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인간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특별할 때만 마스크를 쓰는 삶에서 언제나 마스크를 쓰는 삶으로
-언제든 외부활동을 즐기던 삶에서 외부활동을 최소화하는 삶으로
-언제든 친구와 만나 우애를 다지던 삶에서 되도록이면 거리를 두는 삶으로
-집에서는 일이나 공부가 안된다는 삶에서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일과 공부를 해야 하는 삶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변했고, 이러한 변화는 어김없이 우리 삶과 행복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말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이 코로나-19의 확산과 그에 따른 각종 (국가적, 국제적) 방역조치들에 영향을 받은 것은 맞지만, 영향을 받은 정도는 제각기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말로 하면, 모두가 코로나-19 영향을 받았지만, 한 사람에게는 그 영향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 영향이 어마어마하게 클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가장 쉽게 답변하는 방법 중 하나는 범주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이 기준 근거로 A범주, B범주, C범주 이런 식으로 구분한 후, 코로나-19에 의해 영향을 받은 정도가 범주별로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면 된다. 그럼 세상에 있는 사회심리적 요소들 중, 비교적 명확하게 범주를 구분할 수 있으며, 대중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은 뭘까? 심리학자로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마 성별과 연령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나 성차(sex difference)에 관심을 가지고, 연령차(age difference)에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필자도 코로나-19 상황의 지속이 남녀의 행복과 연령대별 행복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 편에서는 코로나-19가 남녀의 행복 변화에 미친 효과부터 살펴보고, 다음 편에서 코로나-19가 연령대별 행복 변화에 미치는 효과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격적으로 결과를 설명하기 전에 데이터의 출처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영국 통계청(The UK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ONS)이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분기별로 행복을 조사한 것이다. 한국 통계청이 아니라, 영국 통계청이라는 말에 다소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국 통계청의 자료는 여러모로 전 세계를 대표하기에 좋다. 일단 영국은 다문화 사회이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교의 사람들이 섞여있다(우리나라도 그렇지 않냐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영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단일 민족 국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영국 통계청의 데이터는 분기별로 25,000명 이상의 대규모 표본 데이터를 수집하였기에 그 자체로 신뢰성이 높다. 더하여 데이터 수집 방법의 측면에서 체계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사용하였다. 종합하면 영국 통계청 데이터는 다양한 문화를 아우를 수 있는 대규모 표본 자료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수집하였고, 이는 이 데이터를 통해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는 것이 타당함을 시사한다. 그래서 《2021 세계행복보고서》도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행복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데이터로 영국 통계청 데이터를 활용한 것이다.
다음으로 행복 변화를 어떻게 측정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영국 통계청은 네 가지 질문을 통해 행복을 측정하였다.
1) 생활 만족도(Life satisfaction): 나는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
2) 삶의 가치(Life worthwhile): 나는 현재 생활을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3) 긍정 정서; 감정적 행복(Happiness): 나는 어제 행복했다.
4) 부정 정서; 걱정(Anxiety): 나는 어제 근심하고 걱정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분기에 한 번씩 이 네 가지 진술문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지에 0점에서 10점 사이로 응답하였다(0: 전혀 그렇지 않다, 10: 매우 그렇다).*출처:《2021 세계행복보고서》
과연 코로나-19는 이 네 가지 질문들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응답에 어떤 차이를 가져왔을까? 결과는 명확했다. 코로나-19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먼저 긍정 정서(Happiness)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가 확산된 2019년 4분기부터 2020년 1분기 사이에 남성의 긍정 정서 경험보다 여성의 긍정 정서 경험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을 알 수 있다(파란색 그래프: 실선이 여성, 점선이 남성). 또한 같은 기간 동안 부정 정서도 여성의 증가폭이 남성의 증가폭보다 월등히 큼을 확인할 수 있다(녹색 그래프: 실선이 여성, 점선이 남성).
다음으로 생활 만족도(Life satisfaction)와 삶의 가치(Life worthwhile)를 살펴보자. 구체적으로 코로나-19의 확산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 확실시된 2020년 1분기부터 2020년 2분기 사이에 여성의 생활 만족도와 삶의 가치 인식 감소폭이 남성의 그것보다 크게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4분기부터 2020년 1분기에 여성의 긍정 정서가 감소하고, 부정 정서가 증가한 것이 그다음 분기에서 여성의 생활 만족도와 삶의 가치 인식 감소로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하여 긍정 정서와 걱정/근심과 같은 감정적 웰빙의 경우에는 2020년 2분기부터 회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여성의 긍정 정서가 2020년 2분기부터 3분기까지 다시 회복되어 남성과 비슷해지고, 여성의 걱정과 근심도 2020년 2분기부터 감소하여 2019년 4분기 수준으로 돌아온다. 이는 쾌락적 웰빙은 탄력성이 있으며, 설정점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는 선행연구들이 타당함을 보여주는 결과이다[1, 2, 3].
그러나 생활 만족도와 삶의 의미 인식과 같은 인지적 웰빙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한번 감소한 인지적 웰빙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2020년 3분기까지 떨어진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인지적 웰빙은 감정적 웰빙과 달리 탄력성이 낮아 한번 감소한 것을 회복하기가 어려움을 시사한다. 즉 코로나-19로 낮아진 생활 만족도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인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실직 등과 같은 삶의 부정적 사건으로 인해 감소한 삶의 만족도는 장기적 회복이 안 된다는 선행연구의 결과와 일맥상통한다[1, 2, 3].
아울러 코로나-19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약자에 속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코로나-19의 영향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코로나-19가 저소득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낮은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이를 코로나-19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피해를 주었다는 연구 결과들과 연결하면,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며, 그에 따라 코로나-19가 야기한 부정적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코로나-19의 지속은 큰일이 일어났을 때, 더 큰 피해를 받는 것은 결국 이미 연약한 상태에 놓였던 사회적 약자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1] Sheldon, K. M., & Lucas, R. E. (Eds.). (2014). Stability of happiness: Theories and evidence on whether happiness can change. Elsevier.
[2]
Lucas, R. E. (2007). Adaptation and the set-point model of subjective well-being: Does happiness change after major life events?.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6(2), 75-79.
[3]
Lucas, R. E. (2005). Time does not heal all wounds: A longitudinal study of reaction and adaptation to divorce. Psychological Science, 16(12), 945-950.
*표지 그림 출처