넘다가 추락해 두 동강 난 채 눈 넢인 경사지에 미끄러졌다.
이는 33명의 생존자에게 엄청난 시련의 시작이었다. 그 후 72일 넘게 정신적 타격과 동상, 눈사태, 굶주림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16명뿐이었다.
승객 45명은 대부분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럭비 선수로, 시범 경기에 출전하러 가던 길이었다. 비행기의 무선통신기기가 망가져서 통신을 보낼 순 없었지만 받을 순 있었다.
생존자들의 첫 번째 계획은 비행기 통체를 피난처 삼아 몸을 피하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9일 후 식량이 다 떨어지고 다음날 일부 승객이 수색을 중단했다는 무선통신을 들었다. 럭비 팀 주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됩니다. 최소한 희망을 일힞 말아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스타보 니콜리치의 생각은 달랐다. “좋은 소식이네요!, 이제 우리 힘으로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됩니다.”
우리는 대개 희망이란 개개인의 머리와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힘을 합해 희망을 쌓을 수 있으며, 개개인은 공유 정체성을 구축해 과거와 더 밝은 미래를 공유하는 집단을 형성할 수 있다.
생존자들은 춥고 굶주린 상태에서 보낸 그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기도했다. 문명 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무엇을 할지 계획했다.
물론 희망을 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많은 승객이 희망을 품었지만 생명을 잃었다. 그렇지만 절망에 무릎 꿇지 않도록 희망이 그들을 지켰다.
[3] 연구자들은 “공동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때” 희망이 생기고 유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4] 새로운 가능성을 믿는 것은 영속성 개념에 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길을 발견하고 새로운 선택 사항을 찾아 나서는 데 도움이 된다.
[5] 행동을 취하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켜 심리학자들은 “근거 있는 희망 grounded hope”이라고 부른다.
파라도와 카네사는 다른 생존자 한 명과 함께 위험한 지형을 가로지르며 54킬로미터를 걸어 해발 4500미터 산 정상에 올랐다. 열흘 뒤 마침내 말에 탄 사람을 발견했다. 그 덕책에 다른 생존자 14명은 헬리콥터로 구조됐다.
생존자들이 결성한 공동체는 수십 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6] 2010년 광부 33명이 칠레의 지하 갱도에 갖혔을 때는 이들 생존자 중 4명이 영상으로 광부들을 응원하기 위해 우루과이에서 날아갔다.
회복탄력성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람들 아시에서, 즉 이웃, 학교, 도시, 정부에서도 형성된다.
집단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희망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서 공동체의 경험과 서사와 정신력을 공유할 때 불붙는다.
[7] 내 아이들은 부모나 형제, 주요 양육자를 잃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무료로 진행되는 체험 캠프 Experience Camps에 참가했다.
캠프가 추구하는 두 가지 핵심 가치는 공동체를 구축하고 희망을 북돋는 것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상실의 비통함과 관련된 감정에 대응하는 훈련을 받는다.
이런 훈련을 하면서 내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정상적인 것이고,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배웠다.
비극을 겪고 나서 공동체에 합류하려면 대개 반갑지 않은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만 해도 ‘미망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주춤거린다. 하지만 미망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스티븐 치프라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입학했을 때 자신이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다른 신입생보다 두 배 많은 38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티븐은 신체적 학대를 당하며 성장했고, 열 살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댔다. .. 나중에는 주 교도소에 갔다. 그곳에서는 다른 수감자와 다투고 교도관에게 침을 뱉는 사건을 일으켜 4년간 독방에서 지내야 했다.
[8] 그는 캘리포니아 주 의회에 출두해 독방이 “고문실”이라고 증언했다.
석방 후 스티븐은 12단계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검정고시를 보고, 반려자인 실비아를 만났다. 영국문학에 흥미를 느낀 그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몇 년 동안 공부한 뒤 캘리포니아대학교에 진학했다. 당당하게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그는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어느 날 전학생 센터 옆을 지나고 있는데 역시 30대인 대니 무릴로가 그의 심상치 않은 거동을 보고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르 ㄹ나누다가 이내 자신들이 펠리컨 베이 주립 교도소 독방에 수감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스티븐과 대니는 친한 친구가 되었고 힘을 합해 독방 감금의 잔혹성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9] 투옥 경험이 있는 캘리포니아대학교 학생들을 지지하는 ‘지하 대학생 연합 underground scholars initiative’을 출범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매우 깊은 고립감을 경험했던 두 사람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었다.
[10] 파시 재단 Posse Foundation도 고립감을 극복하려면 비슷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을 집단으로 묶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파시라는 명칭은 재미있지만 외로웠던 학생의 다음 발언에서 유래했다. “비슷한 무리posse가 있었다면 나는 결코 중퇴하지 않았을 겁니다.” 재단은 사회의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성적과 리더십에서 잠재력이 뛰어난 고등학생들을 선발해 10명씩 묶어 장학금을 지급하고 같은 대학교에 진학시켰다.
[11] 희망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과 더불어 이야기를 공유해도 집단 회복탄력성을 구축할 수 있다.
이야기를 공유한다니 자칫 가볍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향한 기대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가족의 이야기가 자녀에게 소속감을 심어주듯, 집단의 이야기는 공동체에 정체성을 제공한다.
공유되는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부당한 고정관념에 맞서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수학에 약하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12] 수학 시험을 치르기 전에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성별을 상기시킬 경우, 여학생의 성적은 남학생보다 43퍼센트 낮았다.
같은 시험을 “수학 시험”이 아니라 “문제 해결 시험”이라고 부르자 성적에서 성 격차가 사라졌다.
[13] 다른 실험에서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들었을 때, 흑인 학생의 점수는 백인 학생보다 낮았지만, 시험의 성격을 언급하지 않자 성적에서 인종 격차가 사라졌다.
[14]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맞춰 자신이 축소될까봐 두려워하는 상태는 “고정관념의 위협 stereotype threat”이라고 부른다.
불안한 나머지 사고가 혼란스러워져서 고정관념에 순응하게 될 때 느끼는 두려움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파시재단은 이런 취지에서 이야기를 다시 쓰게 한다. 파시 재단 학생들이 무리를 이뤄 대학교에 함께 입학하면 캠퍼스에서 다른 이미지를 형성한다.
[15] 한 파시 동창의 말을 빌리면 “파시 재단 학생들이 멋지고 똑똑하다는 소문이 학교에 자자하다.”
그들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의 위협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고정관념으로 찬사를 듣고 있다.
여성에게는 직장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멘토와 후원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16] 하지만 동료에게서도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동료 멘토링을 지지하는 동료들과 함께 소집단을 형성에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린 인 서클을 만들었다. 현재 린 인 서클은 세계 150개국에 걸쳐 모두 3만 2천개가 있다.
전체 구성원의 절반 이상은 서클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었고, 3분의 2는 서클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도전거리가 생겼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서클이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용하게 작용하는 부분적인 이유는 집단 회복탄력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17] 집단 회복탄력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운 환경에 대항하게 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행동하게 만들어서 진정한 사회 변화를 촉진한다.
역경은 예기치 못하게 불쑥 찾아온다. 갑작스럽게 폭력을 당하면 인간성을 향한 믿음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품기는 힘들다. 오히려 분노와 좌절과 두려움에 휩싸이기 쉽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저널리스트 앙투안 레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고 감동했다. 레리는 2015년 파리 테러 공격으로 아내 헬레네를 잃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밖에 되지 않았을 때 레리는 이렇게 썼다.
[18] “금요일 밤 당신들은 각별한 존재…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증오하지 않을 것입니다. .. 증오를 받는 만족감을 당신들에게 절대 주지 않을 것입니다.” 레리는 생후 17개월 된 아들이 증오에 빠지지 않게 함으로써 증오를 물리치겠다고 맹세했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매일 놀이를 할 것입니다. 이 작은 아이는 평생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으로 당신들에게 저항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내 아들도 증오에 빠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레리의 글을 읽는데, 지독한 슬픔이 밀려왔다. 슬픔이 사그라들자 이번에는 가슴이 욱신거리고 커다란 덩어리가 목구멍에 걸린 것만 같았다.
애덤은 그런 증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고 했다.
[19] ‘도덕적 고양 moral elevation’은 두드러지게 선한 행동을 목격했을 때 감정이 북받치는 현상을 가리킨다.
[20] 이때 발생하는 감정을 일컬어 에이브러행 링컨은 “우리 본성의 더욱 선한 천사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라고 불렀다.
[21] 잔혹한 사건에 직면하더라도 도덕적 고양이 작용하면 상이점보다 유사점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잠재된 선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고 삶을 재구축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연민을 표현하고 불공정성에 대항하려는 힘이 생긴다.
[22]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주장했듯 “어느 누구도 당신을 바닥으로 끌어내려 증오에 빠지게 하지 마라.”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달이었다.
[23]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 있는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수요일 성경 공부를 하고 있던 담임 목사화 신도 8명이 21세 백인 우월주의자가 발사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가뜩이나 상실감으로 비틀거리고 있을 때 이런 몰지각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는 듣고 나는 더욱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신도들의 반응에 대해 들었다.
총격으로 어머니를 잃은 네이딘 콜리어는 이렇게 진술했다. “당신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를 앗아갔다. … 하지만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당신의 영혼에 자비가 깃들기를 빈다. … ”
교회 신도들은 증오를 품으며 삶을 소진하지 않고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힘을 모아 인종차별주의와 폭력에 대항했다.
총격 사건 나흘 뒤, 교회는 문을 열고 정규 주일 예배를 진행했다.
[24] 다음 날 버락 오바마 대통형은 클레멘타 핀크니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해 추도 연설을 하면서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 Amazing Grace>을 선창했다.
이 교회는 남부 소재 아프리칸 감리교회 중에서 역사가 가장 깊은 곳이다. 그동안 신도들은 흑인에게 예배를 금지시키는 법을 이겨내고 백인 폭도가 교회 건물에 불을 지른 사건을 극복했으며, 지진도 꿋꿋하게 견뎌냈다. 비극을 겪을 때마다 힘을 합해 때로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항상 정신적으로 다시 일어섰다.
2015년 총격 사건이 발생하고 맞은 일요일 오전 10시, 도시 전역에 모든 교회가 희생자 한명에 1분씩 9분 동안 종을 울렸다.
[25] 지역 교회의 저메인 왓킨스 목사를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를 결합하는 힘은 우리를 분리시키는 힘보다 강하다.
증오를 향해 우리는 절대 아니라고, 오늘은 아니라고 말한다. … 희망의 상실을 향해서도, 인종 전쟁을 향해서도 우리는 절대 아니라고, 오늘은 아니라고 말한다. …”
공동체가 사태를 수습하려고 움직이자 지역 교회들은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회의를 열기 시작했다.
FBI가 시스템이 무너져 범인이 총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결론 내리자, 총기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가정들이 교회와 정치 지도자들과 손잡고 총기 구매자의 신원 조사를 더욱 엄격히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회 행동주의는 찰스턴에서 낯선 것이 아니었다.
[26]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 여러 해 전에 종교 지도자들은 프로테스탄트 교회, 유대교 회당, 회교 사원을 포함해 신앙 기반 모임을 연결하는 찰스턴 지역 법무부를 결성했다.
그때 이후로 법무부는 매년 한 가지 문제를 선택해 해결책을 제안하고, 수천 명의 시민이 정치 지도자와 경제 지도자들과 함께 만나는 대규모 집회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물론 폭력과 인종차별주의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상실, 불의의 손상, 재해를 비롯한 많은 형태의 역경을 피할 순 없다
[27] 2010년 한 해에만 세계적으로 약 400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해 30여 만명이 생명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재해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면 희망, 경험, 이야기를 공유할 때 집단 회복탄력성이 불붙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불길이 타오르게 하려면 힘, 다시 말해 운명을 개척할 자원과 권한을 공유해야 한다.
[28] 회복탄력성을 갖춘 공동체에는 개인과 집단과 지역 지도자 사이에 사회적 유대관계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
공동체에 권한을 부여하면 집단 회복탄력성을 구축할 수 있다.
[29] 1994년 르완다 대학살 사건으로 민간인 수십만 명이 살해당하자 심리학자들은 정신건강 치료를 위해 탄자니아에 있는 난민 캠프에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개인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취약한 집단을 지원하도록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0] 그래서 마치 마을처럼 협의회, 10대들이 모이는 장소, 축구장, 오락 장소, 예배 장소 등이 마련돼 있는, 강한 회복탄력성을 갖춘 캠프를 세웠다.
불공정한 문화 전통에 맞서 싸우려면 특히 집단 회복탄력성이 필요하다.
[31] 중국에서 여성은 만 27세가 넘도록 독신이면 “잉여 여성‘이라는 오명을 쓴다.
[32] 직업에서 거둔 성과나 교육 정도와 상관없이 “여성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통념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까닭에 독신 여성은 가족들로부터 결혼하라는 압박을 심하게 받는다.
[33] 중국에서는 8만 명 이상의 여성이 린 인 서클에 가입해 함께 노력하며 힘을 구축하고 공유하고 있다.
한 서클은 ‘잉여 독백 leftover monologues’이라는 제목으로 여성 15명과 남성 3명이 출연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려 동성애공포증과 데이트 강간에 반대하고 ‘잉여’라는 단어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자신의 인간성, 즉 살아가려는 의지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타인과의 유대관계에서 찾는다. 개인이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고 성장할 때 더욱 강해지듯, 공동체도 그렇다. 당신이 속한 공동체가 언제 그러한 힘을 갖출지 알 순 없지만 그럴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