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8~9일 양일간 서울대학교 캠퍼스는 행복연구소가 주최한 제55회 행복교육 기초워크숍에 참여한 교사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지난 2010년 설립된 이래 행복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탐구하며,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행복 교육을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결실을 나누는 자리에 전국에서 모인 초중등교사 240여 명이 참석하여 대형 강의실이 금세 빼곡하게 들어찼다. 12년째 교사들을 대상으로 행복 교육을 진행해오고 있는 행복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워크숍은 행복 이론에 대한 지식과 현장에서 실제 행복 교육을 실천해온 교사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이번 워크샵은 ▲ 두 차례의 행복 심리학 강연 ▲ 명사초청특강 ▲ 행복교과서의 구성 ▲ 행복수업 사례발표 (초등, 중등, 고등)으로 구성되었다.
워크숍 첫날인 8일 오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행복연구센터장인 최인철 교수의 ‘교사를 위한 행복 심리학’ 강의가 행복 교육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찬 교사들을 맞이했다. 최인철 교수는 “선생님이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해진다.”라고 강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교사들의 행복이 단순한 개인의 심리적 안녕의 문제를 넘어서서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질과 직결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행복 심리학은 행복을 ‘긍정적인 마음 상태(positive mental states)’로 정의한다. 현대인, 특히 청소년들은 2010년대 이후로 급격한 정신건강의 악화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과 매일 마주하는 교사들 또한 그러한데, 이러한 마음의 병은 몸의 병으로 연결될 수 있다. 최인철 교수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여 긍정적인 마음 상태, 즉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1. Livability를 높이거나 2. Lifeability를 높이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Livability를 높이는 것은 인간의 삶을 악화시키는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최인철 교수는 행복 교육의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시스템을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만들고 경제적인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임을 지적했다. 두 번째로 Lifeability를 높이는 것은 똑같은 사건을 마주했을 때 이에 대응하는 개인적인 방식을 기능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최인철 교수는 인간이 Lifeability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를 꼽았다.
다음으로는 행복에 대한 오해에 대해 짚으며 행복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시각이 제시됐다. 우리는 흔히 행복에 대하여 “나는 행복보다는 마음의 고요함이 더 좋다”, “인생은 고통인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행복하려면 성공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와 같은 오해를 갖고 있다. 이에 최인철 교수는 “행복은 다양한 긍정적 감정을 포괄하며, 삶에 대한 만족과 내가 내 삶에 부여하는 목적과 가치 또한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고통이 없어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행복한 사람이 더 높은 성취를 누릴 수 있습니다.”라고 논박했다. 행복을 인간이 단기간에 경험하는 특정한 감정 상태로만 이해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단편적인 관점이며, 실제로 행복은 나의 삶에 대한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만족과 긍정적인 정서, 그리고 삶의 목적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개념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서 9일에는 행복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강의가 이어졌다. 먼저 행복은 PANAS라는 긍정적, 부정적인 정서의 총합으로 측정되는데, 이러한 긍정적인 정서들은 공통적인 효과가 있기에 행복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일 수 있다. 확장-구축 이론(Broaden and Build Theory)에 의하면 PANAS 척도에서 제시된 긍정적인 정서들은 공통적으로 “우리의 관점을 확장시키고, 삶에 필요한 자원을 구축”한다. 즉 행복이 단순한 기분 좋음을 넘어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이점을 제공하며,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행복의 포괄성을 인정하는 것은 사람마다 행복은 다양한 방식으로 감각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행복을 보는 또다른 관점에서는 행복을 단순한 느낌을 넘어서, ‘더 잘 기능하는 상태’로 보기도 한다. 최인철 교수는 흔히 행복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으로 흔히 번역되는 Eudaimonia 개념을 제시하며, 인간이 마땅히 갖춰야 하는 좋은 덕목, 즉 삶의 목적, 주변 환경에 대한 통제 가능성, 좋은 인간관계, 개인적인 성장, 자율성, 그리고 자기 수용을 갖추는 것이 곧 인간의 웰빙 상태, 즉 행복이 실현된 상태임을 설명했다. 특히 자율성에 대하여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 소개되었는데, 해당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핵심적 욕구 세 가지는 자주성(Autonomy), 유능성(Competence), 그리고 관계성(Relatedness)이다. 이러한 세 가지 동기가 충족되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이는 곧 행복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즉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도 연구 결과들이 공유됐다. “돈과 행복 사이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행복 수준이 더 낮습니다.” 최인철 교수는 “돈을 벌되, 인생에서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행복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성격의 영향 또한 언급됐다. 최인철 교수는 OCEAN 성격 모델을 소개하며 “높은 외향성과 성실성, 그리고 낮은 신경성이 행복에 가장 유리한 성격 조합”이라고 설명하고, 부정적인 사건에 취약한 성격을 가진 학생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성격은 운명은 아니며, 우리는 노력을 통해 행복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행복의 유전적 요인에 대해서도 “행복에 유전적 기반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유전이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100% 결정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노력할 수 있습니다.”라고 단언했다. 행복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인데, 우리는 “남들보다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 어제의 나보다 행복해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행복은 타고난 성향뿐만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의 구체적인 조건들도 다뤄졌다. 최인철 교수는 “좋은 인간관계가 있는 일터,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일터를 선택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즐겁고 의미 있는 활동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행복에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운동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많은 정신건강 문제는 신체적인 기반을 가집니다. 학생들에게 운동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만큼 좋은 행복수업은 없습니다.” 이는 신체와 정신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며, 전인적인 접근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인철 교수는 개인의 철학과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만의 설명 시스템을 가진 사람들은 잘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는 책을 읽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때로는 아픔을 겪으며 만들어집니다.” 이는 삶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형성되는 개인의 철학이 행복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8일 오후에는 한동일 작가의 특별 강연이 진행됐다. “바티칸 변호사의 공부법 수업”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 강연에서 한동일 작가는 자신의 수학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동일 작가는 “나에게 남은 인생은 얼마만큼인가?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레바논의 레 체드레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며, “내가 살 날을 정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무엇이 되고자 할까요?”라고 청중에 질문을 던지며 교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서의 강연에서 행복을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된 인생의 목적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동일 작가에게도 최근 10년간 몰두했던 사전 작업은 타인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인정과 증명을 갈구하며 타인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내면에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자 한동일 작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보람을 느끼는지, 그리고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스스로 성찰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배움과 자기 계발을 통한 성장의 조건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자기 성찰의 단계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자기 이해와 수용의 단계에 이를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하였다.
좌중에서는 강연 내내 강의 슬라이드를 찍는 셔터 소리가 들려왔으며, 강연 후에도 열띤 반응과 질문이 이어졌다. “타인을 향한 시선을 나로 돌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기점이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한동일 작가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이며, 인생의 시간을 보내는 나의 시간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시계는 시간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Decide의 어원이 나무를 벤다는 라틴어 단어에서 나온 것처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는 것은 끊임없이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행복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강진희(초등), 김은용(중등), 그리고 김은미(고등) 선생님의 발표가 진행되어 행복교육에 발을 들이는 동료 교사들과 행복교육의 다양한 사례가 공유되었다. 수년간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부대끼며 행복 교육을 진행해온 동료 교사들의 위트 있는 진행, 그리고 현장감이 느껴지는 사진 자료에 청중 사이에서는 연일 웃음이 끊기지 않았다.
먼저 최인철 교수의 열혈한 팬, ‘최인철 키즈’를 자처한 강진희 선생님은 행복 교육을 통해 행복한 시민을 만들어내는 것을 행복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꼽으며 현장에서 텃밭 가꾸기, 교실 축제 열기, 타인에게 베풀며 행복을 전파하기와 같은 활동들을 통해 초등생 아동들과 이들의 가족, 그리고 학교 전체에까지 행복 교육을 실천하며 “행복한 문화를 만들고, 내가 행복해짐으로써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환경이 된” 경험을 공유했다. 워크숍에 참석한 선생님들에게 행복해지려는 동기를 부여하고, 선생님들이 각각 현장에서 행복을 전파하는 스토리텔러가 됐으면 바란다는 진심어린 마음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사례 발표 두번째 시간에 김은용 선생님이 강연단에 올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동료 교사에게부터 행복을 전파하기 위해 인사를 제안하며 강의를 시작하자 강의실에는 금세 따뜻한 웃음과 행복한 온기가 퍼졌다. 유쾌한 진행에 내내 웃음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사례발표 시간, 김은용 선생님은 중등생들과 함께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내가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 음미하기, 꿈 명함 만들기 대회 등의 활동을 공유했다. 한편으로 현장에서 행복 교육을 진행하면서 관찰한 결과 청소년들이 스스로 측정하는 행복 점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며, 행복 교육을 실천하는 선생님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고등학교에서 행복 교육을 진행하는 김은미 선생님은 입시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음의 문제를 겪는 학생들의 수에 걱정을 내비치면서 행복 교육의 중요성을 짚으며 강의를 시작했다. 김은미 선생님은 행복 교육을 다양한 방식으로 학과수업에 접목했다. 행복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조별로 찾고 발표하기, 음미하기와 관점넓히기 등의 행복 수업의 메시지를 접목한 광고 만들기와 교내 전시된 예술작품에 대해 발표하며 교내 음악과 학생들과 합동 수업을 한 경험, 학생들이 쓴 행복에 관한 영어 수기를 에세이로 출간한 경험 등, 행복을 학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전파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였다.
사례 발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한 교사들은 “학과 수업 외에 짧은 토막시간에 행복 수업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 “어떻게 학급 분위기를 쾌활하게 함과 동시에 학급 질서를 잘 지도할 수 있을까”, “행복하지 않은 학생들은 행복 수업에 참여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어 교사 주도로 행복 교육을 진행하게 될텐데, 자율성의 측면에서 옳은 방향인지 궁금하다”와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업무 부담이 큰 현장에서도 어떻게든 학생들의 마음 건강을 세세하게 살피려는 교사들의 노력과 열정이 가득 묻어나오는 질문들이었다.
이틀간의 행복교육 기초워크숍은 참가 교사들에게 행복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했다. 또한 행복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가자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행복의 의미를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행복 지식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용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러한 노력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꽃피울지, 그리고 그것이 학생들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기대된다. 행복 교육이 단순한 구호나 일시적인 프로그램이 아닌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이번 워크숍을 통해 전달된 행복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실천적 지혜가 우리 교육 현장에 뿌리내려 더 많은 학생들이 행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