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의 행복
인간 내면에 무궁한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대중 심리학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반복되었던 인기있는 주제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Awaken the giant within!)’ 혹은 ‘거인의 무한한 능력(Unlimited power)’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obbins, 2007; 2008). Robbins(2007; 2008)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삶의 단 한 가지 영역에 통달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할 때 거인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또 대중에게 저렴한 가격의 자동차를 선물한 의지력의 화신 핸리 포드(Henry Ford, July 30, 1863 – April 7, 1947)의 신념을 받아들이라며 이렇게 강조한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저 ‘어느 정도의 잠재력’도 사실 대단한 것일 인지데, ‘무한한 잠재력’이라니! 이런 말에 마음이 흡족해진 부모와 교사들은 자신의 자녀들 혹은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어!”, “넌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라고 이야기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최면을 걸고, 자녀들에게도 마법을 건다.
그런데 최면에서 현실로, 마법에서 마법이 풀린 상태로 돌아와 보자. 과연 그런가? 정말 마음먹은 대로 모든 일이 되던가? 오히려 이러한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최면과 ‘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야!’라는 마법 때문에 언제나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어”라고 느끼며 불만족하고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이제 인간을 오히려 좌절시키는 판타지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와야 할 때다. 말콤 그래드웰(Malcolm Gladwell, 1963년 9월 3일)은 정말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아웃라이어들이다(Gladwell, 2008).
아웃라이어란 통계적인 용어로 모집단의 평균보다 2 좀 더 엄격하게는 3 표준편차 이상 떨어져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지능 지수는 평균이 100 표준편차가 ± 15이다. 그래서 1표준편차 뛰어난 사람들의 지능은 115, 2표준편차 뛰어난 사람들의 지능은 130, 3표준편차 뛰어난 사람들의 지능은 145가 되며, 145 이상이 사람들은 천재들의 모임으로 불리는 멘사라는 단체의 회원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3% 미만을 차지하는 아웃라이어들이다.
물론 이 아웃라이어들이라고 해서 쉽게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웃라이어들의 삶을 보면 에디슨이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1%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99%의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을 피겨 스케이팅 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김연아 선수(September 5, 1990)도 이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7살에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해서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 전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8시간 씩 연습한 것으로 유명하다(오영석, 2014). 그럼 우리도 희망을 가지고 김연아처럼 8시간씩 노력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까?
그림1. 매일 8시간 씩 연습을 쉬지 않았던 김연아. 그녀의 특별함은 그녀의 연습시간이 아니라, 그녀를 그렇게 연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한 심리적 구조에 있다.
아쉽게도 바로 이러한 결론이 앞에서 지적했던 ‘거인의 무한한 잠재력’이라는 판타지이다. 김연아가 특별한 것은 그가 8시간 씩 연습했다는 것, 즉 그녀가 매일같이 투자한 시간의 양이 아니다. 말콤 그래드웰이 강조한 것처럼, 김연아와 같은 의지력의 화신들이 특별한 것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매일같이 8시간 씩 투자할 수 있는 특별한 심리구조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특별한 심리구조는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김연아 선수는 피겨 스케이팅을 잘할 수 있는 능력(피겨 동작 및 기술과 관련된 절차적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즉 선천적 재능을 타고 났다. 둘째, 김연아 선수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피겨 스케이팅에 집중하는 동안 주의력과 자기 통제력이 고갈되는 속도가 다른 사람보다 느리거나, 같은 시간동안 주의력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거나, 특별한 분야에 한정하여 주의력의 용량과 자기 통제력이 예외적으로 큰 아웃라이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연아 선수가 8시간 연습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보편적인 사람이 같은 연습을 1시간하면서 정도 받는 스트레스 정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인간은 두뇌, 외모, 신체적 능력, 의지력, 결의, 집중력 등에서 개인차가 존재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 능력이나 기질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김연아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라톤에서 얼마 쯤 가다가 뒤에 쳐져 숨을 헉헉 거리며 주저앉아 고통스러워하는 약해 빠진 아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금연을 시도하다가 며칠도 못가서 실패하고, 새해 계획이 작심삼일로 끝나거나, 다이어트를 위해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한 후, 배가 고파 넉넉한 크기의 초콜릿 케이크를 먹으면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고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바바 시브(Baba Shiv)의 연구도 이것을 잘 보여준다(Shiv & Fedorikhin, 1999). 실험에서 일곱 자리 숫자를 암기해야 했던 사람들은 두 자리 숫자를 암기해야 했던 사람들에 비해 실험 후에 제공하는 과일 샐러드와 초콜릿 케익 간식 중 초콜릿 케익을 선택하는 비율이 2배나 높았는데, 이는 주의력과 자기 통제력 고갈을 보충하기 위한 행동이다.
당신이 보통 정도의 주의력과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 집중하다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무리해서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고통을 감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마치 한국에서 대학 진학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처럼, 그리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한국의 직장인들처럼 이미 한계상황까지 와 놓고도 이 만성적인 불편함을 우리 뇌의 경고가 아닌 내가 이겨내고 있는 징후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Tudor, 2012)
먼저는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 혈액순환에 문제가 발생하고, 심장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증가하며, 뇌졸중 등으로 돌연사할 확률도 증가한다(Bunker et al., 2003; Faraji et al., 2011). 또한 신진대사를 원활하지 못하게 만들어 만성 소화불량, 대장암, 비만의 원인이 된다(Chandola, Brunner, & Marmot, 2006). 아울러 정신건강도 헤치게 돼서 우울증과 무기력에 빠뜨릴 확률이 증가한다(Siegrist, 2008). 만성적인 불편함과 고통을 인내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고통을 감수하는 삶은 사회적 관계를 망가뜨린다. 고통을 감내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옳지 않은 몰입은 삶의 다른 영역을 받아들일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친구, 가족 등을 방치하게 되고 나에게 남는 것은 일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인 활동을 할 때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끼고 행복감을 느끼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자원이 구축된다는 심리학의 연구결과들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Fredrickson, 1998; 2001; 2004; Kahneman et al., 2004; Kahneman & Krueger, 2006).
일의 효율성을 감소시켜서 시간은 많이 들고 피곤한데, 생산성은 과거에 비해 계속 감소된다(Phillips et al., 2006). 피곤하지 않을 때는 한 시간이면 할 수 있었던 일을 3시간, 4시간이 걸려서도 끝내지 못한다(Caldwell, 2012). 이렇게 효율이 떨어질 때는 쉬고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 쉬지도 못한다. 마침내 만성피로와 고통에 의한 생산성 저하, 더 많이 일하게 됨, 만성피로와 고통이 가중됨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 이제 우리가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럼 강하지 않은 평범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자신의 부족한 인내심, 자기통제력, 주의 집중력 자원을 아껴서 쓰고, 적절히 분배해서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스스로 지나치게 밀어붙이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집중력을 발휘 한 후, 쉬고, 또 이것이 어느 정도 보충되면 집중력을 발휘하는 방식이 현명하다. 김연아처럼 8시간을 계속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 집중하고, 20분 정도 쉬고, 한 시간 집중하고 20분 정도 쉬고 하는 방식도 좋다. 또 장기적으로 우리의 집중력과 동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부족한 자원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충분한 수면(성인의 경우 8~9시간), 규칙적인 식사, 약간의 운동, 산책,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된다.
두 번째로 자신을 ‘의지 결핍자’라고 낙인찍고 스스로를 질책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을 뭔가 성취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로 삼으라는 말은 아니다. 혹 내가 원하는 기간 안에,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세상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스스로를 용서하여 편안한 마음 상태가 된다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오면서 창의성 발휘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Fredrickson, 1998; 2001; 2004).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의 능력과 적성에 적합한 일이라면 그렇게 힘들거나 어렵게 느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내가 잘 하는 일이면, 어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좋아했던 일일 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안 맞고 뭔가 불편하다면, 어려움, 시련,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자기 통제는 그저 고통이 된다.
시련이 성취에 대한 증거이기에 즐겁고, 불굴의 의지가 자신의 향상을 보여주기에 행복하다면, 또 매일 하는 노력이 너무 당연하게 고민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계속 노력하자.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매번 고뇌하고 있다면, 그리고 삶이 참담하게 느껴진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이럴 때는 관점을 전환하고, 다른 일, 내가 지속적으로 잘 할 수 있는 일, 쉽게 할 수 있는 일, 잘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해도 재밌을 법한 일, 누군가 급하게 때론 갑자기 그 일을 요구해도 잘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을 일을 찾아야 한다. 지금 시간을 들이고 있는 일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익숙해지고, 몰두할 수 있는 진정한 ‘몰입(flow)’ 상태를 발생시키는 일인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Nakamura & Csikszentmihalyi, 2014).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데도 신체적 ․ 정신적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 행복이 올 거야라고 자신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잘 맞고, 내가 잘 할 수 있기에 때때로 힘들지라도 그것에서 오는 행복이 더 클 때, 참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김연아가 8시간 씩 연습할 수 있었던 것은 피겨 스케이팅 타는 것이 자신이 잘하는 일이었고, 훈련은 자신을 더 잘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힘듦보다 행복이 더 컸기 때문이다.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일은 언제 손을 놓아야 할지 알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어쩌면 늘 나와 함께 있던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장 내 눈에 좋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못하기에 싫어질 수 있는 것 보다, 당장에는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 좋아질 가능성이 높은 잘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더 알고 싶다면,
오영석. (2014). Who? Special 김연아. 파주, 경기: 스튜디오 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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