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수준과 안목
: 전문가의 범주화와 초보자의 범주화
그림 1. 세상에 있는 것들을 어떻게 범주화하는지는 그 사람의 전문지식 수준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는 만큼 보인다’, ‘견문을 넓혀야 한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친숙한 말이기에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속뜻을 생각해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말임을 알 수 있다.
가능한 한 가지 해석은 사람이 어떤 대상에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전 지식을 사용하여 그 대상을 정말 그러한지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경복궁에 갔을 때, ‘경복궁이 조선왕궁이다’ 정도로 알고 가는 사람은 궁궐의 전체적인 것 정도만 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조선왕궁의 처마에는 악귀를 막아준다고 알려진 잡상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가장 앞에 사람이 있고, 그 뒤를 원숭이 등의 동물이 따른다.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삼장법사(현장법사)이고, 원숭이는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행자(손오공)이다.’라는 것을 알고 간다면, 경복궁의 처마에 그런 것이 있는지 꼭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이 말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Chi, Feltovich와 Glaser(1981)라는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한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가 가진 지식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데, 이 경우 ‘아는 만큼 보인다’함은 지식의 수준에 따라 세상을 범주화(categorization)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다(그림-1). 범주화란 유사한 대상 ․ 사건 ․ 사람들을 동일한 범주에 포함시키는 인간의 정보처리과정을 의미한다. 전문지식의 유무는 바로 이 ‘무엇이 유사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에 영향을 미친다.
그림 2. 물리학과 학부생들(초보자)은 여러 가지 물리학 문제들을 외적 유사성에 따라 판단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물리학과 학부생들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여러 가지 물리학 문제들을 제시한 후, 같은 유형으로 볼 수 있는 문제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범주화과제를 수행하게 하였다. 그림-2는 이 연구에서 사용한 문제와 학부생들(초보자)이 범주화한 것의 예를 보여준다. 그림-2에서 관찰할 수 있듯이 학부생들은 겉으로 드러난 형태의 유사성에 따라 문제를 범주화하였다. 그림-2A는 삼각형이 있는 것들을 같은 유형의 문제로 범주화한 것의 예이고, 그림-2B는 같은 원반 모양이 있는 것들을 같은 유형의 문제로 범주화한 것의 예이다.
그림 3. 물리학과 대학원생들(전문가)은 여러 가지 물리학 문제들을 동일한 공식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따라 분류하였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의 범주화는 확연히 달랐다. 그림-3은 이 연구에 참여한 물리학과 대학원생들의 범주화를 보여준다. 학부생들과 다르게 전문적으로 물리학 지식을 쌓은 대학원생들은 문제의 외적 형태가 아닌 내적 본질에 따라 범주화하였다. 다시 말해, 대학원생들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물리학적 공식의 유사성에 따라 문제를 범주화하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그림-3A는 ‘에너지 보존 법칙(Principle of conservation energy)’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같은 유형의 문제로 분류한 것의 예이며, 그림-3B는 ‘뉴턴의 제2법칙(Newton’s second law)’ 혹은 ‘가속도의 법칙’이라고 알려진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같은 범주로 분류한 대학원생의 예를 보여준다.
이 연구는 사람이 가지는 관점에 전문지식의 수준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경험적으로 검증했다는 것에 시사점을 가진다. 또한 전문가들은 초보자들과 비교할 때 대상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기 보다는 대상의 내적 본질을 보고 판단할 경향성이 높다는 것을 외적 형태 적용 범주화와 공식 적용 범주화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는 만큼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인다.
*더 알고 싶다면,
Chi, M. T., Feltovich, P. J., & Glaser, R. (1981). Categorization and representation of physics problems by experts and novices. Cognitive Science, 5(2), 121-152.
https://doi.org/10.1207/s15516709cog0502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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