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근원은 혼돈과 무질서
: 정리정돈인가? 강박증인가?
일은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저 인간일 뿐이며, 무질서는 인간의 가장 해로운 적이기 때문이다.
–헤시오도스, 기원전 800년경
자기 계발서 저자나 이를 가르치는 수많은 강사들은 헤시오도스의 위와 같은 조언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안달이 나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원서: 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을 권장하는 스티븐 코비(Stephen Richards Covey)이든,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의 비결을 조언해주는 데이비드 알렌(David Allen)이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체계화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여전히 큰 산업이다.
실상 이러한 체계적 삶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외부적인 환경을 질서 있게 만듦으로써 내면도 질서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모습과 더불어 주변 환경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무질서가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해로운 적일까?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정돈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자기 계발서 저자들과 강사들의 합창에 대한 중요한 비판 중 하나는 ‘정리정돈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오히려 생산성과 창의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20세기 화가이자 조각가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모든 창작 활동은 파괴하면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사고 및 인식 구조를 일단 의도적으로 해체하거나 심지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까지 파괴해야 그 혼돈 속에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The earth was barren, with no form of life; it was under a roaring ocean covered with darkness. But the Spirit of God was moving over the water.
–창세기 1장 2절
피카소의 이러한 말은 성경 창세기의 두 번째 구절을 연상시킨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가 있기 전에 혼돈과 무질서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무질서 안에 빛이 창조되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심히 좋아하셨다.
앨버트 로텐버그(Albert Rothenberg)이 노벨상 수상자 22명과 닐스 보어(Niels Bohr), 막스 플랑크(Max Planck), 아인슈타인(Einstein), 찰스 다윈(Charles Darwin) 등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의 작업과정을 조사한 결과도 정리정돈보다는 혼돈과 무질서에 가까웠음을 지지한다(Rothenberg, 1996). 이 과학자들은 기존의 법칙 혹은 체제대로 정리를 잘 했던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범주를 해체하고 일견 모순되는 아이디어를 배치해보는 작업을 수행했던 사람들이었다. 자기 계발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를 잘하게 된 현대인들이 이 과학자들을 보았다면 이들의 무질서에 혀를 찼을 수도 있다.
정신과 의사 낸시 안드레아슨(Nancy Andreason)은 최신 신경 촬영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의 창의성을 물리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다(Andreasen, 2011; Andreasen & Ramchandran, 2012). 그는 우리 뇌가 ‘휴식‘ 상태에서 가장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이유는 쉴 때에야 비로소 연합 피질의 여려 영역이 활동을 시간하기 때문이다(우리 뇌의 대뇌피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 바로 다양한 정보를 함께 처리하는 연합피질이다).
안드레아슨은 “마치 연합 피질이 활발하게 더듬이를 움직이면서 전혀 관계없던 능력을 서로 연결하는 것과 같다. 언어 감각과 시공간감을 연결해주고, 추상적 감각과 실제적인 감각을 연결해주는 이 활동은 어떤 사물에 대한 관념이나 이미지 등 모든 것을 주관하는 생각의 샘이라 할 수 있다.”이라고 말한다.
은퇴한 심리학 교수 제이 브랜드(Jay Brand)는 창의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책상을 말끔히 정리하면 생산성이 향상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생산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Brand, 2008). 그는 우리의 뇌가 한꺼번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정보의 용량(Work-memory capacity)이 한정돼 있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라는 책상 위에 놓을 수 있는 정보 덩어리의 개수에 제한이 있다는 걸 뜻한다고 설명했다(보통 4~6개의 사이이다).
사물을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5가지 성격 특성 요소 중 하나인 ‘규범성‘(보통 긍정적 의미) 그리고 ‘신경증‘(거의 예외 없이 부정적 의미)과 연관이 있다. 우선 규범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해야 할 일 목록을 작성할 정도로 정리 정돈을 잘한다(Barrick & Mount, 1991). 이들은 근면하고 규율에 잘 따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그런데 직장에서 첫 번째 평가 기준이기도 한 이 장점도 정도가 지나치면 어두운 면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만약 많은 자기 계발 저자들의 말대로 언제나 스스로에 대해 통제력을 유지해야 하고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면 두 번째 특징인 ‘신경증‘이 과도하게 발달하기 쉽다(Obsessive Compulsive Cognitions Working Group, 1997). 이것은 심하면 강박증(OCD,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로 이어지는데 이 증상은 현대인들 사이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다.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는 현대인들의 관념은 실상 강박증적인 환상일 수 있고, 이것을 지키려는 의도적인 노력은 스트레스만 가중시키며, 이러한 스트레스 가중은 오히려 생산력과 창의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과정으로서의 혼돈과 무질서를 강박적 정리정돈으로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것이 어떨까?
*더 알고 싶다면,
Andreasen, N. C. (2011). A journey into chaos: Creativity and the unconscious. Mens Sana Monographs, 9(1), 42-532.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115302/
Andreasen, N. C., & Ramchandran, K. (2012). Creativity in art and science: are there two cultures? Dialogues in Clinical Neuroscience, 14(1), 49-54.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341649
Barrick, M. R., & Mount, M. K. (1991). The big five personality dimensions and job performance: A meta‐analysis. Personnel Psychology, 44(1), 1-26.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j.1744-6570.1991.tb00688.x/full
Brand, J. L. (2008). Office ergonomics: A review of pertinent research and recent developments. Reviews of Human Factors and Ergonomics, 4(1), 245-282.
http://journals.sagepub.com/doi/abs/10.1518/155723408X342871
Obsessive Compulsive Cognitions Working Group. (1997). Cognitive assessment of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Behaviour Research and Therapy, 35(7), 667-681.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0579679700017X
Rothenberg, A. (1996). The Janusian process in scientific creativity. Creativity Research Journal, 9(2-3), 207-231.
http://www.tandfonline.com/doi/abs/10.1080/10400419.1996.9651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